꽃을 불러 이르는 아침 (유정애 시집)

꽃을 불러 이르는 아침 (유정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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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꽃과 나무, 강과 바다를 자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자연이 지닌 생명의 기운이 스며든다. 유정애 시인의 시집 『꽃을 불러 이르는 아침』에는 자연과 일상의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대체로 밝고 평온하다. 그 밝음에는 살아온 시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세상의 작은 존재들까지 귀하게 여기는 선한 감성이 배어 있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정조는 환함이다. 「봄꽃, 날다」에서 봄꽃들은 울타리와 골목마다 “촉수 높은 등 하나씩”을 내걸어 세상을 눈부시게 밝힌다.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던 꽃등은 새벽이 가까워지자 별처럼 반짝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꽃의 개화가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축제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러한 환함에는 삶의 그늘을 오래 견딘 사람의 마음이 배어 있다. 「살다가, 문득」의 닳은 구두 뒤축과 「굳은살」의 거칠어진 발바닥에는 허둥대며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인은 굳은살을 “지나온 날의 부호”이자 “삶을 잊지 말라는 문신”으로 읽는다. 「가장 따뜻한 벽」에서는 한때 소통을 막는 벽처럼 느껴졌던 배우자의 등이 세월이 흐른 뒤 고단한 삶을 받아주는 넉넉한 품으로 다가온다. 삶에 대한 긍정은 상처와 피로를 지운 자리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지나온 날의 무게를 이해하고 서로의 굽은 등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조금씩 깊어진다.
시인의 이러한 긍정적 시선을 떠받치는 정서는 측은지심이다. 표류하는 존재와 늙고 지친 몸, 말하지 못하는 생명에게 다가가는 마음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달래강」의 강물은 갈대의 흔들림 속에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측은지심/선한 눈으로” 말없이 흘러간다. 「해거름에 들어」의 할머니는 수확이 끝난 밭에서 작은 고구마 하나를 발견하고 첫 손주를 안듯 흐뭇해한다. 「로드킬」에서는 도로 위에서 사라진 생명의 비명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해녀」에서는 깊은 바다에 몸을 던져 삶을 건져 올리는 노동의 시간이 뜨겁게 형상화된다.
이 시집에서 자연은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조용한 스승이기도 하다. 「가을, 산사에서」의 감나무는 잘 익은 홍시를 세상의 미물에게 보시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는 “마음속 둑 하나”를 허문다. 「황태덕장」의 황태는 꽁꽁 언 몸으로 바람과 추위를 견딘 뒤 날 듯 가벼워져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비내섬」의 강과 들과 길은 말없이 이어지며 화자에게 자유로움을 되찾아준다. 시인은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을 관념적인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감나무가 열매를 내려놓고, 강물이 주변을 적시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장면 속에 삶의 이치를 가만히 담아놓는다. 그 때문에 이 시집의 지혜는 훈계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표제작 「꽃을 불러 이르는 아침」은 이 시집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자 하늘나리의 봉오리가 차례로 터지고, 꽃가루를 만진 화자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다. 꽃을 바라보던 사람이 마침내 “덩달아 꽃이 된” 것이다. 꽃을 불러 이른다는 것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일이다. 그 순간 바라보는 사람과 바라보이는 존재 사이에 온기가 흐르고, 평범했던 아침은 생명의 기쁨으로 환해진다.
『꽃을 불러 이르는 아침』의 시들은 저물어 가는 것들의 쓸쓸함까지 부드럽게 품으며 삶의 밝은 쪽을 향해 나아간다. 꽃과 바람, 강물과 바다, 음식과 생활의 사소한 물건들이 시인의 다정한 호명을 통해 저마다 빛을 얻는다.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우리도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불러낸 이름 하나가 평범한 하루를 꽃처럼 환하게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시집의 가장 따뜻한 힘이다.
저자

유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