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자’로살것인가,‘유사자’로머물것인가
개인과자유를평생물어온법학자박홍규가꺼낸질문
마르크스와엥겔스가거부한사상가,막스슈티르너의삶과생각
막스슈티르너(MaxStirner,1806~1856)는누구에게도무엇에도매이지말라고한독일의철학자이다.국가와민족,종교와도덕,자본주의와공산주의처럼사람들이목숨걸고믿는것들을그는유령이라불렀다.어느편이옳은지따지는대신그런것을믿는다는일자체를의심했고,오직자신의양심에만따르는‘유일자’로살자고했다.
그런자신의생각을담은책이1844년에나온『유일자와그의소유』다.세상의반응은싸늘했다.한때슈티르너를몹시좋아해마르크스에게꼭읽어보라는편지까지보냈던엥겔스는그책에분노한마르크스를보고덩달아돌아섰고,두사람은슈티르너를비난하는책을원저보다두껍게썼다.그러면서도두사람은그가유령이라부른관념들을함께비판하며유물론자가되었고,3년뒤그들이쓴『공산당선언』은하나의유령이유럽을배회한다는문장으로시작한다.그럼에도비난은곧평가로굳어져슈티르너는매도되거나아예잊혔다.사진한장남지않아,오늘그의얼굴을전하는자료는엥겔스가반세기뒤기억만으로되살린스케치한장뿐이다.
『에고이스트의탄생』은그렇게잊힌철학자와그의사상을한국독자에게온전히전하는책이다.2023년『유일자와그의소유』를우리말로옮긴박홍규는난해하기로이름난그원전의개념을하나씩풀어내는한편,슈티르너의생애와시대를촘촘히복원한다.나아가그의생각을근대사상과아나키즘,현대사상과동양사상에차례로마주세운다.
‘초인’이될필요는없다
저마다‘유일자’로,그러나함께
“그것은‘어떤교리나전통이나외부적결정에도의존하지않고
오직자신의양심에만따르는사람’이라는의미에서‘유일자’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유일자다.”
-「머리말」
막스슈티르너는170년전사람이고『유일자와그의소유』가나온것도1844년이다.그러나저자박홍규는「머리말」에서유일자의새로운탄생을알리기위해이책을쓴다고밝힌다.자신이아는한슈티르너가말한유일자가국내에본격적으로알려진적은없다는것이다.제법오래된사상이이땅에서는아직제대로소개도되지않은셈이다.
그렇다면유일자란누구인가.슈티르너에게에고이스트와유일자는같은사람을가리키는두이름이다.그런데에고이스트라는말은보통자기이익만꾀하는사람으로읽히고,이타주의의반대말로쓰인다.그러나슈티르너가『유일자와그의소유』에서쓴에고이스트는전혀다른존재다.저자는에고이즘(에고이스트)을이기주의(자)가아니라유일자주의,개성주의,자아주의로옮겨야한다고말한다.
슈티르너가쓴‘소유’라는말또한재산권과무관하다.남의것이아닌자신의것,타인과나를구별하는나만의고유함을뜻한다.그러니그의사상은한마디로“유일자로살자”는요청이지,소유를찬양하는말이아니다.남보다뛰어나려경쟁하는태도,곧에고티즘과도구별된다.
니체가초인을말한자리에서슈티르너는아무것도요구하지않는다.누구나초인이될수없고그럴필요도없다.각자가구속이나간섭없이자유롭고평등하게어울려살면그것으로충분하다.슈티르너가죽었을때니체는열두살이었다.흔히슈티르너는니체(주의)의선구자로불리지만,저자가둘을갈라놓는지점이여기다.니체의초인은소수의것이고그가말한힘은권력의지라는형이상학이지만,슈티르너의유일자는누구나이미그것이다.
이데올로기라는이름의유령
신도국가도,심지어자유마저도
“이데올로기를귀신,망령,유령이라고부르고
그것에대한복종을사로잡힘,신들림,광신,광기라고비판했다.
요컨대세상이미쳤다는것이다.모두가귀신에사로잡혔다는것이다.”
-「머리말」
슈티르너가살던19세기전반의독일은가부장주의와권위주의가지배하는사회였고,칸트와헤겔의철학이,괴테와실러의예술이그현실을정당화했다.국가주의와민족주의,제국주의와자본주의,각종종교와철학의유파가바람처럼몰아쳤고사람들은저마다한쪽에속해싸웠다.슈티르너는그싸움에가담하지않았다.
그에게이데올로기란사람이스스로를세계의주체로파악하지못하게만드는허위의식의체계다.신,국가,정당,조직,기술,가족,노동,사랑,심지어자유마저도제스스로살아움직이는주체인양나타날때인간은그앞에종속된다.그러니그가비판한것은특정한신앙이나특정한정치가아니라,무언가를나보다높은자리에두고그앞에무릎꿇는태도전부였다.저자는이비판이한세기반뒤푸코에게서되살아난다고본다.슈티르너가문제삼은내재화된도덕적감시가푸코의판옵티콘(panopticon)으로,강압이없는상태를자유라부르지않는태도가푸코의권력론으로이어진다는것이다.
그래서슈티르너는어느진영에도속하지않았다.왕을무너뜨리는혁명에그치지말고법까지무너뜨리라고했고,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국가도정부도모두권력이자권위라며거부했다.그런점에서그는아나키스트였다.다만저자는아나키스트중에서도‘유일자’라는단서를단다.크로포트킨의상호부조든바쿠닌의자유로운결사든,아나키즘역시인류와인간성에대한충성위에서있었다.슈티르너에게는자유도평등도정의도유령이니그충성마저의심의대상이었다.
그렇다고그가저마다홀로서라고주문한것은아니다.고립은인간의본래상태가아니며사회야말로자연스러운상태라고그는보았다.문제는우리가만든사회가우리를앞서는실체로굳어버렸다는데있다.그가내놓은대안이‘에고이스트연합’이다.각자의고유함을지키면서필요에따라맺고푸는유동적인결합이다.「머리말」에붙인제목대로,“유일자가연대하는세상”이다.
눈은없고눈치만있는나라
차별이아니라차이를인정하는삶
“한국인에게는‘눈’이없고‘눈치’만있다.
자신을들여다보거나미래를향하는‘눈’은없고,
남이어떻게하는가를살펴그것을따라하는‘눈치’만있다.”
-1장「왜지금슈티르너인가」
저자가이낯선사상가를굳이불러낸까닭은분명하다.슈티르너가비판한것이오늘우리에게그대로절실하기때문이다.천편일률적인교육과출세,직장과결혼과노후.모두가같은것을좇아평생을경쟁으로보내지만성공은1퍼센트에못미친다.그런데도실패한99퍼센트는개인의노력부족으로매도되고,그구조가다음세대에서반복된다.스스로자기삶을설계하는아이는집에서도학교에서도적응하기어렵다.
유일자가아니라유사자(類似者)들이무리지어사는사회다.저마다다른사람으로태어났으나같은것을원하도록길러져서로닮아버린사람들이다.저자는참된근대화란민주주의의실천이며민주주의란결국개인의자유와평등을확보하는일이라고말한다.국가나민족이라는전체보다개인이먼저고,그개인들이자발적으로맺는관계로사회를이루어야한다는것이다.
이책의절반은슈티르너를다른사상(가)들과견주는데할애한다.근대사상과아나키즘,현대사상과동양사상이차례로불려나온다.권말에서저자는슈티르너가붓다와노자,장자,양주와멀지않다고말한다.그의사상이유령을쫓아내듯,불교는스스로뒤집어쓴무지의장막에서걸어나오라고권한다.다만불교와도교가유교에억눌렸듯,슈티르너역시서양에서억압되었을뿐이다.모두가유일자이기에서로다를수밖에없고,다름을인정하는위에서만함께살수있다.차별이아니라차이를인정하는다양성의삶,저자가이책끝에남긴요청이다.“어떤차별도없는세상에서우리모두유일자로함께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