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14.98
Description
걷는사람 다;시 15
〈모·자·무·싸〉의 시인 임곤택 시집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출간

“이런 날은 살기 좋은 날
멀리 갔다면
돌아오기 좋은 날”
“당신이 아니라면 없어도 좋은 일들”을 읊는 시

“깨뜨리지 않으면서 깨뜨리지 않을 거면서
조각조각 이어 붙인 한 장의 평화”를 들려주는 노래들

오래전 절판되어 더는 서점에서 찾을 수 없었던 우리 시대 대표 시집을 선보이는 걷는사람 ‘다;시’ 시리즈 열다섯 번째 시집으로 임곤택 시인의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이 출간되었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에서 등장인물 진만의 시로 나와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미 첫 시집 『지상의 하루』부터 감각적 언어와 현대인의 아린 허무의 세련된 형상화는 시단에 넓은 호평을 받았다. 그의 등장으로 독자들과 한국 시단은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쓸쓸한 시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총 4부 55편의 시로 이루어진 두 번째 시집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은 예의 섬세하고 고독한 어스름의 정서를 그려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동 진입 거부 탈출의 동작으로/몸의 수심水深이 계속 채워”지는 깊이와 고독한 취기가 더해져 있다.
삶과 일상은 묻거나 대답하거나 확신할 수 없이 언제나 살아 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시 속을 통과하면서 절묘한 리듬과 여백, 연민의 그윽한 눈빛으로 우리는 그 일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한순간에 경쾌한 변주를 위한 방점을 찍”게 된다. 슬픔 그다음 날 새벽, 아주 조용하게 몸을 다시 일으키는 자세를 우리 스스로 품에 안는다. 우리는 임곤택의 시를 읽고 슬픔의 공동체가 되어 가면서 동시에 서로의 등을 한없이 쓰다듬어 주는 위로의 공동체가 된다.
“배고플 때 허기, 라고 잘라 말하기 망설”이는 것, “무언가를 단언하고 확정하기를 꺼리는” 것은 “임곤택 시인의 삶의 염결성과 언어에 대한 태도와 미학적 판단”이기도 하지만 견뎌야 하는 삶과 일상의 허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끝에 한 편의 시가 가장 부드러운 해 질 녘처럼 펼쳐지고 있어 우리는 자신을 마주하고 위로하고 자신과 화해할 수 있다.
저자

임곤택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상의 하루』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죄 없이 다음 없이』와 시론서 『현대시와 미디어』가 있다. 고려대 교양 교직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

1부
그때
동작
집 찾기 놀이
네 눈 속 푸른
일몰의 싸움꾼
비는 이틀째
잎 잎들 소리 소리들
펜타토닉
다짐하는 아침
버스 증명
스티비 원더
무관한 대면
대화의 일치
바람과 blues

2부
지배하는 눈
돌아가는, 되돌아가는
몸의 꿈들
화요일은 봄
꽉 찬, 가득한
그곳은 늘
잎 잎들 소리 소리들 2
양들은 낙엽을 타고 온다
9월에서 시월
파
적당하지 않은 때
야스쿠니신사
추신

3부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
Boogie Street
제목은 숨겨진 이야기
뷰파인더
12시에서 13시
너의 약속된 오후
연착
모퉁이 돌면
두 번째 시월
발굴
세븐일레븐
눈이 쌓이다 눈이 그치다
적당한 때
천안에서 안양까지

4부
스프링클러
끝없는 제국
집요
저녁의 신부 1
저녁의 신부 2
저녁의 신부 3
저녁의 신부 4
저녁의 신부 5
저녁의 신부 6
젖을 빠는 동물
가장 작은 식사
젊은 도공
화해의 시간
한 장의 평화
해설 우리는 조금 더 도착한다⎯오연경(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초판본시인의말

마트하나는문을닫고
편의점은두개더늘었다

담배와연기
술이채워진아메리카노미들사이즈
이런아침은어떤가
창너머창들은안녕하신가

일찍싸우고늦게까지위로받으려는
사내들의고성방가
두겹으로주차된자동차

누가가장좋은값을치를것인가
2017년봄
임곤택

복간본시인의말

기차를탔습니다
파밭,당근밭,감자밭을보고오는길입니다
차창밖은참빠릅니다
끝도없는생각들보다더빠르게지나갑니다
골목과횡단보도를지나집으로돌아갑니다
잊혔던일들을다시지납니다
끝도없이지나갑니다
파밭,당근밭,감자밭을다시보러갈예정입니다
2026년여름
임곤택

책속에서

눈이내린다
늦었거나너무이른것다같이
눈이되었다

모른척하기,매일의인사
내웃음은거짓이었다
버려진가구위신발한켤레
우리들의공손한인사는거짓이었다

안내자가되려는
길거나짧은것,죽었거나
살아있는것

눈이내린다
누워도좋은바닥
집이되려는모든바닥

어두운방은무섭대도,불좀켜래도
집으로부터집까지
눈이내린다
―「집찾기놀이」부분

사랑이거나징벌인듯이
서로에게일으킨반란인듯이
꽃이면꽃,눈송이면눈송이,시는시詩여서
아무것도아닌날
겨울의마음처럼지금의여름도아무일없는날
―「잎잎들소리소리들」부분

화요일이군요,감은머리를벽에널어말리는
당신은며칠전과는다른물기

가끔이좋겠습니다
누군가태어나며세상엔윤기가흐르고
기다리는사람은오래기다린사람
한번이상지나친사람

글을배워아이는어디로든빠져나갑니다
당신쪽으로갑니다넘어져도달립니다
돌아오는군요
한번쯤이좋겠습니다

얼굴은빛나는곳어디에든얼굴을비추고
정직하지않은대답,잔인하고무섭지만
매정하지않은대답

벽쪽으로어깨돌려길을만듭니다
―「화요일은봄」부분

당신은그치지않고
나는죄인처럼초조했으니

당신은어떤달변으로자꾸잎인지
어떤밤에길들어그치지않는지
귀와종소리의거울
바람과야경꾼의거울

흙으로바람으로분명해지려는나는
당신으로무덤을지키듯편안할는지

(…)

한두걸음으로피로한
나는당신의물음에답할수없으니
되도록많은그림자를끌고세상을건너려는
당신의속내다셀수없으니
―「잎잎들소리소리들2」부분

손을들어세우려던구름과
휘파람으로돌아보게하려던구름과
허락을얻지못한여러믿음에게
환청을일으키며트럭이지나갔고
농부와농부의아내들에게
그들의아들과딸에게
고통인것과지루한것을같은음색으로느끼는
자유를준당신에게
―「추신」부분

그래그렇다고해두자
니들한테미안하다,뭐이런말쯤하나남기고
어느선승은세상을잠깐떠났다고한다

진열장에비친구름과담배피우는남자
바쁠수록계단은한칸씩오를것

구름흩어진다비행기보이지않네
다시나타나겠네흰색으로은색으로반짝거리며
야,담배끊어
담뱃불붙이다가눈썹을태웠네
구름얘기아니라,우리얘기아니라
―「동네에서동네사람들」부분

들으나마나뻔한일로끝까지
비오는구나
손가락으로탁탁탁자를두드린다
생각은지루한기계

휴지같은잡담이좋겠다
싱거운얼굴로누가옆에앉아도좋겠다
빨간자동차한대지나가도좋겠다
지루해도좋겠다

지나는사람을낱낱이보지말자
몸의하얀지면,전체를단번에알아채는
당연한일처럼
아직안온일들
―「연착」부분

그가“견딜만하지만/변주가필요해”(「펜타토닉」)라고말할때,그가변주하려는리듬에는오래걸은자의절박한피로와더걸으려는자의신성한다짐이담겨있다.임곤택의시는아주미묘하고거의눈에띄지않는작고조심스런발걸음으로,그러나닿을수없는허공을빚어올리는정교한매만짐으로도시의산책을변주한다.이변주의리듬을타고우리는지체와기다림과예정과기억과피로와허무와사랑과위로의도시,그도시의쓸쓸한살기와까다로운풍경에‘조금더’도착한다.
―「해설」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