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개념의 새로운 이해

시학 개념의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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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현수

저자:박현수
199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세한도」로등단하여꾸준하게창작활동을하고있는시인이자우리시를비평적인안목에서다루는문학평론가이다.현재경북대학교인문대학국어국문학과에교수로재직하고있다.
시집으로<우울한시대의사랑에게>,<위험한독서>,<겨울강가에서예언서를태우다>,<사물에말건네기>가있으며,평론집으로<황금책갈피>,<서정성과정치적상상력>이있다.주요문학관련학술서로<모더니즘과포스트모더니즘의수사학―이상문학연구>,<한국모더니즘시학>,<시론>,<전통시학의새로운탄생>,<시창작을위한레시피>등이있다.

목차

여는글:아직도시학의새로운개념이남아있을까

1.범맥락화
2.서정시제
3.텅빈주체
4.율격의단계
5.가상적연행성
6.상호주체적서정성
7.심상과현량
8.비유와초과현실
9.숭고혹은초월감각

닫는글:시적형식과내용의기원에대하여

출판사 서평

시의비밀을풀어가는시학이론서

시에관심이많은독자라면한번쯤,시에서는왜사건이나인물이구체적이지않을까,시에서는왜주로현재시제만을사용할까,시에나오는‘나’는왜독자와쉽게동일시되는걸까등의질문을던져본적이있을것이다.이런질문은시에관한일반적인질문일수있지만,쉽게답할수없는,상당히까다로운물음들이다.
시인이자시학이론전문가인박현수교수가이런일반적이지만,시학의핵심을겨냥하고있는근원적인질문에명쾌하게답을내놓고있다.『시학개념의새로운이해』가그것이다.
저자는1992년에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세한도>로등단한시인이다.하지만시인인그도이런질문에쉽게답을할수없었다고한다.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시학연구자로서새로운발걸음을내딛었는데,이책은시학연구자로서그가이루어낸시학연구의결과물이다.이책은전문적인지식을다루고있지만,결코어렵지않다.전문적인용어를잘설명하고있으며,차근차근시의심연으로친절하게안내하고있어서독자들이시의비밀을알아가는희열을느낄수있게한다.

시에서는왜사건이나인물이구체적이지않을까?

이책은먼저이질문부터다룬다.저자는구체적인지명과풍경,그리고시인의경험을다루고있는듯한,서안나시인의<애월혹은>이라는작품을예로들고있다.

애월(涯月)에선취한밤도문장이다팽나무아래서당신과백년동안술잔을기울이고싶었다서쪽을보는당신의먼눈(…)

‘애월’은제주도서쪽에있는아름다운해변마을,특히한담해변을가리킨다.그러나이작품에서는‘애월’이‘바닷가’라는사실조차유추하기어렵다.그뿐아니라‘나’와‘당신’의정체도알기어렵다.그리고‘나’라는시적화자가‘당신’과함께있는지아니면홀로‘당신’과관련된옛날추억을떠올리고있는지도분명하지않다.그래서이작품에서‘애월’을‘어느바닷가마을’로,‘팽나무’를그냥‘나무’로바꾸거나,심지어‘서쪽’을‘동쪽’으로바꾼다해도시의내용은크게달라지지않는다.이것은시적상황이외적맥락으로부터완전히배제되어있기때문에생긴현상이다.외적맥락과무관한이런발화방식은시에서는아주일반적이지만,일상대화에서는전혀이루어질수없는,오히려대화를망칠수있는,금기시되는발화방식이다.저자는시의이런특성을‘범맥락화(pan-contextualization)’라고부른다.이것은시속의사건이나인물,시공간등의시적상황을구체적인맥락으로부터떼어내어,즉‘탈맥락화’하여어떤경우에도적용가능한보편화된상태로변화시키는방식을가리킨다.시는이런범맥락화를시의기본적인방법론으로사용하고있기에,시의내용이구체성을잃은듯한상태가되는것이다.그리고시는그런범맥락화상태에도달할때좋은작품이될수있는것이다.

시에서는왜현재시제를주로사용할까?

이책의두번째질문,즉시는왜현재시제만을주로사용할까에대해서저자는실증적인조사를통해풀어나간다.저자는시에서사용되는현재시제를‘서정시제’라부르며,시인97명의시700여편을실은시선집을분석하여,전체시의95.3%가현재시제를사용하고있다는사실을확인한다.그리고이런서정시제로인하여,무시간성,숭고성같은시간감각을초월한시적분위기를만드는효과가나타난다고본다.시적상황을일상적이고무의미한상태에서무시간적이고영원하고숭고한상태로승화시키는효과를불러일으키는데현재형이적절하기에현재시제가사용된다는것이다.

독자는왜시에나오는‘나’와쉽게동일시될까

이책의세번째질문,시적화자와독자의일치감,즉독자가시를읽으면서시적화자‘나’에게손쉽게자신을이입하게되는현상에대한의문도이해할수있다.그것은바로범맥락성이라는특성때문이다.시적시공간과사건,인물등에어떠한현실적인정보가주어지지않기때문에,즉범맥락화되어있기때문에시적화자‘나’역시어떤구체적인특수성에서벗어나어디에도적용가능한보편적존재가되는것이다.저자는이를‘텅빈주체’라고부른다.시적화자가이렇게제한적인특수성으로부터벗어나있기에,독자는시속의‘나’와자신을쉽게동일시할수있는것이다.

시의형식적특성을지배하는‘가상적연행성’

그러나이런설명에도불구하고,앞의질문은근원적으로해결되지않는다.시의범맥락화와현재시제,텅빈주체가발생하게된더근원적인이유가밝혀지지않는다면서로가서로의원인이되는순환논법의오류에빠질뿐이다.저자는그근원적인특성을‘가상적연행성’에서찾는다.이것은‘시내용의기준시점을시가공연될미래의어느시점으로삼는시적규범(혹은관례)’을말한다.즉시는노래에서왔으며,그래서시는노래가지닌연행성(공연성),즉청중(타인이나자기자신)을앞에두고노래하는상황을고려할수밖에없는장르적DNA를갖고있다.그래서공연할때의상황이창작의모든요소를제어하는절대적인기준이된다.노래와결별한현대시역시그특성을DNA로유지하고있는것이다.다만연행성(공연성)이실제로이루어지지않기때문에가상적으로그연행성을시의규범으로수용하고있는것이다.바로이런가상적연행성때문에앞에서다룬특성들이자연스럽게발생한다.즉창작의상황과다른상황에서도자연스럽게공연을전개할수있도록사건과인물이일반적이며,어떤공연자도자연스럽게그역할을수행할수있도록특수한특성으로부터벗어난텅빈주체의‘나’가필요하고,극적인현장성을위해서는공연이이루어지는그시간을현재로잡아야하기에현재시제를사용해야하는것이다.
이런시적특성은현재노래가사에서도여전히공유되고있는특성이다.가령김광석의다음노래가사를보자.

이렇게홀로누워천정을보니/눈앞에글썽이는너의모습/잊으려돌아누운내눈가에/말없이흐르는이슬방울들(김광석,잊어야한다는마음으로)

이노랫말은연인(‘너’)과이별한후화자가느끼는그리움과슬픔을표현하고있다.리듬감(3음보율격)이있으며,현재시제를사용하고있고,‘나’와‘너’의구체적인신분이나상황을알수없다는특성이모두나타난다.그런데작사가가이별의아픔을즉석에서토로하는것처럼현재형(‘천정을보니’)으로표현하고있지만사실상이것은불가능하다.슬픔에빠진사람이일정한형식에맞추어발화를미적으로조율하는일은자연스럽지않기때문이다.창작의일반적인상황을고려할때,작사가는연인과이별한경험을회상하거나있을법한상황을가정하여,책상앞에앉아퇴고를거듭하며이노랫말을썼을것이다.이렇게한이유는노래(혹은시)창작의목적이공연에있기때문이다.그래서창작의구체적인상황은미적으로배제될수밖에없는것이다.저자는이개념으로시의대부분의형식적특성을해명할수있다고본다.

시학의깊은매력을느끼고싶은독자들에게

저자는이외에도리듬,서정적동일시(서정성),이미지,비유,숭고의문제도다루며,시가지닌특성을설득력있게풀어내고있다.전반부에서는주로형식적인특성을다루고,후반부에서는내용적인특성을다루고있다.전반부의특성을장악하고있는지배적특성이‘가상적연행성’이라면,후반부를장악하고있는특성은‘초월감각’이다.시는바로이두가지특성의정밀한교직(交織)으로이루어지는훌륭한직물,즉‘텍스트’라는것이저자의결론이다.
여러편의시를읽어도시의본질이뚜렷하게잡히지않은독자,시를더깊이이해하고싶은독자,시학의깊은매력을느끼고싶은독자라면일독할만한책이라할수있다.시의이해를넘어서시학의재미도충분하게느낄수있는책으로문학에관심이있는사람에게일독을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