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성좌,미완성의미학
이번에발간된4권은소설의3부「천년왕국으로(범죄자들)」를옮긴것으로무질이1932년에펴낸원서의2권에해당한다.나치정권을피해망명생활을하면서무질은집필을이어가고있었지만1942년갑작스런뇌졸중으로사망함에따라『특성없는남자』는영원한미완성대작으로남고말았다.그러나1500페이지에이르는대작소설이미완성으로남은데는여러사정이있었다.무엇보다원서2권이출간된이후독일나치에의해책이금서조치를당하면서저자가망명길에올랐고,경제적궁핍과건강문제로더이상소설집필이어려워진탓이컸다.또한무질은잠을제대로이루지못할정도로글을수정하는데집착했는데,이런강박증또한소설을완성하지못하는요인이되었다.
하지만『특성없는남자』가미완성소설로머물렀다는사실이큰결핍으로다가오지는않는다.밀란쿤데라가언급한대로이작품은‘소설인동시에위대한사유’이며작품을끌어가는힘이스토리의전개에있지않고사유와형상화의깊이에있기때문이다.무질은등장인물들이각자의개성에걸맞은담론을주도하도록소설을써나갔다.그러다보니이소설은각각의인물들이펼치는사유의성좌처럼읽힌다.무질이가다듬은빛나는사유의순간들덕분에소설은영원한지속성을부여받는다.그점에서이소설의매력은오히려끊임없이완성을지연시킨사유의깊이에있다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
『특성없는남자』의3부는아버지의죽음을맞아울리히가평행운동의소용돌이를빠져나와고향에돌아가서그간잊고있었던여동생아가테를만나는장면에서시작된다.그녀는오빠에게강렬한인상을남기는몇가지범죄적사건을저지르는데,그중독자들을가장충격에빠트리는행동은아마도아버지의관에‘가터벨트’를집어넣은사건일것이다.이사건은그녀가아버지의권위로상징되는규율에절대짓눌리지않는새로운도덕적모험을감행한다는점,또한항상머뭇거리는오빠울리히에비해직관적인행동을서슴지않는다는점에서강렬한인상을남긴다.아가테를등장시킴으로써저자는울리히중심으로이끌어가던소설에강력한상대를마주세운것이다.
『특성없는남자』3부의핵심에는두남매가나누는도덕에관한대화가자리한다.아가테의범죄행위는가터벨트사건에서멈추지않고아버지의유언장위조로이어진다.남매에게‘범죄’는단순히사회적규율을해치는행위가아니라도덕의의미가무엇인지를되묻는계기로작용한다.이소설에서범죄는사회적이고역사적인맥락밖에서자아를재구성하는남매의실험적공간을의미한다고볼수있다.
‘다른도덕’을실험하는소설
이공간에서의도덕은우리가흔하게떠올리는반듯한질서의세계와전혀다르다.소설속에서실험된도덕은어떤불가항력의위대함에짓눌린것이아니라,자유롭게유동하는의지의산물에가깝다.남매는도덕을제도나법이아니라,인간이추구하는‘다른상태’로본다.울리히에게다른상태란“우리가묶여있던규율에서벗어난꿈같은상태”를의미하며아가테에게는“선이나악같은건없고오직믿음만이,또는의심만이있는”상태를의미한다.그러나오늘날도덕의모습은이런상태에서한참멀어져있다.울리히에게현대의도덕은‘성취’일뿐이며“권력과문명과영광을가져다준다면빼앗고속이고죽여도좋다는규칙을지지하는국가”에의해뒷받침되는도구일뿐이다.그리하여오늘날‘실행력’은마치“나폴레옹이라도된것같은자세로겨우아홉개의나무핀을넘어뜨리는볼링선수”의행동에불과하다고풍자한다.아가테역시부르주아의삶에내재된편안하고안락한삶을‘속임수’로규정하며그런삶은아이들의무리를상냥하게바라보다가갑자기자신의아이가없다는걸깨닫고불안에빠져드는것과비슷하다고비판한다.
3부의주요한한쪽이남매를통해실험되는‘다른도덕’의가능성에있다면,다른한쪽은1,2부에서이어져온평행운동의종말과전쟁으로나아가고있다.평행운동을통해영혼과사업의합일을꿈꾸었던아른하임이갈리치아의유전개발사업의배후에있다는사실이드러나면서평화적애국사업의위상은점점흔들리기시작한다.아른하임에게배반당한디오티마는평행운동에관심을끊은채‘성과학’을통해부부관계를회복하는일에만매진한다.군부의지식인슈툼장군은유전사업과군부의이익을조율하기위해막후에서활동하며외교관투치는이모든사태뒤에놓인허울좋은‘평화주의’의모습을비관적으로관망한다.겉으로는모든민족을포용하는듯보이는라인스도르프백작의내면역시적대적민족주의와다를바없는전체주의로기울어져있다.시인포이에르마울이외치는평화주의조차전쟁이임박했음을알리는불길한징조로다가올뿐이다.
지난2013년첫권을선보인지10여년만에무질의생전출간본을완역한데대해역자는“그간지켜봐주시고기다려주신독자님들께감사드린다”면서“뒤늦게나마완간의약속을지킨것을다행으로생각한다”고밝혔다.또한앞으로기존판본을수정·보완하는한편무질의사후발간된미완성부분도번역하고싶다는소망을전했다.무선본과함께발간된양장본과북인더갭홈페이지에는김조을해작가의「편집자의말」과상세한로베르트무질연보가실렸다.
옮긴이의말
하나의예술작품이미완성상태로남았다는것은분명결핍과실패를드러내는일일것이다.무질이작품을끊임없이수정하는태도는정상적인퇴고가아니라강박증에서비롯된습관이었다는판단역시틀린말은아닐것이다.하지만무질의『특성없는남자』를진지하게읽어본사람이라면이런판단에흔쾌히동의하기힘든것도사실이다.왜냐하면이작품이미완성이라는사실은문학의본질이완성에있지않고그런완성을의심하고부정하는사유에있다는작가의태도를웅변하고있기때문이다.역설적이지만무질에게문학의본질은하나의사유와묘사에온정신을투여하는순간성에다름아니었으며그런순간성덕분에이작품은영원한지속성을부여받은것은아닐까,그래서저자가잠을이루지못하고사로잡힌강박때문에우리는이런미완성대작을손에쥐게된것이아닐까하는생각까지가져보는것이다.(…)
무질에게소설이란모호한정신을거의무한대에가깝게밀고나간의지의산물이라고할때완성이란개념은애초부터불가능한것이었을지도모른다.무질에게는사실보다는가능성이,진보적이상보다는존재하지않는유토피아가더중요했기때문이다.(…)1권을번역출간한지근10년이지나4권이나올때까지지켜봐주시고기다려주신독자님들께감사드리고,또뒤늦게나마완간의약속을지킨것을역자로서다행으로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