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34
양애경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출간
”이렇게 헤어져서 무너지며 울려고
나와 엄마는 함께 그 세월을 버텨 왔을까“
7년간의 ”독박 간병“을 통과한 딸이
모든 ‘돌봄 생존자’에게 건네는 절절하고 명랑한 자립 선언
양애경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출간
”이렇게 헤어져서 무너지며 울려고
나와 엄마는 함께 그 세월을 버텨 왔을까“
7년간의 ”독박 간병“을 통과한 딸이
모든 ‘돌봄 생존자’에게 건네는 절절하고 명랑한 자립 선언
양애경의 일곱 번째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가 걷는사람 시인선 134번으로 출간되었다. 7년간 간병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경험을 담고 있는 이번 시집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돌봄의 현실과 상실 이후의 삶을 응시한다. 시인은 간병의 고통과 고립감, 죄책감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특유의 명랑한 언어로 ‘돌봄 생존자’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공감으로 확장하며,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한다.
‘개인적 시련’이라는 말 뒤: 돌봄의 사회적 묵음을 깨다
이 시집은 돌봄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적 시련’으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엉엉엉 나 어떡해 나 무서워/멀쩡한 사람은 못 견디니까요“(「쎄로켈」)라는 절규는 간병 현장에서의 절망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원금을 다 갚은 빛의/이자를//영원히 지불하고 있는 것 같은/기분이 드는 것“(「효도」)이라는 구절 역시 ‘효도’와 ‘간병’이라는 이름 아래 세습되는 돌봄의 굴레를 간파한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돌봄의 짐을 짊어진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의 정체를 직시하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죄책감과 인간적 한계: 슬픔을 넘어선 용서와 위로
양애경의 시는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해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시인은 ”내가 내 손으로 엄마를 요양원에 데려가/문을 쾅 닫고/혼자 돌아오다니!“(「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라고 쓰며 극한의 죄책감을 토로하고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견딘다. ”엄마 없이“(「긴 병」) 행복해져도 되는지 스스로 질문한 끝에 ”엄마는 마음에 묻고/나는 행복하게 살아야지“(「일곱 달하고 열하루째」)라 다짐하며 시인은 용서의 언어에 도달한다. ”‘사랑해요’보다/백만 배 무거운 말//엄마 집에 가자“(「면회 2」)라는 구절은 돌봄의 무게와 인간적 한계를 함께 보여 주며,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서가 곧 위로의 시작임을 말한다.
고통을 넘어선 회복: 돌봄 이후의 삶을 재건하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에는 고통을 지나온 이가 다시 자신으로 서는 순간이 담겨 있다. 시인은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훨훨 날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허름하긴 하지요」)는 자신을 발견하며 상실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되찾는다.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라는 시인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 갚지 못한 마음을 희망으로 바꾼다. ”나는 시인/어차피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란 걸 아는 영혼“(「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을까」)이라는 구절은 간병인과 딸의 정체성을 넘어 다시 ‘시인’으로 서는 선언이자,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문장이다. 4부에 등장하는 ”평온한 날이다/환자도 없고/나도 안 아프다/행복하기까지 하다“(「평온한 날」)라는 시구는 긴 돌봄의 터널을 통과한 뒤 도달한 평온과 자유를 보여 준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의 시구들은 돌봄과 상실의 경험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남길 것이다.
‘개인적 시련’이라는 말 뒤: 돌봄의 사회적 묵음을 깨다
이 시집은 돌봄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적 시련’으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엉엉엉 나 어떡해 나 무서워/멀쩡한 사람은 못 견디니까요“(「쎄로켈」)라는 절규는 간병 현장에서의 절망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원금을 다 갚은 빛의/이자를//영원히 지불하고 있는 것 같은/기분이 드는 것“(「효도」)이라는 구절 역시 ‘효도’와 ‘간병’이라는 이름 아래 세습되는 돌봄의 굴레를 간파한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돌봄의 짐을 짊어진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의 정체를 직시하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죄책감과 인간적 한계: 슬픔을 넘어선 용서와 위로
양애경의 시는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해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시인은 ”내가 내 손으로 엄마를 요양원에 데려가/문을 쾅 닫고/혼자 돌아오다니!“(「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라고 쓰며 극한의 죄책감을 토로하고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견딘다. ”엄마 없이“(「긴 병」) 행복해져도 되는지 스스로 질문한 끝에 ”엄마는 마음에 묻고/나는 행복하게 살아야지“(「일곱 달하고 열하루째」)라 다짐하며 시인은 용서의 언어에 도달한다. ”‘사랑해요’보다/백만 배 무거운 말//엄마 집에 가자“(「면회 2」)라는 구절은 돌봄의 무게와 인간적 한계를 함께 보여 주며,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서가 곧 위로의 시작임을 말한다.
고통을 넘어선 회복: 돌봄 이후의 삶을 재건하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에는 고통을 지나온 이가 다시 자신으로 서는 순간이 담겨 있다. 시인은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훨훨 날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허름하긴 하지요」)는 자신을 발견하며 상실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되찾는다.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라는 시인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 갚지 못한 마음을 희망으로 바꾼다. ”나는 시인/어차피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란 걸 아는 영혼“(「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을까」)이라는 구절은 간병인과 딸의 정체성을 넘어 다시 ‘시인’으로 서는 선언이자,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문장이다. 4부에 등장하는 ”평온한 날이다/환자도 없고/나도 안 아프다/행복하기까지 하다“(「평온한 날」)라는 시구는 긴 돌봄의 터널을 통과한 뒤 도달한 평온과 자유를 보여 준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의 시구들은 돌봄과 상실의 경험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남길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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