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날 (한정화 시집)

내가 죽은 날 (한정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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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정화의 시는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젊음이 있다. 그의 시는 기발하면서 낯설지만 친근함이 있다. 또한 역설적 깨달음을 주는 다수의 시는 삶의 고통을 툭툭 털어내고 울다가 웃게 만드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하게 만드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아픈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시들이 많다. 어설픈 위로가 아닌 정확한 인식을 통해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의 슬픔의 언어들은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강한 힘이 있다. 얕은 감성보다는 깊은 절박함에서 나오는 진심이 보석처럼 빛난다.
개인, 가족, 이웃, 사회, 국가. 온 지구상이 폭력과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도 전쟁 중인 세계 곳곳에 시인의 ‘시적 허용’이 통하면 좋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한정화의 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진다.
저자

한정화

전북전주에서태어났다.
2002년『시와시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시집『어느세월에나는나를다살아서』를펴냈다.

목차

1부
시가신발을신고
나는울고있을때
고흐와고갱사이에서
누구를위하여종은울리나
내가죽은날
노안
청춘이뭔데요
슬픔은언제끝나나
처의쓸모
밤바다에관한오해
중독
망치와별빛과개구리다재우고
주소를물었을때
어떤기다림
뒷바라지
아야씨에게
시적허용


2부
11월에서2월까지
별이빛나는밤에
꿈길
통각
개구리주의보
금지곡
금지해제
나는사랑을몰라도
초저녁연가
첫눈
반려
도반이라는말
꽃들에게물어봐
풍문파문
어제를보내며
12월31일20시


3부
그천사에게는날개가없다
별보며달보며
네발의인류
개불알풀꽃을묻겠다
욕만남지않도록
아는슬픔
당신의목숨을깔고앉아
미안해도미안해야지
잘못걸린전화라도
마지막이사
나이
내일먹을찌개를끓이며
염장
블루베리
열차안에서
그풍경의일부가되었네
쓸쓸할예정
별똥별


4부
가려진나날
나타샤는내친구
막,막,막,
그런생각
너를위해
꿈이꿈이아니었다면
강도를잡는법
쥐뿔

다시백일홍
시는시가쓴다
어느날의너에게
4-512-713-155-62-133-27-4
어린왕자를기다리며


세상과만나는통로-권미란

후기

출판사 서평

세상은사건사고의연속이다.그중에서도가장안타까운일은죽음을지켜보는일이다.시인에게도빼놓을수없는화두는‘삶’과‘죽음’이다.
‘죽음’은누구나겪어야할일이다.‘죽음’도‘삶’의일부이기때문에자연스럽게받아들여야할문제이다.그러므로죽는자는잘죽어야하고,산자는잘보내줘야한다.
산업재해,자연재해,대형참사,우리는하루가멀다하고불의의사고들을마주한다.더이상똑같은희생이되풀이되어서는안된다.

잠들고잠깨기까지
(중략)
내목숨을쥔너무많은당신

목숨의회로가엉성하여삐끗하여
매일당신의목숨하나씩가져간다
둘씩셋씩무더기로가져간다
(중략)
언제까지당신의목숨을깔고앉아
모르는척나는아닌척

-「당신의목숨을깔고앉아」부분

우리사회는수많은‘당신’의희생으로지탱하고있다.화자는수없이많은당신에게고맙고미안하다.세상모든사람들이그런마음이라면더이상허망한죽음은없을것이다.
시인은항상문제의식을갖고사는존재다.다음시는사회에경종을울리는동시에,인간을위한경건한기도문과같다.

종일종을닦아요
최저시급간신히만원넘었지만주지를않아요
친구가울어요그눈물맨손에묻혀닦아요
(중략)
죽도록닦아도죽도록울려도
듣지않는다면바뀌지않는다면
종소리도지쳐기어이멈춘다면
그럴밖에요내가떨며종속으로들어가
종소리종소리종소리되어서나올밖에요
비로소당신,당신,돌아보고또돌아보아도
나는이제내친구도이제없어요아니
멀리멀리울리고퍼지는종소리그속에있어요

-「누구를위하여종은울리나」부분

화자는하루하루정성스럽게종을닦으며진심이전해지기를바라면서혼신의힘을쏟고있다.그래도바뀌지않는다면종소리가되어서외치겠다는결연한의지를보인다.‘종소리그속에있’다는대목에서는무서운책임감마저느껴진다.모든사회적약자에대한마음은연대를통한공감에서시작한다.개인의목소리한마디한마디가모여큰울림이되어야한다.
누구나가까운이들을잃는슬픔을겪는다.특히엄마라는존재는한없이눈물이다.

하다하다우는것도뒤에서한다
흉한세상의몽둥이앞에서만나서서한다

바라지를않는다
바라는법도모른다

골병들어도멈추지않는
앞이안보이는뒷바라지는
몇해전신에의해강제종료되었다

-「뒷바라지」부분

엄마는뒤에서죽을때까지희생만하다가죽는다.자식을보호해야하는사람은죽어도죽지않아야한다.엄마의뒷바라지는‘바라지를’않고,‘바라는법’도모르다가자신의의지가아닌신에의해‘강제종료’되고만다.죽음에대한표현이애절하다.

길을걷다죽은매미를보았다
아름다운빛깔투명한날개를보았다
그래서저아름다운날개로
어디까지날았을까
사랑은다하고죽었을까
매미가죽은날죽은매미를본날
나는바라보다생각하다가던길갔다

내가죽은날
죽은나를보게될이를생각한다
나의투명한날개는보았을까
내가어디까지날았을지헤아릴까
사랑이라고믿었던사랑은
다하고죽었을거라고짐작할까
바라보더라도생각은하더라도

가던길잘갔으면좋겠다

-「내가죽은날」전문

화자는우연히길을가다가죽은매미를보고‘죽음’에대해생각한다.자신의‘삶’은어떠했는지문득성찰한다.내가죽어도남겨진사람들이슬프지않았으면좋겠다고여운을남긴다.시인의‘죽음’은‘삶’을말하는것이다.그래서어떻게죽어야할지도살면서준비해야할문제로여기고있다.
삶이죽음이고,죽음이삶이다.그러므로‘죽음’은자연스럽게맞이해야할의식이다.죽음은끝이아니라삶의일부라는역설이성립한다.한정화의시는삶에대한깊은통찰을통해죽음을어떻게맞이해야하는가,질문을던진다.

다음은시인이사랑하는화가빈센트반고흐가등장한다.그러나읽는내내씁쓸하기만하다.

아,고흐에대해서라면몇날몇밤을못먹고못자더라도살것같은데
고흐를품고고흐는입밖에꺼내지도못하고

알지도못하는고갱만불러댄다
깍듯하게존칭으로불러댄다
고갱님,가끔반말도하시고
비속어도쓰시는고갱님,고갱님

-「고흐와고갱사이에서」부분

이시는세기의화가고흐와고갱을등장시켜흥미롭게노동자의슬픔을보여준다.저마다가슴에품은희망이나꿈같은건발설하지못하고종일‘고갱님’만발화해야하는수많은노동자의고통을안다면‘고갱님’은그러시면안된다.
같은맥락에서‘생계형비정규직배우’같은,‘다달이생활비못채워투잡쓰리잡/창백한낮달’같은이들이‘다음달은빵빵하기를/한껏부풀어오르기를/꿈속에서라도별은빛나기를(「별보며달보며」)’희망한다.시는분명슬픔과고통을말하는데,독자는위로를받는다.
정작자신은‘머리어깨무릎발’이아프면서도타인을살핀다.‘폭염에폭우에다떠내려가고쉴곳없는/거기는어떤가당신은무사한가/나는괜찮아서/미안하다고말하기도미안하다(「미안해도미안해야지」)’고한다.그의중심언어에는간절한마음‘청원’이담겨있다.

동서고금을막론하고‘사랑’은꺼지지않는불빛이다.한정화에게도사랑은죽을때까지끝나지않을영원한것이다.그의사랑의변주는끝나지않을것이다.‘어느새저별처럼이나멀어져도구름에가려져도
//너는반짝거리고그별까지의거리가/사랑이라믿게될것이다(「노안」)’.시인의사랑은죽을때까지,아니죽어서도반짝일것이다.

도와주세요
치료받기로결심했어요
(중략)
다음개구리증이고비입니다
특히저물무렵이가장위험합니다
두발세발네발열손가락열발가락머리꼭대기부터발끝까지마음의말단까지팔딱팔딱뒤집어집니다
저물고말면그대로한생이져버릴것만같아가늠할수없는두려움으로통곡하게됩니다
(중략)
후대에도이중독은사랑이라명명할까요

-「중독」부분

사랑은중증질환이다.‘당신쯤되어야중독’인‘당신증후군’은‘망치증’으로나타났다가‘별빛증’‘개구리증’으로이어진다.이때부터는온몸과마음이팔딱팔딱뒤집어지다통곡에이른다.주치의이자환자인화자는‘부화뇌동’할수밖에없다.후대에도끝나지않을사랑을보여준다.그런데이모든증상을재우고이별을준비하고있다.과연아이러니하게도그것이가능할지모를일이다.

질기고긴이중독에서이제빠져나갈때가다가옴을압니다
완치라는말은없습니다
흔적은생의무늬로혹은흉터로남을것입니다
모든증상과치료법과후유증은다기록해두었습니다
재발후대처법도정리해두었습니다
그러느라한세월보냈습니다
(중략)
그럼안녕
내평생의사랑이여

-「망치와별빛과개구리다재우고」부분

이시는슬프고도아름다운사랑시로남을것이다.제목만떠올리면막웃음이터져나오지만눈물이왈칵쏟아진다.한편다음시는반전에반전을거듭하는시이다.참웃기는시라고생각했다가,아~그럴수도있겠구나하는생각이들게한다

반의반세기전어느밤
밤바다보고싶어,
여자가메시지를보냈다
밤마다보고싶어,라고읽은남자는
단숨에달려갔다

그때부터사랑이시작되었을까
그때부터어긋나기시작했을까

-「밤바다에관한오해」부분

이러한‘아름다운오해’가‘반의반세기는더흘러가기를’화자는바랄뿐이다.사랑은참으로아름다운일이지만,때로는오해와착각으로멀리흘러가버리는것일수도있다.사랑이아닌줄알았는데사랑이었고,사랑인줄알았는데사랑이아니었고.문득‘사랑’에대해다시한번생각하게한다.다음시도남다른사랑법을보여준다.

나는통각이둔합니다
(중략)
내게오셔요
누군가에게발등밟힌화안풀린다면
내발등밟으셔도됩니다
(중략)
그러나사랑이여
오지마셔요
이별의통증에는약하디약하여
어찌할바아직알지못하니
내근처에는얼씬도마셔요

-「통각」부분

화자의‘통각’은다양하게나타난다.그는자신의육체적고통앞에서는‘통각’이둔해서다행이라고한다.그래서타인의고통을받아주겠다고하니,이보다아름다운위로가어디있겠는가.그러나사랑의아픔이가장큰고통이라고얼씬도못하게한다.‘개구리주의보’를조심해야하는이유다.한용운을사랑하는시인답게참고견디는자세에는일가견이있다

시인의기가막히는발상은숨길수없는본능이다.흔히일상생활에서찾아내는시상이지만참신하다.또한누구나겪는일이어서공감이크다.

제자리에가만있는탁자에
툭하면부딪쳐멍이잦다
모서리에부딪치면아야씨!절로나온다
(중략)
저탁자는에이씨도못하고얼마나아플까
저탁자처럼제자리에가만있다나에게부딪혀
마음다치고아픈누군가있었을것아닌가
아프게한줄도모르고지나쳤을
그누군가들의이름이사는동안
내입에서나오는게아닐까

아야씨에게늦은사죄를전한다

-「아야씨에게」부분

이시는하루에도몇번씩떠올릴수밖에없다.무심코여기저기부딪혀나오는‘아야씨’라는말이시인의언어로나오면아름다운말이된다.내가멍이들어아픈데탁자를걱정하다가타인을아프게했던자신에대한성찰로반성으로이어진다.함부로내뱉지못하는욕설을용기내어‘막.막,막’해버릴수있도록한다.일종의억압을풀어주는장치인셈이다.

25년전사진인데
이사람이당신맞냐고
은행에서도투표소에서도아무도안물어
이럴줄알았으면막살아버릴걸
(중략)
얼마나막막했는데
이제막긴터널간신히빠져나와
천국의문천천히두드릴준비를하는데

-「막,막,막,」부분

동음이의어의나열이살아움직이는것같다.제목만볼때는명사인지부사인지온갖것들을상상하게만든다.‘막살아버릴걸’‘얼마나막막했는데’‘이제막천국의문’에서시인의참신한언어구사력이돋보인다.다음시에서는말그대로‘처’의용도가이렇게나많다니,놀랍다.

비는처내리고요
음악은처흐르고요
술은처마시고요
내게처가있다면이저녁다정하게처와속닥거리고있을거라고요?
내가처였는데요
(중략)
그때내가
미쳐고백을안한걸까요
미처고백을못한걸까요

-「처의쓸모」부분

미쳐/미처,고백을안한/못한화자의상황에서웃어야할지울어야할지모르겠다.이러한반전에반전을거듭하는역발상이기발하다.또한‘있는척/잘난척//척하고사느라//정작너와는/척지고말았을까//세월이라도척척/알아서흐르면좋으련만(「척」전문)처럼시어의소리(발음),시어의연결들이참신하다.서로다른‘척’을나란히배열하여‘척척’읽히도록했다.
한편「어린왕자를기다리며」는시로만보기에는아까운작품이다.동심을불러일으키는동화같기도하고코믹영화한편을보는듯한착각에빠지게도한다.모든장르기법이동원된흥미로운작품이다.
시인은어린왕자를소행성B612가아닌지구의반지하612호에서끌어올린다.‘반은묻혀반만이따금드는햇빛이노을’이었고‘아무리닦아도점점번지는푸른곰팡이가바오밥’이었음을깨닫는다.‘비가내리는날이면철철흘러내리는빗속에온세상떠내려가도록헤비메탈로록발라드로펑펑울던옆집B612호에살던네가어린왕자’였음을깨닫는다.인간의희망인별은하늘에만있는것이아니라가까운곳에있다.누구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