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사업의이상과현실
2000년대들어한국사회에‘공동체’열풍이불기시작했고그정점에는고(故)박원순시장의주도로추진된서울시마을공동체사업이있었다.관주도의공동체만들기에서벗어나시정부와시민이파트너가된이사업은모범적사례로평가되면서전국적으로확산되었다.또한공동체라는이상이정책과만나구체적으로실현된최근사례라는점에서공동체의본질이무엇인지를되묻고공동체의감수성을새롭게가다듬는좋은연구대상이다.저자는2012년부터2021년까지마을공동체사업과연관된기획·평가·보고서·기사등을검토하는한편공무원,중간지원조직단장,활동가,연구자등을심층인터뷰하여이책을썼다.이책은공동체에대한막연한성공사례를담은책이아니며공동체의본질을되묻고실패를확인하며새로운반성의지점을찾아내려는시도다.또한공동체의본질에대한다양한토론이필요하다는취지에서현장의‘불편한이야기’들을가감없이그대로담아냈다.(들어가며)
우리가공동체를향해품는가장흔한환상은도시사회를벗어나목가적사회로회귀하는낭만적모습일것이다.이런환상은게젤샤프트(이익사회)는악한것이며게마인샤프트(공동체)만이이타적이고좋은것이라는관념에기인한다.그러나저자는이미도시화된현대사회에서단순하게이익사회를파괴하고공동체로돌아가자는것은환상에불과하며지금의공동체가가진결함을수정하고보완하며그안에숨겨진진실을파악하는것이중요하다고말한다.(1장)
저자는먼저사업으로추진된공동체운동이새마을운동같은관주도의기획과차별화되려면어떤조건이필요한지를점검한다.저자에따르면새로운사회운동으로서의공동체운동이성립하려면오페(Offe)가설정한조건,즉개인의삶에대한관심,개방적이고민주적인참여방식,탈계급적이고전지구적인연대등을만족시켜야한다.현재서울시의마을공동체만들기에대한평가는관주도적성격을벗어나지못했다는비판적입장과진정한공동체로진행중인운동이라는긍정적입장이맞서고있는상황이다.저자는마을공동체사업이과연민주적조직구조를유지하는가운데삶의의제에직접참여하고여러주체와연대하는운동성을가졌는지중간점검이필요한시점이라고말한다.(2장)
책의3장부터저자는서울시마을공동체사업의현장을본격적으로탐구한다.마을공동체사업의목적은‘사회적자본’의축적으로요약된다.퍼트넘(Putnum)이기초한사회적자본의개념은‘사회가얼마나강한유대와결속력을가졌느냐’는것으로,이런결속력이잘갖춰진사회일수록정치적참여가늘어나고그결과민주적인발전을가져온다는전제를깔고있다.실제로서울시마을공동체사업은친밀한이웃관계의형성이주민자치의실현과민주주의발전으로이어질것이라는기대로추진되었다.
그런데현장을살펴본저자는기대와는다른모습과마주한다.우선마을공동체사업의가장뚜렷한참여자는‘경력단절여성’,아이를키우는‘전업주부’들이었다.이는여전히심한성별임금차에따른사회구조적결과이지만사업측에서도예측하고오히려장려한결과이기도하다.그러다보니공동육아나음식만들기같은사업이중심에놓였고이는여성-돌봄노동의패러다임을공동체사업의주력으로인정함으로써다른주체들의배제를묵인한결과를가져왔다.또한기혼-여성중심으로사업이진행되다보니비혼자들이배제되었으며,생계에매달려여유가없는소외계층도사업에참여하기어려웠다.이런부정적결과를벗어나기위해사업은주민3인이면누구나참여하도록절차를간소화하고문턱을낮췄다.그러나이또한엉뚱한결과를초래했는데,프로그램강사와주변인들이결합해지원금나눠먹기식사업이된것이다.이런현상은공동체의목표라할민주주의가사업과정에서훼손된모습이라고저자는지적한다.이런배제와왜곡을피하려면노동시간을줄이는것뿐아니라돌봄노동을여성의역할로한정하는의식구조가바뀌어야하며공동체가사회적자본의양극화에오히려기여하지않는지를면밀히살펴야한다고저자는주장한다.(3장)
우리안의우리에서벗어나기
『나홀로볼링』에서퍼트넘은가끔만나볼링을치는정도의느슨한관계에서시민의참여의식이다져지며결국공적영역으로전개될수있다고주장한다.이른바친밀권에서공론장으로단계적발전이이뤄진다는가설은하버마스나서머빌,사이토준이치같은학자들이공통으로전제하는이론이기도하다.3~4인의소규모활동을지원함으로써민주적마을공동체를형성할수있다는마을공동체사업도이가설에근거해설계되었다.그러나저자는실제현장에서이런단계적성장이이뤄졌는지는의심스럽다고말한다.현장에서는취미차원에서소그룹활동을만족스럽게하고있는데굳이마을계획으로확장할필요가있느냐는목소리가크다.결국주민들의자기이해가공동의문제로확장되지못함으로써공동체를통해민주적시민의성장을꾀한다는원래취지는무력화된것으로평가된다.또하나의문제는마을공동체사업에부여된권력을선점하기위해시민단체내부의갈등이불거졌다는점이다.이는시민단체가새로운주민운동의형성에협조하고이바지하리라는애초의기대와사뭇다른것으로,오히려시민단체가자기권력을확보하기위해개별주민의성장과진입을방해하는뜻밖의결과를초래했다고저자는지적한다.결론적으로이는시민의자유로운공론장으로발전해야할공동체현장이서로의약점을숨겨주고함구하는변종적공론장으로변질됐음을말해준다.(4장)
저자가보기에공동체사업을통해민주시민을육성하겠다는계획은크룩생크(Cruikshank)가간파한바,근대의전반적인통치기획으로서의‘시민만들기’로기울어질위험을안고있다.이는시민만들기기획이중앙권력에서자유로울수없으며마을공동체사업역시권력에포섭된측면이있다는비판이다.가령마을만들기를위해육성돼야할인력이어공(어쩌다공무원)으로흡수돼막상현장에는일할사람을찾기힘든경우가여기에해당된다.국가행정에문제를제기하고동등한파트너십을구현해야할사람들이국가시스템에부속되고마는것이다.이런한계가드러난근본원인은공동체가사업화되면서자본주의적사고에편입되었기때문이라고저자는주장한다.사업의지향은민주주의에두면서도그과정은지나치게자본주의적효율과이윤을따르는모순을낳았음을보여주는사례다.(5장)
공동체가사업으로추진됨으로써배제를양산하고자본에흡수되는이런상황에서우리는어떻게공동체의본질을되찾고감수성을회복할수있을까?저자는‘우리(We)안의우리(Cage)’라는비유를통해현상황을벗어날실마리를제시한다.‘우리’를강조함으로써외부와선을긋고스스로‘우리’안에들어가는공동체.새로운참여자를배제하는이러한공동체일수록쇠락의길을걸을수밖에없다고저자는주장한다.그렇다면어떤방법을취할것인가?저자는모리스블랑쇼(M.Blanchot)의논의를빌려공동체를위해선오히려공동체를버려야할필요가있음을역설한다.여기서버리라는말은완전히새로운공동체를건설하라는것이아니라,공동체가무엇에오염되었는지를깨닫고회복하자는것이다.이를위해선무엇보다단기적사업이아니라사회의구조적변화,시민사회문화의전반적재조정,그리고더열린공동체에대한고민이필요하다.(6장)
공동체는추상적인것이아니라여럿이살아가는삶자체이며그안에는다양한구성원과운동의흐름이이어져있게마련이다.그러므로공동체의시작은대단한것이아니라내가살아가는공간을사색하고무엇을연결해야하는지를고민하고시도함으로써성장할수있다고저자는강조한다.가령그냥걷는것만으로도공동체는시작될수있다.걷다보면어디가안전한길인지,왜장애인복지시설은가장눈에띄지않는곳에위치하는지를알수있고거기서부터샛길이생기고새로운사람들이모여활동을벌일수있다.그냥기록하고남겨보는것도좋은시도다.동네어르신들의사소한소장품을모으면어느역사박물관에도없는새로운의미가탄생할수있다.무엇보다이런활동들이우리공동체가배제하는것은없는지,실제적인토론이이뤄지는지,민주적시민이성장하도록돕고있는지같은질문속에서이뤄질때우리의공동체감수성은깨어날수있다고저자는독려한다.(7장)
이책은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2022년〈인문교육콘텐츠개발진흥사업〉선정작으로마지막장까지우리에게자기성찰과낯선시각을일깨워주며더많은질문을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