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51
유수진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 출간
“말랑말랑한 발자국 속 밀물로
꽃이 이름을 갖기 전으로 찰나의 한 점으로”
사라지는 존재들의 곁을 지키는
사물의 언어와 역설의 희망
유수진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 출간
“말랑말랑한 발자국 속 밀물로
꽃이 이름을 갖기 전으로 찰나의 한 점으로”
사라지는 존재들의 곁을 지키는
사물의 언어와 역설의 희망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유수진 시인의 첫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가 걷는사람 시인선 151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5부에 걸쳐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매개로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해류를 떠도는 오리,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화덕에서 구워 낸 계절, 녹슨 못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비극적인 현실을 과장 없이 비춘다. 관념을 설명하는 대신 대상의 물성과 움직임을 따라 사유를 전개하는 시들은 사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다룬다. “씨앗은 마르는 동안 꽃을 설계한다”(「꽃씨는 언제 꽃을 설계할까」), “최고의 속도는 어쩌면 멈칫”(「사과나무 아래서」)과 같은 구절은 사물들의 고유한 속도와 리듬을 포착해 존재의 이면을 비스듬히 드러낸다.
순진한 경사도라니
그래서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들이
제주에는 많다
(중략)
밤마다 꿈의 안과 밖을 헤매고
또 달아나느라
숨느라
여전히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
─「경사」 부분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경사」, 「귤」 등의 작품에서 시인은 제주 4·3을 경사도, 귤, 녹슨 사물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접근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건을 현재의 감각으로 환기시키며, 지나온 기억과 망각의 층위를 드러낸다.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라는 표현은 망각의 구조를 시적 형식으로 포착한 사례다. 폐허가 된 마을이나 남겨진 물건들을 통해 역사를 환기하는 서술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유수진의 시는 짧고 압축적인 시편과 산문적 호흡의 긴 시편을 오가며 다양한 리듬을 만든다. 「뾰족한 소용」, 「돌부리」처럼 세계를 응축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엉덩이 눈」, 「당나귀 속엔 몇 마리나 되는 당나귀가 들었을까」처럼 긴 호흡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시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다양한 정서와 형식을 균형 있게 담아낸 이번 시집은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깊고 다정한 유행가가 되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다.
순진한 경사도라니
그래서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들이
제주에는 많다
(중략)
밤마다 꿈의 안과 밖을 헤매고
또 달아나느라
숨느라
여전히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
─「경사」 부분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경사」, 「귤」 등의 작품에서 시인은 제주 4·3을 경사도, 귤, 녹슨 사물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접근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건을 현재의 감각으로 환기시키며, 지나온 기억과 망각의 층위를 드러낸다.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라는 표현은 망각의 구조를 시적 형식으로 포착한 사례다. 폐허가 된 마을이나 남겨진 물건들을 통해 역사를 환기하는 서술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유수진의 시는 짧고 압축적인 시편과 산문적 호흡의 긴 시편을 오가며 다양한 리듬을 만든다. 「뾰족한 소용」, 「돌부리」처럼 세계를 응축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엉덩이 눈」, 「당나귀 속엔 몇 마리나 되는 당나귀가 들었을까」처럼 긴 호흡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시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다양한 정서와 형식을 균형 있게 담아낸 이번 시집은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깊고 다정한 유행가가 되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다.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