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역사뒤에숨겨진여백,그안에서숨쉬는지역의2천년시간을걷다
모든것이디지털화면위에서빠르게소비되고잊히는시대,20여년간타지에서한국사연구자의길을걷다고향으로돌아와시사(市史)편찬에몸담았던한역사학자가고향김해에바치는첫저서,『기억의겹기록의곁』이출간되었다.
이책은단순히시간순으로과거의사건을나열하는통사(通史)를넘어선다.발길닿는곳마다역사가밟히는도시김해에서,저자는설화와고지도같은거시적사료부터빛바랜일기장과낡은토지대장같은미시적사료까지전방위로파고든다.김해라는공간에축적된‘기록’과‘기억’의장면들을입체적으로교차하며도시의속살을들여다보는새로운형태의지역사서술이다.
저자는이책을관통하는두단어로‘겹’과‘곁’을제시한다.
‘겹’은역사를단일한선으로만보지않고,수많은사람의삶과마음이지층처럼겹겹이쌓여오늘에이르렀다는깊은이해를뜻한다.
‘곁’은역사를먼위인의이야기로만남겨두지않고,우리곁에서살아온평범한사람들의숨결과소박한문서들을따뜻한시선으로바라보겠다는다짐이다.
7개의부로복원해낸사실과전승의경계,그리고민초들의존엄
책은총7부로구성되어김해의고대부터현대까지의역사를‘기록의방식’이라는독특한렌즈로추적한다.
1부·2부[설화와전승의여백]:김해불교의전래설화와허왕후도래전승을재조명한다.조선시대읍지편찬자들이확증할수없는이야기를성급히재단하지않고‘판단유보의여백’으로남겨두었던겸허한태도를통해,역사의공백이어떻게지역사회의상상력과기억을풍요롭게만들었는지살핀다.
3부[기억하려는의지]:임진왜란당시김해성전투에서패배했으나주민들의기억속에서끊임없이호명되며마침내도시의정체성으로자리잡은‘사충신(四忠臣)’의역사를다룬다.역사는사건그자체가아니라‘기억하려는의지’에서태어난다는진실을전한다.
4부·5부[공간의설계도]:김해의가장오래된읍지인『분성여지승람신증초』를비롯한500년읍지의역사와고지도,근대지도들을분석한다.이는단순한지리정보가아니라,당시사람들이세상을이해하고고을을운영하려했던치열한설계도였음을밝혀낸다.
6부·7부[이름없는이들의곁]:이책이궁극적으로닿고자했던곳,바로‘기록되지않은평범한사람들의이름’을향한다.특히7부에서는1950년한국전쟁전후보도연맹사건으로희생된민간인가족들의비극을‘토지소유권문서’라는구체적인자료로추적한다.국가폭력과연좌제의서슬퍼런감시속에서,남겨진이들에게한뙈기의땅은단순한재산이아니라무너진삶을일으켜세우고존엄을지켜내기위한마지막버팀목이었음을감동적으로증언한다.
“역사는완결된문장이아니라,여전히쓰이고있는문장이다”
저자는자료를모으고글을쓰는동안수많은민간기록물이‘정리’라는이름으로버려지고사라지는현실에가슴아파한다.그러나후회에머물기보다오늘우리의평범한일상을기록하는일이미래의소중한사료가될것임을강조한다.일기한줄,회의록한장,골목길사진한컷이결코사소하지않은이유는,먼훗날후손들이“우리는누구이며,어떤시간을지나여기까지왔는가”를물을때건네줄가장진실한대답이되기때문이다.
암울한시대의끝자락에서도끝내흙을놓지않았던사촌리의들녘과,이름없이사라져간모든평범한이들에게바치는이책은독자들에게묵직한질문을던진다.우리가무심코걷는익숙한거리와골목뒤에얼마나두터운시간의층위와숨결이겹쳐져있는지를.
이책을덮는순간,우리가발을딛고선오늘의공간은단순한배경을넘어우리삶의엄숙한일부로다가올것이다.자신이살아가는지역과공동체의역사,그리고일상의기록이가진위대한힘을믿는모든이들에게일독을권한다.
추천대상
단순한에세이를넘어실증적사료분석과깊이있는인문학적사유를원하는독자
고문서,읍지,지도,토지대장등다양한역사적텍스트를읽어내는방법론에관심이있는독자
거대사뒤에숨겨진평범한사람들의일상사와생활사에매료되는독자
기록의가치와역사학자의따뜻한시선이담긴인문에세이를읽고싶은독자
김해라는도시의역사,지리,문헌을제대로파헤친고품격로컬학술교양서를찾는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