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서의 첫 시집 『일반적이지 않아서 미안해』는 시인의 필연적인 탄생과 절박하게 살아남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의 언어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 지독한 세계”(「테스토스테론 방황기」)에서 날것 그대로의 삶을 던져 눈부시게 빛나는 잔해를 만들어 낸다. 정윤서의 시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파괴적이다. 그의 시어는 예리하고 적나라하며 가차 없이 위선의 폐부를 찌르고 규격화된 세계와 ‘일반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부숴 버린다. 시적 화자가 “밟어 끝까지 자유로”(「카지노」)라며 질주할 때, 우리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빨려 들 듯 동승하게 된다. 그가 독자를 사로잡아 가식 없는 고백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은 으스스하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미안해 썩은 모과라서”(「일반적이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떨떠름하고 아픈 문장은 얼핏 굴종과 자책의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을 향해 썩어 문드러진 핵심을 정면으로 들이미는 강력한 전복의 언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냄새 역하면서도 정화된 그 냄새” “열면 사라지고 닫으면 틈새로 다시 일렁이는 것”(「잠든 존재는 부르지 않을 거야」)을 추적하는 시인은 성聖과 속俗,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특히 시집을 관통하는 경이로운 지점은 ‘귀신과 저승사자를 보는’ 화자의 영성靈性이다. 찬송가 소리와 무속의 잔향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묘지의 풍경은 억울하게 수장당한 원혼들을 달래는 샤머니즘적 형식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치러 낸 영적 투쟁의 현장이다. 시인 정윤서는 “햇빛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이던 때”도(「해바라기 샤워기」), 응급실의 침묵과 혈육의 죽음이 참혹한 때도, 한남동의 안개를 뚫고 질주하던 불가능한 사랑의 잔해가 낭자한 시절도 가난과 고통, 폭력의 세계를 시로 되살려 직면해 낸다. 상처 입은 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찬란하게 심지어 우아한 냉소로 재밌게 생존을 노래할 수 있는지,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김이듬 시인
시인의 말
저승도 풍년이라 안 데려간다 저승이 흉년이라 급히 데려간다
미끄러진다 미끄러진다 이리저리 좌표도 기표도 없이 끝없이 맴돈다 절대 관통하지 못하는 게 좋겠다 알고 있었잖아 혹한의 사막을 불타는 얼음을 맥락 없이 건너뛴다 이리저리 숨 타지 않는
이것은 결코 시인의 말이 아니다 그러는 게 좋겠다
2026년 가을 정윤서
책 속에서
지금 여기는 동해 바다야 천둥 번개가 내리꽂히는 아야진이야 부러진 우산 젖은 코트야 폭풍 속으로 사라지자 불면증 한 움큼, 수면제 한 움큼 양손에 동그랗게 쥐고서 성별 없는 나의 클라라! 너는 너울성 어디에 있고도 없으니
밤과 낮의 구별이 없는 곳으로 가자 천 길 물속으로 가자 유리된 바다에 떠 있는 국화 모래사장 풀 죽은 유니콘을 껴안던 조막손을 만나러 가자 옛날 영화를 떠돌던 해마를 만나러 가자 접히고 펼쳐지며 하릴없는 형편을 수습하지 않는 바다 말려든 아이를 구하러 가자 ―「James & Clara」 부분
우리가 그토록 오래 끌고 다닌 것은 무엇인가요 어느 문을 닫을 것인지는 각자의 몫 나는 강요당한 이별과 이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 앞에 함부로 버려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생각나지 않는 슬픔과 생각나는 약속은 나의 작은 영토 안에 묻었습니다 미열이 납니다 세탁 전문 활어회 전문 바닥에서 내 눈을 응시하는 물고기를 봅니다 테트라포드는 잠재적이면 좋겠습니다 익사체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거나 한동안만 출렁이면 좋겠습니다 ―「차단기」 부분
철이 든 입술과 철이 든 눈동자는 사계절을 울었다 정작 그림 속 태양이었지만 고작 그림 밖 태양이었지만 강둑의 나와 언니는 여강만큼 슬펐고 여강만큼 도도했다 내 나이 열여섯 이제는 열여섯 너 하나만 너 하나만 노을이 자꾸만 버려지는 여강에서 이제는 열여섯 언니의 나이
사진 속 언니와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레이스 풍성한 원피스, 새마을 환희 금복주 젖은 입가 흔들리지 않던 언니의 흔들리는 머릿결 버리러 온 강가에서 무엇도 버리지 못한 채 키 큰 미루나무의 흔적을 찾는다 ―「나 여강의 키 큰 미루나무라면」 부분
일반적이지 않아서 미안해- 걷는사람 시인선 16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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