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물고기 (김덕현 시집)

물 위를 걷는 물고기 (김덕현 시집)

$12.00
Description
한 시인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밤〉을 선택하게 된다면 이것은 현실과의 불화를 진술하는 그만의 또 다른증언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어둡다. 밤은 미지의 영역이고, 미지는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세계이다. 그런 현실은 불안하고 두려운 결핍의 영역이다.
어둠 속에서 현실의 삶을 대변하고 신을 대체하는 ‘샤먼shaman’의 그것처럼 시인은 자신 속에서 어둡고 습한 수많은 타인을 경험하기도 한다. 수많은 타인은 타인의 이름을 빌린 시인 자신이며 그는 밤과 구분되지 않는 타인 속의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어법을 벗어난 비문非文들, 그 비문들의 무례함 때문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시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김덕현 시의 모든 행간에 출몰하는 비문이라고 하는 그의 문장들은 당황스럽고 낯설지만 기괴스러운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비문들이 행간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시라는 장르를 얼마나 확장 시킬 수 있는지, 일상의 문법을 얼마나 타파할 수 있는지, 독자를 얼마나 조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평면적으로 읽히고 끝날 시의 입체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송종규(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저자

김덕현

2018년『시와세계』등단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본적은서울중구황학동1992번지
폭설,그투명함에대하여
그림자놀이
서울의달
My브로드웨이
아이러니
박스the박스
물위를걷는물고기
데자뷔
캐리비안의해적
여기서부터
한겨울날
미세먼지수제비
미완성교향곡
플라워가든
빈그물

불면으로이야기해요
일방통행
담벼락에뭐라고쓰신겁니까?

제2부
질문있습니까
나를스치고지나가는것들
레이싱
두리번거리는잠을
지상에서우리는
충분히주무셔야합니다
블랙박스
노쇼
롤러코스터
수중발레
비상구
메트로시티
다이어트그리고
오로라
자정이오고있다
이어서자정뉴스가방송됩니다
무단횡단
눈싸움그리고눈덩이

제3부
판도라행성
디지털플레이어
눈앞에서사라지는
바람이만들어낸숨소리
크레바스를건너
퍼즐
테트리스(Tetris)
몇층에사십니까?
나의노래
랑만살롱
Startoncemore
그네가날아간다
문앞에두고가주세요
뫼비우스의띠
오후한때
월요일에는
마스카라K양

제4부
공책을들고
아무것도할수가없네요
파랑웨이브
단단한책
CloseE(eyes,ears,engine,energy)
눈은내리고,눈은
부뚜막에고양이
쇼핑하러가요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큐브
응급센터
부서지며미끄러지며
넌,어디갔니?

출판사 서평

■■서평■■





비문들,혹은신화적언어


송종규



-나는밤과구분되지않는다-

한시인이자신의존재를증명하는방식으로〈밤〉을선택하게된다면이것은현실과의불화를진술하는그만의또다른증언방식이라할수있을것이다.
밤은어둡다.밤은미지의영역이고,미지는불확실하고불확정적인세계이다.그런현실은불안하고두려운결핍의영역이다.
어둠속에서현실의삶을대변하고신을대체하는‘샤먼shaman’의그것처럼시인은자신속에서어둡고습한수많은타인을경험하기도한다.수많은타인은타인의이름을빌린시인자신이며그는밤과구분되지않는타인속의또다른자신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일상의어법을벗어난비문非文들,그비문들의무례함때문에당혹스럽기도하고때로는시인의진정성을의심하게되기도한다.김덕현시의모든행간에출몰하는비문이라고하는그의문장들은당황스럽고낯설지만기괴스러운풍경이만들어지기도한다.그비문들이행간깊숙한곳으로들어와시라는장르를얼마나확장시킬수있는지,일상의문법을얼마나타파할수있는지,독자를얼마나조롱할수있는지를보여주고있다.무엇보다평면적으로읽히고끝날시의입체적해석을가능하게하고있다는것은큰강점이라고할수있겠다.
세상은불온하고어둡고결핍으로가득차있으므로불화로가득할수밖에없을것이다.불화로가득한세상은불안하고낯선세계일뿐이다.
이런결핍과불안이일반화되거나객관화되고이완되는것을거부하고부정하는방식으로그만의독특한진술방법을택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
시간이지난후에이어둠과절망의인식이희석되는일반적인과정을거부할수밖에없는어떤절실함이‘나는밤과구분되지않는다’라는슬픈고백을하게하는것.
이런비애의감정이인간의힘으로어쩔수없는불가사의한현실의여러화두에서출발하지만김덕현의그것은온통‘어둠’뿐이라고진술하는절망의인식에서온다.

어둠(결핍)은자신의존재를진술하기위한장르이면서슬픔의한형식으로쓰여지고있다.
이시인의시는언제나현실과초현실의경계에놓여있다.현실은초현실의세계로전이되고이두개의세계는언제나한편의시안에서존재한다.

파도가파도를들고일어서는밤이에요수면은공책이었다가파도였다가거품처럼나는해안을몰고다닌다수면으로뜨거워지는발가락잃어버린문장들물고기를상상하는데나는수면으로뛰어든다수면을만나수면을쓰러뜨린다맨발을꺼내무어라소리치지만들리지않아순간물수제비가날아오른다물이어깨를딛고나를물의가장자리로내려놓는다나는수면을들고수면에누워수면을처방한다

파랑이거대한자갈밭으로달려나간다

해안이해안속으로충돌한다눈을뜬채물고기들은모래를뒤적거린다나는항상새것같은수면을꺼내입는다밤마다수면의가장자리로걸어간다수면이계속걷고모르는사람들이계속지나간다
물고기들이너무많이겹쳐서투명한수면을전염시킨다헤엄치며수면을다써버린다갈매기들이수면을쪼고오후한때의수면은두동강난다수면하나가노랗게빵을부풀리고나는수면을꺼내허공에묶는다

방치된밤들이수면아래저장되고
-〈물위를걷는물고기〉,전문

-야생의언어들,혹은불구의언어들-

무겁고힘든어둠의이미지들을때로는발랄하고가볍게들어올리는힘이김덕현에게있다.가볍지만가볍지않은진정성이,무겁지만주저앉을수없는어떤힘이그의문장안에있다.무엇보다이미지들이비약하고확산하는놀라운팽창의현상을그의시에서읽는다.
‘오후한때의수면은두동강난다’‘수면하나가노랗게빵을부풀리고’,‘나는수면을꺼내허공에묶는다’수면을만나수면을쓰러뜨리고,물의어깨를딛고나를물의가장자리로내려놓는다,나는수면을들고수면에누워‘수면을처방한다’.수면은이미수면의사전적의미를벗어나있다.
〈수면〉이이처럼현란하게변신한다.시인은현란하고놀라운이미지들의비약과변환을아주천연덕스럽게하고있다.‘수면을꺼내허공에묶는다’라니!수면위에누워‘수면을처방한다’라니!이많은변칙적인문법으로시인이불가해한현실의결핍을극복하고자유롭게유영할수있는공간을시속에생성시키는것이다.다시,나는밤과구분되지않는다는시인에게는영혼이자유로울수있는무한한상상력의공간이필요했던것아닐까.
특히주목할점은시속각행들은어떤서사를완성하기위한방편이나주제를향해집중해있는것이아니라독립된하나씩의문장으로존재한다.주제를아예무시하거나건너뛰면서포획한그의각각의문장은기이하고낯선또다른세계를완성하고있는것이다.

밤으로종일서있었다밤을천천히꺼낸다밤들은나를둘러싸벽처럼서있고우리는밤새아무일도없어서밤이날마다찾아와밤이피고지고새벽은언제도착하나요아침이자꾸돌아와서있고

뜨거운가면을벗어버리고차갑게식어버린아스팔트하이힐이밤으로걸어간다캄캄해진것들이박스처럼쌓인다우리는박스를하나씩펼치고기억나지않는얼굴들이바스락거린다

밤은무엇이든삼켜버린다새들은깃털이없고얼굴이없는물고기우리는아무렇게나매달려있다밤은움직이지않고나는밤과구분되지않는다어지럽게날아다니며무수한나를멈추고우리는우두커니바닥나서있다

오늘부르는노래는오래전가라앉은해적들의노래난파선에서검은깃발을따라월광소나타가울리고우리는가라앉는목소리로노래부른다가라앉는것들을위하여뱃머리는악보를따라반딧불,이반짝거린다우리는밤을계속켜두기로한다
-〈캐리비안의해적〉전문

새벽이도착하지않는시,어둠속에아무렇게나매달려있는시,우두커니바닥나서있는시,무수한나를멈추는시,그러나이캄캄한밤을계속켜두기로한다는온통벼랑뿐인시,이율배반적인시,나는우두커니바닥나있다는시,그러므로“나는밤과구분되지않는다”는문장으로자신을압축하는슬픔의형식으로자신을증명할수밖에없는것이다.삶이라는화두속에서건진어두운습한슬픔의기록들.
깃털이없는새들,얼굴이없는물고기는밤이삼켜버린불구의언어들이지만시인은왜‘밤을계속켜두기로’한다는것일까.깊은수심속에은둔하는불구의인간을연상하게하는기괴한문장들.
시인은‘캄캄해진것’들이박스처럼쌓이고우리는박스를하나씩펼치고‘기억나지않는얼굴들’이‘바스락거린다’는중첩된이미지로그를에워싼어둠을강조하고있다.

시의문법은물론일상의문법과달라야한다.언어를,신화의언어와일상의언어로구분한다면성서를포함한종교적인언어는신화의언어이다.시또한일상적인언어라기보다신화의언어에속한다고할수있을것이다.그러므로당황스러운비약이나엉뚱한비유나논리가맞지않는문장도제대로운용되면시는수용할수있다.다만그런문장들이요설이나치기가아니라시의언어로살아남을수있는지,그런작업들이어떻게시라는예술을확대시킬수있는지고민하고절제하는것은시인의몫이다.
숱한비문들로가득한시집〈물위는걷는물고기〉는당황스러울만치일상적인문법을벗어나있다.기존문법의가치를타파하고무시한다는말이기도하다.이런자유분방함은시인의개성이고자신감이기도할것이고어쩌면치기라고도할수있을것이다.
“나는항상새것같은수면을꺼내입는다”거나“수면이너무많이겹쳐서투명한수건을전염시”키고“헤엄치며수면을다써버린다”,“갈매기들이수면을쪼고오후한때의수면은두동강난다”거나,‘나는수면을꺼내허공에묶는다”처럼‘수면’의사전적의미는완전히사라진다.다만시인이만들어내는낯선공간에서‘수면’은수면이아닌,의미를삭제한‘낱말’로남아서가공된그의역할을수행한다.이럴때시는이미초현실의세계를시속으로이입시키고있다.
이당황스럽고심상치않은이미지들의변환은김덕현의시모든곳에서종횡무진하면서독자를혼란의페이지속으로몰아넣는다.이럴때일상의질서는혼란의소용돌이에갇히게된다.의도한것이든아니든,이이상하고그로테스크한문법은망설임없이시라는형식속으로들어와그의시집을휘몰아친다.
이런어긋나고변형된문법들은이미지와이미지를충돌시키면서그만의시적공간을확보하고있다.이미지들은비약하면서새롭고신기한초현실의세계를생성하고시의공간은넓어진다.반복되는어둠의이미지에덧씌우는시인만의독특한기술방식들은그만의낯설고검은풍경의숲을이루고있다.

그의언어는신화의언어이면서야생의언어이다.

모래속어딘가너는꼼짝도않고딴얼굴을꺼낸다모래성을쌓고허물고이윽고사람들은사막으로빠져든다잠에서어디선가본것같은네가자꾸들락거리고

누군가잠속에불을켠다잠들지않는사람들잠을자는사람들그들의잠속으로커다란전구를달아놓을것이다어느날인가양들을세던풀밭어딘가에투명하게드러난적이있다잠이잠을벗고일어나잠은하얗게잊어버렸다새옷의느낌이좋다옷장을들락거리며잠을벗어버리고새로운꿈을펼쳐입는다
-〈두리번거리는잠을〉부분

그가무어라고했지만알아들을수가없어나는손을뻗어날아오르며허공을전염시킨다공이뛰어오르고전염된공이되돌아온다더많은새들이떨어지고지상에는더많은톱니바퀴로오염된다함성들이잘려나간다너의두발은공의바깥에서있고잔디깎는기계는잔디를자꾸만쓰러뜨린다우리는셔츠를나누어입는다셔츠로전염된다너는날아오르지만허공은닿을수없는바닥무엇을어디로보냈는지모르는우편물들이되돌아오며펄럭인다너는알아들을수없는고함을친다우리는전염되는잔디를일으켜세우며공평한잔디로서있다바닥이두리번거리며카메라를들고있다.공이굴러간곳에등이사라진벤치길게누워있다잔디를들어올려지상에서누군가휘슬을길게불고

환불할까요?
-〈노쇼〉부분

-환유로쓰는상처-

모래와사막과‘딴얼굴’을꺼내는‘너’라는,낯설고단절된현실인식을적나라하게드러내는상처의한단면이다.‘나는손을뻗어날아오르며’접촉한허공이전염된다는,전염된공이다시되돌아오고,나누어입은셔츠로도전염되고마는불안하고아픈정서는물론시인의내면의풍경에서연루된다.자신을확신할수없으므로손닿는데마다감염시킨다는진술이가능해진다.더많은새들이떨어지고더많은톱니바퀴로오염된다는환유는불행하고슬픈어느하루가아니라이시인의모든순간이다.
자신의상처와결핍을공과새와톱니바퀴와셔츠라는타자에게이입시키면서불행과결핍을확대시킨다.이유모를우편물은되돌아오고알아들을수없는고함소리는삶의변두리에서번번이산화하고만다.
〈두리번거리는잠〉,〈노쇼〉에서보듯이하나의문장안에얼마나많은생경한이미지들이출현하는지비약하면서변환하는지,시인이자신의결핍과상처를얼마나집요하게고백하는지읽을수있다.

김덕현의시에서문법이나시적논리를말하는것은이미아무의미가없다.혼란스럽고뒤틀리고엉뚱한그의문장안에그의시적논리는존재한다.

언어가언어이전의어떤형식과절차를벗어나서기존문법을뛰어넘고있다는말이되겠다.어쩌면태초의언어란이런것이고시의언어는태초의언어여야하지않겠는가.기존문법을뛰어넘는다는것은시가가져야할소중한덕목이기때문이다.서두에서,시는일상의언어가아니라신화적언어에가깝다고말한바있다.
다소어색하고당황스럽더라도,다소정제되지않고무리하게보여지더라도,시는이런개별화된감성을담아야하는것이아닐까.한시대와한공간과하나의의미에머무르지않는확장과의미의비약은보다큰문학작품을만들수있게되고시인에게는영혼의자유로움을향유할수있는특권이되는것이다.이럴때,‘교차로’라는한정된공간에출몰하는‘흰사막’과‘강물’을동시에만나고,‘제자리를벗어나달의뒷면에다다른’‘너’라는우주적인교감을체험하게되기도하는것이다.

문장들이따라웃는다멈춘연주는계속되어야해어느날인가신호등이깜빡이고질문은나를삼키고있어교차로에서흰사막들이돌아와캄캄해지는강물입니다
빈상자들이쌓이고있어뜨거운아스팔트움켜쥔햇살한조각계단은알파인가오메가인가흰새들이날아오르고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