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진학과취업사이에서길을잃은청년들
이제‘선(先)진학사회’를넘어‘선(先)경력사회’로가야한다
대한민국은오랫동안하나의삶의순서를당연하게받아들여왔다.먼저공부하고,대학에진학하고,학위를취득한뒤,그다음에취업하여경력을시작하는순서였다.더높은학력을얻으면더좋은일자리로이동할수있다는믿음은산업화와경제성장의시대에는상당한현실적근거를가지고있었다.학교는청년을교육하고,기업은졸업자를채용하여일을가르치고경력을만들어주었다.
그러나이제이러한‘선(先)진학사회’의약속은더이상제대로작동하지않는다.대학학위는보편화되었고,기업은신입사원에게도이미직무경험과수행능력을요구한다.AI와디지털기술은청년들이조직에들어가처음일을배우던초급과업을빠르게대체하고있다.청년들은과거어느세대보다오랫동안공부하지만,졸업한뒤에는경력이없다는이유로노동시장의입구에서배제된다.취업하려면경력이필요하지만,경력을얻으려면먼저취업해야하는‘경력의역설’이발생한것이다.
그렇다고대학에가지말고무조건먼저취업하라고요구하는것도해답은아니다.취업의시점을앞당기는것만으로는청년의삶과경력이보장되지않는다.낮은임금의단순반복업무에들어가성장의기회없이머문다면,일자리는얻었어도경력은형성되지않을수있다.중요한것은얼마나빨리취업했는가가아니라,어떤과업과책임을맡고무엇을배우며다음단계로이동할수있는가이다.
『선(先)경력사회』는여기에서새로운사회의원리를제안한다.청년이먼저실제세계와만나의미있는과업과책임을경험하고,그과정에서자신의가능성과부족한역량을발견하며,그경력을바탕으로대학에진학하거나필요한교육을다시선택할수있는사회이다.한번교육을마치고평생일하는것이아니라,일하고배우고다시일하는과정이생애전체에걸쳐반복되는사회이다.
이는‘선취업·후진학’을넘어선다.먼저취업한사람에게대학진학의기회를제공하는정책에머물지않고,취업과프로젝트,연구와창작,도제와지역사회활동등다양한실제경험을경력으로인정하며,그경력이학점과자격,대학진학과새로운일자리로이어지도록하자는구상이다.수능시험과내신성적만이아니라실제과업과책임을통해형성한경력을바탕으로대학에진학할수있어야한다는제안도이책의중요한문제의식이다.
이책이제시하는가장독창적인개념은‘경력권’이다.학습권이역량을형성할권리이고노동권이존엄하게일할권리라면,경력권은실제세계에서과업과책임을수행하며자신의역량을형성하고증명하고발전시킬기회를보장받는권리이다.국가는특정한직장을모든사람에게보장할수는없지만,누구도경력이없다는이유로출발선에서배제되지않도록첫번째과업과책임,최초경력을경험할기회는보장할수있다.
이를위해저자는‘국가경력보장체제’를제안한다.학교와대학은학생에게실제세계의문제와과업을경험하게해야한다.기업과공공기관은완성된경력자만선발하는데서벗어나청년에게첫경력을형성할기회를제공해야한다.국가는경력의품질을보증하고,그경험을기록하며,학력·자격·경력을하나의역량인정체계로연결해야한다.경력이중단된사람에게는다시배우고다시시작할기회를제공해야한다.
『선(先)경력사회』는청년취업정책만을다루는책이아니다.학교교육과대학입시,평생학습과노동시장,기업의인력양성과산업의숙련전수,사회보장과지역발전을하나의경력형성체제로연결하는국가전략을제안한다.청년에게첫경력이보장되지않으면개인의삶만늦어지는것이아니다.기업은미래의숙련자를얻지못하고,산업은지식과기술을다음세대에전수하지못하며,국가는축적한역량을잃는다.청년의경력단절은곧국가역량의단절이다.
필자의앞선질문과저작을하나의사회구상으로집약한책
『선(先)경력사회』는어느날갑자기만들어진하나의정책아이디어가아니다.이책은필자가그동안여러저작을통해제기해온질문과구상을하나의사회적원리로종합한결과물이다.
『당신은어떤사회에서살고싶으십니까』가우리가만들어야할새로운사회의모습과국가의책임을물었다면,『새로쓰는진로와진로설계』는진로를한번의직업선택이아니라생애에걸쳐자신의삶과경력을형성하고수정하는과정으로다시정의하였다.『직업교육원론:직업교육다시묻고,새로쓰다』는직업교육을단순한취업준비나기능훈련이아니라,실제세계에서역량과직업적정체성을형성하는교육으로새롭게바라보았다.
이와함께학교교육과대학교육,평생교육을새롭게설계해야한다는필자의앞선저작들은교육이다음학교로진학하기위한준비가아니라실제삶과경력으로이어져야한다는문제의식을발전시켜왔다.산업과기업은완성된인력을선발하여사용하는곳에머물지않고사람의숙련을형성하고축적하며다음세대에전수해야한다는주장,일터에서쌓은경험을학점과자격으로인정해야한다는구상,사람이생애어느단계에서든다시배우고새로운경력을시작할수있어야한다는생각도이책안에서하나의체제로통합된다.
따라서『선(先)경력사회』는필자의기존저작들을단순히요약한책이아니다.그동안학교교육,대학,직업교육,평생학습,진로설계,노동과숙련,정책과국가의역할이라는서로다른영역에서전개해온사유를‘경력’이라는하나의축으로연결한종합적사회구상이다.앞선책들이각각교육과진로,직업과사회의한영역을새롭게물었다면,이책은그질문들을모아다음과같이묻는다.
우리는국민이먼저의미있는경력을만들고,그경험을바탕으로평생배우며,여러번자신의삶을다시설계할수있는사회를어떻게만들것인가.
먼저경력을만들고,그경력을바탕으로대학에진학하며,일하면서배우고필요할때다시배우는나라.한번의진학과취업이생애전체를결정하지않고,누구나여러번자신의삶과경력을다시설계할수있는나라.이책은대한민국이‘선(先)진학사회’에서‘선(先)경력사회’로전환해야하는이유와그구체적인길을제시한다.
교육과노동의순서를단순히뒤집는것이아니라교육과노동의관계자체를새롭게설계하는책.청년의첫기회를새로운권리로선언하고,그것을국가의책임으로제도화하려는책.『선(先)경력사회』는AI시대의청년·교육·노동·산업문제를하나의새로운관점에서바라보게하는대담한사회구상이다.
그리고독자에게묻는다.
당신은어떤사회에서살고싶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