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라는 산책

잠깐이라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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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부러진 마음에서 내일이 자라는 거야
쓰러진 세상에서 길을 다시 트는 거야”

걸으며 목격한 일상의 비범함
개인의 불안을 넘어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다정하고도 서늘한 기록
김진숙 시인의 신작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이 걷는사람 시인선 140번으로 출간되었다. 2006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정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서정의 깊이를 다져 온 시인이 이번에는 정형의 틀을 벗어나 더욱 자유롭고 넓은 시 세계를 선보인다. 시인은 “첫눈이 지나고도/한참을 아팠”던 시간을 통과하며 “세상이/더 아팠으므로” 차마 자신의 아픔을 발설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올리브 묘목을 심듯 단단하게 뿌리내린 시편들은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제주 4·3, 베트남 전쟁, 세월호 참사 등 역사의 비극까지 아우르는 넓은 품을 펼쳐 보인다.

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쓰는 존재의 연대기
김진숙의 시 세계는 ‘멈춤’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시인에게 산책은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라 밥물이 끓거나 기차를 기다리는 사소한 일상의 틈새에서 “하루의 시간을 오려/하늘 한 번 보는 일”(「잠깐이라는 산책」)이자 관습적인 시간을 정지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 짧은 멈춤의 순간에 시인은 모니터 속 세상이 아닌 내면의 불안과 마주하는데, 이때 밤과 잠은 편안한 휴식이 아닌 “쏟아지는 사유의 밤”(「당신의 밤은 어때요」)이자 치열한 내적 투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시인은 이러한 고독한 응시 끝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슬픔과 슬픔이었”(「사적인 슬픔의 안부」)다는 삶의 역설적 진실을 길어 올리며, 변화와 의지의 매개체인 ‘손’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다짐한다. 꽉 쥐었던 아집과 미련을 놓아 버리고 손을 펴는 행위는 곧 “온전히 나를 뒤집어/다시 쓰는 아침”(「손의 기억」)을 맞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며, 비록 “하루를 통과할 때마다/내가 잠깐 사라”(「지문 인식」)지는 상실감을 겪을지라도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삶이 지탱됨을 믿는 시인의 태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화해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빛, 역사를 위로하다
시집의 후반부에 이르러 시인의 시선은 개인의 서정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현장으로 확장되어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붉은 신발」)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호출한다. 제주에 뿌리를 둔 시인은 장두 이재수의 외침부터 제주 4·3의 비극,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그리고 세월호와 밀양 송전탑 투쟁까지 우리 역사의 아픈 지점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잃어버린 마을의 상처 위에 해바라기 꽃씨를 뿌리며 “더 이상 덧나지 않게” 치유를 기원하는 「곤을동 해바라기」나,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의 억울한 세월을 기록하며 “길 잃은 당신을 위해 방을 비워” 두겠다고 말하는 「수상한 집」은 단순한 고발을 넘어선다. 이는 “서로의 심장을 향해/겨누던 총구”(「철원의 별」)가 되었던 비극을 넘어 평화와 회복을 꿈꾸는 ‘살림’의 시학이며, “어둠에서도 기어이 빛을 바라보고 빛 속에서도 어둠을 잊지 않는”(김지윤 평론가) 시인의 문장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흔들리며 걷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하고도 서늘한 악수와도 같다.
저자

김진숙

저자:김진숙
제주에서나고자랐다.2006년《제주작가》로작품활동을시작하여2008년《시조21》신인문학상으로등단했다.시조집『미스킴라일락』『눈물이참싱겁다』『숟가락드는봄』을출간했다.한국시조시인협회신인작품상과정음시조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조금더다정해질때까지

당신의밤은어때요
안녕,나야
못의기분
아직처마밑이다
지문인식
핸드프린팅
당신도얼룩말입니까
잠깐이라는산책
감쪽같이
사적인슬픔의안부
낭만보존의법칙
저녁의시
그림자산책
오늘의결심
가을한채

2부길들지않은문장이어도

달의외출
안녕,엄마
귀를열다
육추育雛
의자의연대기
수국궁전
아홉살의운동화
나는자주불안을물어뜯었다
낙엽
국지성호우
천국의전
서쪽의온도
손의기억
해동일기
어떤잠에대하여

3부사는건단단해지는것

머들
바다학교
뿔소라의노래
누가묻는다면
달방있습니다
환대
어머니의어머니는
설문대할망
가파도해바라기
노루귀
산물
해삼
인디언옐로
밀양이라부르면
작품에손대지마시오

4부바닥에이르러서야비로소보이는

당신의처방전
장두이재수
월광농사
코레아우라
어떤입국신고서
곤을동해바라기
첩첩산중
나는아직산을모른다
붉은신발
여기는지금비가와요
물위의이름들
철원의별
응우옌럽
사진에관한노트
바람하나바람둘
산내골령골
수상한집

5부섬이라는말과덕분이라는말사이로

목련이돌아오는골목
봄의설계도
그하늘이참곱다
평등이라는말은
아직이에요
석모도대화
두더지게임
서울단상
문득,그런생각을했다
아침달
우리금능으로가요

해설
시작의섬광과결정의빛
-김지윤(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멈춰선자리에서다시쓰는존재의연대기

김진숙의시세계는‘멈춤’에서비로소시작된다.시인에게산책은단순히걷는행위가아니라밥물이끓거나기차를기다리는사소한일상의틈새에서“하루의시간을오려/하늘한번보는일”(「잠깐이라는산책」)이자관습적인시간을정지시키는적극적인행위이다.그짧은멈춤의순간에시인은모니터속세상이아닌내면의불안과마주하는데,이때밤과잠은편안한휴식이아닌“쏟아지는사유의밤”(「당신의밤은어때요」)이자치열한내적투쟁의공간으로변모한다.시인은이러한고독한응시끝에“나를일으켜세우는것은”“슬픔과슬픔이었”(「사적인슬픔의안부」)다는삶의역설적진실을길어올리며,변화와의지의매개체인‘손’을통해주체적인삶을다짐한다.꽉쥐었던아집과미련을놓아버리고손을펴는행위는곧“온전히나를뒤집어/다시쓰는아침”(「손의기억」)을맞이하겠다는결연한의지이며,비록“하루를통과할때마다/내가잠깐사라”(「지문인식」)지는상실감을겪을지라도서로의손을맞잡을때비로소삶이지탱됨을믿는시인의태도는자신을둘러싼세계와화해하고타인에게손을내미는따뜻한연대로이어진다.

바닥에이르러서야비로소보이는빛,역사를위로하다

시집의후반부에이르러시인의시선은개인의서정을넘어한국현대사의굴곡진현장으로확장되어“바닥에이르러서야비로소보이는”(「붉은신발」)아픔들을외면하지않고호출한다.제주에뿌리를둔시인은장두이재수의외침부터제주4·3의비극,베트남전쟁당시한국군의민간인학살,그리고세월호와밀양송전탑투쟁까지우리역사의아픈지점들을두루살핀다.특히잃어버린마을의상처위에해바라기꽃씨를뿌리며“더이상덧나지않게”치유를기원하는「곤을동해바라기」나,조작간첩사건피해자의억울한세월을기록하며“길잃은당신을위해방을비워”두겠다고말하는「수상한집」은단순한고발을넘어선다.이는“서로의심장을향해/겨누던총구”(「철원의별」)가되었던비극을넘어평화와회복을꿈꾸는‘살림’의시학이며,“어둠에서도기어이빛을바라보고빛속에서도어둠을잊지않는”(김지윤평론가)시인의문장들은지금이순간에도흔들리며걷고있을우리모두에게건네는다정하고도서늘한악수와도같다.

시인의말

첫눈이지나고도
한참을아팠다

눈내려그런줄알았다

아프다말하지못했다

세상이
더아팠으므로

올리브묘목한그루작은화분에심었다

내게도꿈이생겼다

2025년가을
김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