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 (저항에서 투쟁으로)

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 (저항에서 투쟁으로)

$25.00
Description
『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은 일본 당국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본격적으로 총동원체제를 운영하던 1938년부터 패망하던 1945년까지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일으킨 투쟁과 저항의 사례를 담은 책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식으로 가공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제국 일본 영역에서 일으킨 투쟁과 저항의 사례는 너무 많아 모두 소개할 수 없다. 그래서 동원 유형별, 지역별로 최소한의 사례를 담았고, 사할린이나 중서부 태평양은 제외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동원되기 전의 저항과 동원된 현장에서 전개한 저항으로 나누어 수록했다.
이 책에서 ‘징용’은 노무동원 경로의 하나인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징용제도가 아니라 일제시기 조선 민중이 사용한 용어를 말한다. 당시 조선 민중은 ‘징용’을 노무동원과 군인·군속 동원 등 모든 인력동원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강제징용’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도 노무자 외에 군인과 군속의 저항 사례를 같이 담았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이 동원되기 직전이나 동원된 현지에서 탈출을 통해, 그리고 파업과 태업을 벌이거나 무장투쟁을 계획한 사례는 일찍부터 알려졌다. 경험한 이들의 회고록이나 수기를 통해, 그리고 일본 공안당국이 생산한 자료를 통해서였다.
이 가운데 최초의 발간물은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가 1980년에 낸 『적도하의 조선인의 반란赤道下朝鮮人叛亂』일 것이다. 2012년에 『적도에 묻히다』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 출간되었다. 동남아시아에 동원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투쟁에 관한 책이다. 학도지원병을 거부한 청년들이나 평양학병사건 관련 당사자들의 출판물은 1984년(계훈제·박동순, 『식민지시대의 지식인』, 청년사)과 1987〜1990년(1.20동지회, 『1.20학병사기』총 4권, 삼진출판사), 1992년(전상엽, 『천명』, 삼진출판사)에 출간되었다.
이들 출판물은 군인이나 군속으로 동원된 피해자들이 전개한 저항의 모습을 담고 있다. 노무자로 동원된 조선인의 저항에 관한 최초의 연구는 1997년 강만길의 논문, 「침략전쟁기 일본에 강제동원된 조선노동자의 저항」이었다. 이후에 변은진과 정혜경의 연구가 나왔고, 경산결사대 등 개별 사건에 관한 연구도 나왔다.
군인 군속에 비해 노무자의 저항에 대한 연구가 뒤늦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시기 조선인의 저항에 대한 인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시기 조선인의 저항이란 무장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양상을 의미하는데, 거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저항’이 설 자리는 없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강제동원 작업장 등 일제전쟁유적에 대해 ‘수치스러운 역사의 장소’라거나 ‘부끄러운 식민지배를 연상하는 장소’로 폄하해온 것도 사실이다. 일본육군조병창(인천시 부평구)을 비롯해 강제동원 작업장을 독립운동 현장으로 인식하고 일제전쟁유적 중에 독립운동 사적史蹟이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학계의 인식이나 연구 수준이 이러할진대 일반 시민들에게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저항을 기억해달라고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만길의 연구는 매우 의미가 있다. 강만길은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저항을 일본 공안당국이 남긴 자료에서 찾았다. 1940년 4월부터 1941년 12월까지 특별고등경찰이 남긴 『특고월보』에 실린 「조선인 운동의 상황」 부분 중 ‘분쟁의紛爭議의 상황’에서 384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이 논문을 통해 조선인들의 저항이 시위나 직접 행동 방식(24%)보다 파업과 태업(54%)이 다수인 점을 통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저항이 많았다고 밝혔다. ‘조선인의 부화 뇌동성’을 강조한 일본 공안당국의 평가와 다른 결론이었다.
1997년 강만길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의 저항 관련 연구가 급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동적인 존재로서 조선인 노무자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려는 문제의식은 확산되고 있었다.
가끔 들리던 말, 말들.
‘바보들이었구나. 일본인보다 힘도 좋고 덩치도 컸다면서, 아뭇소리도 못하고 끌려갔다니, 저항할 줄도 모르는….’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는 있었지만, 한국 사회가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그저 ‘피해의 역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는 피해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투쟁과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강제동원 작업장에 독립운동의 현장이 포함되어 있음과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무관심에서 벗어나 이런 사실들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니 알아야 한다. 김선근과 박용진, 이천홍 등 저항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이 있었음을,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도 저항에 동참했고 투옥 생활도 감수해야 했음을,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의 10%가 파업과 태업을 일으킨 찬란한 투쟁사가 있었음을…. 이러한 역동성은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는 창립 당시부터 연구회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총서 출간을 삼았고, 2011년 창립 이후 2026년까지 총 33권의 총서를 출간했다. 『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도 총서의 하나이다.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사장님은 2011년 연구회가 발족할 당시 흔쾌히 연구회의 출판사가 되기를 자청해주셨다. 어떠한 말로도 감사를 대신할 수 없다. 아울러 늘 연구회 총서를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들어주시는 박애리 실장님과 편집실 직원들의 노고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성실히 연구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보답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난삽한 글을 꼼꼼히 읽고 자료를 제공하고 지적을 아끼지 않은 연구회의 허광무, 조건 연구위원과 출판을 허락해 준 연구회 연구위원회(심재욱·오일환·조건·허광무)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깊은 감사를 올린다.
『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을 쓰면서 새삼 일제시기를 견뎌내고, 우리에게 번영된 삶을 허락하신 분들의 사연을 대하며 슬프고 힘들었다. 그 엄혹한 시기에 감히 생각하기도 어려운 결단을 내린 분들, 일본 당국의 철퇴를 피하지 못하고 귀한 목숨을 바친 분들,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그 시대를 살아낸 분들의 삶의 궤적이기에….
일제시기를 경험한 조선 민중은 나라를 빼앗겼다고 실패한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후손들이 ‘무능한 조상’이라는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으나 그들은 세계 제국을 꿈꾸던 일본 당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주인공들이었다.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이제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일제시기 조선 민중이 경험한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거부한다, ‘징용’을 - 저항에서 투쟁으로』의 의미를 찾고 싶다.

2026년 6월 정혜경
저자

정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