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만- 걷는사람 시인선 158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는사람 시인선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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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숙희

저자:장숙희
광주에서태어나오랜시간국어교사로지냈다.2002년《시인정신》에「목백일홍필무렵」으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풀리지않는숙제』,동인지《별숲》《원추리》등을냈다.2019년국제PEN광주문학상올해의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
송금은했을까
두더지게임
서울의원시인
얼룩의기억
스마트폰
잠시보류
크레센도
위로
나살아있어요
미역국에관한소고
첫거짓말
같이걸을까요
습관이었다고한다
리부팅
우리는왜언제부터였을까

2부
사이
505사진전
귀신고래보고서
야간운전
어떤오후
뿌리를내리다
곶자왈에서
콩국수
다시,금남로에서
저녁6시
모두의풍경
그녀의구두
미국능소화
마트료시카
체스판을떠날수없다

3부
좋은날
봄꽃이질때
마인드피싱
산벚꽃아래에서
말복
내마음의노끈
칡넝쿨의독백
사라져가는것들
윤판나물필때
태산목
서서평길에서
유리창안으로파고든
교동법주를샀다
허공을담다
로또는오지않는다

4부
세작을꺼내끓였다
치자꽃에관한기억
아버지가된다
낙월도,먼섬의기억
아버지와수국
덕분에
학1동938번지
엄마는당연직이다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
차꽃서설
늦은별곡
수하물을보내고
감기약을입안에넣듯
홀로웨딩
되돌아온그녀
옷장을정리하며

해설
유리창너머로바라보이는원형질속의기억들
-정윤천(시인)

출판사 서평

내삶에시가처음다가온순간은지금도강하게새겨져있습니다.어린시절,아버지의유품을정리하다가아버지께서미처못이룬꿈을발견한순간이었습니다.세상어디에도나오지못한당신의습작시집과공부를다못마친학생증!그미련과애환이내게뿌리를내린이후화두처럼,숙제처럼나를떠나지않았습니다.이것이끝내시를붙잡고있는나자신에대한변명이될는지모르겠습니다만,한낱푸념에불과할지라도아버지를기리는나의방식이기에시를쓰는순간순간은삶이충만해집니다.

무등산이보이는광주문학관창작실에서
2026년8월
장숙희


책속으로

피난하듯핸드폰을들여다보며
너없는가상의세계를한없이돌다와도
일정시간이지나면또다시헤죽거리며
고개를내미는너

보고싶다
보고싶지않다

그립다
그리울리없다

안으로안으로밀어넣어도끝까지살아남는
적막함이허공에가득하다

게임이끝나도끝까지살아남는너를
한번더돌아보며

오늘은여기까지만그리워하기로한다
---「두더지게임」중에서

저배롱나무를좀봐
얼마나울었는지몸이매끄러워

시월의강가에는
말라버린단풍잎들이매달려있었고

태풍이지난자리에서
어찌할바몰랐던나무들이
혼란속에서뒤틀려있기도하였다

너는오랫동안그자리에서있었다

나는가방에서사탕하나를꺼내
네손에꼭쥐여주었다

서로를바라보며
줄어져가는사탕을입안에서굴렸다

저녁에는슬픔도녹아없어지겠지
---「사라져가는것들」중에서

겹쳐진옷자락사이에서
구겨져있는시간을봅니다

언젠가는안아주고싶었던오늘이
또아리를튼채숨을죽이고있습니다
천진난만한표정입니다

그곁에소리없는형상의당신
당신의눈길도느낄여유가없던마음에
잊혔던미소가피어납니다

명품만고르려했던순간마다
당신은뒷전으로밀려나있었군요

한칸한칸비울때마다
숨어있던바닷길이생겨납니다
---「옷장을정리하며」중에서


추천평

장숙희의시는시인의성품이그러하듯단아하고조용하다.직설적화법대신말을줄이거나에두르는방식으로마음과생각을전한다.“때로는말을아끼는것이//서로의상처를달래는방법”(「미역국에관한소고」)이기때문이다.침묵속에서누군가를기다려주고버텨주고귀기울여주는시집이다.그래서말갛게우려낸찻물처럼너무차갑거나뜨겁지않고적절한온기를지니고있다.이러한중용의태도가대체로미덕으로작용하지만,위험을무릅쓰지않는것이가장큰한계가될수있음을시인또한알고있는듯하다.온갖뒤척임속에서도“오늘은여기까지만그리워하기로한다”(「두더지게임」)고스스로다독이는것은단순한유보가아니라그리움의지속을위한절제의기술이다.

그리움의끈을따라가보면시인의마음의고향인낙월도에서의유년과학1동938번지의추억을만나게되고,가족과친구에대한애틋한사랑이돌올하게만져진다.“아직사위지못한기억들이/그날을인화해주”(「505사진전」)는광주의오월이있고,“분노를어금니에물고서늦게나마금남로로”(「다시,금남로에서」)나서기도한다.「저녁6시」와도같은황혼무렵펴내는시집이기에시간과공간의진폭이넓은편이다.저녁6시는지나간시간의그림자를거두며“자신을똑바로바라보기좋은시간”이다.“집으로돌아가기위한준비를해야하는시간”인동시에“남아있는시간의불을밝히”는시간이다.모쪼록시집출간을계기로시의등불을더환하게켜고새로운시간을일구어가시길기원한다.

-나희덕(시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