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42
홍경희 시집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출간

"모든 끝에는 저마다의 제자리가 있어
휘청이는 마음 위에 돌 하나를 얹어"

슬픔의 물성을 만지는 수행자의 언어
부재하는 것들을 위해 기어이 쌓아 올린 단단한 돌탑
홍경희 시인의 신작 시집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가 걷는사람 시인선 142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제주라는 거칠고도 아름다운 공간에서 나고 자라며 체득한 삶의 비탈과 상실, 그리고 그 너머의 회복을 ‘돌탑’을 쌓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엮어 낸 묵직한 결과물이다. 시인은 섣부른 말로 위로를 건네거나 화려한 수사로 슬픔을 장식하는 대신 울음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깊은 심연에 묵묵히 돌 하나를 내려놓으며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을 택한다. 단순히 언어를 ‘쓰는’ 행위를 넘어, 마음속의 거친 돌들을 꺼내어 세상과 자신 사이에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는’ 축조의 미학이 담겨 있다.

슬픔을 다져 쌓은 돌탑
그 틈새로 비치는 ‘결락(缺落)’의 미학
홍경희의 시적 화자는 마치 수행자처럼 언어를 다룬다. 시집의 문을 여는 시 「돌탑」에서 시인은 “돌 하나 들어 올려/귀를 씻고/입을 닦아/말의 무게를 고요히 다져”(「돌탑」) 탑을 쌓는다. 해설을 쓴 문경수 시인은 그를 일컬어 “쓰는 사람이 아니라 쌓는 사람”이라 명명했다. 펜 끝으로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언어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모난 마음의 돌들을 “서로 받쳐 주면/모난 틈에도 빛이 스며드”(「돌탑」)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시집 중반부를 관통하는 깊은 상실감과 맞물려 먹먹한 울림을 준다. 화자는 “나, 제발 버리지 마라”(「흔들리는 끝」)라며 매달리던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두고 돌아선 죄책감과 투병의 기억을 아프게 복기하거나 “끝끝내 죽청지 위에 쓰이지 못한 말”(「사월의 좌표」)들을 대신해 백비 앞에 서서 역사적 비극, 제주 4·3의 아픔을 마주한다. 하지만 시인은 억지로 슬픔을 봉합하거나 서둘러 희망을 노래하는 대신, “뒤돌아보지 않으면/상처의 이름도 알 수 없으니”(「달아 놀자」)라고 읊조리며 부재하는 것들의 빈자리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스스로 켜지는 빛
다시 섬으로 향하는 ‘아침의 자세’
철저한 고독과 슬픔의 터널을 통과한 시인은 4부 ‘보이지 않는 소리에 기대어’에 이르러 비로소 회복의 빛을 길어 올린다. 「아침의 자세」 연작은 웅크렸던 몸을 펴고 세상을 향해 다시 문을 여는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결국 비우는 일”(「바다, 바보」)임을 깨달은 화자는 “어스름을 창틈으로 흘려”(「아침의 자세 1」)보내며 스스로 맑아진다. 여기에 “잠시 덜 쓸쓸하게”, 외로운 이에게 “따뜻한 신발 한 켤레”(「아침의 자세 3」)를 신겨 보내고 싶다는 다정함은 시인이 고통 끝에 길어 올린 성숙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차가운 사람들 틈,/빛조차 닿지 않”(「아침의 자세 9」)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시인은 이제 “등을 낮추어/섬으로 돌아가”(「아침의 자세 10」)겠다고 다짐한다. “갈라진 틈 속에서도/길을 내는 꽃”(「아침의 자세 10」)처럼, 상처를 봉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생명력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다. 이것은 패배나 회귀가 아니라, 바람 부는 섬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돌담처럼 자신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선언이다.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묵직하고 따뜻한 돌 하나를 건네는 시집이다.
저자

홍경희

저자:홍경희
제주도귀덕에서태어나2003년《제주작가》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그리움의원근법』『봄날이어랑어랑오기는하나요』를냈다.

목차


1부뒤돌아보지않으면상처의이름도알수없으니
돌탑
달아놀자
저녁의눈빛
뿔속의울음
사월의좌표
때죽나무의시간

나무와새

마음무덤
파랑주의보
귓속에눈이내리면
아무렇지도않은듯이

2부눈물은언제나봄보다먼저피었다
쑥부쟁이
나를나이게하는곳
어제는오늘이되지않는다
바다라는질량
수평선으로밑줄그은
흔들리는끝
봄을밀어내며
겨울나무
몸에복사꽃피던
구석의시간
부재
질문
걸음과그림자

3부혹시,굴러가면너에게닿을수있을까
비탈
거절의방식
수평선위의사월
울었던자리마다돌을쌓으며
드르쌍내불라
말조심하시길바랍니다
나이와마주하여
그믐을견디는일
새벽
요일이후
뒤가생기는자리
산책하는사이
배고파지는지점

4부보이지않는소리에기대어
자화상
2월
바다,바보
휴지기
아침의자세1
아침의자세2
아침의자세3
아침의자세4
아침의자세5
아침의자세6
아침의자세7
아침의자세8
아침의자세9
아침의자세10
아침의자세11

발문
울면서쌓은돌,
바람을이기는단단한시가되고
-문경수(시인)

출판사 서평

슬픔을다져쌓은돌탑
그틈새로비치는‘결락(缺落)’의미학

홍경희의시적화자는마치수행자처럼언어를다룬다.시집의문을여는시「돌탑」에서시인은“돌하나들어올려/귀를씻고/입을닦아/말의무게를고요히다져”(「돌탑」)탑을쌓는다.해설을쓴문경수시인은그를일컬어“쓰는사람이아니라쌓는사람”이라명명했다.펜끝으로매끄럽게흘러나오는언어가아니라,울퉁불퉁하고모난마음의돌들을“서로받쳐주면/모난틈에도빛이스며드”(「돌탑」)게만든다.이러한태도는시집중반부를관통하는깊은상실감과맞물려먹먹한울림을준다.화자는“나,제발버리지마라”(「흔들리는끝」)라며매달리던시어머니를요양원에두고돌아선죄책감과투병의기억을아프게복기하거나“끝끝내죽청지위에쓰이지못한말”(「사월의좌표」)들을대신해백비앞에서서역사적비극,제주4·3의아픔을마주한다.하지만시인은억지로슬픔을봉합하거나서둘러희망을노래하는대신,“뒤돌아보지않으면/상처의이름도알수없으니”(「달아놀자」)라고읊조리며부재하는것들의빈자리를끈질기게응시한다.

어둠을밀어내고스스로켜지는빛
다시섬으로향하는‘아침의자세’

철저한고독과슬픔의터널을통과한시인은4부‘보이지않는소리에기대어’에이르러비로소회복의빛을길어올린다.「아침의자세」연작은웅크렸던몸을펴고세상을향해다시문을여는치유의과정을섬세하게포착한다.“누군가를받아들이는일은/결국비우는일”(「바다,바보」)임을깨달은화자는“어스름을창틈으로흘려”(「아침의자세1」)보내며스스로맑아진다.여기에“잠시덜쓸쓸하게”,외로운이에게“따뜻한신발한켤레”(「아침의자세3」)를신겨보내고싶다는다정함은시인이고통끝에길어올린성숙한사랑의깊이를보여준다.“차가운사람들틈,/빛조차닿지않”(「아침의자세9」)았던지난날을뒤로하고,시인은이제“등을낮추어/섬으로돌아가”(「아침의자세10」)겠다고다짐한다.“갈라진틈속에서도/길을내는꽃”(「아침의자세10」)처럼,상처를봉합하는것을넘어새로운생명력으로승화시키려는의지다.이것은패배나회귀가아니라,바람부는섬에서도쓰러지지않는돌담처럼자신을지키겠다는단단한선언이다.『울었던자리마다돌을쌓으며』는혹독한겨울을견디고있는이들에게,무너진마음을다시일으켜세울수있는묵직하고따뜻한돌하나를건네는시집이다.

시인의말

그늘에잠긴이름들도
어느새표정이되었다

겨우,나를빠져나왔다

안녕이라는말,
저먼어디로스며들었을까

섬이
조금넓어졌다

2025년가을
홍경희

책속에서

사람속에도돌이있어
거칠고차가워도
서로받쳐주면
모난틈에도빛이스며드네

돌속에도부처가있다하나
층층돌탑이쌓이고늘어갈수록
사람들을닮아가네

사는일,
이미수행이었네
두손모아
결국사람을받드는일이었네
―「돌탑」부분

아무렇지도않은듯이
뒤꿈치구겨진어둠
여전히털어내지못한

아무렇지도않은듯이
호젓한그림자위로고양이가지나가고
같이걸어갈까말하지못한그어디쯤

아무렇지도않은듯이
다시는돌아가지못할곁,
누구에게나있다네
―「아무렇지도않은듯이」부분

슬퍼보이는발자국은
슬쩍주워양지로옮겨주고싶다가도,
사라질때까지기다리며
새울음을듣곤했다

어느날,푸른보리밭이바다를부르고있었다
바다의오래된발자국
섬을부르고있었다

나의걸음또한머지않아
그발자국을따라나설것이다
―「걸음과그림자」부분

모든끝에는저마다의제자리가있어
휘청이는마음위에돌하나를얹어
중심을맞추는동안

하늘은붉게사위고
그빛은수면위에서흔들렸다

마른꽃앞에서도
설레던한때의눈빛마저
물결속으로가라앉을즈음

차라리다행이라속삭이며
사월은수평선너머로사라졌다

기억과현실사이
숨을고른바람처럼
―「수평선위의사월」부분

깨진파편위에눈을감으면
어제의그림자가짓이겨진다

그럼에도밝아질눈이있고
끊어진기대위에도
고요히내리는눈이있다

가난에도절하고
돌멩이에도절하며
내려놓지못하는날들이있다

일어서는게시작은아니지만
울었던자리마다돌을쌓으며
바람속에몸을던져도
그림자는따라온다
―「울었던자리마다돌을쌓으며」부분

바람은파도를삼키며비릿해졌다
바다는무겁게기울어
사선으로누웠다

누군가를받아들이는일은
결국비우는일

바다는나를내어주고
노을은
당신을감싸안았다
―「바다,바보」부분

새들이나뭇가지를옮겨앉을때마다
지난계절의흔적은
뒷말처럼흩어지고
젖니들이다시돋아나고있어요

햇살가득한날,
궁금해서전화를걸었다고말한다면
속내를숨기지못하는엽서처럼
잊히고싶지않다는비의도
전해지겠지요

누구나다시돌아올수있는,
끝에서처음이열리는봄이잖아요
―「아침의자세11―열리는봄」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