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마음을 두라.”
상처받지 않는 마음,
흔들림 없는 삶을 위해
지금 바로 내려놓아도 되는
31가지 일들
이 책은 총 3개 장으로 구성되며, 일과와 삶에서 31가지 일을 덜어내보기를 독자에게 제안한다. 대원칙은 간단하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1장은 「스토아철학의 자기 관리법」이다. 오늘날 세상은 ‘자기 관리’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요구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는 소비주의적 메시지부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항상 열려 있고 즉시 반응해야 한다는 독려까지. 스토아철학자들은 일부러 불편한 잠자리와 거친 음식을 선택하거나 칩거하기도 했다. 그로써 언젠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편의를 박탈당할 수 있지만, 그럴 때조차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음을 알았다. 편안할 때도 불편할 때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깨우친 사람은 요동치는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2장 「스토아철학의 인간관계론」은 인간관계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11가지를 말한다. 우리는 물론 타인을 살피고 배려해야 하지만, 그의 기분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눈치 보며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기분은 오롯이 그가 스스로 결정할 몫임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늘 나의 성실과 오늘 나의 정직, 오늘 나의 친절뿐이다.” 또한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의 성향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비열하고 나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자신에게 말했다. “오늘도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로 결단한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장은 「스토아철학의 성공관」이라는 제목 아래 ‘성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10가지를 제안한다. 그 첫 꼭지는 「반드시 서울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된다」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을 벗어나,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해본 적이 있는가? 스토아철학은 우선 스스로 성공의 기준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성공을 가장 쉽게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는 돈이다. (…) 그러나 품위, 자유, 내면의 평온, 관계의 깊이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느리고, 깊고, 사유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뒤로 미루고, 계산하기 쉬운 것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역시 그저 성공의 한 형태에 대한 참고일 뿐, 모두가 반드시 따라가야 할 규범은 아니다.
총 31편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을 하루에 한 편씩 읽으며 한 달간의 ‘덜어내기’ 연습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보다 자유롭고 평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통제광의 시대,
스토아철학이 권한다
비워라, 덜어내라, 내려놓아라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살아간다. 거기에 타인의 감정과 태도까지 포함되어 심지어 ‘당신의 말투가 내가 생각하는 친절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당신의 표정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갑질을 하는 등 폭력적인 형태로 분출되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대에 스토아철학은 흔히 ‘순응하는 철학’ ‘참기만 하는 철학’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나에게 폭언을 퍼붓는 사람 앞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는 조언은 자칫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참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라는 말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스토아철학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것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나는 무엇을 옳다고 여길 것인가? 어떤 것을 추구할 것인가? 어느 편에 서겠는가? 이 책 역시 말한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화를 낸다는 이유로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무례한 상대에게까지 깍듯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알고 경계를 분명히 세워라.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라고 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오늘날 많은 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기도문이다.
스토아철학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바는 우리에게 ‘견딜 것과 견디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주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자신을 위협하는 폭군 앞에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죽일 수는 있겠으나, 그때에 신음하며 죽을지 의연히 죽을지는 내가 결정할 몫이라고. 이 책이 삶의 주권을 일깨우는 스토아철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책 속에서
AI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뿐 아니라,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들려온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만으로는 인간이 경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더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산다.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준비하지 않으면 탈락할 것 같고, 멈추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역할은 분명해졌다. 명령하고, 판단하고,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유가 있다. 깊이 생각하는 힘, 본질을 가려내는 능력,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철학적 판단 말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스토아철학자들은 불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급적 딱딱한 바닥에서 자라고 권한다. 부드러운 잠자리는 감각을 무디게 하고, 작은 불편에도 쉽게 흔들리는 인간을 만든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불편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는 도구였다. 세네카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일부러 험한 생활을 연습했다. 일정 기간 동안 거친 옷을 입고, 검소한 음식만 먹으며, 불편한 잠자리에서 잤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이게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가난인가?
딱딱한 바닥에 몸을 누이고 나면, 생각보다 인간은 쉽게 잠들고, 생각보다 쉽게 아침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포는 언제나 실제 고통보다 과장되어 있다.
--- 「푹신한 침대에 눕지 않는다」 중에서
침묵하는 시간은 사치가 아니다. 스토아철학은 ‘멈춤’을 강조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외부에 휘둘리는 삶이 된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밤 자신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가.’ 뉴스로는 그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없다. 타인의 몰락이나 정치적 소란은 내 인격을 성장시키지 않는다.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오직 내 선택과 태도뿐이다.
--- 「의미 없는 뉴스와 자극적인 정보까지 챙겨 보지 않는다」 중에서
전쟁터 한복판에서 사색을 남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아침 이렇게 마음을 준비했다.
오늘 나는 무례한 자, 배은망덕한 자, 나를 속이려는 자를 만날 것이다.
그는 세상을 장밋빛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을 먼저 인정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부정적인 인간관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냉정한 이해다. 우리가 사람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려 할 때, 실망은 더 크게 다가온다. 반대로 인간의 약점을 전제하면, 배신당해도 세계가 무너진 것처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항상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지 않는다」에서
에픽테토스는 노예였다. 그의 주인은 그를 학대했고, 한번은 다리를 심하게 비틀어 평생 절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비틀면 부러질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이 일화는 흔히 스토아적 인내의 상징처럼 소개된다. 그러나 핵심은 ‘참았다’가 아니다. 그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었다. 주인의 폭력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 폭력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외부 상황을 바꾸지 못했지만, 자신의 태도를 훈련할 수는 있었다. 그는 단순히 고통을 버틴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전략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안에서 자유를 찾았다.
--- 「좋아하지 않는 일을 참고 버티지 않는다」 중에서
에픽테토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혼자 있는 것과 고독한 것을 구분한다. 혼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고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한가운데 있어도 자기 자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진짜 고독일 수 있다. 그는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에게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돌아보고, 무엇이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의 핵심은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나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은 외로움을 참는 힘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동반자로 삼는 힘이다.
---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중에서
세네카는 타인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유순함과 진정한 착함을 엄격히 구분했다. 악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고 그저 착하게만 구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력을 잃은 상태일 수 있다. 타인에게 베풀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자신의 내적 자립을 해친다면, 그것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