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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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강제동원 100년,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ㆍ유족ㆍ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을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ㆍ인터뷰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은 이 책은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상세히 담아내고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아냈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ㆍ태평양각지에서 군인ㆍ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했던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적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지금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가,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위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이제 우리가 무엇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할지, 무엇으로 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부르며, 자꾸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위안부’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12월 28일 ‘위안부’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증인들의 생생한 마지막 목소리에는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ㆍ질병ㆍ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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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민철

저자김민철은민족문제연구소책임연구원.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객원교수.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집행위원장.저서『기억을둘러싼투쟁』『기로에선촌락』외다수.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부--군함도,조선인을기억하라
‘군함도’라불리는섬에가다
조선인들은어떻게끌려갔을까
‘지옥섬’하시마의하루
강제징용의현장,세계유산이되다
*강제동원역사전체를밝혀라

2부--홋카이도에서오키나와까지,군수품조달에동원되다
환영받지못한여자근로정신대의귀국선
수몰된136명,조세이탄광의비극
함포사격의타깃이된‘철의도시’가마이시
아사지노비행장에버려진유골들
우편저금과연금기록으로아버지를찾다
오키나와전쟁에끌려간조선인들
*오사카의강제연행유적지안내판설치와우익들의공격

3부--시베리아에서파푸아뉴기니까지,전쟁의총알받이로동원되다
누가조선청년을전범으로만들었는가
일본군으로죽은아버지의흔적을찾아서
시베리아에억류된조선인포로들
하이난섬‘조선촌’에묻혀있는살해당한조선인들
파푸아뉴기니의유골들
‘위안부’김학순할머니와나
*아버지의유해를찾아달라!

4부--우리의싸움은끝나지않았다
조선인강제연행·강제노동문제해결을위한여정
야스쿠니신사와싸우는한국인유족들
피해자보상의길이열리기까지
일제강제동원사건17년째소송중
피폭자는어디에있어도피폭자다
재한군인군속재판의발자취
한일협정을다시생각한다
*식민주의청산과평화실현을위한한일시민공동선언

에필로그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얼마전외교부가일본영사관앞소녀상을이전하라는공문을부산의지자체에보낸것으로알려져논란이일었다.독일에서한일양자회담이열리기불과사흘전의일이었다.회담자리에서도일본측에게공문발송에대해말한것으로알려졌다.한일간지는한국정부가2015년12월28일한일‘위안부’합의후이듬해인2016년부터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을돕는민간단체들에대한보조금을일제히중단한사실을보도했다.와중에일본고위층의역사부정망언은연일뉴스를장식한다.이달만해도일본관방장관이기자회견에서,일본외무성심의관이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을부인하는발언을해국내외의비판을받았다.
일본은왜소녀상을‘위안부’상이라고고쳐부르려하고자꾸눈앞에서치우려고할까.한국정부는왜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을기만하고지방정부와여론을거스르면서까지일본눈치를살피는걸까.한일정부가‘최종적이고불가역적’이라고공언한12ㆍ28‘위안부’합의의진실은무엇일까.

일제식민지배30년,해방후70년…
강제동원100년의진실을밝히다


《군함도,끝나지않은전쟁》은한국강제병합100년이지난지금까지도청산되지않은한일과거사,일제강제동원피해의진상규명과보상을위해싸워온피해자·유족·한일시민의목소리를한권에응축한책이다.민족문제연구소가기획하고소속연구원,유족이자활동가인이희자대표,일본의시민운동가,한국의변호사까지18명의필자가집필에참여했다.길게는20년,많게는30차례에걸쳐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남아있는비극의역사현장에찾아가취재하고피해당사자와유족,목격자의구술ㆍ인터뷰를생생하고촘촘하게기록했다.노동자,군인ㆍ군속,군‘위안부’,전범,포로,원폭피해자등다양한정체성으로드러난강제동원피해자의목소리를쫓는이여정은참으로전방위하다.역사학자이이화의말마따나“하나의민족운동사”라해도좋을책이다.

일본군‘위안부’와독도영토분쟁이전부가아니다
가려진역사의증인들을만나다


책은총4부로이루어져있다.1부에서는‘군함도’라불리던하시마와인근의다카시마를직접취재해강제동원의실상을담았다.‘군함도’와강제징용시설을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등재하려는일본의역사왜곡시도와이를저지하기위해펼쳤던필사의노력을담았다.2부에서는홋카이도에서오키나와까지일본전역에걸쳐전쟁의군수품조달에동원됐던조선인노무자들의목소리를담았다.3부에서는시베리아에서파푸아뉴기니까지,아시아·태평양각지에서군인·군속,군‘위안부’뿐아니라전범,포로등미처알지못한다양한모습으로일본의침략전쟁에동원됐던조선인들의이야기를담았다.4부에서는일본정부와전범기업에맞선피해자와유족들의법정투쟁과정을상세히소개했다.진상규명,일본정부의공식적책임인정과배상등여러가지남겨진과업을제시한다.

군함도,조세이탄광,하이난섬,파푸아뉴기니…
비극의역사현장을찾아가다


나가사키항에서약18킬로미터떨어진곳에있는하시마(군함도)는면적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두개정도크기)의작은섬이다.미쓰비시는1916년일본최초의철근콘크리트건물인7층아파트를이곳에세웠다.좁은섬에근대식아파트가빽빽이들어서는모습이마치군함처럼보여그때부터‘군함도’라고불렸다.마치신분계급을상징하듯방파제끄트머리가장낮은곳에조선인·중국인노동자의숙소가,그위에일본이최초의아파트라고자랑하는광부들의주택이,그위에관리인아파트,가장높은곳에관리소장의사택,섬꼭대기에는신사가자리잡고있었다.
고故서정우씨는16세에하시마탄광으로끌려가강제노동을하다가인근나가사키미쓰비시조선소로옮겨갔고그곳에서원자폭탄피해를입었다(책65쪽에일본인하야시에이다이가찍은높이10미터의방파제위에서있는서정우씨의사진이실려있다).나가사키에원자폭탄이떨어지자섬에서일하던노동자들이시체수거작업에동원되어피폭되기도했다.‘나가사키재일조선인인권을지키는모임’은2만명의조선인이피폭을당하고,그중절반이사망에이르렀다고추정한다.
하시마바로옆에있는섬다카시마에는미쓰비시의창업자이와사키야타로의거대한동상과석탄자료관이자리하지만,강제동원에관한기록은단한줄도남아있지않다.산속으로들어가면,한때조선인희생자들의유골이담긴항아리가족히100개는넘게들어있었다는납골당과공양탑이있다.지금은파괴되어더는들여다볼수없게되었다.책에는원폭피해자2,3세와시민단체활동가로꾸려진평화기행단이하시마와다카시마를직접찾아가취재한내용을담았다.그들의여정을따라가다보면,일본이‘근대화의상징’‘자랑스러운세계유산’으로포장하려는군함도의처절한비극과마주하게된다.

대만에서약1,000킬로미터떨어진곳에있는하이난섬에는‘조선촌’이라불리는마을이있다.1939년하이난섬을점령한일본은이곳을남방진출의거점으로삼았다.전황이악화되어가던1943년조선총독부는형무소에있던조선인죄수들까지동원해조선보국대라는이름으로섬에보냈다.일본은하이난섬의토지와가축,각종자원을수탈하고,군용시설을짓기위해현지인과아시아인을강제노동시키고,심지어성노예로삼고학살했다.1945년당시도로건설에동원되었던푸아룽씨는다음과같이증언한다.
“일본군은아무이유도없이조선인들을두사람씩나무에매달아때렸다.조선인이조선인을때리게하면서의자에앉아그모습을구경했다.죽으면다른조선인에게구덩이를파서묻게했다.”
그해8월15일패전한일본군은1,000여명의조선인에게갱도를파게하고무기와물자를묻었다.그리고그조선인들을전부살해해한곳에묻었다.일본군이모두철수한후현지주민들은조선인이묻힌곳을‘천인갱’이라부르고,애도의뜻을담아마을이름을‘조선촌’으로바꿔불렀다.
하이난섬의이같은전쟁범죄는기슈광산을운영했던이시하라산업의만행을추적하는과정에서드러났다.1998년부터2006년까지재일조선인과일본시민활동가,연구자들이모여30차례에걸쳐하이난섬조선촌을찾았다.마을사람들의증언과수차례의현지조사를바탕으로2001년에는한달간발굴작업을시도했는데,땅을파자마자100여구가넘는유골이쏟아져나왔다고한다.한국과일본정부,그리고2004년설치된강제동원위원회에차례로,체계적인유골발굴,관련문서공개와진상규명을요청했으나제대로시행되지않았다.2006년‘기슈광산의진실을밝히는모임’은일본인고고학자,발굴전문가를동반하고독자적으로발굴을진행했다.
하이난섬에강제동원되었다가가석방되어귀향한한국인들을찾아새로운증언을듣기도했다.모두가열대기후속열악한환경과일본군의폭력속에서기아,질병,가혹한노동에쓰러져간동료들의이야기를생생히전했다.조선촌은현재대규모개발과토지강제수용문제로몸살을앓고있다.조선인이매장된땅절반이이미토사로뒤덮였고그위에도자기공장이세워졌다.현지인은말한다.“한국정부가조선인이묻힌장소를어떻게해줄수없는지그방법을찾아보라”고.

노동자,군인·군속,군‘위안부’,전범,원폭피해자,재일조선인…
증인들의마지막목소리를귀담아듣다


1947년싱가포르의창이형무소교수대에서죽음을맞이한조선청년조문상은개성의부잣집아들로태어나일본유학까지다녀온식민지조선의엘리트였다.그는연합군포로를학대했다는이유로전범이되었고교수형을당했다.17세때위험이덜하고월급을많이준다는말에속아서포로감시원이된이학래도전범재판에올랐다.그는포로감시원이되자마자욕설과구타,마주보고뺨때리기등의가혹행위를훈련받았다.전쟁이끝나고향으로돌아가리라는기대에젖어있던그는전범용의자로체포되었다.호주정부가자국의전쟁포로에게포로감시원들의사진을보이며용의자를가려낸결과였다.포로들은실질적인책임자보다눈앞에있는말단감시원들을원망할수밖에없었다.이학래는우여곡절끝에간신히죽음을면했다.
이학래처럼살아남은조선인전범들은일본스가모형무소로이송되었다.일본은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발효된뒤에도이들을석방하지않았다.구금당시일본국민이었기때문에남은형기를마쳐야한다는논리였다.막상석방되더라도가석방신세라고향에돌아갈수없었던그들중에는삶을비관하고스스로목숨을끊은이도있었다.
재일한국인전범자들은‘동진회’를결성해일본내각이바뀔때마다청원서를내고법적투쟁을벌여왔다.17세소년이학래는아흔이넘은지금까지도싸우고있다.2004년그는이렇게말했다.
“연합국에게문제를제기하고싶지는않다.포로가혹독하게당한것은사실이고,그심정을이해할수있기때문이다.재판이형편없었다해도연합국에게불평하지는않겠다.정말로문제삼고싶은것은일본정부다.징용해서써먹어놓고필요가없어지니다쓴걸레처럼버리고모른척한다.인간다운말한마디라도왜건네지않는가.”

2차세계대전이후소련은24개국417만명의전쟁포로를억류하고소련의전후복구사업에강제동원했다.일본군에징병되어만주ㆍ사할린ㆍ쿠릴열도등에배치되었던조선인들도60만명의일본군포로에포함되어시베리아각지의포로수용소에수용되었다.8월에종전을맞은조선인들은여름군복차림으로시베리아삭풍을버텨야했다.혹한,기아,중노동,장티푸스·이질등의전염병으로사망자가속출했지만,땅이얼어바로묻지못했다.소련군은사망자의옷을벗기고가마니에말아서창고에쌓아두었다가이듬해봄한꺼번에포로들을시켜시체를매장하게했다.
전쟁의막바지에징집되어입대날바로소련과의전쟁이개시되는불운을겪은이규철의수기기록《시베리아한의노래》는시베리아억류피해를살피는더없이소중한자료이다.
“몸조심하고꼭살아돌아와야한다고당부하는가족들의말을가슴에새겨떠나는아들들의심정은착잡하기만하다.누구를위해전쟁터로가야하나.일본을위해서죽고싶지않다._이규철,《시베리아한의노래》
하바로스크에서화물선을타고귀국한조선인포로중에서북한을거쳐고향남한으로내려온포로들은기총사격을받거나공작원이나간첩으로오해받아혹독한조사를받았다.곧이어한국전쟁이터지자,적성국가체류경험이있다고하여최전방에세워지기도했다.그들은그전쟁에서희생되거나,생존하더라도내내감시의그늘에서벗어나지못했다.
1990년시베리아억류피해자들이결성한‘시베리아삭풍회’는일본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전억협)의도움을받아러시아중앙공문서보관소로부터노동증명서를발급받았다.시베리아삭풍회와전억협의공동투쟁은한일피해자단체가함께싸운보기드문사례로,모두3차례에걸쳐총55명의노동증명서를발급받는성과를거뒀다.시베리아삭풍회는이후재한군인군속재판제2차소송에원고로참여했고,기각되자재차항소했다.일본법원의기각사유는일본정부의말과다름없었다.‘한일청구권협정으로모두해결되었다’는것이었다.

그들의전쟁으로우리가왜싸우는가
누구를위한정부인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2차세계대전을끝낸다는의미로일본과연합국48개국이맺은것으로,1951년9월8일조인되었고이듬해4월28일발효됐다.미국이주도하고한국은참가하지못함으로써전시손해및고통에대한배상청구권을향유할수없게됐다.‘한일협정’은1965년6월22일도쿄에서‘한일양국의국교관계에관한조약(기본조약)’을조인하고수교에이른일이다.일본의침략과가해사실에대한인정과사죄가선행되지않았고,청구권,어업,문화재반환등에서한국측의지나친양보가있어논란이일었다.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한일협정은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을위한거의모든싸움에서일본에게는일종의알리바이가되었고,이는고스란히법원판결의근거로이어졌다.결정적인순간마다“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배상문제는모두매듭지었다”“한일청구권협정및조치법에의해완전히해결됐다”는말이되돌아오곤한다.
이는때때로일본에게이로운방향으로해석·적용되기도했다.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발효되자자동적으로일본국적을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