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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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79년, 서울.
서울의 대학에 부임한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인의 초상

“여러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나요?”
도쿄 이자카야에서 한국 유학생이 꺼낸 이 한마디가 내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1978년 어느 날 도쿄 이자카야
나는 졸업논문 제출 후 세미나 동기생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그 자리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 양 군으로부터 한국에 가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시끌벅적 저마다 생각하는 한국을 말한다. 그리고 며칠 후 세노는 한국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사범대학 객원교수 초청장이 든 우편물을 받고, 지난 술자리에서 한국에 가겠다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아, 내가 진짜 한국에 간단 말인가?

1979년 군사정권하의 서울
서울의 대학에 일본어 강사로 부임한 나. 병역 의무를 해야 하는 같은 세대의 한국 청년, 강렬한 반공의 공기, 식민지 시대의 기억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생활하던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계엄령이 선포된다.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영화관, 시장, 버스, 술집, 전라도 여행 등 곳곳에서 만난 1979년 한국 풍경과 사람들. 한운사, 안병섭, 김지하, 김대중, 김영삼, 하명중, 하길종, 지명관, 최인호, 전혜린, 전채린 등 실존 인물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진진하다.

대통령이 암살된 다음 날 계엄령의 서울
1979년 10월 27일. 계엄령 하에서 나는 학교 교문 앞에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엔 계엄령하의 서울을 걸어보기로 한다.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미국대사관이 위치했기에 특히 경계가 삼엄했다. 나는 몇 번이고 병사들에게 검문을 당했고 여권을 보여주며 세종로를 가로질렀다. 경복궁 옆길로 접어들어 프랑스문화원 쪽으로 향했다. 프랑스 영화를 보러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이다. 화랑과 세련된 서양식 카페가 즐비한, 서울에서도 유난히 세련된 거리다. 이미 가게 대부분은 태극기를 조기 게양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수많은 질문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은 채 서울을 떠났다. 1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한국과 한국인, 거리를 두고 관찰자 입장에서 보려고 했지만 점점 빨려 들어갔다. 한국인은 언제나 정면으로 말을 걸어왔다. 국가란 무엇인가. 군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역사와 언어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는 한국인이 민족이든 역사든 거대한 관념과 씨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그리고 내 손은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고 머뭇거렸다.

저자

요모타이누히코

저자:요모타이누히코
1953년오사카부미노시출생.도쿄대학에서종교학을,동대학원에서비교문학을공부했다.에세이스트이자비평가이자시인으로문학,영화,만화등을중심으로다방면에걸쳐문화현상을논한다.메이지가쿠인대학,컬럼비아대학,볼로냐대학,텔아비브대학,중앙대학교(서울),칭화대학(타이완)등에서영화사와일본문화론을가르쳤다.1993년『쓰키시마섬이야기』로사이토료쿠상,1998년『영화사로의초대』로산토리학예상,2000년『모로코유적』으로이토세이문학상과고단샤에세이상,2002년『서울의풍경-기억과변모』로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2008년『번역과잡신』,『일본의마라노문학』으로구와바라타케오학예상,2014년『루이스부뉴엘』로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2019년『시의약속』으로아유카와노부오상을수상했다.

역자:한정림
이화여자대학교를졸업하고중앙대학교일본어교육원에서일본어통번역을공부했다.「여성신문」에서기자로근무하다일본문화청초청으로블랙텐트씨어터에서공연제작연수를받고돌아왔다.KBS,MBC,SBS등시사교양프로그램의영상번역가로활동중이다.옮긴책으로는『봄의딸기판자넬라,겨울의레몬파스타』,『하세가와요헤이의도쿄레코드100』등이있다.

목차

한국독자여러분께

1장출발하기까지
2장도착직후
3장성곽도시서울
4장일본인과교포
5장잔재와모방
6장전라남도여행
7장이문동
8장큰문어내한
9장아저씨의환갑
10장요절한영화감독
11장계엄령발동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세노씨,기억안나요?우리대학에서일본어교사를모집한다고했더니바로손을들고갈게,갈게,꼭가겠다고했잖아요.그래서다시한번건배를하지않았습니까?”
나는당장은믿기지않았다.다음날아침에머리가조금무거워서아무래도과음을했나싶은느낌은들었지만설마한국의대학강사채용에희희낙락하며지원했다니,전혀기억에없었다.
“오늘받은서류는공식초청장입니다.서류마지막부분에총장직인이제대로찍혔는지확인해주세요.세노씨는1979년3월1일부로사범대학객원교수로임용됩니다.즉시미나미아자부한국대사관으로가서노동비자를신청해주세요.그때공식초청장이의미있게쓰일겁니다.알겠어요?3월2일부터새학기수업이시작되니까서둘러주세요.”
---p.18

이와나미서점에서『한국으로부터의통신』이라는세권짜리신서가출간돼있었다.저자는‘T·K생’이라고만적혔을뿐알수없다.한국에사는한국인인지일본또는다른나라에망명중인한국인인지알수없었고단지원고를잡지『세카이世界』편집부가정리했다고만밝혔다.책은1972년10월17일,한국에갑자기계엄령이시행되어박정희대통령에의한10월유신이단행된시점부터시작했다.이때대통령의영구집권을인정하는신헌법이공포됐고,반대의사를표명하는것은물론이고민주주의를요구하는모든정치활동이엄중히금지됐다.각계각층사람들이사태를씁쓸하게여기며비관하고있음을알리며첫권이끝났다.
---p.26

1973년,대통령후보였던김대중이대낮에KCIA(한국중앙정보부)에의해도쿄에서납치되어해상에서하마터면살해될뻔했다.민주화를요구하며저항하는대학생들은속속연행되어KCIA의손에끔찍한고문을당했다.학생뿐만이아니었다.서울대학교법과대학교수도연행되어시체로발견되었다.반정부언설을드높인「동아일보」는정부로부터광고철회라는괴롭힘을당했고7개월간항전끝에굴복할수밖에없었다.1975년발령된긴급조치제9호에의해대학은완벽하게‘병영화’되었다.1976년에전대통령을비롯한정치가와종교인이나서‘민주구국선언’을발표했지만박정권은정부전복을꾀한다면서가혹하게탄압했다.500명넘는대학교수가추방되었고야당인신민당당수김영삼은습격받은끝에당대표직을박탈당했다.그리고불경기속전국곳곳에서심각한노동쟁의가일어났다…….

『한국으로부터의통신』에이어손에든서적은일본프리랜서저널리스트가집필한『옥중300일』이었다.다치카와마사키라는청년은1974년서울에서반정부운동권학생과접촉했다는혐의로KCIA에연행돼밤낮으로가혹한고문을받는다.그결과관계도없는‘민청학련사건’이라는정치적음모에관여했다며기소돼징역20년을구형받는다.그는옥중에서지인인시인김지하와재회하고단식투쟁을벌여최종적으로정치협상을통해석방된다.이생생한기록에는“KCIA한테불가능한것은남자를여자로,여자를남자로바꾸는일뿐이다”라는말이적혀있다.이거참엄청난나라에가게되었구나,한숨을쉬었다
---pp.27~28

“한국노래가아니잖아?”
“아니요,우리나라노래입니다.얼마전에인기였어요.”
“아니야,사이먼앤가펑클이라는미국가수노래야.벌써10년도전에일본에서유행했다고.원래는영국민요지만.”
“그럴리가없습니다.이노래는남북통일을기원하는마음을담아우리나라에서부르는노래에요.”
학생은양보하지않았다.여러모로물어보니〈ScarboroughFair〉뿐만이아니었다.영국과미국의팝에원곡과는전혀상관없는한국어가사를붙여한국오리지널곡으로많이불렀다.그중에는텔레비전에출연하는유명한가수가부른경우도있고무명의누군가가가사를붙인곡이학생들사이에서널리알려진경우도있다.어느노래든공통점이라면적잖은노래가남북분단이나민주화투쟁이라는그야말로한국의현실문제를노래한다는것이었다.나에게노래를알려준학생들은원곡을모른채모든노래가한국의독자적인노래라고믿었다.
---p.106

일본에서온잡지와책을받으려면더번거로운절차가필요했다.어느날갑자기국제우체국에서출두하라는요청이인쇄된엽서가도착한다.그러면버스를갈아타고신촌앞철도밑을지나연세대학교맞은편에있는우체국에가야한다.오전중으로시간대가지정돼아무래도출퇴근러시아워에맞닥뜨린다.비틀거리며버스에서튕겨나와우체국바깥계단을올라가2층창구에서서류를보여주고외국에서온소포수령을신고한다.하지만그것으로수령절차가끝날리없다.담당자가커터칼로소포포장을거칠게뜯으면안에서나온책과잡지에대해한권한권설명하지않으면안된다.공산주의와반정부관련문서가없는지검사하려는목적이다.
---p.114

나는한국에와서‘학생의거’라는말을배웠다.1919년파고다공원앞에서조선독립시위행진을시작한시민들.1960년이승만독재정권을무너뜨린학생들.많은희생자를낸운동이었지만그운동에참여한사람들은지금의거로순국한애국자로추앙받는다.1929년광주보통중학소년들도식민지배의굴욕에분노하여의거에몸을던진사람들로인정받았다.

과연일본역사에서의거는존재했을까?일본인은세간의시선이라는환상에휘둘리기만할뿐어느시대든양처럼권력에맹종하고굴욕을내면으로봉인하는일에이골이났던게아닐까?홍기철이마지막으로했던말이떠올랐다.일본에서는지식인이앞장서서개척한역사가지금까지존재한적이없었다.학생들은늘권력앞에서패배했고그좌절을교묘히내면화하면서약간의냉소주의를선물로품고기업전사가되는것이고작이었다.권력의입장에서보면조종하기쉬운양떼에또한마리의양이방황하는것에불과한것이아니었을까?
---p.144

“설마KCIA로연행되는건아니겠지요?”
나는농담반진담반으로물었다.바로김교수의안색이바뀌었다.
“……실은말그대로입니다.그러니까선생님에게우리나라의특수한사정을이해해달라고말한거예요.”
“제가신문을받아야만하는이유가무엇인가요?”
“아니요,아니요.아무것도모릅니다.알려주지않았어요.”
“제가싫다고하면요?”
“그건불가능합니다.불가능해요.중앙정보부가직접선생님을지명해대학에연락했어요.그저이것만은알아주셨으면해요.저는아무것도관여하지않았어요.아무것도모릅니다.”
---p.159

이럴바엔하루동안계엄령하에서거리를걸을수있는만큼걸어보자.나는그렇게결심했다.군대가시내에주둔한다는것은반어적의미로치안이유지된다는뜻이다.평소보다두시간빨라진통행금지를염두에두고‘구경(관광)’에충실해보자.

59번버스를타고아침에왔던길을되돌아가세종로세종문화회관앞에서내렸다.두시간전에비해탱크숫자가늘었다.도로에모래주머니를쌓아놓았고총을든군인들이부동자세로서있었다.세종문화회관맞은편에미국대사관이위치했기에특히경계가삼엄했다.나는몇번이고병사들에게검문을당했고여권을보여주며세종로를가로질렀다.경복궁옆길로접어들어프랑스문화원쪽으로향했다.프랑스영화를보러몇번이나지나갔던길이다.화랑과세련된서양식카페가즐비한,서울에서도유난히세련된거리다.이미가게대부분은태극기를조기게양했다.
---pp.263~264

우파의환대도좌파의비난도나에게는관심사가아니었다.어느쪽도일본사회라는작은그릇안에서일어나는하찮은물의진동에불과하다.눈앞에는한국이압도적으로존재했다.나는한국이라는완강한타자를앞에두고어떻게소화해야좋을지그물음에깊이사로잡혔다.

1년간의서울체류는예상치못한만남의연속이었다.만남하나하나가너무나도결정적이라요령껏지식과정보를나의내면에수납하기란거의불가능했다.나는한국인이민족이든역사든거대한관념과씨름하는모습을목격하고어떻게든손을뻗어만지려했다.하지만너무나뜨거운열기에겁을먹고머뭇거렸다.관념은가까이다가갈수록나를비웃기라도하듯자꾸만멀어져갔다.
---pp.29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