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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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49
은이정 시집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출간

“혹시 미심쩍은 힘이 남아 있으면 어슷하게 썰고
밀폐 용기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담으렴”

현실의 이면을 조리하는 감각의 언어
흔들의자에서 써 내려간 삶의 레시피
2023년 《시와경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은이정 시인의 첫 시집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이 출간되었다.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은 식당, 카페, 병원 등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공간들을 시적 무대로 소환해 건조한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인은 ‘음식’과 ‘조리’의 감각을 중심으로 감정과 기억, 돌봄과 소멸의 장면들을 갈고, 절이고, 끓여 내며 낯선 언어로 재구성한다. “생각날 때마다 보이지 않게 갈아 두었다”는 화자의 고백처럼 이 시집에는 켜켜이 쌓인 시선이 담겨 있다. 그 시선들은 시집이라는 식탁 위에 펼쳐지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감각의 방식을 제시한다.
시집을 여는 시 「늙은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요양 병원에 있는 엄마는 딸에게 베개를 절이고 기저귀를 고명으로 올리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존엄이 해체되는 과정을 물질적 감각으로 치환해 보여 주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이미 있던 나를 통해 내가 달라지는 거야”라는 문장은 엄마의 노년이 곧 딸의 미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삶의 말미를 준비하는 감각적 매뉴얼을 형성한다. 이러한 전복적 상상력은 동시대의 구조적 현실을 향한 통찰로 확장된다. 「시신이 제일 고생이죠」에서는 국경을 넘는 시신과 상품이 뒤섞이는 장면을 통해 세계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환영해 Zoom」에서는 비대면 노동의 풍경을 “냄새 빠진/정물의 세상”으로 형상화해 감각이 제거된 삶의 단면을 포착한다. 「허그 로봇의 결례」에서는 포옹마저 기능화된 상황을 통해 돌봄의 의미와 인간성의 조건을 되묻는다. 이처럼 시집 전반에서 감정은 직접 진술되기보다 물성과 절차로 치환된다. 그 결과 건조한 방식 속에서 감정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표제작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은 이 시집의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작품이다. 동물들이 서로의 몸과 역할을 맞물려 의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균형을 찾아가는 은유적 장면으로 읽힌다. “바닥의 평등을 맞추지 못하면/뒤뚱거리는 건 평생 제자리가 없”다는 인식은, 불균형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환기한다. 시인은 이 조립의 과정을 통해 희생과 책임,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죄의식의 층위를 세밀하게 배치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잠깐의 안식이 결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과 감각 위에 겨우 놓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흔들림을 전제로 하면서도 끝내 앉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곧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해설을 쓴 김정수 시인은 은이정의 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당연하지 않은 ‘낯선 시선’으로 접근해 새로움을 창조한다”고 평했다. 이 시집의 언어 뒤에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끝내 타인을 향한 감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존재가 자리한다.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감각을 지우지 않으려는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넘어지지 않아도 안아 주는 마음”이 여전히 가능한지 묻는다.
저자

은이정

서울에서태어나2023년《시와경계》신인상으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여기는냄새빠진정물의세상
늙은딸에게주는레시피
시신이제일고생이죠
환영해Zoom
환상지
손목터널증후군
동물원에서흔들의자를만드는법
헌책방,외딴
철인28,또는27호
파리지옥
메타데이터
허그로봇의결례
토끼씨의언덕
하늘소A씨3주기인터뷰

2부슈크림붕어빵은강물에놓아주기로해요
Moneytree
심장을먹다가
멸치볶음
고딕식유리천장
써브웨이
깍둑썰기
결대로먹기
다코야키식근황
뷔페빈자리에관한의문
망상식당
홍합탕
진담
서른넘어,아이스크림

3부얘야나는갈수록가짜가되어가는구나
미래완료
해피데이
백작
우아한알바
개의방문
남광주시장
유효기간
싹둑,가위질
낡은발레리나
유비쿼터스
메조소프라노
이명
양양갯강구의여름밤

4부적나라해지거나깡그리뭉개버리거나
KissandRide
PTSD

산의기침
세고비아
23.5도의하루
부은발들
1월의리스
귀신의집
네안데르탈
발빠짐주의
변기컨설팅
착지의기술
인류세

해설
삶의레시피,혹은관계를견디는시간
-김정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