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 - 걷는사람 시인선 138

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 - 걷는사람 시인선 138

$12.00
저자

정보영

저자:정보영
경기도이천에서태어났다.에세이『서른이면뭐라도될줄알았지』,앤솔러지시집『지구밖의사랑』이있다.시창작동인‘행성’에서활동중이다.

목차


1부물결처럼번져간다
그립
썸머타임
상영관
소나무와천사
깜짝지난여름
하늘과구름
휴양
귀기울여듣는여름
음소거습관
내내
해열

2부그렇게희곡은시작한다
평양냉면먹기
미야코지마
화곡
귤의알고리즘
한겨울에우유데우기
과일잼굿나잇
모자이크
작고넓은방
에디슨효과
어느날

3부바닥은그림자놀이를한다
빈티지
왼쪽눈에점안하세요
선반분실신고
지난밤얻은감기가아직목덜미에젖어있어요

캐터필러
동시다발
친구와지하철
리버풀과브룩스
미래에게


4부여름이쏟아져있었다
행방
오늘내일
어제오늘
밤의그늘은
연회석완비
캘린더넘기기Φ
자작나무껍질에서유서가자라난다
홀연한숲
수몰
에즈
레스
세상의모든안녕

해설
우리가보낸한시절을오직기쁨만으로이야기할수는없을것이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추천사

제가살아보니까요,오래남는건거창한일보다그때그때나눈웃음,주고받은말,같이먹은한끼더라고요.이시집도그렇습니다.읽을땐잔잔하다가,나중에불쑥떠올라마음을따뜻하게해줍니다.읽다보면누가생각나거나한때의계절이떠오를지도모릅니다.
이시집은꼭평양냉면같아요.처음엔싱겁지만,먹다보면시원해지고,다먹고나서야‘아,그맛’하고떠오르는것.사람사이관계도,우리의일상도그렇죠.빨래에밴햇볕냄새,여름골목의그림자,창에맺힌빗방울,저녁무렵건네는짧은안부같은것들.사소하지만소중한순간들.그게모여삶을엮는실이되고사랑의기록이됩니다.이시집을다읽고나면,사랑하는사람과함께보낸기억이돌아옵니다.오래음미하시길바랍니다.문득평양냉면이먹고싶어지면그건시집탓입니다.
장항준영화감독

정보영의첫시집을읽고나면결코내가가져본적없던지난계절의장면들이떠오른다.그속에서나는엎질러진물처럼쏟아진여름한복판에덩그러니서있다.하얀병실에누워네가먹고싶다던초콜릿하나를끝내사주지못했던지난날을후회하고,소총을입에물고방아쇠를당긴옛동기의불가해한죽음을추억한다.그장면들의미감taste은연유도모른채“서로의것을받아먹었”(「평양냉면먹기」)던맑은시절의향취이기도하고,오랜시절동안“뒤엉켜사랑을나누”고파먹다서로를상처입힌썩은“귤”(「귤의알고리즘」)의내음이기도하며,마음이가난하고쓸쓸한내가“한입베어물기에딱알맞”은“말캉한자두”(「썸머타임」)와도같은저녁의식감이기도하다.그의시는이처럼다채로운감촉과향기들로그시절의풍경을가득채운다.평소였다면이만큼의서술로족하겠으나어째서인지나는정보영의시집을손에서쉽게내려놓기어려웠다.추천사라는명목아래시에덧붙는췌언들을자꾸만썼다지웠다.아마도그것은이작품들을아름다운활자로만받아들일수없는개인적인경험탓일것이다.그의젊음과병,사랑과이별,좌절과웃음을조금이나마알고있는나는그가꾹꾹아껴둔첫발화를실로오랫동안기다려왔다.그의이번시집은어디로조문을가야할지모르는우리의지난날과“밤마다몰래눈물을흘린”(「세상의모든안녕」)슬픔의시간들이그누구보다열렬히시를사랑했던한청년의세월과겹쳐유달리아름답고서정적인무늬를그리고있다.
조대한문학평론가

책속에서

천장에달린프로젝터를바라보자
눈부신빛이쏟아져나왔다

하얀스크린에는한번도본적없는
그림자하나가

덩그러니남아있었다
엎질러진물처럼

여름이쏟아져있었다
―「그립」부분

불끄고누워냉장고돌아가는소리를듣는다
여름밤에는자꾸뒤척이게되고
며칠간뒤집어널어도마르지않을방

슬며시이불이둘쪽으로끌려간다
어둠은포개진너희의표정을떠올리게한다
―「썸머타임」부분

의자는머물러있고우리는
반듯하게앉아영화가끝나지않길기다린다

촛농떨어지면

전자레인지안에끓어오르는카레
몇년째
머물러있는신발들
―「상영관」부분

빛이기울었을때,천사는언제까지살수있는지.남겨진소나무의웃자란가지끝을꺾어소나무를엉망으로해놓아도천사는머물러있고.분명우리는천사를손바닥위에올려놓고웃은적이있다.창밖을보면모든구름은하나가되고.천사가울기시작할때.눈을감고귀를막는다해도언제또자라났는지,울창한소나무가득한여름.입을다문여름은이제분갈이할마음이필요하다.여름이자라난다.한번모양이잡힌소나무는그대로계속모양을유지한다는데.
―「소나무와천사」부분

애인은물었다.냉면그릇을들고한번더육수를마셨다.오래머금었다.주변사람들을봤다.사람들은고개를끄덕이거나갸우뚱하며그것을먹었다.애인은냉면의냄새를맡아보기도하고면을한젓가락크게집어올려살펴보기도했다.나는오이를집어애인의그릇에놓았다.애인은내게면을덜어주었다.우리는말없이서로의것을받아먹었다.
―「평양냉면먹기」부분

영화는끝을향해달려갔고
나는너의감은눈을보며바다를떠올렸다

미야코지마
서핑보드를든나는바다에뛰어든다
물이가슴까지차오를때
지평선과눈이마주친다

먼데서불어오는미지근한바람
밀려오는파도
유유히내몸을지나육지를향해나아간다

높은파도에몸을맡기면
시간이빛으로변한다
나는모든순간이번쩍이는것을본다
―「미야코지마」부분

이곳에잠든자빛의구원을받으리.빗소리를들으며기도하는에밋은어둠속에서번개의섬광같은것을보았다.내가사람의방언과천사의말을할지라도사랑이없으면소리나는구리와울리는꽹과리가되고,오오여름이여.우리는여름의무르고달고축축하고검은포도알맹이를나눠먹으리.그렇게희곡은시작한다.
―「화곡」부분

누구나다그렇다고
그래
외워서하는사랑말고
그래
―「캘린더넘기기Φ」부분

에즈에즈
걷고걷다보면부드러운바람이부는숲길에서우리는

넘을수없는세계를
내일을맞이하고

내안에당신이움트는
이해할수없는느낌이간지러워서
미소짓게된다

에즈에즈

창을투과한빛
놓여있는항아리

더멀리까지갈수있게된다
―「에즈」부분

시인의말

그런데사랑은어떻게하는거지?

외워서하는사랑말고

2025년가을
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