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관찰자 시점 (최현숙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 (최현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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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현숙 시인의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에는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다. 시인은 대상을 쉽게 판단하거나 자기감정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사람의 표정과 사물의 움직임, 식물의 생장과 동물의 눈빛을 찬찬히 살핀다. 그 객관적인 시선의 밑바닥에는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연민이 따뜻하게 배어 있다. 이 시집에서 관찰은 거리를 두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한 존재의 아픔을 가까이 그리고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다.
이 시선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안스리움」이다. 시인은 초록 잎 사이에서 피어난 붉은 꽃을 바라보며 그 붉음이 어디에 배어 있다가 나온 것인지 묻는다. 꽃말이 ‘번뇌’라는 사실을 발견한 뒤에는 “눈물에 부딪히던 바람”과 “내버릴 수 없는 생에 대한 긁힘”을 꽃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안스리움’을 ‘안스러움’으로 바꾸어 읽는다.
사람의 삶을 바라볼 때에도 시인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짧은 휴가」는 위암 수술을 앞둔 사람의 말을 밝은 독백처럼 들려준다. “내 소화력은 최고였지”라는 익살과 병실을 여행지로 바꾸어 부르는 유머 뒤에는 생을 소화하느라 지친 몸의 시간이 놓여 있다. 「점묘화」의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부고를 전할 사람들의 이름을 적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카세트에 남기지 못한다. 시인은 병과 가난, 가족의 상처를 과장하지 않는다. 사소한 몸짓과 물건을 정확히 배치하여 독자가 한 존재의 생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게 한다.
시인의 연민은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소」에서 평생 밭을 갈고 사람의 살림을 떠받친 암소는 막내 오빠의 서울살이를 위해 우시장으로 끌려간다. 쇠죽도 입에 대지 않은 채 빗속을 따라가는 소의 “끔뻑끔뻑”한 눈망울 앞에서 화자는 말을 잇지 못한다.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같은 마음이 흐른다. 「냉이꽃」은 “아무렇게 주저앉아도/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자리에서 한 줌 흙을 붙들고 피어난다. 그 조그만 생의 뿌리에 “봄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고 삶이 가득하다는 사실 앞에서 시인은 문득 자신이 왜소해진다고 말한다. 「분갈이」에서는 화분을 옮기는 일이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바꾸어 놓을 때 생기는 통증과 겹쳐진다. 뿌리를 털어내는 꽃삽의 동작은 단호하고 일방적이다. 그래서 새 흙을 채우고 물을 주는 손길에는 미안함과 돌봄이 함께 실린다. 이 시집의 작은 생명들은 저마다의 고통과 생존 방식을 지닌 존재로 인간과 나란히 놓인다.
이 시집 속 언어의 객관성은 슬픔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주말극장」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뛰노는 아이들과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를 함께 바라본다. 파괴의 현실 한가운데서도 계절은 피고 생명은 자기 몫의 하루를 이어 간다. 「미술품 관람하기」에서는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들이 추상화와 달항아리와 조형물에 포개진다. ‘눈으로만 보라’는 금지 앞에서도 생명은 만지고 묻고 관계를 이루려 한다. 시인의 연민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품고 있는 위태로움과 눈부심을 동시에 알아보는 마음이다.
이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의 존재들은 병들고 나이 들며, 버려지고 떠나고, 제자리에서 뿌리째 옮겨지기도 한다. 시인은 그 불완전한 삶 속에서 생명의 존엄을 발견한다. 꽃은 꺾인 뒤에도 연명하고, 냉이는 보잘것없는 흙에서 봄을 피우며, 사람은 상실한 자리에서 다시 안부를 묻는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살아 있는 것들의 안쓰러움을 하나씩 알아보는 일이다. 객관적인 관찰과 따뜻한 연민이 한 시선 안에서 만날 때 세계는 이전보다 조금 더 자세히 보인다. 최현숙 시인의 시는 잘 보이지 않던 삶의 상처를 가만히 드러내고, 그 상처 가까이 오래 머무는 마음이 시가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위로임을 말해 준다.
저자

최현숙

· 충남 금산 출생
· 2026년 세종시문화관광재단 발간지원금 수혜
· 대전작가회 회원
·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

목차

1부 요제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

산책은 누구랑 했을까/ 주말극장/ 결빙 구역/ 여우의 사막으로 간다/ 배선/ 안스리움/
오래된 건물은 흔들렸다/ 와인 한 병 마시기/ 줄 위의 사람들/ 너의 안부가 지구를 건너오고 있다/ 조감도/ 주입식 교육/ 러브, 러버/ 망에 걸린 망상해수욕장

2부 침실에서 괴테가 걸어 나왔다

이복형/ 찻잔을 고르는 시간/ 토끼 정원/ 백장미 꽃나무/ 짧은 휴가/ 첫사랑 관찰자 시점/
미술품 관람하기/ 슬픔은 모두 블루/ 베이스캠프/ 모래알 랩소디/ 여름밤/ 꽃밭에서/ 분갈이
3부 사랑해 망치 같은 언어가 도착했다

왈츠 변주곡/ 숨꾹질/ 요요현상/ 잠시/ 내일의 날씨/ π/ 나비 효과/ DIY/
호우주의보/ 빈집/ 로그아웃/ 오늘의 요리/ 스무고개/ 점묘화

4부 우편함에 제트기류가 꽂혀 있었다

재부팅/ 점유율/ 부력/ 통성기도/ 소/ 유령 찻집/ 잔소리 밥상/ 냉이꽃/ 커튼콜/ 자율주행/
포토 스폿/ 나의 장례/ 하얀 양털을 뒤집어쓴 늑대처럼/ 공평한 이동

해설 _ 첫 시집 관찰자 시점
여성민(시인)

출판사 서평

나는 관찰자입니다. 최현숙의 첫 시집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하는지 누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지 친애하는 사람들과는 잘 지내며 빛이 좋은 날에는 어디로 이동하는지 관찰하고 미행하는 일이 나의 역할입니다. 이 시집의 삶, 풍경, 등장인물 모두를 관찰합니다.
시집 속에도 ‘삶’이 있고 ‘풍경’이 있느냐고요?
물론입니다. 시집 속에는 시의 ‘배치’가 있고 배치는 ‘풍경’이 됩니다. 그 풍경은 어느 정도 ‘목적’적입니다. 이것을 주제Theme라고 합니다. 도시의 설계와 같죠. 가령 대성당이 중심에 있는 도시라면 가톨릭 신앙을 공유하는 도시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큰 광장이 도시의 중심에 설계되어 있다면? 아마도 혁명이나 민주적인 정신을 중요하게 계승하는 도시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뿐일까요. 한 편 한 편의 시 속에는 시적 장치들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 작은 단위의 장치들이 시집 전체에 여러 번 반복하여 배치된다면 어떨까요? 가령 이 시집에 ‘총’이라는 단어는 몇 번 등장할까요? 마가의 기록이라고 알려진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 저자보다 이동 모티프Motif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독 ‘길 위’의 서사가 많습니다. 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길에서 흩어지고 모이며 길에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최현숙은 어떨까요.
이동. 내가 시집을 읽고 메모한 첫 단어입니다.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마음이 살짝 떨렸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군요. 시집 제목이 『첫사랑 관찰자 시점』이니까요. 무려 ‘첫사랑’입니다. 이 시집이 ‘첫’ 시집인 것처럼! 모든 ‘첫’은 떨림을 경험하게 합니다.

중력에 의한 이동은 익숙한 문법의 힘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언어에도 중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미’라는 단어 다음에는 ‘붉다’나 ‘예쁘다’라는 말이 따라 붙습니다. 이것이 중력이고 익숙한 관계의 문법이며 친구의 언어입니다. 최현숙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대신 “너의 당기는 힘으로” 내 공평을 옮기겠다고 말합니다. ‘너의 당기는 힘’은 새로운 문법 체계입니다. 그 힘에 이끌린 이동은 시인에겐 공평한 이동입니다.
_ 여성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