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역사

시베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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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혹독하지만 아름다운 땅 시베리아의 역사

저자

이고르블라디미로비치나우모프

저자:이고르블라디미로비치나우모프(IgorVladimirovichNaumov)
이르쿠츠크주립기술대학교역사학과장.이르쿠츠크출생.시베리아역사와러시아군사(軍史)전공으로40여권의저작물들을갖고있다.

역자:정재겸
서강대철학과졸업.현재봉우사상연구소번역위원으로북방시베리아관련전문서들을번역하는한편수시로현지답사를해오고있다.번역서로는《부리야트족의전통과문화(TheBuryats:Traditions&Culture)》,《말타고바이칼가다(MongolandLakeBaikalonHorseback)》,《시베리아원주민의역사(AHistoryofThePeoplesofSiberia)》,《시베리아탐험기(TentLifeInSiberia)》등이있다.

편역:데이비드콜린즈(DavidNormanCollins)
전(前)영국리즈대학교(Univ.ofLeeds)러시아및슬라브학학과장,그리고캐나다학센터장을역임하고시베리아와캐나다역사에관한많은저작물들을갖고있다.

목차


감수자서문
러시아어원저자서문
영어편역자서문

제1부‘시베리아’로알려진지역
제1장일반정보
제2장시베리아역사연구

제2부고대의시베리아
제3장석기시대
제4장청동기시대
제5장스키타이시대
제6장흉노족시기의시베리아

제3부기원후첫번째밀레니엄과두번째밀레니엄전반기의시베리아
제7장시베리아의투르크족-예니세이키르기즈국
제8장시베리아의몽골족­시베리아카간국
제9장러시아에예속되기전의시베리아민족들

제4부러시아에예속된시베리아
제10장러시아의시베리아침략
제11장예르마크원정대­시베리아의복속
제12장1685-1689년러시아와청나라의충돌
제13장시베리아통치
제14장시베리아탐험

제5부18-19세기전반기의시베리아
제15장시베리아의외교정책상황
제16장시베리아의행정­1822년의개혁
제17장사회경제적발전
제18장문화적발전과과학적탐험

제6부19세기후반기와20세기초의시베리아
제19장시베리아의외교정책상황
제20장사회경제적발전
제21장문화와과학의발전
제22장시베리아의사회생활­1905-1907년혁명기의시베리아

제7부혁명과내전기(1917-1922년)의시베리아
제23장1917년의시베리아254
제24장적백내전기(1918-1921년)267
제25장극동공화국(1920-1922년)290

제8부1920-1922년대및그이후의시베리아
제26장시베리아의외교정책상황
제27장시베리아의행정
제28장1920년대-1940년대의사회경제적및문화적발전
제29장1950-1985년의사회경제적및문화적발전
제30장1985년대-21세기초의시베리아

역자후기
편역자데이비드콜린즈가제안하는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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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국내에서러시아역사책은많이소개돼있으나,이렇게시베리아역사만을온전히담고있는책은이책이유일하다.이책은다른러시아역사책에서가볍게다루던,혹은전혀다루지않던사항들도자세히다루고있다.일례를들면,1907년러-일페테르부르크협정에서러시아와일본의이익범위를다루는비밀조항들이공개되고있는데,거기에는조선이일본의특수이익지역에속하는것으로명시돼있다.이것은1910년한일합방이전에이미러시아와일본사이에밀약이이루어진것을말해주고있는것이다.

또한이책은시베리아가지방분권주의의온상이었다는사실을밝히고있다.즉1882년야드린체프는《식민지로서의시베리아》에서시베리아지방분권주의의주요이념을밝히면서,그동안러시아가시베리아를식민지로이용하여시베리아발전을방해했으므로시베리아는발전을위해정치적인자치가필요하다고주장했다.또한명의시베리아지방분권주의지도자인포타닌은시베리아를러시아로부터분리시키려했다는혐의로투옥당하기도했다.

이후1920년4월6일아주특별한정치체제인극동공화국이출현했다.이극동공화국은영토가서쪽으로바이칼호와셀렝가강까지,동쪽으로블라디보스톡까지,그리고수도는베르흐네우딘스크(울란우데)였으며,명목상소비에트러시아에서독립된공화국이었으나,배후에는볼셰비키세력이있었다.

당시적백내전이끝나지않은상태에서소비에트러시아는폴란드와군사적충돌에직면해있었고,또한군사강국인일본과의전쟁을회피하고자극동에완충국가를만들고자하는의도를갖고있었다.일본역시소비에트러시아와의사이에민주적인완충국가를만드는데찬성하면서영토확장의야망을드러냈다.이런상황하에서특별한완충국가인극동공화국이출현하였다.

그러나영미연합국의간섭으로일본군이시베리아에서철군하는바람에극동공화국은1922년11월16일자연히소비에트러시아에귀속되었다.이렇게비록볼셰비키괴뢰국가이었지만,명목상극동공화국은거의모든시베리아를대표하는국가로짧게존립했다.이책은또한공산주의치하에서발전해온시베리아가겪어야했던고통을가감없이기술함으로써비판적인시각을보여주고있다.

1917년권력을장악한볼셰비키공산주의자들은모든것을국유화하고농산물징발령을내려모든식량거래를금지시킴으로써식량부족,물가상승,생산붕괴등의경제마비상태가일어났고,이에시베리아인들은저항에나서적백내전에적극가담하고,또그진원지중하나가되었다.1917년12월이르쿠츠크봉기로적백내전이시작되었고,1918년코사크족세묘노프가일본의지원을받아특별만주지대를구성하여트랜스바이칼리아에서반란을일으켰고,또데랴빈을수반으로하는사회주의혁명당을중심으로시베리아임시정부가구성되어반(反)볼셰비키지하조직군대로반란을일으켰으며,1922년10월적백내전이끝난곳도바로시베리아였다.

적백내전에서승리한공산주의자들은신경제정책으로알려진타협책을도입했으나,이후곧사회주의건설이가속화되면서극단적인산업의집단화와문화혁명이진행되었다.특히농업집단화정책으로곡물의약탈적강제징발이시행되자,이에반발하여1930-1933년시베리아농민들은대규모봉기들을일으켰으나,이봉기들은당국에의해진압되고농민들은투옥당하거나총살당했다.이런집단화는농업의파괴를가져왔고,농업은20세기말까지도완전히회복되지못하여심각한식량부족문제를일으켰다.제2차세계대전이끝난1946-1947년시베리아는기근지역중하나가되었다.이것은곡물징발의증가에따른식량정책실패에기인한것이었다.

1950-1960년대당국은농업을다시부흥시키기위한새로운시도를했으나,시베리아에서의산업화에따른도시화로인해농민인구와농업비율이지속적으로하락함으로써시베리아는더이상식량을자급자족하는곳이아니었다.1980년대시베리아는소련총생산량의10%를넘고있었지만,자원수출은소련외화획득의50%를넘고있을정도였고,오늘날러시아전체석유의70%,가스의90%,전기에너지의40%이상의생산을담당하는등시베리아는러시아경제의근간이되었다.그러나시베리아는자원의존적경제에서벗어나지못하여1차산업에의존하고있고,유럽쪽러시아로부터소비재를수입하는자원식민지로전락했으며,생활수준이유럽쪽러시아보다열등하고,공해오염도도1.5배증가했다.시베리아대부분은살기불편한지역이되어다른지역으로의이주가계속되고있다,

2002년시베리아인구는3,100만명으로줄었으며,산업화에따른도시화로21세기초인구의72.5%가도시에서살았다.앞으로러시아정부가시베리아발전에더관심을쏟지않으면러시아는후진국으로물러날수도있을것이다.오늘날푸틴대통령이러시아의축을유럽에서극동아시아로옮기면서블라디보스톡개발에열중하고있는것이후진적인시베리아를발전시킬수있는새로운기회가될수있을지에귀추가주목되고있다.

이외에도이책은소비에트공산주의시절의시베리아역사편찬이끼친부정적영향에대해서도기술하고있다.즉마르크스주의계급투쟁이론이무차별적으로적용되어많은왜곡을불러일으켰다는것이다.예를들면,인구가희박한북극에서씨족생활을영위하는소수원주민들에게조차그런이론을적용시켰으며,시베리아의경제,문화발전에많은건설적기능을해왔던교회의역할을무시하고깎아내렸다.이렇게이책은소비에트역사가들이많은역사연구에있어서일정부분진전을이룩했지만,마르크스주의라는틀안에갇힌한계를드러냈다는비판적인식을보여주고있다.
한국인대중들에게시베리아는그저동토의땅이란막연한인상이대부분일이시점에시베리아인의시베리아만의온전한역사라는것은너무아득한지점일수있다.그러나이제격변의시기에이른오늘날,통일의시기가다가오고있고,기후변화에따라한반도는아열대화,그리고시베리아는온대화로변해가면서만주,시베리아가인간이살기좋은지역으로바뀌어가고있으며,또한북극빙하가녹아북극항로가개설될시점에있다.

통일이후,우리는바로시베리아와국경을마주보게될것이다.우리는미리시베리아에대한연구를축적해놓아야할필요가있다.앞으로러시아의미래가어떻게될지속단할수는없다.현재벌어지고있는러시아의우크라이나침공사태의결과에따라러시아의운명도어떻게바뀔지알수없다.어쩌면과거극동공화국의출현처럼시베리아가러시아에서분리독립할가능성이없다고단정할수만도없다고보여진다.

시베리아는우리에게멀고도가까운지역이다.너무광대해서멀게도느껴지지만,역사적으로한국인과는떼려야뗄수없이가까운관계이다.알타이파지릭고분으로대표되는스키토시베리아문화와관련되는신라고분,그리고솟대,장승등의샤머니즘문화와부르하니즘(Burkhanism)문화-불함문화(不咸文化)등은대표적인본보기들이다.한반도의남쪽에섬처럼고립되어유라시아대륙과는상관없는농업민족으로생각해온기존의정주민족역사관으로부터탈피하여기마유목민족관점에서새롭게우리고대사를보아야만제대로된한민족의정체성을볼수있을것이다.이런면에서도시베리아는우리에게많은것을시사해줄수있는지역이다.

시베리아는이제더이상동토의땅이아니라우리한민족의역사와문화에있어서의많은수수께끼들과미스터리들에대한열쇠를간직하고있는역사문화유산의보고이다.또한시베리아는기후변화에따라앞으로온대지방으로변하게될가능성과더불어사람들이더살기좋은밝은미래의땅이될것으로생각된다.

이제우리는시베리아에대해새로운시각을가지고접근해야할시점에있다는생각이든다.시베리아는선사시대부터역사시대에이르기까지농업정주문명과다른한축을이루는유목이동문명을정립하면서인류가살아온터전이었다.단지인구가희박할따름이었지인류문명사에서소외된지역이아니라나름유목문명의한축을담당하였다는사실이점차유물유적발굴에의해밝혀지고있다.
한예를들면최근알타이에서대형아르잔쿠르간이발견됨에따라스키타이문화가흑해지역보다더오래되었다는사실이밝혀져학계에충격을주고있다.이러한사실은스키타이문화에서자유롭지못한한반도의스키토시베리아문화에도일정부분영향을미칠수있을것이다.

이어지는흉노시대에도시베리아는그주요무대가되었다.신라문무대왕비에서보여지듯이신라김씨왕족들은흉노족김일제의후손임이밝혀져한반도가시베리아와무관치않다는사실이밝혀졌다.이후돌궐제국,키르기즈제국,위구르제국등을거치는동안에도시베리아는유목민족들의주무대였다.물론한민족의부여,고구려,백제역시시베리아를통해중앙아시아와교류했음을우리는유적유물을통해알수있다.

일례를들면고구려는돌궐제국과소그드왕국(현재우즈베키스탄아프라시압궁정벽화에그려진고구려사신들)에사신교류를하였다.이후몽골제국에이어러시아제국이시베리아를차지하면서시베리아의유목민문화는사라지고유럽식정주문화가유입되었다.유럽쪽러시아인들의시각에서시베리아는단지식민지에지나지않았으나,시베리아가발전함에따라자각하게된시베리아러시아인들이잠시지방분권적주장을하기도하고,또정치적목적이지만일시적으로명목상극동공화국이란지위를누리기도했다.현대에이르러시베리아는더욱러시아경제의근간을차지하면서그중요성이더커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