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위의 검은 새 - 걷는사람 시인선 139

입술 위의 검은 새 - 걷는사람 시인선 139

$12.00
저자

문선정

저자:문선정

목차

1부무단생존중입니다만

마그리트풍창문
감자에싹이나서
고자질
감정을상속받다
어차피항복
출입통제선
루나의연애에풍선을달아줘요
모란모란모란꽃
입국심사
나무의주소
꽃잠
힘내요,날씨
나는오렌지였어

2부말이되는침묵

물의벼랑
무명씨
꿈의국적은어디입니까
내가너를데려가겠다
웃음들
소리를걷는다
입술위의검은새
비는손의모습으로
피아노를지키는밤
책방일기
슬픔이뛰어내리는장소
제대로삐뚤어졌습니다
농담한송이
달러이야기

3부관찰자의거리

이번역은향기역입니다
숲의개인사
매미의계절에
불쑥,사과
레미콘을운전하는엄마
오늘의일용할
밤버릇
첨벙이라는귀
떫은겨울에
손의말을들어보면
엄마의산에오르세요
저녁이앉아있네
나를안아주세요

4부새와우주,비가시의거리

작설
여름이면여름이지
걸어서오는새
새는누구인가
새집무료분양
응시
딱걸렸네

우주가온다
우주가왔다1
우주가왔다2
달의무대
오버

해설고독의데페이즈망
-이병국(시인ㆍ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실존적고독과불안을낯설게하기

문선정의시적화자는세계와불화하는존재다.시집의문을여는「마그리트풍창문」에서화자는“르네마그리트의그림같은하늘”을응시한다.시인은익숙한일상을낯선시선으로재배치하여그속에숨겨진불안과권태를드러낸다.표제작「입술위의검은새」는이러한내면의분열을극적으로형상화한다.화자는“입술의말을쪼아먹는검은새”가되어“혀끝에서맴돌던이름”을부수고,삼킨말들이“목구멍에서발톱처럼”돋아나는고통을감각한다.이는타자와진정으로닿지못하는소통의부재,그리고그로인해“잘못된드로잉”처럼어긋나는관계의비극을선명한이미지로보여준다.시집의중반부에이르러시적화자는스스로를“감정을말살하는/암살자의운명”(「감정을상속받다」)이라칭하며,불쑥솟아오르는슬픔과그리움을제거하려애쓴다.그러나기억은“탄환을비웃”으며끈질기게살아남는다.「어차피항복」에이르러화자는“작전은실패했다”고선언한다.화자가자신이암살자가아니라실은“오랫동안감정을지키던경비병”이었음을깨닫는순간이다.“지워지지않는건,지우지않겠다”는이‘항복’은패배가아니다.그것은상처와결핍조차자신의고유한역사로받아들이겠다는능동적인수용이자,슬픔을봉인하지않고직시하겠다는단호한결단이다.

고요한내면에도착한경이롭고아름다운신호

철저한고독과자기응시끝에시집은4부‘새와우주,비가시의거리’에이르러놀라운확장을보여준다.폐쇄회로처럼맴돌던‘새’의이미지는이제새로운생명의탄생과함께‘우주’로비약한다.「쿵」과「우주가온다」연작에서아이의첫심장소리는“블랙홀의맥박”이자“우주로부터의답장”으로명명된다.시인에게한생명의탄생은단순한출생이아니라,“수천광년을관통한후/한인간의체내우주에/조심스레착륙한외계적기원”이다.“지금이별의모든시간이/너하나로다시리셋되고있다”(「우주가온다」)는선언은,고통으로점철된과거의시간을중지시키고삶의좌표를미래로재설정하는경이로운순간을선사한다.해설을쓴이병국문학평론가“문선정시인은절망적정동으로존재를방치하지않”으며“새날의연둣빛”(「감자에싹이나서」)에깃든“새로운삶의가능성”을보여준다고평했다.『입술위의검은새』는불안한오늘을견디는이들에게,당신의심장소리또한우주가보내온신호임을일깨우는다정한위로가될것이다.


말이잘안붙는말들이있었어요

그런말들을모아시를썼고요
감자는멋대로싹이나고
비는손모양으로내리고
한아이가세상에왔죠

들여다보지않아도괜찮아요
하지만혹시들여다보게된다면
당신마음에한구절쯤
‘쿵’하고남았으면좋겠어요

2025년가을
문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