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평선 2 (양장본 Hardcover)

당시평선 2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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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섭랑(葉朗) 교수는 중국 고전시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라면, 중국 미학사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은 왕부지와 섭섭(葉燮)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부지는 학문을 닦고 공명을 구한 시기는 태어난 때인 1619년부터 청나라 군대가 북경에 입성한 1644년까지이다. 왕부지는 7세에 『십삼경』을 통독하였다. 14세에 수재가 되었으며, 16세에 시 쓰기를 배우고, 24세에 무창(武昌)에서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26세 때인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북경이 청나라에 함락되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함과 동시에 왕부지의 배움의 일은 급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시기부터 왕부지는 1650년 32세의 무렵까지 청군이 호남까지 내려오는 상황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호남과 호북을 다니며 정부군의 전략에 참가하였다. 남명 정권 내부의 부패로 왕부지는 죽을 위기에 몰리면서 계림으로 피하여 들어갔고, 은거를 결심하기로 한다.
은거하며 저술에 몰두하기 시작한 왕부지는 1651년 33세부터 1692년 74세까지 약 40년간 『주역』과 『춘추』를 강론한 최초의 이론 저서인 『노자연(老子衍)』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멸망과 민족의 고난 앞에서 문명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문화의 성격을 숙고하였다. 사상과 문화의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저술은 경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 천문, 역법, 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까지 미쳤다.
저자

왕부지

왕부지王夫之,WangFuzhi
청대초기(1619~1692)에활동한뛰어난사상가이자역사학자,시인,평론가이다.주요저서로는『주역외전(周易外傳)』,『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상서인의(尙書引義)』,『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노자연(老子衍)』,『장자통(莊子通)』등이있고,문학과관련된저서로는『당시평선(唐詩評選)』이외에『시광전(詩廣傳)』,『초사통석(楚辭通釋)』,『고시평선(古詩評選)』,『명시평선(明詩評選)』,『강재시화(薑齋詩話)』등이있다.

목차

오언고시
태종황제(太宗皇帝)1수
가을날-유신체를본떠(秋日效庾信體)

왕적(王績)1수
석죽을읊다(石竹詠)

형상옥(邢象玉)1수
고의(古意)

최액(崔液)1수
답가사(踏歌詞)

왕발(王勃)1수
바람을읊다(詠風)

설직(薛稷)1수
가을에도성으로돌아가며섬서십리에서지음(秋日還京陜西十里作)

진자앙(陳子昻)1수
나그네를보내며(送客)

송지문(宋之問)3수
처음애구에이르러(初至崖口)
밤에동쪽정자에서마시며(夜飮東亭)
숭산에사신으로갈때구령을지나며(奉使嵩山途經緱嶺)

장열(張說)1수
잡시(雜詩)

장구령(張九齡)7수
감우4수(感遇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연초에속현을순시하다고안의남루에올라감회를말하다(歲初巡屬縣登高安南樓言懷)
팽려호에서(彭蠡湖上)
여산에들어가폭포를올려다보며(入廬山仰望瀑布水)

왕구(王丘)1수
영사(詠史)

저광희(儲光羲)6수
마름따기(采菱詞)
농가에서보이는대로(田家卽事)
왕유의‘우연히짓다’에화답하며2수(同王十三維偶然作二首)
제1수
제2수
조어만(釣魚灣)
종남산에은거하여살며소시랑께바치다(終南幽居獻蘇侍郞)

왕유(王維)4수
위수의농가(渭川田家)
종남산별장(終南別業)
서시를노래함(西施詠)
산관에서숲과대밭쪽사십오리돌길을굽이돌아황우령에이르러황화천을보며(自大散以往深林密竹磴道盤曲四五十里至黃牛嶺見黃花川)

노상(盧象)1수
영성에서바람에배를띄우며(永城使風)

고적(高適)2수
송중(宋中)
계문(薊門)

잠삼(岑參)2수
늦가을산행(暮秋山行)
구산의서봉초당에서짓다(緱山西峰草堂作)

가지(賈至)1수
우언(寓言)

최국보(崔國輔)1수
잡시(雜詩)

최서(崔曙)2수
산아래에서맑게갠저녁에(山下晩晴)
아침에교애산을떠나태실산으로돌아와지음(早發交崖山還太室作)

이억(李嶷)3수
숲속정원에서가을밤에짓다(林園秋夜作)
소년의노래2수(少年行二首)
제1수
제2수

이백(李白)17수
고풍7수(古風七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제5수
제6수
제7수
‘서북에있는높은누대’를본떠지음(擬古西北有高樓)
자야오가(子夜吳歌)
봄의그리움(春思)
강동으로가는장사인을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
소무(蘇武)
종남산을내려와곡사산인의집에들러묵으며,술자리를차리고(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숭산으로돌아가는배도남을보내며(送裴十八圖南歸嵩山)
삼협을거슬러오르며(上三峽)
가을밤회포를쓰다(秋夕書懷)
봄날홀로술마시며(春日獨酌)

두보(杜甫)19수
마음을달래며4수(遣興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전출새2수(前出塞二首)
제1수
제2수
후출새2수(後出塞二首)
제1수
제2수
신혼의이별(新婚別)
노년의이별(垂老別)
가족없는이별(無家別)
석호의관리(石壕吏)
성도부(成都府)
위팔처사에게(贈衛八處士)
미피의서남에있는누대(渼陂西南臺)
진구를지나며(過津口)
만주에서묵으며(次晩洲)
삼운(三韻)
적곡(赤谷)

원결(元結)1수
고향을떠나는슬픔(去鄕悲)

이화(李華)1수
운모천에서진무릉을그리며(雲母泉懷陳武陵)

유복(劉復)1수
절에서살며맑은새벽에(寺居淸晨)

오균(吳筠)1수
여산오로봉을유람하며(遊廬山五老峰)

유장경(劉長卿)1수
회인현남호에묵으며,동해현의순처사에게부침(宿懷仁縣南湖,寄東海荀處士)

이신(李紳)1수
서하사봉우리에올라멀리바라보며(登棲霞寺峰懷望)

위응물(韋應物)14수
‘걷고걸어또쉬지않고걸어가니’를본떠지음(擬古行行重行行)
‘추위속에한해가저무는데’를본떠지음(擬凜凜歲云暮)
‘밝은달은교교히비치고’를본떠지음(擬古明月何皎皎)
한가히살며(幽居)
도연명체를본떠(效陶彭澤體)
정장원을보내며(送鄭長源)
노숭의‘가을밤’을받고화답하며(酬盧嵩秋夜見寄)
동덕사에서비가내린후-원시어와이박사에게부침(同德寺雨後,寄元侍御李博士)
여름밤에노숭을그리며(夏夜憶盧嵩)
남령정사(藍嶺精舍)
낙양의친구를두고떠나며(留別洛京親友)
서남언덕에올라집터를잡으려다비를만나고,대숲을찾다가뜻밖에풍수강가의빈터에이르렀는데,몇리에걸쳐맑은시내에나무가무성하여,풍광이감상할만했다(登西南岡卜居遇雨,尋竹浪至灃壖,縈帶數里,淸流茂樹,雲物可賞)
개원정사에서놀며(遊開元精舍)
약초를심으며(種藥)

덕종황제(德宗皇帝)1수
중양일에곡강의정자에서연회를베풀며,여섯운으로지은시에‘청’(淸)자운을쓰다(重陽日賜宴曲江亭賦六韻詩用淸字)

장휘(張翬)1수
서하사에서놀며(遊棲霞寺)

호구귀(虎丘鬼)2수
호구산석벽에적다2수(題虎丘山石壁二首)
제1수
제2수

조업(曹鄴)5수
사첨이쓴‘송공을시종하며희마대에서병때문에떠나는공령을보내다’에화답하며(和謝豫章從宋公戲馬臺送孔令謝病)
나부를대신하여태수를꾸짖다(代羅敷誚使君)
반악의‘금곡원의연회’에화답하며(和潘安仁金谷集)
박명한첩(薄命妾)
사망루(四望樓)

조하(趙嘏)1수
분수강가의술자리에서이별하며(汾上宴別)

출판사 서평

왕부지는학문을닦고공명을구한시기는태어난때인1619년부터청나라군대가북경에입성한1644년까지이다.왕부지는7세에『십삼경』을통독하였다.14세에수재가되었으며,16세에시쓰기를배우고,24세에무창(武昌)에서향시에합격하여거인(擧人)이되었다.26세때인1644년,숭정제가자살하고북경이청나라에함락되는거대한변화에직면함과동시에왕부지의배움의일은급작스럽게중단되었다.
이시기부터왕부지는1650년32세의무렵까지청군이호남까지내려오는상황에가족을피신시키고호남과호북을다니며정부군의전략에참가하였다.남명정권내부의부패로왕부지는죽을위기에몰리면서계림으로피하여들어갔고,은거를결심하기로한다.
은거하며저술에몰두하기시작한왕부지는1651년33세부터1692년74세까지약40년간『주역』과『춘추』를강론한최초의이론저서인『노자연(老子衍)』을완성하였다.나라의멸망과민족의고난앞에서문명의전체역사를조망하며문화의성격을숙고하였다.사상과문화의여러방면에흥미를가지고있었기에,그의저술은경학,역사학,문학은물론천문,역법,수학,지리학등자연과학의영역까지미쳤다.

중국미학사의가장밝게빛나는별,왕부지
『당시평선』은약5만수의당시가운데558수를골라[選]평어[評]를붙인책이다.총4권으로구성이되어있으며,수록시인은147명이다.권1은악부가행(樂府歌行),권2는오언고시,권3은오언율시(오언배율포함),권4는칠언율시로되어있다.
책전체를합산하여시가가장많이실린시인을순서대로보면두보91수,이백43수,왕유25수의순이다.왕부지가가장높이평가하고주목한시인은이백,왕유,두보였고,이가운데두보에대해서는칭찬한부분도있지만특히많은분량을할애하여비판하였다.오늘날의당시평가와비교했을때심전기,송지문,저광희,위응물을높이평가하였고,반대로이기,백거이,원진,한유,맹교,허혼,교연등은혹평하였다.
왕부지시평의중요한특징가운데하나는『시경』부터명대까지의역대의시를하나의시관(詩觀)으로꿰뚫어보면서평했다는점이다.왕부지의시평방식은틀에묶여있지않고자유스럽다.논의할만한점이있으면수시로길게썼으며,논의할만한점이적거나없으면간결하게한두글자로평하기도했다.
왕부지가문명사의시각에서역대의시를바라보고당대이래의시의내용과풍격을비판한것은시를통해본정감의변천이점점하락하고그결과명의멸망까지이르렀다는인식에서나왔다.그가세권의평선(評選)을편찬한것도공자의산시(刪詩)를본받아정감을바로세우려는뜻에서나온점을알수있다.때문에이책에는문명사의시각에서타락해가는인간의정감을재구축하려는이상이투영되어있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