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천이 역사의 길에서 만난 사람과 삶의 이야기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서한西漢시대 역사가로 아버지 사마담의 뒤를 이어 태사太史(고대의 사관史官)로 일하며 최초의 중국 통사 《사기史記》를 남긴 인물이다. 한 무제에게서 노여움을 사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그는 역사서를 완성하기로 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해 살아남았고, 3천 년 중국사를 130권의 책으로 완성한다.
《역사의 쉼터 이야기 박물관 사기史記》는 고통과 수치 속에서 저작을 완성해, 끝내 ‘역사의 아버지’(歷史之父)라는 불멸의 이름을 얻은 사마천의 삶과 그가 남긴 《사기》의 몇몇 이야기를 선별해 옛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되짚어보았다. 거미줄보다 복잡하게 짜인 인간들의 관계망, 그 속에 더욱 복잡하게 엮인 생각과 신념, 욕심과 갈망이 만들어낸 옛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준다.
▶ 고통 속에서 피워낸 꽃, 《사기》
사마천은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가령 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할 때 시간적 순서에 따라 막연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한 인물을 잘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건을 재미있게 기록하여,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마천은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흥미진진한 대화체를 사용하여,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듯한 묘미를 주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의 인물들을 기록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역사지만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사마천의 문체를 ‘기전체’라고 하는데,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합성어다. 그가 완성한 기전체라는 독특한 서술방식은 역사뿐만 아니라 후대의 문학·철학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이 완성한 《사기》는 무려 13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본기〉에는 전설시대부터 한漢 무제武帝까지 왕조와 왕들의 흥망성쇠, 〈표〉에는 역사의 연대기, 〈서〉에는 예제禮制와 음악, 역법曆法, 천문天文, 치수治水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 〈세가〉에는 제후들의 계보와 역사가, 〈열전〉에는 다양한 인물군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자체로 ‘역사의 기록’(史記)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기》에는 아주 먼 고대로부터 시작된 수천 년의 역사가 망라되어 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하여, 제왕과 제후들의 이야기, 여인들의 이야기, 전사戰士와 학자, 충신忠臣과 간신奸臣, 장사꾼과 도굴꾼, 외국인과 점쟁이, 그리고 자객刺客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숲 속의 꽃처럼 다채롭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사기》는 한 마디로 이야기의 박물관인 셈이다.
▶ 사마천이 역사에서 건져 올린 보석 같은 이야기들
사마천의 《사기》는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담았지만, 위인들의 이야기만으로 엮어낸 책이 아니다. 그 안에는 황제黃帝와 같은 전설 속의 인물도 있고, 진시황秦始皇처럼 누구나 알 만한 사람도 있으며, 때로 못된 관리들과 착한 관리들, 외국인, 도굴꾼, 도박꾼까지 다양하다. 《사기》의 편집은 사마천의 역사관과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전설의 황금시대를 연 요임금과 순임금, ‘주지육림’에 빠져 악행을 일삼다 은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끈 주임금, 천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거짓 없는 마음으로 주군을 보좌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 주공의 삶을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우정의 대명사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과 포숙, 포숙의 추천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 관중을 등용해 천하를 호령하는 패자가 되었지만 첫 마음을 잃어 외롭고 비참한 죽음을 맞은 제환공,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해 세상을 떠돌아다녔지만 후대인들에게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 등 춘추시대를 수놓은 인물들의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3부에서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전국시대에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욕을 참아낸 인상여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사죄한 뒤 인상여와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줄 수 있는 우정을 맺은 염파, 순자의 제자로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자를 진시황에게 천거했으나 질투심에 한비를 죽게 만들고 그 자신도 누명을 쓰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이사,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공을 세우고 모든 것을 가졌으나 한없이 불안하고 외로워하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진시황제의 삶을 그려냈다.
4부에서는 남편 한漢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나라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자신과 아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사람에게 잔인한 복수를 일삼은 여태후, 매순간 백성만을 생각하는 정치를 펼쳐 황금시대인 ‘문경지치’를 연 한문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사마천이 만난 사람들, 그들이 만든 역사
사마천은 《사기》 130권의 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평가를 덧붙였다. 역사 기록으로서 공적公的이어야 하고, 객관성·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마천이 비록 태사령이기는 했지만, 《사기》는 태사령이라는 공무원의 신분이 아닌 사마천이라는 개인의 자격으로 썼기 때문이다.
《사기》는 사랑과 우정을 나눈 사람들, 꿈과 신념을 위해 산 사람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 헌신을 꽃보다 향기롭게 생각한 사람들, 고달프고 누추할지라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다. 또한 《사기》는 중국의 역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 사마천 자기 자신의 고백까지 포함한 이 책은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 책속으로 추가 ]
문제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일식이 나타난 것은 물론이고, 그가 황위에 오른 지 22년이 되는 해에는 흉노가 쳐들어왔다. 또한 세상에 끔찍한 가뭄이 든 것도 모자라 해충의 피해까지 들어 황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때마다 문제는 먼저 솔선수범했다. 제후들에게는 공물을 바치지 않게 하고, 백성이 산과 못을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으며, 황제의 위엄을 돋보이게 해줄 의복과 궁실을 축소했다. 또한 창고와 곳집을 열어 굶주리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해주었다.
그래서 문제가 즉위한 지 23년이 되었는데도, 궁실은 더 화려해지지도 기물이 더 많아지지도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백성의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나날이 좋아졌다.
- [11장 ‘문경지치’의 황금시대를 연 문제文帝-“모두 부족한 내 탓이오.” 중에서(본문 194~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