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

$12.00
Description
“문디 가시나야 개안아여
하밍서 안심시키 주밍서
두툼한 손등으로 얼굴 한번 쓰윽 문질라 주고
등때기 한번 두딜라 주고
약손으로 배 한번 주물라 주마 다 나아여 고마”

입말로 다시 피운 유년의 시간, 그 새그러분 기억의 맛
지나간 시절의 기억이 한 권의 시집으로 다시 앙등하다
경북 김천 출신 시인 김연화 안젤라의 첫 시집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가 출간되었다. 작가의 유년 시절과 그 시절을 감싼 마을 사람들, 사투리, 냄새, 노동, 음식의 기억을 생생한 입말로 불러낸다.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라는 말 한마디에 김천의 햇살과 바람, 마을의 웃음과 울음이 함께 깃들어 있다. 시인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말하고자 한다. 표준어가 놓치고 지나간, 살아 있는 말의 결을 복원하며 “새그러분” 입말로 잊힌 일상의 풍경을 되살린다.
시인은 표준어로 다 담기지 않는 ‘입말의 시학’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린다. “여나 나아 줘서 고마배여”, “디지든가 말든가 냅뚜부리”, “니아까”, “이뿌다” 같은 표현들은 그 자체로 리듬이 되고, 울음과 웃음을 함께 머금은 사람의 목소리가 된다. 그의 시에서 사투리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존엄의 방식이다. 시 속의 입말은 그 모든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가 된다.
시집의 포문을 여는 첫 시 「보리까끄래기 도리깨질한 날」에서는 “우리 어머니 보리타작하다가 날 낳으셨다네”라며 여성의 노동과 생명, 모성의 헌신을 이야기한다. 김연화 안젤라의 시는 그렇게 한 인간의 출생에서 시작해 마을과 가족, 자연과 죽음, 그리고 지금 이곳의 삶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노동과 성장, 부끄러움과 그리움을 엮어 한 인간의 생애사이자 한 지역의 생활사로 엮어냈다. “저 물살 속 상처를 뭍으로 밀어내듯”(「시인의 말」) 시를 쓴다는 그의 말처럼, 시집은 상처와 기억을 동시에 건져 올린 기록이자 노래다.
시인은 삶의 기억을 이야기하듯 시로 엮어냈다. 「버버리가 통시에 빠진 날」 연작에서는 마을의 웃음거리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그 여자 산山이 오매」 연작에서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산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시대상과 여성의 비극적 생애를 곡진하게 되살린다. 「부지깽이 씨래기 끼리는 날」 연작에서는 가난과 죽음이 교차하던 시대의 가족사를, 「수운자 이야기」 「문디 가시나들아」 시리즈에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더 애틋한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그려 낸다. 웃음 속에 눈물이, 비극 속에 생의 힘이 함께한다.
문학평론가 김효숙은 해설을 통해 “김연화 안젤라의 시 언어에서는 ‘새그러분 사과’ 맛이 난다”며 익명의 죽음마저 돌보는 공동체의 윤리, 여성의 입말로 되살린 인간성의 복권을 이 시집의 핵심으로 짚었다. 추천사를 쓴 이승하 시인은 “김천이란 작은 도시의 사연과 자연, 풍경과 풍속,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과 꿈, 인심과 산물, 사투리와 표정이 포도, 자두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다며 “이 시집은 김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에 새겨질 것”이라 평했다.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는 한 여성의 생애를 넘어 한 도시의 역사, 한 세대의 언어를 담은 시집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말’을 되찾는 일이며,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시간’을 증언하는 일이다. 시인은 말한다. “마지막과 일상은 늘 함께였음을.”(「시인의 말」)
김연화 안젤라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의 어린 날이 포도꽃처럼 앙등할 끼다.
저자

김연화안젤라

저자:김연화
경북김천에서태어났다.월간《현대시》편집부에서근무했으며2018년《시와표현》신인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화성작가회의회원이다.

목차

1부여나나아줘서고마배여

보리까끄래기도리깨질한날
엄지호박
버버리가통시에빠진날1
버버리가통시에빠진날2
버버리가통시에빠진날3
버버리가통시에빠진날4
부지깽이씨래기끼리는날1
부지깽이씨래기끼리는날2
고무신떼야네1
고무신떼야네2
자두씨젖몽우리
새그러분사과
그여자산山이오매1
그여자산山이오매2
그여자산山이오매3
그여자산山이오매4

2부우리꽃따러가재이

숲페마을에사과꽃활짝
오빠야다댔나
오빠야들다밨나
메타세쿼이아댓잎바람
개박골포도꽃들이앙등할낀데
관아골막국수
호박잎사구
고마버여
서리태콩알들아
봉명에너지1
봉명에너지2
김천장날55번버스
틀니속에핀파꽃
직지사골짝박수지미
기름토마토
자두,그붉고푸른

3부니시아바이무덤에가서달라캐라

불타는주꾸미
원룸에서만두시켜먹기
샤인머스캣과염색제
코로나에걸린오르페우스
캐리어가방속에사는목격자
육교가있는엘리베이터
신리천을걸으며
툭,뼈한잎
바지락귓속말듣기
농섬으로가는길
소금굳은살
해국사고무신
섬에서길을잃다
만지도여자
봉분을씻다
구절초

4부수많은울음속에서나를찾는게아닐까

구름과강물사이,비내섬
붓의끝
밥알,가지끝에서뿜어내는소리
네온꽃
주름치마계단에서있는나무에게
화엄사풍경
수도리무섬마을
배롱나무신방
대통밥
바다에서딸에게
개구리울음
반지
봄꽃어망풀어주기
수납당하다

자미의별서

해설
삶의구체성과‘새그러분’입말
-김효숙(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저물살속
상처를뭍으로밀어내듯

감천내에서초실내로
새그러분사과가막걸리양재기에
동동동떠내려오는

또다시
그날로돌아간다면
아마도그런일상은없을거야
마지막과일상은늘함께였음을

2025년가을
김연화안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