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될 거라는 말은 순진하고, 안 될 거라는 말은 현실적인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 낙관주의의 쓸모를 묻다
나쁜 소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은 전망에는 근거부터 묻는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경제적 불안이 겹치는 시대에 미래를 비관하는 말은 더 신중하고 지적으로 들린다. 책에서 소개하는 유니세프 조사에서는 고소득 국가 청년의 61퍼센트가 부모만큼 잘살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저소득 국가의 24퍼센트와 대조되는 이 수치는 풍요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희망 지능』은 이러한 현실을 짚으며 묻는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없다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할까?
미래를 비관할 이유는 분명하다. 문제는 그 비관이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까지 꺾을 때다. 책에 등장하는 우유 통 속 두 개구리의 민담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마리는 탈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익사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발길질을 계속해 우유를 버터로 만들고 그것을 딛고 뛰어오른다. 해결책을 알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였기에 해결책이 생겼다. 낙관주의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지만, 결과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게 한다. ‘희망 지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가능성은 언제 힘이 되고, 언제 함정이 되는가?
위험을 보는 지성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
기대가 크다고 결과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축소하고 불편한 증거를 외면하는 낙관은 오히려 미래를 해친다. 코로나19 초기,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국가 봉쇄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무시하면서 12주 안에 상황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 발표에서 2주가 조금 지난 뒤, 그는 코로나19로 입원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지도자의 맹목적 낙관이 위기 대응을 늦추고 시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짚는다. 중요한 것은 낙관과 비관 중 어느 편에 서느냐보다,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구별하는 일이다.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과 해결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전자가 현재에 안주하게 한다면, 후자는 상황을 살피고 계획을 수정하게 한다. 책에서는 이 긴장을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최악의 경우를 충분히 상상하는 지성과, 그럼에도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함께 작동할 수 있다. 냉철한 판단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이 제안하는 ‘합리적 낙관주의’다.
인간은 왜 거듭 좌절하고도 기대하는가?
낙관하는 인간의 본성과 그 놀라운 힘에 대하여
저자는 그 단서를 진화론과 뇌과학에서 찾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행동을 주저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시도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오류 관리 이론’, 긍정적인 전망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뇌의 작동 방식은 낙관성이 단순한 성격이나 취향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이러한 과학적 탐구를 ‘최선의 세계’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과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하려 했던 역사 속 시도들로 확장한다. 낙관주의는 때로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은 그 기대를 바탕으로 도전하고 변화를 만들어왔다.
그 힘은 거절과 실패가 반복되는 일터에서도 드러난다. 책에서 소개하는 마틴 셀리그만과 피터 슐먼의 보험 판매원 연구에서는 낙관적 설명 양식 점수가 상위 10퍼센트인 집단이 하위 10퍼센트보다 보험을 88퍼센트 더 많이 팔았다. 실패를 자신의 영구적인 한계로 받아들이는지, 특정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하는지가 끈기와 성과에 연결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법조계에서는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 위험과 문제를 예상하는 비관적 태도가 더 좋은 성과와 연결됐다. 이 책은 낙관을 무조건 권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과 쓰임을 살피며, 부정적인 생각에 반박하는 연습과 최선의 자신을 상상하는 방법을 통해 낙관성을 의식적으로 기르는 길도 제시한다.
예측할 수 없어도 바꿀 수는 있다
합리적 낙관주의자는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하나의 전망을 확신하는 대신 여러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비교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날씨를 예측하고 금융위기에 대비하며 재해와 팬데믹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은 이미 이러한 사고법을 활용하고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이야기 역시 현실을 움직인다. 책은 SF가 기술 개발과 사회 변화에 영감을 준 사례들을 살피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그리는 일이 오늘의 선택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합리적 낙관주의자는 미래가 저절로 좋아지리라 기다리지 않는다. 실현하고 싶은 미래를 검토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의 중요한 통찰로 “미래가 예측의 대상이기 전에 참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꼽는다. 『희망 지능』이 말하는 최선의 세계는 모든 문제가 사라진 유토피아가 아니다. 현실의 제약 속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더 나은 세계다. 이를 위해서는 위험을 살피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며, 타인과 협력해야 한다. 낙관주의의 가치는 전망이 맞았음을 증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대를 바탕으로 무엇을 바꾸어냈는가에 있다. 이 책은 불확실성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다.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 모든 가능한 미래 중 가장 밝은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그 미래를 상상하고, 믿고,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는 것뿐이다.”(349쪽)
책 속에서
그래서 그런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낙관주의가 어떤 모습일 수 있을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이전의 추측과 달리 낙관주의가 반드시 순진함의 산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낙관주의는 일이 잘 풀릴 때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어려워질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며, 그때는 낙관주의가 우리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 p.16
실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민담에서 각기 다른 우유 통에 갇힌 개구리 두 마리가 등장한다. 한 마리는 우유 통을 기어오르거나 밖으로 뛰어오를 수 없다고 판단해 절망한 끝에 익사한다. 다른 한 마리는 발길질과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우유 속 지방이 뭉쳐 버터가 되고, 개구리는 그것을 딛고 펄쩍 뛰어올라 자유를 쟁취한다.
첫 번째 개구리는 ‘비관주의의 함정’에 빠졌다. 탈출할 방법이 보이지 않자 포기했고, 죽으리라는 예상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었다. 반면 두 번째 개구리는 탈출할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개구리는 낙관주의자다.
--- pp.25-26
“내 지성은 비관적이지만 내 의지는 낙관적이야.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내 안의 능력과 의지를 남김없이 끌어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말이야.”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길러야 할 능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 p.100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좀 더 세속적인 21세기의 세계관에 맞게 적용하려면,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를 신앙의 명제가 아니라 포부를 담은 선언으로 바꾸어야 한다.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에서 신학적 동기를 걷어내고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면,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는 물리적·기술적·사회적·현실적 제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실현하는 데 우리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는 완벽한 세계도 유토피아도 아니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다.
--- p.164
우리는 그 조각들을 다르게 이어 붙여,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결과를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 삶이 달랐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하며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을 이어 붙이듯이 말이다. 과거가 반드시 그렇게 흘러야 했던 것은 아니며, 오늘날도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고찰하다 보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 p.185
낙관주의는 양날의 검이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영감을 줄 수도 있지만(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긴급한 문제 앞에서 안일함을 심어줄 수도 있다. 결국 불행이 문 앞에 찾아왔을 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감이 아닌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다. 반대 증거가 쌓여가는 와중에도 다 잘될 거라는 말만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통제력만 약해진다. 게다가 현실을 회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래는 그 대가와 함께 어떻게든 찾아오고야 만다. 아무리 힘 있고 부유한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 p.258
현실에 존재하는 기술과 그 쓰임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가 그리는 미래도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픽션 역시 베이지언 분석처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때마다 수정해나갈 수 있다. 픽션은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인류를 파괴하거나 해방시킬 것이라는 이분법, 재앙과 풍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 모든 가능한 미래 중 가장 밝은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그 미래를 상상하고, 믿고,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 p.349
추천사
재앙은 선명하고 희망은 흐릿한 시대, 종말은 언제나 쉬운 이야기다. 희망은 기술이며 용기인 동시에 전략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행동으로 바꾸는 힘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어둠 속에서도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작은 손전등 하나를 쥐여준다.
-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