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를 피하려 흉기 뒤에 숨는 건 보편적 사랑의 비밀이고 깨진 유리문 사이로 빛이 꽂히는 건 개별적 사랑의 비밀인가요
날을 숨긴 칼은 달콤했고 프리즘으로 비춰진 세상은 황홀했던걸요 절벽으로 떨어진 냅킨은 붉게 물들어 있다 ---「붉은 냅킨」중에서
흘러내리다 죽고 싶다고 말해요 봄에는 죽는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데 나는 촉법의 봄에 숨어 살고 있으니 괜찮아요 봄과 보오옴의 가운데쯤 숨어서 하면 돼요 인생이 직선이면 안 되죠 힙합은 삐딱하거든요
엄마, 이불은 두고 나갈까요
엄마, 난 진짜 안 볼래요, 캠퍼스의 봄 보오옴 난 안 봄 진짜 안 봤음 ---「촉법, 봄」중에서
햇빛은 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라서 나는 고개 숙인 채 방 안에 여름을 들여놓고 한 번도 천장을 밀어 본 적 없는 무릎부터 펴 본다 몸을 구긴 푸른 잎이 다리를 펴 본 적 없는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그는 창가에 서서 물을 마시고 우리는 오래도록 서 있겠다
각자의 여름 창가에서 ---「무릎을 펴다」중에서
낮이 부끄러운 거니 아직 순정이 남아 있는 거야?
씨 한 주먹 들고 나간 아침 해는 밥은 먹었을까 해바라기는 가벼워져 꺾인 머리로 생각한다
밤마다 귀들이 씨 볶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부터 책상과 의자와 나는 너무 낡았고, 검은 티끌만 떠다니는
그냥
그 방은 해바라기였어 ---「화가의 방」중에서
일주일은 벽을 허물고 일주일은 벽을 쌓고 일주일은 벽을 감추겠다고 월요일 아침부터 허문다 위층을
(중략)
그나저나 저들은 내가 지우기 쉬운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 내가 지워지는 소리
나는 이런 나로 벽을 어떻게 쌓을지 몰라 위층에 귀를 바짝 댄다 ---「허물어지는」중에서
겨울 스웨터를 입고 여름으로 가면- 걷는사람 시인선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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