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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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는 영지주의가 무엇이고, 이것이 정통교회 가르침과 어떻게 다르며, 영지주의가 박해받아 사라진 이유를 설명한다. 모든 사상의 근원으로 알려진 카발라와 영지주의의 관계를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비밀 가르침으로 알려진 영지주의가 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표적 영지주의 문헌인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의 난해한 내용을 카발라와 비의 지식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영지 지식을 통하여 긴 잠에서 깨어나 신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예수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의 모토이다. 이 책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저자

김태항

저자 김태항은 동국대학교 법학과,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교육학 석사. 기업체 연수원에서 사원교육을 담당하였고 대학에서 영어강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동서양 가르침 특히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와 고대 신비 가르침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출판과 번역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카발라의 신비열쇠], [도마복음과 카발라], [슬픈 예수], [완성의 길], [구도여행과 소리 없는 소리], [진짜 삶을 위한 개념 넘어서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모던 매직], [유대명상], [성경과 명상], [카발라 명상], [헤르메스 가르침], [인권 운동 이야기], [진화의 비밀], [마음챙김과 감정치유], [이완과 집중 그리고 명상] 등이 있다.

목차

서문 5
1장 영지주의
1 영지주의 개관 17
2 영지주의 기원 21
3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29

2장 영지주의와 카발라
1 카발라의 기본 개념 이해하기 47
2 성경 속의 신의 이름 63
3 카발라와 예수 66
4 신비의 인물 멜기세덱 67
5 예수와 에세네파 69
6 예수의 비밀가르침, 영지주의 75
7 예수와 카발라 상징 78
8 영지 창조신화 82
9 카발라 우주 창조론 88
10 근원적 존재에 대한 영지주의와 카발라 시각 92

3장 영지주의 복음서의 카발라적 해석
1 나그함마디 문서 97
2 야고보 비밀의 서(야고보 비서) 105
3 빌립 복음서 156
4 진리 복음서 294

참고 문헌 347
부록: 도마복음 354
주석 377

출판사 서평

기독교 구원론의 기반을 닦은 바울이 개심만 하지 않았어도, 영지주의사상이 살아남아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셨으므로 오직 예수만을 믿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예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구원의 주제는 교회를 있게 하는 핵심 교리이다. 이런 논리 때문에 다른 종교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아서 많은 갈등을 낳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독단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런데 예수는 한 번도 인간의 죄를 갚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울의 주장이었다.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정통유대인이었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신비 경험을 통하여 예수를 만나 예수의 제자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직접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바울 서신들도 바울이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개인의 신앙고백 글이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간들]은 바울이 어떤 인물이며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이 [누가복음] 이후인 약 85~90년경에 작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바울 사후 20~25년이 지난 시점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이 죽고 수십 년 후에 바울에 대하여 전해지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그에 대하여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실린 바울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도행전]과 바울이 직접 쓴 여러 서간문 특히 [갈라디아서]를 비교하여 자료의 정확성을 구한다. 바울의 개종을 이끈 신비체험과 그 후의 행적이 주요 비교 대상이다.
바울은 자신이 쓴 여러 편지글에서 예수를 인용하지 않는다. 회심하고 그리스도 제자가 되었으면 예수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예수 출생이나 이적 그리고 행적 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예수에 감복하여 극렬한 반대자에서 열렬한 추종자로 개심하였다면 예수 삶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거의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러했을까?
바울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이었다. 바울의 심리와 당시의 분위기를 알려면 [갈라디아서]를 보면 된다. 바울은 사도직을 하느님에게 받았고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주신 것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예수 제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그 이면에는 사도들에 대한 멸시와 자신에 대한 강한 자긍심이 숨어있었다. 예수를 뵌 적이 없는 그였기에 사도들에 비하여 권위도 약하였고 영향력도 미약했으나 그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사도들과 함께한 예수의 행적보다는 죽음과 부활에 의미를 두고 자신의 신학을 펼쳤다.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저주의 말을 한다. 다른 복음이란 여러 사도들이 전하는 다양한 가르침들(영지주의 포함)이었다.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일은 바울이 이해한 예수와 예수 가르침이 가톨릭교회의 기본 교리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의 비극이었다. 물론 바울은 율법 종교인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를 분리시켜 세계종교로 발전시킨 선구자이기는 하다.
바울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했고 예수로 성육신했다고 하였다. 예수의 부활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식했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기독교의 교리 거의 대부분이 바울의 저서에 근거한다. 바울을 실제적인 기독교 창설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바울이 자신의 잣대(의식수준, 가치관 등)에 맞추어 예수를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지금의 교리 체계를 만들어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수를 직접 만나지 못한 바울임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만큼 예수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였을지 의문이다.
신약성경에는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12제자 글이나 행적이 묘연하다. 이들에 관한 글은 지금의 기독교가 배척한 교리를 담고 있는 외경에서 드러난다. 정경에서는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주인공이다. 신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들로 인해 최고의 사도는 바울처럼 비춰진다.
그런데 다른 사도들의 행적은 정경으로 채택이 거부된 외경에 나온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지금의 정경과 외경을 구별하지 않은 채 각 지역 교회의 판단에 따라 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내부 종파 다툼 때문에 교회에서는 공인된 경전 목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정경 목록을 확정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기독교 정경 목록은 393년 카르타고 주교회의에서 비로소 결정되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년)과 니케아회의(325년)를 통하여 예수 교리가 하나로 일원화될 때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따르는 기독교는 여러 종파 중 살아남은 종파의 교리이고 패배한 종파 문서는 거의 파괴되었다. 파괴된 문서 상당수가 영지주의 작품이었다. 영지주의는 예수가 준비된 제자들에게 전한 비밀 가르침으로 믿음이 아닌 영지지식을 통한 구원을 주장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사라졌던 영지주의 문헌이 대량으로 발견되었고 이것은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은 율법 엄수나 믿음이 아니라 영지(앎)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대속론이나 원죄론, 천국론 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을 구원으로 생각한다. 이런 구원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니 자신의 내면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에만 몰두하게 된다. 예수는 영지주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신의 선택 행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면을 밝히는 행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예수에게 죄를 사해 달라고 아무리 기도하고 회개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기독교 구원관은 원죄설 때문이다. 인간을 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죄 사함이라는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원죄는 예수가 말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교부들이 주장한 이론일 뿐이다.
“원래의 예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기독교가 살고 인류가 살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가 무엇이고, 정통교회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며, 왜 박해받아서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며, 영지주의와 카발라의 관계를 심도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표적 영지주의 문헌인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의 난해한 내용을 카발라 가르침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였다는 점이다. 영지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의 참 가르침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가 있다.
모두가 예수가 전하는 영지 지식을 통하여 긴 잠에서 깨어나 신에게 돌아가길 바란다. 이것이 예수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책 속으로 추가]
그분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명령한다 해도 어느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느니라. 다만 너희들 자신이 충만하게 되어야 들어갈 수 있노라. 내가 야고보와 베드로 두 사람을 충만하게 할 터이니 두 사람은 따로 남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 비밀의 서) p109

영이 너희를 지키는 든든한 성벽인데도 감히 육체를 아끼려고 하느냐? 너희에 앞서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으며, 너희 이후에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할지를 생각해 본다면, 너희 삶이 단 하루이고 너희 고통도 단 한 시간에 불과함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세상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경멸하고 삶을 생각하라.(야고보 비밀의 서) ?p118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은 선이 아니고, 악은 악이 아니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 각각은 태초의 근원으로 녹아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 위로 높여진 사람들은 해체될 수 없어서 영원하다. (빌립 복음서) p165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이름은 이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름이요, 모든 것 위에 있는 이름이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입지 않고는 아들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름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빌립 복음서) p169

어떤 이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언제 여자가 여자에 의해 임신된 적이 있었는가? 마리아는 어떤 힘(사악한 세력)도 더럽히지 않은 처녀이다. 그녀는 사도들과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큰 저주이다. ?(빌립 복음서) p175

예수는 숨겨진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드러난 이름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어떤 다른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늘 예수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고대시리아어로는 메시아요, 희랍어로는 그리스도이다.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네 말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사렛 사람(예수)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자이다.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지니고 계신다. (빌립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