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루저의 나라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우아한 루저의 나라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22.00
Description
대한제국에 온 독일인,
지금의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연구년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보내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다룬 독일 기사를 찾았다. 몇 년 동안 자료 발굴을 통해 당시 독일인이 관찰한 대한제국은 많은 부분 호도되고 저평가된 것을 알았다. 이 책은 1898년 당현(당고개) 금광을 조사하고 돌아간 크노헨하우어의 1901년 강연문, 1913년 조선을 경험한 예쎈의 여행기, 1933년 라우텐자흐 교수가 백두산 밀림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독립군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 신문, 독일 대학에서 소장하는 한국관계자료집을 참조해 구성하였다. 대한제국을 답사한 3인의 독일인 기록을 통해 대한제국 역사를 바로 알리고자 엮었다.
저자

고혜련

1985년이화여대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박물관에서재직하다가독일로유학을떠났다.독일도상해석학의연구방법론을습득하기위해바르부르크가교수로재직했던독일함부르크대학에서석사학위를취득하였다.2002년10월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미륵과도솔천의도상학』으로박사논문을제출,2003년2월예술사학과중국학복수전공으로철학박사학위를취득하였다.그후LMU뮌헨대학중국학과조교수로임용되어2007년한국귀국전까지재직하였다.2007년부터2017년5월하이델베르그대학으로연구년을떠나기직전까지10여년동안대학강의와독일동아시아연구DB자료구축에힘썼다.
하이델베르그대학연구년동안하이델베르그대학,뷔르츠부르그대학,튀빙엔대학,베를린자유대학에서도상해석학관점으로본한국예술사강연을하였다.또한독립기념관에서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으로위탁한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제43집『독일어신문한국관계기사집』발간작업을완수,이를통해일제강점기새로운자료를세상에알렸다.
현재국제교류재단(KoreaFoundation)이파견한한국학교수로서2019년신학기부터독일뷔르츠부르그대학에서매학기한국예술사,한국사를강의하고있다.앞으로독일에현존하는한국관계자료를찾아내고번역작업을통해올바른한국관정립에노력할생각이다.

목차

책을펴내며:하이델베르그대학도서관에서대한제국찾기
머리말:대한제국의낯선이방인

1.대한제국은동아시아의황금사과인가?
세계제국주의열강가운데놓인조선
개항후조선에설립된서양무역회사
조선은상업적가치가없다
금을채취하면가난한나라가될것이다
크노헨하우어의강연문「Korea」(1901)
유럽인들이잘못알고있는한국역사

2.우아한루저의원형
풍전등화에놓인대한제국
헤이그특사파견은과연실패일까
독일의동아시아예술사연구
예쎈의여행기「답사기:조선의일본인」(1913)
문화차이에서느끼는루저

3.백두산가는길
지배하는제국,저항하는민족
일본이꾸민반중여론
독일의동아시아지리연구
라우텐자흐의「조선-만주국경에있는백두산의강도여행」(1933)
백두산강도는누구인가?

맺음말:우아한루저,조선인의자각
도판목록

출판사 서평

독일인눈에비친대한제국,
과연대한제국은루저의나라일까.

대한제국은1897년10월12일부터1910년8월29일까지,조선의국명이다.그러나제국이라는이름을가진근대국가의역사는불행히도너무짧다.그시기많은유럽제국이동아시아와무역을하기위해현지답사차일본과중국그리고대한제국을찾았다.또그기록을본국으로돌아가강연,신문기사,책을통해활발히알렸다.하지만짧은기간동안의방문으로만들어진기록에는우리역사에대해수많은오류와잘못된인식이수두룩하다.
독일에서연구년을보내면서저자는대한제국과일제강점기를다룬독일기사를찾았다.그과정에서당시대한제국을방문한독일인자료를발견,자료를통해당시독일인이보는대한제국의진실이많은부분에서호도되었음을알게되었다.그래서유럽에서지금까지도잘못인식하고있는한국역사를바로잡기위해독일인의방문기를번역,꼼꼼히묻고수정했다.하지만오류만있는것은아니다.우아한루저라는말에는찬란한고대문명을가진대한제국의몰락과영리하면서도순박한이민족의현실에대한안타까움도들어있다.이기록을통해우리는열강의패권싸움한가운데에서중립을선언한대한제국의실체를좀더구체적으로알수있다.
이책은1898년당현(당고개)금광을조사하고돌아간크노헨하우어의1901년강연문,1913년조선을경험한예쎈의여행기,1933년라우텐자흐교수가백두산밀림에서만난이름모를독립군이야기를바탕으로독일신문,독일대학에서소장하는한국관계자료집을참조해구성하였다.

3인의독일인은말한다.

“여행자들의표현대로조선이가난하고아무짝에도쓸모없는나라였다면,조선때문에그토록끊임없이다툼이일어나는원인은무엇일까요?”
-크노헨하우어,독일산림청관료

“크고바른당당한체구와잘생긴모습의사람들은상의,치마,바지,신발모두흰색으로차려입었으며,머리는뒤에서흰모자안으로감아올렸으며,대나무틀위에느슨하게말총으로직조한높고넓은차양모자를쓰고모자끈을턱아래에묶었다.수많은상점앞에서기다란담뱃대로끊임없이흡연을하거나수다를떠는등우아한루저의모습으로웅크리고앉아있었다.”
-예쎈,독일예술사연구자

“멀리떨어진경찰서에서알려준최근의강도습격소식은우리일행을매우불안하게만들었다.며칠전30명의강도떼가호타이산[포태산]북서쪽5km떨어진중국벌목인들거주지를통과하며머물렀다고한다.만주지역에서는이들강도떼와군대가전쟁을치렀다.체포된두명의강도머리는공공장소에내걸렸다.”
-라우텐자흐,그라이프스발트대학지리학과교수

19세기제국주의열강,금광채굴권확보를위해대한제국을답사하다
이시기조선을방문한독일여행자들은일본보다높은수준의고대문화를소유한조선의문화를보고자신들의눈을의심했다.실리를따지는중국인과겉으로함박웃음을짓지만속을모르는일본인그리고무뚝뚝해도이방인에게수줍은미소를머금을줄아는순진한조선인의특성을분명히구별할줄알던독일인들은무기력한루저국가대한제국의몸부림을안타까워했다.한편대한제국에대한열강의요구는채굴권,어업권등이권영역에집중되어있었다.1895년미국의운산금광채굴권획득을시작으로일본,프랑스,독일등의채굴권,어업권의연이은획득은1910년한일병합에이르기까지이권다툼의역사를그대로보여준다.
고종이광산채굴권을허락하는대신생산이윤의25%를약속받은이유는,고종이내탕금명목으로의병과사절단의국외활동을지원할자금을확보하기위함이었다.

조용하고과묵하지만삶을즐길줄아는민족
당시독일에서광산은곧국가자본이며부의척도였다.지구의동쪽어딘가에금이많다는소문은1897년4월금융기관연합체의형태로코리아-신디게이트를결성하기에이르렀다.뒤셀도르프의광산산업은행은라인란드,함부르크,베를린의투자자들의펀드를모아투자하였다.이것의공식명칭은베를리너디스콘토-게젤샤프트(BerlinerDiskonto-Gesellschaft)이다.크노헨하우어는1897년11월독일을떠나1898년부터1899년까지약1년반동안대한제국에머물면서광물지질분포를파악하기위해수차례답사하였다.크노헨하우어는그의일기에이는별로내키지않는일이며,금광을찾는다는것은희망적이지않다고하였다.그의눈에비친조선은지구상에서제일먼동쪽에숨듯이위치한,조용히자연에적응하면서그저평화롭게살고자하는나라였다.그가본조선인은동아시아3국중에제일멋진신체조건을갖추었으며,외국인에게친절한중국인과일본인과달리이방인앞에서수줍어했다.성품이순박한조선인은조용하고과묵하지만삶을즐길줄아는민족이었다.

독일인의눈에비친우아한루저
조선관리와권세가들의횡포로농민계층은착취를당하고,권세가집안에서소작농이지만노예처럼일하는농민과양반사회의병폐를지적하며양반이조선사회루저의원형이됐다는역설적정의가흥미롭다.권세가들에게착취당한농민들이정처없이떠도는유민과강도로변하고,이들은외세에저항하기보다먼저해결해야할굶주림의고통이처절하였다.이들에게애국심은차후문제였다.이러한농민들이오히려외세침입을현실적구원자로여겼다는논리는당시국제정세에어두운순박한백성들의무지몽매함을지적하며조선의외세침입에대한당위성으로연결하고있다.그들이본19세기말조선인의특성은수줍고순박하며,급변하는세계의흐름에대응하기보다는쇄국정책의울타리안에서안주하는것이어울렸다.조선의성리학자들에게제국주의자들과공존해야한다는개념은곧바깥세상의야만인들과접촉하는것이며이는성리학적세계관에위배되는것이었다.이러한조선선비의유교적윤리관은제국주의약육강식의논리에처참하게짓밟혔으며,결과적으로대한제국은일본의식민지가되고만다.

중립국선언전략을선택한대한제국
고종의전략은1907년헤이그에서개최되는제2차만국평화회의에특사를비밀리에파견하는것이었다.특사3인은만주의이상설,러시아의이위종,이준이다.이들은대한제국이중립국가라는점과일본의만행을전세계에알리라는고종의특명을안고1907년6월29일헤이그평화회의장에도착하였다.제2차헤이그평화회의는1907년6월15일에서10월18일까지개최되었다.그러나헤이그관계자들이보여준특사들에대한반응은싸늘했다.대한제국이라는나라는금시초문이고이나라가대표사절단을보낼권리가있는지의견이분분하였다.유감스럽게도초청된독립국가의목록에대한제국은없었다.〈베를리너-폴크스짜이퉁〉1907년7월27일자기사의제목은‘대한제국사절단의항변’이다.고종황제는특사를파견하면서“나를돌아보지마라.나는살해될수도있다.그러나내삶은이나라에속한다.너희들은내가보낸특명을중단하지말고500년보다오래된대한제국의독립권을다시찾아라”라며비장한마음을보였다.

세계흐름과공존해야한다는인식이부족했던우아한루저
조선은1876년개항이후1897년대한제국을거치면서1910년한일병합까지그저제국주의국가의희생양노릇만했을까?19세기말20세기초근대화를향한조선이생각한외교는과연무엇이었을까?
이들은서구문명화를위해내재된유교전통문화를깡그리없애고서양일본인이되고자몸부림친이웃과다르다.이들은자주적조선개화를위해몸부림쳤으며,동학농민운동을통해유교사회부조리에항거했으며,국권을회복하고자대한독립군이되어만주벌판과백두산을누볐으며,때로는무기력하고보잘것없는투쟁이었지만끊임없이일제에항거하며끝까지대한인의정체성을지키고자죽음을불사했다.이들이없었다면,독립된주권을소유한21세기대한민국은존재하지못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