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배달된훈장
신비의나라,미지의나라.체게바라로상징되는혁명의나라쿠바.우리와국교수교가이루어지지않았던쿠바와2024년국교가수립되고,2025년1월그곳아바나에우리대사관이설치되었다.
1905년조국을떠나멕시코로,그리고다시1921년쿠바로떠난한인이주민들,이들중아바나등지에서조국을잊지않았던사람들이있었다.바로안순필과그의가족들이다.이들가족8명모두는쿠바에서미주대한인국민회회원으로서한글교육과군자금마련활동을전개하였다.그결과2023년,2025년에걸쳐일가족모두가100여년만에독립유공자로포상받는전대미문의독립운동가명문가족으로서그이름을남기게되었다.이처럼‘쿠바의순흥안씨일가’한집안8인의독립유공자이야기는세계독립운동사를통틀어도매우보기드문감동적인사례이다.
쿠바한인이민사의거대한산맥이자,일가8명이독립유공자로서훈된안순필·김원경과그자녀안군명,안재명,안수명,안정희,안옥희,안홍희육남매의삶은한편의서사시와같다.
1921년,멕시코의뜨거운에네켄농장을뒤로하고더나은삶을찾아쿠바로향했던한인들의발걸음은절망속에서피어난희망의행진이었다.그중심에안순필과김원경,그리고그들의자녀들이있었다.그들이마주한쿠바의현실은가혹했다.살점을파고드는날카로운에네켄(어저귀)잎과숨막히는열기속에서그들은노예와다름없는노동을견뎌야했다.그러나그가시밭길위에서도그들은‘대한인’이라는이름을결코놓지않았다.어머니김원경은쌀을아껴독립금을모았고,아버지안순필은대한인국민회를이끌며공동체의기둥이되었다.아들들은청년의기개로항일의의지를다졌고,딸들은한글과노래를가르치며민족의뿌리를지켰다.
한집안여덟명의이름이나란히독립유공자명부에오른것은전세계독립운동사에서도유례를찾기힘든기적과도같은기록이다.본평전은카리브해의낯선파도소리를조국의독립만세소리로바꾸어놓았던,가장먼곳에서가장뜨겁게타올랐던한가족의위대한헌신을객관적으로기록하고자한다.이제우리는100년의세월을건너와비로소우리곁으로돌아온그들의이름을하나하나불러본다.
쿠바의정식명칭은쿠바공화국(RepublicofCuba)이다.스페인사람들이‘안틸열도의진주’라칭할만큼아름다운도서국가로해안선의길이는3,735㎞이다.면적은11만860㎢,인구는1114만7407명(2017년기준)이다.2025년3월현재쿠바에는교민약30여명과1921년이후이주한한인후손약1,100여명이거주하고있다.
수도는아바나(Havana)이다.종족구성은뮬라토51%,백인37%,흑인11%,중국인1%등이다.언어는스페인어가공용어이며,종교는가톨릭교가85%로주종을이룬다.기후는아열대기후로,특히사탕수수재배가유명하다.
1492년콜럼버스(Columbus,C.)가발견한후스페인의식민지로편입된이래400여년간스페인의통치를받다가1898년미·서전쟁으로미국에양도되어,4년간미군정을거친뒤1902년5월20일독립하였다.독립이후카스트로(Castro,F.R.)정권수립까지정치·경제면에서미국의영향권하에있었으며,1903년미국과관타나모기지조차협정을체결하여현재에도미해병대가주둔하고있다.독립이후독재,부패,쿠데타가빈발하는가운데변호사출신의카스트로가6년간의혁명운동끝에1959년정권을장악하여,러시아를비롯한공산제국의원조를받아가며극좌성향의사회주의건설을위하여공산통치를해나갔으며,이과정에서1962년러시아의중거리미사일반입과관련하여쿠바봉쇄사건을유발하기도하였다.
1949년7월로부터쿠바는대한민국정부를승인하고있었다.그러나1959년쿠바의사회주의혁명이후로대한민국과쿠바는공식관계가단절된채로지냈다.2024년2월14일(현지시간)양국은마침내미국뉴욕에서양국의유엔대표부를통하여외교공한을교환하는방식으로공식외교관계를수립했다.이로써쿠바는한국의193번째수교국이되었다.
우리교민이쿠바에진출하기시작한것은1905년멕시코사탕수수농장으로이민한275가구1,003명중에서288명이1921년3월쿠바로이민하면서부터였다.6·25전쟁당시만해도쿠바는유엔에서미국과보조를같이하여북한의남침을규탄하였으며,주유엔쿠바대표는미주국가가단합하여한국을지지할것을호소하였다.뿐만아니라,당시쿠바정권은유엔결의에따라1개중대규모의병력파견을제의하였으며,유엔안전보장이사회긴급구호결의에따라270만달러상당의원조를보내왔다.그러나1959년카스트로혁명이후쿠바의대한태도는역전되어북한의상주공관개설을허용하고,유엔을비롯한각종국제회의에서북한에유리한결의안을선두에서제의하는것으로전환하였다.따라서카스트로집권이래우리나라와의문화교류및통상관계등은거의없었다.
쿠바지역의한인연구는멕시코한인이주와관련하여이자경,성주현,김도형,김재기,정일영,이향희등에의하여개척적으로이루어졌다.특히쿠바에서활동한임천택이쿠바한인독립운동을상징하는인물로널리알려져있다.임천택은1950년대『쿠바한인이민사』를간행함으로써쿠바한인사를한국에알린대표적인인물이다.뿐만아니라임천택은식민지시대에도『개벽』등한국의잡지신문들에쿠바한인들의상황을전달함으로써쿠바한인의존재를한국에알린큰역할은한인물이다.그러나임천택은쿠바의마탄사스지역에살고있던이민자였으므로그서술에일정한한계가있었던것으로보인다.
오늘이책에서언급하고자하는안순필가족은경기도수원군팔탄면출신으로임천택과마찬가지로1905년에멕시코로이주하여1921년쿠바로재이주한전형적인쿠바이주한인의원형형태를띠고있는인물들이다.다만안순필가족은임천택이멕시코에서쿠바로이주하여마나티를거쳐,마탄사스에정착하여활동한반면,안순필은아바나에정착,아바나지역을중심으로1930-40년대에활동한대표적독립운동가라고볼수있다.즉임천택이마탄사스를상징한다면,안순필은아바나지역의대표적인인물이라고할수있다.
아울러지역적차이외에안순필가족은임천택가족과는달리1959년쿠바에카스트로정권이들어선이후가족중일부가미국으로이주하는등공산정권에서탄압을받은경우로서대비된다고볼수있다.쿠바인의미국으로의이주는카스트로공산화혁명에대한반감에서비롯되었다고할수있다.특히쿠바혁명전에쿠바의중상층이상에속했던이들이공산화로인해기존에누리고있었던경제적이권마저위협받자자신들의자유와재산을지키기위해미국으로망명하였다.미국정부는미국으로이주한쿠바인들을정치적난민으로규정하고‘쿠바인정착법(CubanAdjustmentAct)’을제정하여이들이미국사회에잘정착할수있도록돕는등매우관대한태도를보여왔다
안순필의막내아들인안수명은1959년카스트로공산혁명이후1961년미국마이애미로이주하였던것이다.임천택의아들임은조(헤로니모임,JeronimoLimKim)는카스트로와혁명을같이하여중요직책에올랐으나,안순필은운영하던방직공장을몰수당하고이후카스트로정권하에서어려운생활을영위하게되었다.
안순필일가족8명이모두독립운동에나섰던이유는무엇일까.필자는1919년4월에자신의고향수원군팔탄면과접해있는향남면제암리에서벌어진〈제암리학살〉사건이큰영향을끼친것이아닌가판단하고있다.즉안순필일가의독립운동참여는수원군지역의3·1운동과밀접한관련을맺고있는것이다.
미주의한인들이구독하였던신한민보의1920년6월1일자〈한국사정과브리튼정부〉에〈제암리소화사건〉이란제목으로당시의참상이다음과같이상세히보도되었던것이다.
이책은잊혀진쿠바지역의한인독립운동사를새롭게부활시키는데일차적목적을갖고있다.아울러그동안잊혀진안순필가족들을발굴소개하고자한다.특히안순필외에부인김원경을비롯하여아들안군명,안재명,안수명,딸안정희,안옥희,안홍희등일가족8명모두를살펴본다는특징또한갖고있다.이연구를계기로머나먼카리브해의쿠바에서활동한수많은잊혀진영웅들에대한학계및일반독자들의관심을기대한다.
이책을간행하는데는주변의도움이컸다.일차적으로국가보훈부,독립기념관,한국이민사박물관,대한적십자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수원박물관,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화성문화원등주요기관과고김재기교수,정길화교수,김도형학형,YTN의이은지PD,민족문제연구소방학진님께감사드린다.아울러국가보훈부의정명희,박준현,박영헌,윤여민,독립기념관의임공재,오대록,김용진,자료수집가박현철,SBS광복80주년특집다큐멘터리〈쿠바로간화성인〉사진자료들을제공해주시고사용을허락해주신SBS방송국의임상범기자,쿠바현지를다녀온서병교PD,그리고진용선학형께진심으로감사를드린다.또한쿠바현지에서가르침을주신문윤미(JulieMoon)님께도고마운마음을전한다.
2025년11월문화당에서
청헌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