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완두 길 잃기

얼치기완두 길 잃기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32
김영경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 출간

끝없이 이어지는 환유의 연쇄,
타자를 예비하는 언어의 태도

“아보카도를 부화시켜 볼까요?
아보카도는 어떻게 형태를 유지하는 걸까요”
김영경 시인의 첫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가 걷는사람 시인선 132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언어를 고정된 의미에 묶어 두지 않고, 끝없이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환유적 상상력을 통해 펼쳐진다. 시인의 언어는 은유의 동일성을 거부하고, 결여에서 출발하는 무한한 연쇄 속에서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윤리적 태도를 드러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아보카도’와 ‘펭귄’, ‘연두’와 ‘어둠’, ‘길’과 ‘죽음’처럼 서로 다른 기표들이 긴장 속에서 맞물리며 끝없이 이동하는 장면들을 보여 준다. 「아보카도 펭귄」에서는 “모방은 싫어요 모순으로 돌아서서”라는 선언을 통해, 은유적 동일성의 세계가 아니라 환유적 모순의 세계로 들어서는 시인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연두 인사법」에서 ‘연두’는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성장과 소멸, 탄생과 퇴락이 교차하는 환유적 지점으로 확장되며, 언어는 곧 자연의 법칙과 맞닿는다.
시인은 이러한 환유적 태도를 통해 삶과 죽음,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머리에 꽃」에서는 “죽은 길이 되살아나 출렁거린다”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의 정적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출렁임을 환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화자의 정체는 특정되지 않고, 버려지고 떠돌며 끝없이 변주하는 존재인 ‘바리데기’의 모습과 겹쳐진다. 버림과 희생, 떠돎과 부활의 행위를 반복하는 바리데기는 고정된 의미망에 묶이지 않는 환유적 여행자로, 시인의 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얼치기완두 길 잃기』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축은 제주라는 공간이다. 「숨비소리」, 「ᄇᆞ롬밧」, 「순비기꽃」 같은 작품은 해녀의 물질과 숨비소리를 환유적 언어로 포착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일 넘나드는 해녀의 숨소리는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바리데기와 겹쳐지며, 제주는 곧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한다. 같은 맥락에서 바람, 자갈, 파도와 같은 주변 사물들 또한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를 환기하는 기표군으로 등장하며, 시집 전체의 리듬을 형성한다.
이 시집의 환유적 상상력은 단순한 언어적 기교가 아니라 시인의 존재론이자 태도다. 의미의 고정에 저항하며 끝없이 다른 세계를 향하는 이 언어는, 궁극적으로 타자를 예비하는 시적 윤리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선은 대상 위에 의미를 덧씌우기보다, 의미가 막 생겨나려는 문턱, 사물과 사물, 생과 사, 나와 당신 사이의 얇은 경계를 오래 바라보는 데 머문다. 그 응시가 만든 여백에서 독자는 “서로의 맛이 궁금”해지는 욕망의 이동, 곧 시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조용한 속도를 체험하게 된다.
김영경의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는 언어를 통한 끝없는 여행, 의미의 결박에서 벗어나 타자와 조우하려는 시적 분투를 담아 낸다. 환유를 시적 태도로 삼은 이번 시집은, 결여와 불화를 견디며 타자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동시에 다가올 궤적을 예감케 하듯, 고정된 상징을 벗어나 세계의 미세한 떨림을 언어로 번역하려는 꾸준한 의지가 분명하고 단단하게 드러난다.
저자

김영경

저자:김영경
2019년『문예바다』에시,2020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블랙동시선집『나의작은거인에게』(공저)가있다.

목차

1부녹색은끝나지않고

N이라는복도
종이컵
나무와까마귀
헤링본스타일
아보카도펭귄
꽃과칼을구분하는방식
전진하는고체
삭제되는새는
스티커
얼치기완두자화상
N’s탐구생활
1인용메시지

2부때로는Π처럼

면접
연두인사법
접목
이태원연가
그림자던지기
때로는Π처럼
고무줄뛰기
스패너는스패너이고
내연보고서
회전
눈사람과오늘
오래오래
비행
물의유전

3부우리는접혀있었다

이별
기어가고피어나고,여름
한여름서빈백사에서
숨비소리
순비기꽃
ㅂㆍ롬밧
아름다운썸,
동백낭아래
안개등대
곰배령,안개속에숨다
까마귀같은걸뒤집어쓰고
편애하는심장
여름의귓속말
동백이익어간다

4부대답을떨어뜨렸나요?

반짝켜두는기호하나
변태
몰두
그루밍
밤을접은새
머리에꽃
오구
몬스터노랑
달과새와로맨스
줄눈스케치
배행
N’s풍선껌
일방통행로

해설
당신을향하는태도
-남승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단단하고꼬인심사만가진난아보카도만움켜쥐고
미움은모방하기아까운부록이에요
뒤뚱거림을잊어버릴까아보카도에어퍼컷만날려대죠

죽은것을한꺼번에불러내는물속엔펭귄이너무많아의자들이넘어집니다어퍼컷으로날린아보카도가
펭귄발등에떨어지네요

근처로오세요조금더가까이

발등을찍은모순을부활시켜볼까요?
---「아보카도펭귄」중에서

양은자꾸울고
울기를두려워하는양도있습니다

누나가죽은방에서양을키웁니다양은방에남겨진핏물같고핏물이채워진흰꽃병같고

방에는꽃병의목을쳐버린칼이있고내양은목에구멍이많습니다

꽃이드나드는구멍이야말로
양이정의로워지는방식입니다
---「꽃과칼을구분하는방식」중에서

우수와곡예는사랑도명예도지나야합니다분필로풀어봅시다흩어져봅니다흉내라도낼까요미세먼지를.반전은없습니다전진만있겠습니다신화로써보는전진과반전

인공강우로지워지는신화는곧해체됩니다

신화는쏟아지는동안잠깐날개가돋는것,

일용할내일은뿌리입니다
자라는구름
고체를계속진행하겠습니까?
---「전진하는고체」중에서

녹색입니다녹색을지지합니다녹색이세상을뒤덮기를엄마가녹색의땅으로돌아오기를바람입니다부풀어오르는엄마는빵입니다사실엄마만빼면잃을것이없습니다빵을먹으려다뻥을먹습니다녹색은바람이중요합니다엄마면다좋습니다완두는다좋습니다계속엄마이겠습니다개인사입니다뻥입니다아름다울까요?새롭게매달려보겠습니다대롱대롱

강으로최강으로녹색으로바람은끝나지않고
---「얼치기완두자화상」중에서

곧가겠다는말입니다방금왔지만노랑에서연두로초록으로다시다크로짙은어둠으로가겠다는약속입니다더깊어지겠다는다짐입니다초록의뿔에도혈관이있다며분홍색연구따위는관심두지않겠다는것입니다예쁜것은뽐내게놔두라지요연약한아름다움따위는꽃에게나뒤집어씌우라지요단단해지겠다는것입니다무감각을키우겠다는것입니다덕지덕지벗겨지는나무껍질갈라지고벗겨지고바짝말라서안으로안으로동그랗게말려보겠다는것입니다모두연두의일입니다당신의감탄사같은분홍이아닙니다작은연두색인사에서만사를키웁니다만사가형통이라니요
---「연두인사법」중에서

흰빛으로각자의눈사람을만든다
각자의묘비명앞에세워둘오늘의주어를찾아서

녹지않는주어를뭉치면어두워지고흘러내린다
완성된눈사람이길을잃는다

눈사람은리턴이가능한가?

흰빛이사라진곳에
온종일눈이올것이다
---「눈사람과오늘」중에서

푸르게넘실대는바람

없어서가아닙니다않겠다는것입니다

햇살없이도혼자붉힐줄압니다

해는깃털을반짝이게하지만낙의몫은아닙니다
푸른보리밭이면족합니다,비행은낙이아니니까요

익지못한채아름답습니다만또까마귀타령입니다누런봉투같은걸뒤집어쓰고
톡떨어지는바람입니다

낙과같은이름을뒤집어들고
날지못한채아름다워져버린깃털입니다
---「까마귀같은걸뒤집어쓰고」중에서


시인의말

여름의귓속말이좁고긴방향으로
길을내었다

기어가고피어나고,

서툴게,그러나멈추지않고

어딘가에서
한번쯤겹치기를,

2025년9월섬안의섬
김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