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경에 대한 철학적 이해 (양장본 Hardcover)

묵경에 대한 철학적 이해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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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대 중국 지성사의 또 다른 기원,
『묵경』에 대한 철학적 재조명
“모든 갈등은 주어진 현상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현상의 이면에 있는 그 본질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후기 묵가는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늘 사물을 하나의 측면만 보고,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 본문 중

이 책은 기원전 5세기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인 묵가(墨家)의 저술 『묵경(墨經)』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목표로 논리학, 윤리학, 과학의 범주로 나누어서 살펴본 것이다. 노나라 묵자(墨子)의 사상을 받들고 실천한 묵가 집단은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儒家)에 의해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유가에서는 특히 모든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 묵가의 겸애설(兼愛說)을 이단적인 것으로 배척했으며, 이에 따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묵가 사상은 오랫동안 소외되었다.

묵가의 사상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구 근대 문명이 유입되기 시작한 19세기부터다. 흔히 묵가는 겸애설로 유명하지만, 기하학과 물리학 등 자연과학에도 특별한 관심과 두각을 보였다. 묵가 집단은 기본적으로 성곽을 축성하거나 군사 무기, 수레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드는 기술자들이었고, 기하학, 역학, 광학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인과론적 사유에 바탕을 둔 묵가의 과학적 세계관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오행론 등의 상관적, 유기체적 세계관과는 충돌했다. 한마디로 묵가의 입장은 형이상학에 대한 과학의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는 과학이 없었다고 간주하지만, 묵가 집단이 보여 준 과학적 성취와 철학 사상 간의 결합은 고대 지성사를 수놓은 또 하나의 단면으로서, AI로 대변되는 기술 중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보다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찍이 법가 사상을 완성한 한비자도 유가와 함께 묵가를 “세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학문”이라고 했고, 조선 영정조 시대 서얼 출신 지식인이었던 이덕무는 묵가가 여러 기계 장치를 만들어 내고 허례허식을 타파한 것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묵가의 사상은 전체 71장으로 구성된 『묵자』라는 저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중 40~45장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묵경』으로서, 각 장은 순서대로 경상, 경하, 경설상, 경설하, 대취, 소취라 불린다. 주로 윤리적, 정치적 주장이 담겨 있는 다른 장들과 달리 이 여섯 개의 장에는 논리학, 윤리학, 광학, 역학 등 과학에 해당하는 이질적 내용이 담겨 있어 후기 묵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핵심 텍스트로 꼽힌다. 이에 청나라 말기 량치차오, 후스 같은 서구 학문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도 『묵경』을 당대의 시대적 화두와 어울리는 학문적 모델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내용이 매우 난해하여 오랫동안 해독이 불가능하다가 20세기 초 손이양의 『묵자간고(墨子閒詁)』가 출간되면서 『묵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묵경』을 크게 논리학, 윤리학, 과학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에서 제기된 논제들을 짚어 본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논제에 서기보다는 각 논제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평가하고자 노력했다. 『묵경』과 관련한 논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논리학과 관련해서는 ‘『묵경』을 형식논리학의 체계를 가진 문헌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의미론이나 언어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는 문헌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윤리학과 관련해서는 ‘『묵경』의 윤리학이 공리주의 내지 결과주의에 바탕을 둔 규범윤리학인가, 아니면 행위자의 의도에 주목하는 덕 윤리학인가’이다. 과학과 관련해서는 ‘『묵경』의 과학이 인과론적 체계를 기본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의 대표적 형이상학 체계인 상관론에 입각해 있는가’이다.

저자는 이 다양한 논제들을 통합하기 위해 힘썼다. 이는 각 논제들의 주장이 관점을 달리하는 것일 뿐 병존하는 데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각 논제들 간에는 단순히 언어적 논쟁이 아닌 실제 입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논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느 하나의 논제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평가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예컨대 윤리학의 영역에서 제기된, 공리주의적 윤리학과 덕 윤리학의 충돌과 관련하여, 저자는 묵가가 공동체 전체에 대한 물질적 혜택을 철학의 당면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공리주의 윤리학을 견지한다고 보면서도, 후기 묵가에서는 그러한 공리를 확보하려는 행위자의 의도와 욕구에도 주목했다고 본 것이다. 의도 공리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후기 묵가의 윤리학에서 저자는 공리주의와 덕 윤리가 상호 통합된 모습을 보았다. 이렇듯 저자는 상호 갈등하는 논제들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가운데 서로 통합하려고 노력함으로써 2천 년도 훨씬 전에 중국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쓰인 『묵경』을 우리 시대 현대인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동시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자 했다.
저자

정재현

저자:정재현
서강대학교철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미국하와이주립대학에서철학박사학위를받았다.제주대학교철학과교수를거쳐현재서강대학교철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묵가사상의철학적탐구』,『고대중국의명학』,『차별적사랑과무차별적사랑』,『덕으로본제자백가사상』,『중국철학』(공저),『차이와갈등에대한철학적성찰』(공저),『인공지능의윤리학』(공저)등이있고,주요논문으로「동아시아자연관의몇가지특성들」,「동아시아사유와철학」,「묵가겸애사상의의미와의의:유가인사상과의비교」등이있다.

목차


서론
『묵경』이란?
방법론에대한고려:철학적이해

1장논리학
형식논리학
언어철학
통합적해석

2장윤리학
규범윤리
덕윤리
통합적해석

3장과학
인과론적과학
상관주의적세계관:명(名)과실(實)의상관성
통합적해석:과학과형이상학

결론현상을넘어본질로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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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책은기원전5세기춘추전국시대제자백가중하나인묵가(墨家)의저술『묵경(墨經)』에대한철학적이해를목표로논리학,윤리학,과학의범주로나누어서살펴본것이다.노나라묵자(墨子)의사상을받들고실천한묵가집단은공자와맹자로대표되는유가(儒家)에의해오랫동안비판의대상이되어왔다.유가에서는특히모든사람들을가리지않고사랑할것을주장하는묵가의겸애설(兼愛說)을이단적인것으로배척했으며,이에따라조선의지식인들사이에서도묵가사상은오랫동안소외되었다.

묵가의사상이새롭게주목받기시작한것은서구근대문명이유입되기시작한19세기부터다.흔히묵가는겸애설로유명하지만,기하학과물리학등자연과학에도특별한관심과두각을보였다.묵가집단은기본적으로성곽을축성하거나군사무기,수레등다양한기물을만드는기술자들이었고,기하학,역학,광학대한전문적지식을가지고있었다.인과론적사유에바탕을둔묵가의과학적세계관은고대중국의대표적사상이라고할수있는오행론등의상관적,유기체적세계관과는충돌했다.한마디로묵가의입장은형이상학에대한과학의도전으로해석할수있다.

많은이들이고대동아시아세계에는과학이없었다고간주하지만,묵가집단이보여준과학적성취와철학사상간의결합은고대지성사를수놓은또하나의단면으로서,AI로대변되는기술중심의시대를살아가는오늘날의우리에게보다특별하게다가올것이다.일찍이법가사상을완성한한비자도유가와함께묵가를“세상에서가장두드러진학문”이라고했고,조선영정조시대서얼출신지식인이었던이덕무는묵가가여러기계장치를만들어내고허례허식을타파한것을높이평가한바있다.

묵가의사상은전체71장으로구성된『묵자』라는저술을통해전해지고있다.그중40~45장에해당하는부분이바로『묵경』으로서,각장은순서대로경상,경하,경설상,경설하,대취,소취라불린다.주로윤리적,정치적주장이담겨있는다른장들과달리이여섯개의장에는논리학,윤리학,광학,역학등과학에해당하는이질적내용이담겨있어후기묵가의생각을엿볼수있는핵심텍스트로꼽힌다.이에청나라말기량치차오,후스같은서구학문에관심을가진지식인들도『묵경』을당대의시대적화두와어울리는학문적모델로삼고자했다.그러나내용이매우난해하여오랫동안해독이불가능하다가20세기초손이양의『묵자간고(墨子閒?)』가출간되면서『묵경』에대한본격적인연구가시작되었다.

이책은『묵경』을크게논리학,윤리학,과학영역으로나누고,각영역에서제기된논제들을짚어본다.그리고어느한쪽의논제에서기보다는각논제들을최대한공정하게평가하고자노력했다.『묵경』과관련한논제들을좀더구체적으로살펴보면다음과같다.논리학과관련해서는‘『묵경』을형식논리학의체계를가진문헌으로볼수있는가,아니면의미론이나언어철학적통찰을담고있는문헌으로볼수있는가’이다.윤리학과관련해서는‘『묵경』의윤리학이공리주의내지결과주의에바탕을둔규범윤리학인가,아니면행위자의의도에주목하는덕윤리학인가’이다.과학과관련해서는‘『묵경』의과학이인과론적체계를기본으로하는것인가,아니면동아시아의대표적형이상학체계인상관론에입각해있는가’이다.

저자는이다양한논제들을통합하기위해힘썼다.이는각논제들의주장이관점을달리하는것일뿐병존하는데아무런갈등이없다고말하는것이아니다.저자는각논제들간에는단순히언어적논쟁이아닌실제입장의차이때문에발생하는논쟁이있다고인정하면서도어느하나의논제가절대적으로옳거나그른것이아니라맥락에따라옳고그른것이있으며,따라서이러한평가를분명히하고자했다.

예컨대윤리학의영역에서제기된,공리주의적윤리학과덕윤리학의충돌과관련하여,저자는묵가가공동체전체에대한물질적혜택을철학의당면과제로삼는다는점에서기본적으로공리주의윤리학을견지한다고보면서도,후기묵가에서는그러한공리를확보하려는행위자의의도와욕구에도주목했다고본것이다.의도공리주의라고부를수있는후기묵가의윤리학에서저자는공리주의와덕윤리가상호통합된모습을보았다.이렇듯저자는상호갈등하는논제들을공정하게평가하는가운데서로통합하려고노력함으로써2천년도훨씬전에중국이라는특정지역에서쓰인『묵경』을우리시대현대인들에게도설득력있게제시하고동시에새로운전망을제시하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