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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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안 아닌 ‘머무름의 시학’
이 시집은 온통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것들로 꽉 차 있다
살아 있음과 없음의 중간 어디쯤에서 건져 온, 돌과 바람과 달빛의 ‘말’들

“너를 좋아하니까
밤새 담벼락 아래 수많은 이야기가 그들의 놀라운 음악을 들려준다
표정이 말해 주었다”
우은주 시인의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우리가 이미 지나왔다고 믿는 시간들을 다시 불러와, 그 곁에 조용히 앉아 잊지 않기 위해 듣는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말하는 자’이기 이전에 ‘듣는 자’로서의 화자를 세우며,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 기억이 만들어 낸 여운을 머무름의 언어로 그려 낸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멈춘 적 없어서/ 한 사람이면서 여럿, 하나면서 여러 이름이/ 있었던 사람, 언젠가 없을 사람들을 부른다”(「시인의 말」)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4월」은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며, 말끔히 정돈된 도시의 이면에는 여전히 무수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시인은 고발하거나 재현하기보다, 그날 이후의 시간 속에 남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는 여기 있고/ 나는 지나갔다”(「6월 29일」)는 문장은 살아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자리,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고요히 지시한다.
우은주의 시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을 맴돈다. 그곳에서 그는 침묵 속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쉽게 위로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오래 듣는 윤리를 택한다. 이때 시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슬픔 곁에 머무는 시간이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도달하는 이 조용한 언어는 상처의 내부에서 새로 피어나는 온도의 감각을 전한다. ‘나에게 많은 건 망설임/ 이렇게 말해도 될까?/ 묻고 또 묻는 마음’으로.
「황색 트렌치코트」에서 화자는 낡은 옷 한 벌에 “바람을 막아 내던 날개는 찢어졌고 //(중략)// 코트 밑단에서 흰 재가 한 움큼씩 떨어진다”라고 쓴다. 사물에 스며든 한 생의 시간은 효용으로 환원되지 않고, 삶의 잔향과 상처의 무게로 다시 빛난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의 내력에 귀 기울이며, 지나간 존재들의 목소리를 현재의 자리로 불러온다.
특히 시집의 2부에는 서로 맞닿은 시간과 인물들을 따라 이어지는 연작시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연작들은 한 사건의 여러 층위를 비추듯,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기억과 맞닿는 순간들을 보여 주며, 시집 전체의 서사적 흐름을 이루어 간다.
「지원의 얼굴」에서는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진다. 화자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너’를 바라보지만, 그 시선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우은주의 시적 언어는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이며, 개인의 감정이 공통의 감각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듣는 자의 윤리, 곁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해설 「‘듣는 자’의 말하기, 혹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발굴하기」에서 이 시집을 “대안이 아닌 머무름”의 시학이라 부른다. 그는 우은주의 시가 보여 주는 태도를 “과거로부터 미래를 발굴”하는 청취의 언어로 정의하며,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앞세우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 속에서 다중의 ‘나’와 ‘너’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그 다정하고 절제된 태도 속에서 시는 망각을 넘어서는 또 다른 윤리를 제시한다.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는 사건과 사물, 개인과 사회, 말하기와 듣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시집이다.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조용히 떠올리며, 기억은 머무는 일임을 보여 주는 이 시집은 슬픔과 윤리, 고요와 연대의 언어로 오늘의 시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다정하게 묻는다. 시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나의 집에 와서 따듯하게 데워진 언어를 마시자”고.
저자

우은주

저자:우은주
강릉출생.2019년《황해문화》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낮고믿음직한목소리로살아간다.

목차

1부나는여기있고나는지나갔다

4월
6월29일
타워크레인

통조림
거울보는사람
유령
황색트렌치코트

배웅
죽음의생애사
실러캔스
0.75평
지원의얼굴
구의역

2부너의세계에없는것을설명할필요없어요

애플파이1
애플파이2
파트라슈
한소년이살았네_허들
한소년이살았네_callme
한소년이살았네_프롤로그
한소년이살았네_홍콩야자
표정
개미의마음
자유,낙하
계속해서여름
오리와무중1
오리와무중2
오리와무중3

3부누군가새다소리치지않아도태양가득오후가빛나고있네

페이스트리
물고기유령
퍼레이드
명치
허공의새

슬픔의연대
차가운것을손에잡았을때
개의마음이되어
아가미
수족관
틸드
영원이야기
냉장도
ㄷ,

4부베지못한것이남아종일사랑을한다

빛과어둠
뜨거운미래
나무
살구_나무
단풍놀이
국수
말과관객
뉴타운
우리가함께한다는말
당신은도를아십니까
투명한입

흐르는글씨
알의전설
지옥으로하강
신발속의돌

해설
‘듣는자’의말하기,혹은과거로부터미래를발굴하기
-임지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너와친해지고싶어
너와보고싶은세계
같이느낌의공간을만들려고
시작한일

좋아하는마음을멈춘적없어서
한사람이면서여럿,하나면서여러이름이
있었던사람,언젠가없을사람들을부른다

나에게많은건망설임
이렇게말해도될까?
묻고또묻는마음

‘나의집에와서따듯하게데워진언어를마시자’

2025년10월
우은주


책속에서

A는공원벤치에앉았다.몇개의가방을갖고.그동안너무많은가방에매달려있었다고자책하며쓰고남은날씨와기념일을바닥에버렸다.당장어디로가야할지몰라일어설수없었다.가방과몸이부딪히고.바람에갇혀발광하는비닐을바지속으로밀어넣으며.과거가지나가도록몸을움츠렸다.A는벤치아래에서잠들었다.두꺼운옷을입고겨울과한여름을잠으로보냈다.
A는빗속에서눈을떴다.점점빗방울이굵어졌다.A는측정할수없는어둠을보았다.경계를넘어가는혼란스러움,색깔이스며들었다.날씨의물속에가라앉으며점차자신이사라지는장면을보고도놀라지않았다.누군가의어둠을녹여,움직일때마다생기는그림자로자신의인생을완성했다.
---「죽음의생애사」중에서

구멍에대해들어본적있어
누구도갈수없다는홀얘기를하려는걸까열병식을마친군대가광장을가로지른다인간이어떻게박자를맞춰걸을수있는지보여준다저렇게많은사람이한마음으로같은길을걸어간다왜저것은신의길이아닐까

사과나무는꽃을피우고지게만드는일말고는할수있는일이없다
---「애플파이2-오지않는여름」중에서

아침에문을열면불타오르는무중의미래가문바깥에놓여있었다자신의것이아니라서오리는안도했다무게의속도로떨어지는것이삶이라면깃털이되고싶었다

오리는들것에실려지나가는빛을보았다휴일저녁호수벤치에앉아낯선목소리가지나가기를기다렸다먹다두고온마음이탁자위에서말라가고있을텐데오리는일어나걸었다촘촘하게무너지는빛을밀치며무엇을해도지나간것이었다두려울것은없었다나아갔다
---「오리와무중3」중에서

어둠을움켜쥔나뭇잎이흔들린다
난간에앉은소년의운동화가흥얼거린다

노래가흘러간다
나무를벗어난숲에서
소년이놀이터의무표정을내려다본다

울음고인시선을벗겨내면물속은고요하고소요하다
일요일은너무착하고모두티브이소리를크게줄인다
한낮이가면으로웃는것을지켜본다
시간이발가락수를세면서어둠을살핀다
---「자유,낙하」중에서

문을찾으러간이는모두죽었지.너는같은말을되풀이한다.지옥에는여전히문이있고.문을찾으러간사람은모두그곳을지나갔다.자신의발을찾으러간사람만아직여름을살지않는다.
---「계속해서여름」중에서

소년들이소리없는얼굴로서로를쳐다보았지.무슨소리가났는데.세상이망하려는걸까,소년둘이두려운얼굴로,아무것도모르겠다는듯두리번거렸어.소리없이삐걱문이흔들렸고.아주먼곳에서.울부짖는소리가ㄷ의얼굴을스쳐지나갔어.국경너머는전쟁중이고순한표정을한죽음이쌓여갔지.아무도눈치채지못했어.소년이다시성문밖을살폈지.그때마침혀의온마디가꺾인시체한구가말에매여성앞에서있었어.말을잃고.말을흘리고.어떻게돌아왔는지알수없었지.고요가흘렀거든.
---「ㄷ,」중에서

죄를저지르고
서로모르는인간들끼리하하호호
각자의등에죄를묻히며

두리번거리며오는가을에게
못올데를온것도아닌데
어깨펴

많은색깔이있다는것을
모르는사람이많은세계
너는중얼거리고

전생을흘리며
죽어가는것들사이를
고요히지나가는생들

인간은감탄하며바라보며
---「단풍놀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