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모두가 읽어야 할 한자 이해의 필독서!
한중일 고대역사의 상식을 바꾸어 놓았던 저자가 한자에 대한 상식을 바꾸어 놓는다. 한자 해석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포함시켜 고대문화를 생동감 있게 펼쳐 나간다. 한국은 한자를 만든 상나라, 그리고 상나라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와 가까운 나라로, 한자 속에는 이 나라들의 풍습이 많이 담겨 있다.
“상나라(BC1,600-BC1,046)의 시조 황제는 신라인들이 시조로 받들던 소호의 아버지인데, 소호는 황제와 더불어 중국 전설상의 다섯 임금 중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소호를 섬겼던 소호족은 중국 동부 동이족의 대표적 부족으로, 한국 대표 성씨인 김(金)씨 또한 소호로부터 비롯된다. 신라인이 유달리 새를 숭배한 것은 상나라, 진(秦)나라처럼 소호족 일원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책 내용 중 -
책소개
이 책은 한자와 동아시아 고대 문화를 생동감 있는 사진과 이야기로 연결하여 독자들이 한자를 쉽게 이해하도록 지어진 책이다. 동아시아 3국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자 808자를 분야별로 분류하여 기존 해석과 다른 독특하고 흥미 있는 내용으로 채우고 있다. 특히, 한자와 한국 문화를 연결하여 해석함으로써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한자가 동북아 3국 공통 글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역사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최초로 한자를 만든 상나라(은나라), 상나라를 이은 기자조선, 기자조선을 이은 낙랑, 낙랑을 이은 신라, 상나라와 풍습이 같았던 부여, 부여를 이은 백제, 상나라 유민의 대표인 기자를 신으로 섬겼던 고구려, 상나라-신라와 같은 소호족 계열로 중국을 통일하고 한자를 정리한 진(秦)나라, 상나라를 시조로 삼고 중원을 점령했다가 고구려에 투항한 선비족의 연나라, 그리고 진(秦), 낙랑, 연나라 이주민이 대거 유입된 진한(신라), BC 3세기부터 꾸준히 중국과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왜(일본) 등은 모두 고대 중원 문명과 관련이 깊은 나라들로, 현재 한국과 정치, 문화, 역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입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동북아 3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자 808자를 다양한 사진과 문화적 배경 등을 참고하여 설명하고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대한 해석이 매우 신선하고 유용하면서도 생동감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쉽게 한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과거에 우리가 ‘무작정 외웠던 한자’가 어느덧 머릿속에 ‘상황이 연상되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한자가 ‘어려운 글자’라는 선입견이 바뀌게 되며 동아시아 선조들의 문화와 철학을 매우 합당하게 연결하여 만든 ‘종합적 유산’이 바로 한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오랫동안 한국의 고대문화를 연구해 왔는데, 고대 중국과 현대 한국은 뗄 수 없는 문화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 중국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자에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많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그런 관점을 담겨 있어서 많은 글자를 한국 전통문화와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자를 중국 문자로만 여겼던 한국인이 한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이 중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한국에서 단오절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사실은 단오절이 아닌 강릉 지역의 단오절 제사 풍습), 한국인 일부가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중국의 국부로 여겨지는 손문(쑨원) 선생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고 불만이 많다. 그런 여러 불만 중에는 “한국인이 한자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라는 주장도 포함이 된다. 그런데 사실 주변을 보면 그렇게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은 없고, 또 그러한 주장들이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 역시 한자가 중국 것이지 한국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한자 속에 한국 전통문화가 담겨 있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이 수천 년 동안 중국과 교류해 왔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 속에는 고대중국적 요소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형적으로 평원이 많기 때문에 사방의 적으로부터 방어가 어려워 고대로부터 정권이 자주 바뀌었다. 반면에 한국은 하나의 정권이 수백 년 이상 지속된 경우가 많다. 중국이 잦은 전란으로 변화가 심할 때 한국은 오랫동안 동아시아 고대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고, 그것이 한국의 전통문화가 고대 한자에 많이 보이는 원인인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고대역사가 중국, 일본과 관련이 깊음을 설명한 책인 《동이 한국사》를 쓴 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책은 어찌 보면 아군 없는 외톨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강단 사학자들이 정해 놓은 역사의 틀과 배치되고,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도 배치되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어느 나라 학자도 쉽게 이 책의 내용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저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많은 ‘아군’이 생긴다면 이 책의 가치는 과거 어떤 역사서보다 의미 있는 역사서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한국인이 그동안 가졌던 한자에 대한 ‘고정된 상식’을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한국인이 한자를 새롭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이 외국인이라기보다 과거에 마치 형제처럼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던 사이였음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저자는 언젠가 한중일 삼국이 서로의 작은 서운함을 풀고 세계의 모범이 되는 화목하고 행복한 나라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기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고조선(기자조선)은 이후 연나라 사람 위만이 찬탈하였다가(BC 2세기 초) 다시 한(漢)나라에 멸망하는데(BC 108),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한 새로운 행정구역인 낙랑군은 한반도 동남부의 신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나라로서, 낙랑군 사람들은 중국, 고구려의 압박 속에 지속적으로 신라에 유입이 되어 그곳의 지도적인 세력이 됩니다. 이와 관련해 3세기 편찬된 중국 정사 《삼국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전신인) 진한 사람들은 낙랑 사람들을 ‘아잔(阿殘)’이라고 부르는데, 동방 사람들은 ‘我(wo)’를 ‘아’로 발음하므로, ‘아잔’이라는 말의 뜻은 낙랑에 ‘자신들이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한반도는 한자를 만든 상나라, 상나라를 이은 기자조선, 기자조선을 이은 낙랑과 일정 부분 관계가 있는데, 한반도뿐 아니라 만주에도 한자를 만든 상나라와 유사한 풍습을 가진 민족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부여’를 들 수 있습니다. 부여는 상나라 멸망 이후 1,000년이 넘게 상나라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고, 상나라와 같이 ‘흰색’을 숭상했으며 당시 중국과 달리 두 무릎을 꿇고 공손함을 표하는 등, 여러모로 상나라와 닮은 나라였습니다.
만주에 살던 상나라 풍습을 지닌 민족들 중 스스로 상나라의 후예라고 자처했던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와 같은 예맥족인 선비족입니다. 선비족은 만주 서부에 거주하던 민족인데, 이후 중국을 점령하면서 스스로를 상나라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고(《위서》), 현대 중국학자들 역시 선비족을 상나라 이주민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선비족은 자신들과 같은 예맥족 국가인 부여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4세기부터 중국 고대문명의 핵심 지역인 중원을 점령하여 다스립니다. 선비족 중 세력이 강했던 모용씨 부족은 연나라를 건국하여(337) 중원을 점령하였는데, 점차 다른 선비족 일파인 탁발씨 부족에 밀리면서 자신들의 기원지인 고구려에 나라 전체를 들어 투항하게 됩니다(436). 그런데 그 투항한 규모가 대단했기 때문에 고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문명의 주요 세력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됩니다. 선비족이 고구려에 투항한 뒤 백제와 신라, 일본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필자가 쓴 《동이 한국사》에 상술하였습니다.
신라시대 중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국제적 석학인 최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진한(신라)은 원래 연(燕)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온 곳이다.” (《삼국유사》)
신라의 주요 세력이 연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부터 대대로 중국 동북 지역에 있던 강국이었는데, 기원 이후 선비족이 국호를 ‘연’으로 정하고 중원을 점령했다가 고구려에 투항하면서 한국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된 나라입니다.
이렇듯 한자를 만든 상나라, 한자를 통일한 진(秦)나라, 상나라를 이은 낙랑, 상나라와 풍습이 같았던 부여, 부여를 이은 백제, 상나라 유민의 대표인 기자를 신으로 섬겼던 고구려, 상나라를 시조로 삼고 중원을 점령했다가 고구려에 투항한 선비족의 연나라, 그리고 진(秦), 낙랑, 연나라 이주민이 대거 유입된 신라, BC 3세기부터 꾸준히 중국과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왜(일본) 등은 모두 고대 중원 문명과 관련이 깊은 나라들로, 우리와 혈연, 정치, 문화, 역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고대 중원 문명과 한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 별개로 나눌 수 없는 공통분모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에 고대로부터 한자와 관련된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