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저자:윤동주
일제강점기저항시인이자독립운동가.일제강점기암울한현실속에서민족에대한사랑과독립의절절한소망을노래한민족시인.우리것이탄압받던시기에우리말과우리글로시를썼다.윤동주는어둡고가난한생활속에서인간의삶과고뇌를사색하고,일제의강압에고통받는조국의현실을가슴아파하는철인이었다.그의사상은짧은시속에반영되어있다.1917년12월30일만주북간도명동촌에서윤영석과김룡의맏아들로출생했다.윤동주는청춘시인이다.절친한친구였던문익환목사의시‘동주야’에의하면아직새파란젊은이로기억되고있었다.
한글을구사하면서작품을발표한1920년대부터1940년대까지만주용정과경성신촌일대에서문학청년들과몸을부대끼며시를썼기에청춘의고뇌가담겨있다.1925년(9세)4월4일,명동소학교에입학했다.1927년고종사촌인송몽규등과함께문예지[새명동]을발간했다.1931년(15세)명동소학교를졸업하고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입학했다.1934년(18세)12월24일,「삶과죽음」,「초한대」,「내일은없다」등3편의시작품을썼고이는오늘날찾을수있는윤동주최초의작품이다.1935년(19세)은진중학교4학년1학기를마치고평양숭실중학교3학년2학기로편입했다.같은해평양숭실중학교문예지[숭실활천]에서시‘공상’이인쇄화되었다.1936년신사참배강요에항의하여숭실학교를자퇴하고[카톨릭소년]에동시「병아리」,「빗자루」를,1937년[카톨릭소년]에동시「오줌싸개지도」,「무얼먹고사나」,「거짓부리」를발표했다.
1938년(22세)2월17일광명중학교5학년을졸업하고서울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문과에입학했고1939년조선일보에「유언」,「아우의인상화」,[소년(少年)]지에「산울림」을발표하였다.처음윤동주시들은노트에봉인된채,인쇄되지도않았고신문지면에발표되지않았다.그가후쿠오카감옥에서숨지고난후동문들이그의노트에있던시를모아정음사에서출판한다.유해가안치된지3년후,그러니까1948년,조선은대한민국으로국호가바뀌어혼란한시기에청춘시가세상에그모습을드러냈다.15세때부터시를쓰기시작하여1941년연희전문학교를졸업하던해인1941년「하늘과바람과별과시」를발간하려하였으나실패하고,자필로3부를남긴것이광복후에정병욱과윤일주에의하여다른유고와함께「하늘과바람과별과시」(정음사,1948)라는제목으로간행되었다.
만주북간도에서4남매중장남으로태어났다.15세때부터시를쓰기시작하여,조선일보,경향신문등에「달을쏘다」,「자화상」,「쉽게씌어진시」를발표하였다.연희전문을졸업한후1942년에는일본으로건너가도쿄릿쿄대학영문과에입학하였고,6개월후에교토시도시샤대학문학부로전학하였다.1943년7월14일,귀향길에오르기전사상범으로일본경찰에체포되어교토의카모가와경찰서에구금되었다.이듬해교토지방재판소에서독립운동을했다는죄목으로2년형을언도받고후쿠오카형무소에수감되었다.그리고복역중이던1945년2월16일광복을여섯달앞두고스물여덟의젊은나이로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