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김증후군 (김진희 시집)

잠김증후군 (김진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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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진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삶의 통점과 위기를 직시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그 안에서 자아의 분열과 부정, 상실, 소멸로 이어지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언어 너머 가려진 존재들을 귀환시키는 시인의 행보는 존재의 천착과 함께 행간마다 응고되어 뚜렷하게 다가온다. 이로 인해 독자는 불안의 징후로 야기되는 존재의 부정과 부재, 결핍과 절망이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며 전환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미적 체험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의 삶을 승화시켜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제시한다. 현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며 뭔가 모호하고 흐릿한 것들이 명징해지는 느낌이 든다. 삶을 잠식하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치유하고 위무하는 현시대에 필요한 문학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김미정(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김진희

대구출생
2022년『시와세계』등단
산문집『등대』외

목차

시인의말

1부
손톱으로그리다  13
빨래  14
게의오후  16
신문기사쓰는것처럼  18
무치  20
사랑  21
지우개밥  22
도플갱어  24
이판사판  26
그냥그랬다  29
다를것같지않아  30
사랑의랩소디  32
봄몸살  34
무릎시린것이  36



2부
의자와엉덩이 41
에렌델 42
이명 44
잠김증후군 46
헤테로토피아 48
기린과의동거 50
없는너에게 52
서식지 54
디스토피아 56
사과,바나나,자몽 58
그마을에서는 60
손가락떼내기 62
3부
벤치,공원,나  67
겨울산  68
재활용폐품수집장  70





착시  72
새들의무덤  74
돌멩이가떨어진다  76
가락국농부  78
홍날개사랑법  80
환幻  82
자리  84
거기  86
잔줄무늬細文의저주  88
안개가자욱한데볼은가렵고  89


4부
횡단보도I  93
횡단보도II  94
백합공원  96
LilyBurialPark  98
닭은울거나울지않고 100
좀비아포칼립스 102
정점너머 104
강이낯설어 106
미상 108
실종 110
유령공원 112
매장은좋은것 114
허허 116

해설존재를횡단하는언어들|김미정 120

출판사 서평

■■서평■■




존재를횡단하는언어들

김미정(시인,문학평론가)



1.들어가며

김진희시인은이번시집에서존재의희미함을이야기하며거기에조금씩색을입히기를시도한다.그색들은무채색이되거나때론여러색이혼합되어새로운색으로나타났다가순간사라지기도한다.시는언어너머,보이지않는세계의이면을드러내며더확장된의미로다가온다.또한,우리가닿고싶은곳하지만표현할수없는세상이고요히숨쉬며살아있음을알게해준다.시를통하여우리는다시새롭게존재하게되는것이다.시인은언어로존재의집을짓는다.이런점에서김진희시인은작품속에서자기만의방식으로존재를담는독특한발화지점을보여주고있다.그만의어법은다정하게다가와묵직한질문을던져준다.이번시집에서시인의시적여정속에보여주는삶에대한깊은통찰과자유로운상상력의세계는가벼우면서도무겁다.그것은세상에대한관조적태도이며인간의존재론적자아를찾아가는과정으로일상이라는주어진삶에대한응전의방식이다.
하지만이모든과정은자아의존재력을증명하고확인하려는몸짓으로읽을수있다.나자신바깥으로부터들어와내것이되는온도,그감각은시와독자의동시적작동을의미한다.그만큼시인의시는조용하고나직하지만깊은울림으로스며들게하는온도를지니고있음을알수있다.그의깊고아득한시세계로들어가본다.


2.나를버린그림자

시인은세상의주파수에집중한다.일상의순간들이전하는섬세한파동을감지하여시에안착시킨다.잡히지않는존재의실루엣을만나기위해수없이‘나를버린그림자’를따라‘멀어진발자국들’을뒤집어가며걸어간다.

내그림자가나를따르지않았어
팔을휘저으면다리를오므리고
머리를숙이면허리를비틀더군
어쩔수없어
내가그걸따라움직여보지만
이미나를떠났다
그가하는대로풀쩍뛰었는데
그만목이꺾이고말았어
문득뒤를돌아보니
따라오던발자국들도
저만치멈춰서서나를쳐다보고있어
갑자기멀어진발자국들
나를버린그림자
저들끼리나를보며키들키들웃고있더군
밤내쪼그리고앉아
그것들을땅에다그려볼수밖에
아직은내것으로남아있는손톱으로
─「손톱으로그리다」전문

“내그림자가나를따르지않았어”라는지점에서시는발생한다.삶의무게로휘청거리는화자는‘그림자’를통해자아를응시하는것이다.하지만“저만치멈춰서서나를쳐다보고있”는세계에나는놓여있다.또한“저들끼리나를보며키들키들웃”는다고한다.분리된자아의이중화또는분열된자아와만남은그로인한불화를낳는다.나는주체이며타자가된다.그것은곧자의식의깨우침이다.“그것들을땅에다그려볼수밖에/아직은내것으로남아있는손톱으로”라는부분에서는자신을찾기위한간절함과분투가엿보인다.그러기위해서화자는“밤내쪼그리고앉아”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고있다.시「빨래」에서도“산채로박제돼가는/분신들”이라며자아의내면과외연을형상화하고있다.피할수없는삶의깊고어두운심연을아프게펼쳐보이는것이다.시인은시의곳곳에서존재의인식을통해자아를탐구하는시적태도를보여준다.그렇게삶은현재진행형으로이어진다.

너는누구냐

내얼굴,내목소리
분명나인데
언제나나를노려보고있는너,도대체누구냐

잠자는동안에도감시하며
무릎아파절름거리는나를비웃고있구나

가까이보면너라는인간눈알이빨갛고눈밑은시커멓다귓구멍은귀털로막혀있다눈을뜨고도볼것은보지못하고썩은냄새만맡는다아픈것을아프지못하고아프지않은것의고통으로신음한다그래서더욱번질거리는얼굴

임플란트다섯개관상동맥스탠트세개모자로민머리를감추고돼지날창자를씹어먹는다끝없는식욕아가리만커진식충거대한뱃속에우글거리는벌레들여자는엉덩이만처다본다혼자먹고마시고혼자수음하고혼자잠드는혼족

그런네놈이다른사람의눈에는보이지않는다니

더럽고가증스러워
디스토피아의호모데우스*
도저히이세상에살려둘수가없어너를죽이기로한다

무참히나는살해당한다
사랑하는나에게

*HomoDeus,신이된인간
─「도플갱어」전문

화자는자신의모습즉,지금까지나를만들어온모든요소가어느날문득낯설게느껴진다.자신의본모습은사라지고다른이름으로,얼굴로,표정으로살아가는자신을발견한다.혼돈의시대,자아의인식은세계의인식에서시작되며사회는개인에게다양한자아와역할을요구한다.수많은가면을쓰고살아가는것이다.
불온하거나불안한세계속자아는파편화된다.그러므로나는모든곳에있지만,어디에도없는것이다.그러한의식의파편화는내면풍경속부식된알몸의자아를바라보게된다.낯선자신과의조우다.자신을벗어나자신을바라보는것은불완전한체험일것이다.인간의삶을장악하는허위와가식은자아의식을표류하게한다.그리하여“더럽고가증스러워”“도저히이세상에살려둘수”없는존재가되어버린자아를만날뿐이다.결국,자아를찾아가는여정속스스로자신을‘살해’하기까지한다.이러한시인의끝없는자아의성찰은결국자기를부정하기에이른다.그것은가장강력한자아의자각과현존을환기하는반어적표현이되는것이다.

낯익은공원인데
여기가어디인지알수가없어
가야하는데
갈곳이어딘지생각이나지않아

뒤에서누가나를부르는데
내이름을기억할수가없어

“달서구에서실종된00씨를찾습니다”
“중구에서배회중인00씨를신고해주세요”

휴대전화안전안내문자마다
짙게묻어나오는
깊이를가늠하지못할어두움

나이,키,몸무게,검은모자
절룩거리는걸음걸이까지
오늘아침세면대거울에서본모습

햇빛이눈부신데
광장에는길이보이지않고
벤치가비어있어도
앉을자리를찾을수가없어

등불이하나씩꺼져가는막막한저택
텅빈방어둠속에홀로앉아

나는나의얼굴을들여다보고있다
─「실종」전문

자아를찾는화자의감각적이미지들이시의행간을건너며증폭된다.‘실종’은존재의부재를말한다.화자는일상의“낯익은공원에서”길을잃는다.“세면대거울에”비친자신의모습을보고있지만,그것이자신임을인식하지못한다.이는삶의실감속에오는정체성의혼란과자신을찾으려는끊임없는시도임을알수있다.하지만“광장에는길이보이지않고/벤치가비어있어도/앉을자리를찾을수가없어”라며삶의방향을잃어버린채어디에도속하지못하고있음을고백한다.
“텅빈방어둠속에홀로앉아/나는나의얼굴을들여다보고있다”고한다.인간이가진내면의깊은고독과불안을드러낸다.화자는얼마나자주삶의막다른골목에서자신을만났을까.시에나타난현실감과생활감은일상을다른각도로돌려세워익숙한일상을새롭게조명하여자신의내면목소리에귀기울이게한다.
김진희시에나타난자아의모습들은현시대의일그러진자화상을적나라하게보여준다.자아정체성의위기에서촉발된내면의치열한의식을심도있게표현한시들이다.자아의부정과긍정의길항속에시는탄생하며시를관통하는현존에대한끝없는자아의성찰은삶의포용과수용이며긍정적견자見者로서의시선이라고볼수있다.


3.표백된내가날개도없이

너의이름을불렀는데
입과혀가움직이지않았어

꼼짝도할수없이감옥에갇혔어
온몸이묶인채

창살밖에는새가날고있더군
흰구름속에서표백된내가
날개도없이퍼덕거리고있었어

갑자기해변이흔들리더니
백상어한마리가물위로뛰어올랐어

의사는송곳으로온몸을꾹꾹찔러보더니
‘잠겼다’고진단하더군
불치라나?
살아있지만죽었기때문이래

그러면서졸피뎀을삼키다가
청진기가목에걸려허우적거리고있었어

그런그가부럽더군
갑자기사는게그렇게아름다울수가없었어
울고싶었지만
울수가없었어,웃을수도없었지만

*Locked-inSyndrome,환자가의식은있지만눈동자외는몸을움직일수없는가사상태
─「잠김증후군」전문

표제시로‘잠김증후군’이라는의학적증상을외부세계와대비시켜사회적존재로서의상실감을밀도있게그리고있다.시에등장하는창살안과밖의화자는이중적자아의모습으로읽을수있다.“입과혀가움직이지않”고“온몸이묶인채”“꼼짝도할수없”는화자는의사를표현하거나그어떤행동도할수없는절망적인상태다.여기서날고있는‘새’를본다.이는화자가느끼는고립감과상반되는자유를상징한다.또다른자아는“날개도없이퍼덕거리고있”다.여기서‘표백된’은사회구성원으로제역할을하지못하고사회적으로‘죽은’상태와다름없음을표현한다.또한‘퍼덕거’림은스스로주체적삶을누리며적극적삶을영위하고자하는시적화자의결의이며태도이다.그것은견딤의한형식이며생의어두운미궁을향해던지는살아있는징표이다.여기서‘잠겼다’라는의미에주목해본다.‘잠겼다’라는것은열리기를전제로하며언젠가열릴것이라는의미를함의한다.화자는현재자신을잃어버린채익명의존재로살아가지만주체적삶을살아가기를염원하고있다.고통을통과한삶은더욱더빛을발한다.터널을막빠져나올때처럼말이다.
시에서‘불치’라는표현은자신의존재력을잃어버린채살아가는모습으로“살아있지만죽었기때문”이라는부분과맞물리며절망과소외감을강조하고있다.선적사유의시선으로바라보면깨닫지못하고살아가는어리석은인간의모습으로읽을수도있다.결국,“갑자기사는게그렇게아름다울수가없었어”라며화자는이전과다른새로운인식을갖게된다.시적화자가꿈꾸는새로운세계로의열림을시사하고있다.하지만“울고싶었지만/울수가없었어,웃을수도없었지만”의부분은여전히현실속에서고통스러워하는감정을극적으로드러낸다.동시에자유의지를가지고당당히살아가는모습을갈구하는간절함을느낄수있다.우리는모두정서적‘잠김증후군’을앓고있는지도모르겠다.

사람들이모래알같으면
나도모래알이돼야해
모래알이토마토가돼굴러가면
나도토마토로굴러가고

돌을말이라하면돌이말이되고
말을돌이라하면말이
돌이되는

북아프리카어디에서는
비를나나바라부르는곳이있다는데
나나바라부르면정말비가온다는데
거기는어휘가많지않아

모래,토마토,말,나나바라만있지

몸이아파도괜찮다면괜찮아야하고
모래를씹으며
토마토맛이라해야하는곳

우리는둘이고셋이고넷이지만
네가혼자라하면혼자이고

너는너지만
나는언제나나가아닌

이마을,하나뿐인
─「그마을에서는」전문


~~(중략)

하늘에는등진두사람의모습
입과귀가없이창백한
오늘아침거울에서본낯익은얼굴들

왜언제나부재중일까,이어야할까

나도너에게없는사람일까
네목소리를따라해보는데

더길게이어지는이명

허공에부딪혀깨진목소리가
읽히지않은유서처럼찢어져흩날리고

너와나빈손으로
그창백한조각들을주워모아
이명의모래성을쌓고
─「이명」부분

“돌을말이라하면돌이말이되고/말을돌이라하면말이/돌이되는”세상에나는여기없다.다양한기표로호명되는나지만나는그어디에도없다.수많은목소리가동시에뒤섞여윙윙거리는익명의숲에서화자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