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평선 3 (양장본 Hardcover)

당시평선 3 (양장본 Hardcover)

$36.34
Description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섭랑(葉朗) 교수는 중국 고전시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라면, 중국 미학사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은 왕부지와 섭섭(葉燮)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부지는 학문을 닦고 공명을 구한 시기는 태어난 때인 1619년부터 청나라 군대가 북경에 입성한 1644년까지이다. 왕부지는 7세에 『십삼경』을 통독하였다. 14세에 수재가 되었으며, 16세에 시 쓰기를 배우고, 24세에 무창(武昌)에서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26세 때인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북경이 청나라에 함락되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함과 동시에 왕부지의 배움의 일은 급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시기부터 왕부지는 1650년 32세의 무렵까지 청군이 호남까지 내려오는 상황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호남과 호북을 다니며 정부군의 전략에 참가하였다. 남명 정권 내부의 부패로 왕부지는 죽을 위기에 몰리면서 계림으로 피하여 들어갔고, 은거를 결심하기로 한다.
은거하며 저술에 몰두하기 시작한 왕부지는 1651년 33세부터 1692년 74세까지 약 40년간 『주역』과 『춘추』를 강론한 최초의 이론 저서인 『노자연(老子衍)』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멸망과 민족의 고난 앞에서 문명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문화의 성격을 숙고하였다. 사상과 문화의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저술은 경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 천문, 역법, 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까지 미쳤다.
저자

왕부지

왕부지王夫之,WangFuzhi
청대초기(1619~1692)에활동한뛰어난사상가이자역사학자,시인,평론가이다.주요저서로는『주역외전(周易外傳)』,『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상서인의(尙書引義)』,『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노자연(老子衍)』,『장자통(莊子通)』등이있고,문학과관련된저서로는『당시평선(唐詩評選)』이외에『시광전(詩廣傳)』,『초사통석(楚辭通釋)』,『고시평선(古詩評選)』,『명시평선(明詩評選)』,『강재시화(薑齋詩話)』등이있다.

목차

오언율시
태종황제(太宗皇帝)4수
‘부교’를제목으로하여(賦得浮橋)
회일(月晦)
비를읊다(詠雨)
복사꽃을읊다(詠桃)

왕적(王績)1수
들을조망하며(野望)

곽리정(郭利正)1수
원석(元夕)

왕발(王勃)6수
동작기(銅雀妓)
헤어지며(別薛華)
교외의흥취(郊興)
봄날교외에돌아와(春日還郊)
술을마주하고봄날정원에서지음(對酒春園作)
성천의연회(聖泉宴)

양형(楊炯)1수
종군의노래(從軍行)

낙빈왕(駱賓王)3수
가을반디(秋螢)
악대부만사2수(樂大夫輓詞二首)
제1수
제2수

마주(馬周)1수
이른아침강위에서의나그네생각(凌朝浮江旅思)

왕인(王諲)1수
제야(除夜)

진자앙(陳子昻)2수
형문을지나초땅을바라보며(度荊門望楚)
봄밤에친구와헤어지며(春夜別友人)

두심언(杜審言)7수
진릉육승의‘이른봄의조망’에화답하며(和晉陵陸丞早春遊望)
칠석(七夕)
양양성에올라(登襄陽城)
여름날정칠의산중거처에들러(夏日過鄭七山齋)
가을밤임진현정명부집연회에서(秋夜宴臨津鄭明府宅)
위승경이지은‘의양공주산지에들러’에화답하며-5수에서2수뽑음(和韋承慶過義陽公主山池五首選二)
제1수
제2수

심전기(沈佺期)3수
소림사에서놀며(遊少林寺)
무산은높아(巫山高)
잡시(雜詩)

송지문(宋之問)4수
양왕의‘용담의연회’에삼가화답하여응교하며미운(微韻)으로쓰다(奉和梁王宴龍泓應敎得微字)
육혼산장(陸渾山莊)
한강에서전별하며(漢江宴別)
경호의남계에서배를띄우고(泛鏡湖南溪)

종초객(宗楚客)1수
‘인일청휘각연회에서군신들이눈을맞으며’에삼가화답하여응제하다(奉和人日淸暉閣宴群臣遇雪應制)

곽진(郭震)1수
새상곡(塞上)

장구령(張九齡)1수
호수어귀에서여산폭포를바라보며(湖口望廬山瀑布泉)

장열(張說)3수
단주역전에서고전과헤어진곳에돌아와(還至端州驛前與高六別處)
유주에서밤에술을마시며(幽州夜飮)
윤무가지은‘가을밤옹호에서유람하며’에화답하다(和尹懋秋夜遊灉湖)

요숭(姚崇)1수
가을밤에달을보며(秋夜望月)

손적(孫逖)2수
운문사전각에서묵으며(宿雲門寺閣)
사신으로상경하는월주배참군을보내며(送越州裴參軍充使入京)

위제(韋濟)1수
임금이지으신‘경악궁에머물며’를삼가화답하며응제하다(奉和聖制次瓊嶽應制)

현종황제(玄宗皇帝)2수
촉땅에행차할때검문에이르러(幸蜀西至劍門)
유황이지은‘비를기뻐하다’에화답하며(同劉晃喜雨)

왕만(王灣)1수
강남의정취(江南意)

장자용(張子容)1수
영가강에서저물녘돌아가는배를띄우고(泛永嘉江日暮回舟)

저광희(儲光羲)2수
한양에서눈에보이는대로(漢陽卽事)
추운밤강어귀에배를대며(寒夜江口泊舟)

왕유(王維)12수
종남산(終南山)
사냥구경(觀獵)
기왕을따라양씨별장을방문하여응교하다(從岐王過楊氏別業應敎)
최원외의‘가을밤에당직을서며’에화답하며(同崔員外秋宵寓直)
향적사를찾아(過香積寺)
사신으로변새에가며(使至塞上)
평담연판관을보내며(送平淡然判官)
산속의가을저녁(山居秋暝)
망천에서한가히지내며수재배적에게(輞川閑居贈裴秀才迪)
재주로가는이사군을보내며(送梓州李使君)
수재배적의작은누대에올라(登裴秀才迪小臺)
산에서살며보이는대로(山居卽事)

맹호연(孟浩然)3수
동정호를바라보며장구령승상께드림(望洞庭湖贈張丞相)
대우사의공선방에적다(題大禹寺義公禪房)
왕구의방문을기뻐하며(春中喜王九相尋)

고적(高適)2수
민중으로폄적가는정시어를보내며(送鄭侍御謫閩中)
계북에서돌아와(自薊北歸)

잠삼(岑參)2수
정소부를보내며(送鄭少府赴滏陽)
무위에서늦봄에우문판관이이미서쪽진창으로갔다는소식을듣고(武威暮春,聞宇文判官西使還,已到晉昌)

최호(崔顥)1수
서하로부임하는선우도호부배도호를보내며(送單于裴都護赴西河)

조영(祖詠)1수
정곡을지나며(過鄭曲)

최서(崔曙)1수
길가는도중새벽에출발하며(塗中曉發)

기무잠(綦毋潛)2수
산꼭대기에있는영은사선원의벽에적다(題靈隱寺山頂禪院)
용흥사에서묵으며(宿龍興寺)

정선지(丁仙芝)2수
양자강을건너며(渡揚子江)
도성에서세밑을보내며(京中守歲)

이백(李白)7수
가을의그리움(秋思)
새하곡-6수에서1수뽑음(塞下曲六首選一)
대천산도사를만나지못하고(訪戴天山道士不遇)
옹존사의은거지를찾아(尋雍尊師隱居)
태원의이른가을(太原早秋)
형문산을지나이별하며(渡荊門送別)
사공정(謝公亭)

두보(杜甫)19수
봄에문하성에서숙직하며(春宿左省)
저녁에문하성을나오며(晩出左掖)
행재소에이르러기뻐하며(喜達行在所)
악양루에올라(登岳陽樓)
진주잡시2수(秦州雜詩二首)
제1수
제2수
들을바라보며(野望)
우임금사당(禹廟)
배타고기주로가려다가성곽밖에서묵고,비에젖어상륙하지못한채왕십이판관과헤어지다(船下夔州郭宿,雨濕不得上岸,別王十二判官)
떠도는밤에감회를쓰다(夜書懷旅)
고단한밤(倦夜)
밤에서각에서묵으며,새벽에원조장에게드림(夜宿西閣,曉呈元二十一曹長)
내키는대로쓰다(漫成)
떨어지는해(落日)
사남에서저녁에바라보며(祠南夕望)
버려진밭(廢畦)
좌씨저택의밤잔치(夜宴左氏莊)
막떠오른달(初月)
금대(琴臺)

장균(張均)1수
악양의저녁풍경(岳陽晩景)

장순(張巡)1수
피리소리를들으며(聞笛)

한산자(寒山子)1수
무제(無題)

유장경(劉長卿)3수
여간객사(餘干旅舍)
표모무덤을지나며(經漂母墓)
휴선사의쌍봉사에서노닐며(遊休禪師雙峰寺)

전기(錢起)2수
배적의서재에서달구경하며(裴迪書齋玩月之作)
이른아침강녕으로내려가며(早下江寧)

위응물(韋應物)1수
진릉현현령으로부임하는종형을삼가보내며(奉送從兄宰晉陵)

이가우(李嘉祐)5수
조정에들어가는최시어를보내며(送崔侍御入朝)
겨울밤요주자사공관에서흡주로부임하는상공아재를보내며(冬夜饒州使堂餞相公五叔赴歙州)
장산개선사(蔣山開善寺)
도관원외랑묘발의‘가을밤당직하며비를마주하고’에화답하며,지기들에게서간삼아보내다(和都官苗員外秋夜寓直對雨,簡諸知己)
봄날기수강가에서지음(春日淇上作)

두숙향(竇叔向)1수
봄날의아침조회응제시(春日早朝應制)

왕무경(王無競)1수
무산(巫山)

왕건(王建)1수
행인을바라보며(望行人)

이단(李端)1수
무산은높아(巫山高)

융욱(戎昱)1수
한수강가의위씨저택에적다(漢上題韋氏莊)

장적(張籍)2수
강남의옛유람지를생각하며(思江南舊遊)
물(水)

가도(賈島)2수
박릉의친구를그리며(懷博陵故人)
변경으로유람가는친구를보내며(送友人遊塞)

이약(李約)1수
종군행(從軍行)

장호(張祜)1수
선지사(禪智寺)

이선원(李宣遠)1수
병주가는길(幷州路)

주하(周賀)1수
가을동정산에서묵으며(秋宿洞庭)

승영철(僧靈徹)1수
중양절에우사군의‘상경한친구를그리며’에화답하다(九日和于使君思上京親故)

승영일(僧靈一)1수
황보염의‘서릉’을받고답하다(酬皇甫冉西陵見寄)

승처묵(僧處黙)1수
성과사(聖果寺)

이야(李冶)1수
교서랑일곱째오빠에게부침(寄校書七兄)

두목(杜牧)1수
구계에서여름날왕옥산으로돌아가는수재노패를보내며,장차과거에응시하러감(句溪夏日送盧霈秀才歸王屋山,將欲赴擧)

이상은(李商隱)2수
봄밤에마음을달래며(春宵自遣)
무제(無題)

설능(薛能)2수
술잔을띄운연못(泛觴池)
공희황태후만가(恭禧皇太后挽歌詞)

마대(馬戴)3수
초강회고(楚江懷古)
금산사로돌아가는스님을보내며(送僧歸金山寺)
촉땅으로유람가는사람을보내며(送人遊蜀)

이빈(李頻)1수
월중의노래(越中行)

사공도(司空圖)1수
낮은곳에머물며(下方)

정오(鄭遨)3수
산에살며3수(山居三首)
제1수
제2수
제3수

이동(李洞)1수
남해로유람가는스님을보내며(送僧遊南海)

승제기(僧齊己)1수
축융봉에올라(登祝融峰)

부록오언배율
송지문(宋之問)1수
영은사(靈隱寺)

양사도(楊師道)1수
임금이지으신‘여름날저녁풍경’에화답하다(奉和夏日晩景應詔)

진자앙(陳子昻)1수
만주에서새벽에출발할때물이차배를띄우고,촉중의친구들에게부치다(萬州曉發放舟乘漲,還寄蜀中親朋)

두심언(杜審言)2수
소미도에게(贈蘇味道)
봄날강진에서둘러보며(春日江津遊望)

심전기(沈佺期)5수
밤놀이(夜遊)
위사인의‘아침조회’에화답하며(和韋舍人早朝)
선악지정에서시연하며응제하다(仙萼池亭侍宴應制)
백련화정에서시연하며응제하다(白蓮花亭侍宴應制)
원만경사인의‘연못가에서달을감상하며’에화답하며신체시로장난삼아짓다(和元舍人萬頃臨池玩月戲爲新體)

송지문(宋之問)3수
‘장안고성미앙궁행차’에삼가화답하여응제하다(奉和幸長安故城未央宮應制)
등주를떠나며(發藤州)
단주를떠나서강에막들어서며(發端州初入西江)

송경(宋璟)1수
임금이지으신‘변방을순찰하는장열을보내며’에화답하며(奉和聖制送張說巡邊)

장구령(張九齡)2수
허급사중의‘밤에당직을서며여러공에게부치다’에화답하며(和許給事中直夜簡諸公)
임금이지으신‘삭방군에부임하는상서연국공장열을보내며’에삼가화답하며(奉和聖制送尙書燕國公赴朔方)

손적(孫逖)1수
강을따라가며감회가있어(江行有懷)

3수
상락으로

출판사 서평

왕부지는학문을닦고공명을구한시기는태어난때인1619년부터청나라군대가북경에입성한1644년까지이다.왕부지는7세에『십삼경』을통독하였다.14세에수재가되었으며,16세에시쓰기를배우고,24세에무창(武昌)에서향시에합격하여거인(擧人)이되었다.26세때인1644년,숭정제가자살하고북경이청나라에함락되는거대한변화에직면함과동시에왕부지의배움의일은급작스럽게중단되었다.
이시기부터왕부지는1650년32세의무렵까지청군이호남까지내려오는상황에가족을피신시키고호남과호북을다니며정부군의전략에참가하였다.남명정권내부의부패로왕부지는죽을위기에몰리면서계림으로피하여들어갔고,은거를결심하기로한다.
은거하며저술에몰두하기시작한왕부지는1651년33세부터1692년74세까지약40년간『주역』과『춘추』를강론한최초의이론저서인『노자연(老子衍)』을완성하였다.나라의멸망과민족의고난앞에서문명의전체역사를조망하며문화의성격을숙고하였다.사상과문화의여러방면에흥미를가지고있었기에,그의저술은경학,역사학,문학은물론천문,역법,수학,지리학등자연과학의영역까지미쳤다.

중국미학사의가장밝게빛나는별,왕부지
『당시평선』은약5만수의당시가운데558수를골라[選]평어[評]를붙인책이다.총4권으로구성이되어있으며,수록시인은147명이다.권1은악부가행(樂府歌行),권2는오언고시,권3은오언율시(오언배율포함),권4는칠언율시로되어있다.
책전체를합산하여시가가장많이실린시인을순서대로보면두보91수,이백43수,왕유25수의순이다.왕부지가가장높이평가하고주목한시인은이백,왕유,두보였고,이가운데두보에대해서는칭찬한부분도있지만특히많은분량을할애하여비판하였다.오늘날의당시평가와비교했을때심전기,송지문,저광희,위응물을높이평가하였고,반대로이기,백거이,원진,한유,맹교,허혼,교연등은혹평하였다.
왕부지시평의중요한특징가운데하나는『시경』부터명대까지의역대의시를하나의시관(詩觀)으로꿰뚫어보면서평했다는점이다.왕부지의시평방식은틀에묶여있지않고자유스럽다.논의할만한점이있으면수시로길게썼으며,논의할만한점이적거나없으면간결하게한두글자로평하기도했다.
왕부지가문명사의시각에서역대의시를바라보고당대이래의시의내용과풍격을비판한것은시를통해본정감의변천이점점하락하고그결과명의멸망까지이르렀다는인식에서나왔다.그가세권의평선(評選)을편찬한것도공자의산시(刪詩)를본받아정감을바로세우려는뜻에서나온점을알수있다.때문에이책에는문명사의시각에서타락해가는인간의정감을재구축하려는이상이투영되어있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