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우산

양철 우산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54
천세진 시집 『양철 우산』 출간

“알아 어느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사랑하면 그런 궤도를 갖게 된다는 걸”

미완성의 감각으로 포착한
삶의 풍경과 기억의 서사
천세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양철 우산』이 걷는사람 시인선 154번으로 출간되었다. 『양철 우산』의 화자들은 아무것도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품을 수 없어 강에 풀어놓은 소리의 움직임을, 흘려보낸 기억이 다슬기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늘 다니던 산책길의 작은 종지 하나에서 어린 시절의 꽃과 동화 속 인물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천세진은 완성이라는 목표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을 조용히 포착해 시 속에 담아낸다.

빗방울 소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양철 우산을 쓰고 싶다는 당신은 양철 지붕 아래서 오래 잠들었던 사람 같다

독이 든 생감자를 먹었을지 아카시아 가시에 손톱 밑을 찔렸을지 알 수 없으나 당신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다

입을 맞추었을까, 양철 지붕 열기가 목에 걸린 감자를 익혔을까

어느 지붕도 양철 지붕처럼 비를 울리지는 못하고, 이곳은 비가 자주 오는 곳

당신은 깨어나지 않는 잠들이 사는 박물관 옆에서 자랐을 것 같고 양철이 울릴 때마다 깊은 잠 속으로 돌아갈 것 같다

그런 당신을 깨우는 습관을 나는 언젠가 잊을 것 같다
-「양철 우산」 전문

1부와 2부는 “소리”를 중심에 세운다. 이 시집의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시인이 말하는 “소리”는 “풍경 속에 사는 짐승”이며, 잡아 두거나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의 총칭에 가깝다. 표제작 「양철 우산」은 이 시집에서 “소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시다. 시는 빗방울 소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싶다는 어느 사람의 말에서 시작해, 양철 지붕 아래 긴 잠에 들었던 사람의 모습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런 당신을 깨우는 습관을 나는 언젠가 잊을 것 같다” 잊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그 사이의 시간. 천세진의 시는 그것을 가장 담백한 언어로 붙잡는다.

3부에는 가족의 내력을 배경으로 한 시들이 모여 있다. 「사진첩 1」과 「사진첩 2」, 「맏이와 막내의 일」, 「덜컥」처럼 직접 설명하거나 해명하는 대신 사진첩을 넘기듯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4부에서는 시간과 겨울, 그리고 시 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이 깊어진다. 「종지에 담기는 것들」에서 시인은 늘 다니던 산책길에 놓인 작은 종지 하나에서 어린 시절의 꽃, 냇가에 데려가 풀을 뜯기던 염소, 동화 속 인물들을 발견한다. 종지는 넘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에 차여 엎질러져도,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은 반짝인다.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이 시가 “비록 우리의 삶이 갖은 시련 속에서 ‘엎질’러졌을 때조차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에서도 ‘반짝’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향한다“고 말한다.

『양철 우산』은 완성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돌아오는 것들의 무게를 견디며 하나 남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시집은 독자에게 어떤 결론도 건네지 않는다. 그 대신 작은 종지 하나, 늙은 깃털 한 올, 빗소리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어느 사람의 마음을 곁에 놓는다. 겨울을 견디는 일은 그런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시인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저자

천세진

충북보은.시인,소설가,문화비평가,인문학칼럼니스트,웹진《초록의자》발행인겸주간.시집『양철우산』(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선정),『순간의젤리』(세종도서문학나눔선정),『풍경도둑』(아르코문학나눔도서선정),산문집『작은날씨들의기억』(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선정),장편소설『이야기꾼미로』(교유서가),문화비평서『어제를표절했다』를출간했다.
광주가톨릭평화방송〈천세진시인의인문학산책〉,광주MBC라디오〈천세진의별난인문학〉을진행했고,인문에세이전문지계간《바닥》주간을역임했으며,일간지문화칼럼필진(2006∼현재)으로활동하고있다.고려대(영문학)를졸업했다.전주에서전업작가로살아가고있다.

목차

1부
무서운일1
우리가보낸밤들
벽귀
기억나비
어둠이그럴줄은
소리를데려온날
소리의조각
작은구멍에서태어나
소리가달아날때
늙은깃털의방
당신이숨을불어보라고하면
너와나의혀
개개비는떠났고
늦은발걸음의무덤
그럴일없을것같았는데

2부
거미가없는아침
일부의서랍
양철우산
기도하러가는데
푸른누에를위하여
삼투
달이작아지는길
달개비잠을배웠는지
그렇게되고만걸까
이름밑의것들
어떤궤도
마땅한일
어두워지면보이는것들
아무것도하지않고
풍경의젖꼭지를물고

3부
걱정했는데
걱정거리
사진첩1
왜들저러나싶은데
맏이와막내의일
괜찮거나괜찮지않은
시퍼런일
낮은소리
몇번째인가의셋집
검은꼬리박각시
시간은뿌리에서부터잰다
남은저녁
멀미
덜컥
사진첩2

4부
시렁에매달려
고민을그만두고
흔적과배후
은빛머리카락
어느이후
시간을길렀다
종지에담기는것들
시간이라는
습포가덮이고
망한직조공
노래를들여놓고
허수아비의장르
필요하지않은길
구슬속이었다
무서운일2

해설
겨울을견디는법
-남승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