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코퍼필드 3

데이비드 코퍼필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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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디킨스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한 자전적 소설
찰스 디킨스는 캐릭터 묘사가 극히 뛰어나며 풍자가 대단하고 문장은 화려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번역물로 제대로 소개했다고 볼 수 없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나마 유명한데 문장이 복잡한 나머지 이미지만 소개한 수준이고, 완역 시도는 엉터리라서 독자가 디킨스 문학을 맛보기엔 부족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든다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어려운 시절》,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있는데, 특히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는 등,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느라 정규교육을 받은 기간도 짧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건 2~3년에 불과하다. 이런 과거를 디킨스는 평생 외면하다 마흔을 앞두고 돌아본다. 그러면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니, 인생의 황금기에 지난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집필한, 디킨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중산층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와 유모와 행복하게 살지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온갖 불행에 처한다. 혼자서 쓸쓸하게 역마차를 타고 찾아간 학교는 폭력이 난무하고,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좌절감에 시달린다. 극한 불행을 겪으면서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어, 코퍼필드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괴짜 고모할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어렵게 마련한 여행 경비를 도적놈에게 빼앗기니, 옷을 팔고 거지 행각을 하며 머나먼 여행길을 겪어낸다. 극도의 불안감과 고통이 몰려들 때는 환하게 떠오르는 어머니 영상에 의지하며 극복한다.
온갖 고통을 겪으며 찾아간 고모할머니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원칙이 또렷하고, ‘데이비드’는 꿈에 그리던 중산층 생활을 시작하며 교육도 받는데, 이번에 들어간 학교는 극히 바람직하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성도 사귀고 실연도 겪으며 성장한다. 독자는 여기에서 디킨스가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과 간절한 희망이 실재와 허구로 묘하게 엮이는 걸 느낀다.
데이비드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 다양한 영향도 받는다. 어머니는 사랑스럽지만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나쁜 남자랑 재혼해서 죽음을 맞고, 머드스톤 남매는 주관적인 원칙과 종교관으로 주변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모할머니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괴팍하면서도 성실한 원칙을 추구하고, 패거티 유모는 순박한 성격과 무한한 사랑으로 데이비드를 어린 시절부터 감싸주며 지원하고, 패거티 아저씨는 순박한 어부로 살아가며 사내 특유의 우직한 사랑을 실천하고, 에밀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복을 추구하다 좌절하고, ‘햄’은 자신을 배신한 약혼녀를 끝까지 사랑하며 죽음을 선택해서 하늘로 이어지는 사랑을 실천하고, 거미지 부인은 딱한 처지를 끝없이 한탄하나 다른 사람이 겪는 커다란 불행을 동정하며 새롭게 태어나고, 학교 선배 스티어포스는 탁월한 지도력과 지식으로 세상을 비웃으나 결국에는 순박한 처녀를 유혹에서 지옥에 빠뜨리고, 트래들스는 순박하면서도 성실한 우정으로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완성하고, 도라는 천진난만한 성격에 사랑스러운 여인이지만 극히 무능하고, 미코버 부부는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허풍을 늘어놓고, 유라이어 힙은 악마의 대변자로 극히 겸손한 척하면서 타인을 나락에 떨어뜨리고, 그 외에도 여러 인물이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데이비드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그네스’로 이상적인 여인상을 대변한다. 행간을 잘 살피면 디킨스 자신이 겪은 다양한 인물은 물론, 디킨스 자신이 겪은 불행과 그 속에서 갈망하던 희망이 겹치는 걸 느낄 수 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무엇보다도 탁월한 특징은, 무려 5,500매에 달하는 장편을 펼쳐나가느라 중간에 이야기가 느슨하게 변할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디킨스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배우처럼 직접 연기하는 식으로 집필해서 캐릭터를 일정하게 과장하면서도 현실성을 부여해, 처음부터 끝까지 탁월한 박진감으로 독자의 눈을 잡아끈다는 사실이다.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말이다.
저자

찰스 디킨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에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가 어려서 죽는 바람에 장남으로 살아간다. 할아버지는 머슴, 할머니는 하녀 출신이고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였다. 아버지는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이사를 계속 다녔다. 여섯 살부터 학교에 잠시 다니지만, 다락방에서 소설을 읽으며 훨씬 많은 걸 배운다. 열한 살부터 런던 빈민가에서 산다. 아버지는 빚이 점차 늘어나 가족은 마셜씨 채무자 감옥에서 지냈고, 본인 혼자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청산하고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삼 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한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년간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대영박물관 자료실 검토원으로 잠시 일한다. 스물한 살에는 속기법을 익혀서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다. 당시 경험은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사건과 주요 인물을 밀착 취재해서 작품에 등장시키는 특유의 작품세계로 나타난다. 스물두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Monthly Magazine에 단편 ‘A Dinner at Poplar Walk’를 발표한다. 스물세 살에는 ‘Boz’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정기 간행물에 풍속 스케치를 기고하면서 ‘모닝 크로니클’ 기자가 된다. 그래서 쌓은 경험은 시대 상황을 비롯해 거리 풍경과 풍속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능력으로 발전한다. 스물다섯 살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 ‘보즈가 그린 스케치’를 출간한다. 그리고 ‘픽윅 페이퍼스’를 연재한다. 스물여섯 살에는 화가 시모어가 만화를 그려서 보조하며 시작한 희곡 소설 《픽위크 클럽》을 출판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후 이 년 동안 ‘벤트리스 미셀러니’ 편집장으로 일하고 안락한 집으로 이사하면서 더욱 정열적으로 집필활동에 매진한다. 이즈음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언자며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를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다. 4월에는 ‘이브닝 크로니클’ 편집장 딸 캐서린 호가스(Catherine Hogarth)와 결혼한다. 결혼 생활은 불행한데, 함께 살게 된 처제 메리(Mary)를 통해 이상적인 여인상을 발견하고 처제와 정신적으로 독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에 처제가 병으로 죽자, 너무나 커다란 충격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연재를 중단한다.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에서 ‘어린 넬’로 재현한다. 하지만 자녀를 돌보려고 다른 처제 조지나가 오면서 빈자리를 메운다. 조지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집안에서 살림을 맡는 건 물론, 캐서린과 이혼한 다음에도 임종까지 지킨다. 집필활동에 왕성했고 서른세 살 나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나, 노예제도를 목격하고 실망한다. 자신이 쓴 책을 미국에서 수백만 부나 팔면서 인세는 한 푼도 안 준다는 사실 역시 크게 실망하고는 공식 석상에서 비난해, 미국에서 인기가 떨어진다. 이후에 ‘미국 여행 노트’ 두 권을 발표한다. 서른네 살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한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루에 육천 권이 팔려나간 이후, 영어권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놓는 장식품처럼 되었다. 이 책이 크게 성공하면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매년 발표한다. 서른여덟 살에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한다. 감옥에서 젊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독지가를 모아 런던에서 매춘부와 여성 노숙자를 위해 ‘집 없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 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해,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은 아내와 끊임없는 불화를 겪으며 가정생활을 힘들게 이어간다. 마흔여섯 살에는 윌키 콜린스의 멜로드라마 ‘얼어붙은 골짜기’에서 연출을 맡고 배우로 출연하다 열여덟 살 여배우 엘렌 터넌과 사랑에 빠진다. 이후에 집필한 ‘두 도시 이야기’ 마네뜨 아가씨에게서 그 분위기를 담아낸다. 이듬해에 아내와 이혼한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작품 낭독회를 시작한다. 극장에서 유료관객을 대상으로 작품 몇 장면을 골라 낭독하는 건데,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순회 낭독회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지만, 건강을 해친다. 이듬해에 ‘All the Year Round’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두 도시 이야기’를 연재한다. 1870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소설 원고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온종일 쓰고 저녁 식사를 하다가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목차

CHAPTER 40. 떠도는 사람
CHAPTER 41. 도라의 노처녀 고모님 두 분
CHAPTER 42. 해악
CHAPTER 43. 또 다른 회상
CHAPTER 44. 신혼살림
CHAPTER 45. 노신사 딕이 고모님 예언을 실현하다
CHAPTER 46. 새로운 내용
CHAPTER 47. 마사
CHAPTER 48. 집안 문제
CHAPTER 49. 애매한 일이 일어나다
CHAPTER 50. 패거티 아저씨가 꿈을 실현하다
CHAPTER 51. 머나먼 길을 떠나다
CHAPTER 52. 화산을 터트리다
CHAPTER 53. 또 다른 회상
CHAPTER 54. 미코버 아저씨가 거래하다
CHAPTER 55. 폭풍우
CHAPTER 56. 새로운 상처, 그리고 오랜 상처
CHAPTER 57. 이민자
CHAPTER 58. 방황
CHAPTER 59. 귀향
CHAPTER 60. 아그네스
CHAPTER 61. 진심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죄수 두 명을 만나다
CHAPTER 62. 앞길에 서광이 비치다
CHAPTER 63. 손님
CHAPTER 64. 마지막 회상

부록
작가 소개
작품 세계 및 작품해설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찰스 디킨스 개요]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장남으로 살아간다. 형제 두 명은 어려서 죽는다. 할아버지는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할머니는 하녀장으로 일했는데, 찰스 디킨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모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로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계속 이사 다녔다. 외할아버지 역시 해군 경리국에서 일했으나, 자금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디킨스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전근명령을 받아 온 가족이 채텀으로 이사해 5년을 사는데, 도시 남쪽으로는 밀밭이 풍요롭고 북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대가 황량하고, 서쪽 2㎞ 거리에는 조용한 대성당도시 로체스터가 있으니, 채텀은 어린 디킨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나중에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디킨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묘사한 것처럼 어머니에게 글씨를 배우는데 “초보용 교본에 적힌 통통하고 까만 글씨를 보면 아직도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O와 Q와 S 같은 글씨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조금도 없었다. 악어에 관한 책을 읽을 때까지는 꽃길을 걷는다는 느낌, 어머니가 옆에서 다정한 목소리와 태도로 끊임없이 격려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디킨스는 “어머니를 통해서 지식욕과 독서욕에 처음 눈떴다. 어머니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나에게 공부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집에는 유모가 있는데, 살인귀 대위가 아내를 여럿 죽여서 파이로 만들었다든가 무서운 고양이가 밤마다 눈을 번뜩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린애를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악마처럼 즐거워”하니,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중에 디킨스 자신이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황당한 공포에 가끔 빠져드는 건 어린 시절에 유모 같은 사람이 무섭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숙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이 시절에 디킨스는 흉내를 잘 내, 유모 앞에서 즉흥 연기도 하고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가락에 맞춰서 노래도 하니, 아버지는 장녀와 장남을 채텀에서 유명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이중창을 부르게 해서 박수갈채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무렵에 굴을 처음 먹고 어린 디킨스는 “마음이 지극히 설레었다.” 2㎞ 떨어진 로체스터 로열 극장에 가서 다양한 연극도 관람하니, 30년이 지난 다음에 디킨스는 “멋진 소극장에 처음 들어선 황홀한 느낌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녹색 장막이 뚫린 구멍에서 눈빛 하나가 반짝이며 우리를 쳐다본다……. 파란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주인공이 빛을 내뿜자, 모두 무서워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 환호한다……. 코미디언이 빨간 가발을 쓰고 지하감옥에 갇혀서 재미있게 노래하는데, 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처음 봤다……. 녹색 장막이 내려오니, 등잔 기름 냄새와 오렌지 껍질 냄새가 향긋하다.

어린 디킨스는 아버지를 따라 해군 공창에 가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도 신나게 구경한다. 톱밥과 뱃밥과 돛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불러대는 노래도 듣고, 죄수들이 묵묵히 끌려가는 장면도 목격하니, 이런 장면은 《위대한 유산》에서 실감 나게 등장하고, 아버지랑 주변 시골을 산책하던 경험은 《위대한 유산》에서 매형과 산책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얼마 뒤에는 염색가게 위층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한 노부인이 회초리로 지배하는 세상”을 체험하니,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어린 핍이 다니던 엉터리 학교로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아홉 살 때는 정식학교에 잠시 다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크리켓 게임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이 층 조그만 방에 모아둔 책을 읽으며 ‘로더릭 랜덤’, ‘페레그린 피클’, ‘험프리 클링커’, ‘톰 존스’, ‘웨이크필드에 사는 성직자’, ‘돈키호테’, ‘질 블라스’, ‘로빈슨 크루소’ 같은 훌륭한 주인공을 친구로 사귄” 것도 이즈음이니, 디킨스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늘면서 위기에 처하고, 어린 디킨스는 따로 살다가 혼자서 역마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가는데, 이 경험은 디킨스 뇌리에 평생 틀어박히니, 《올리버 트위스트》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어린 디킨스가 찾아간 가족은 런던 빈민가에서 살았다. 디킨스는 아버지를 “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성격까지 물러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채텀에서 배운 통속적인 노래를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고, 활기찬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뒷골목이, 싸구려 술집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누추한 건물과 헐벗은 아이로 득시글거리는 거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가난한 분위기, 음식을 구걸하는 장면, 음습한 분위기 등이 터무니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나중에 《올리버 트위스트》에 그대로 담는다.
결국엔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집을 빌려 학교를 열어서 먹고 살 방편을 모색한다. 입구에는 놋쇠로 명패를 걸고 이웃에는 안내장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누가 입학할 기미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독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이윽고 집 안에 있던 가구를 하나씩 팔고, 어린 디킨스는 운반 가능한 물품을 전당포로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다. 디킨스가 애독하던 책까지 중고서점으로 한 권씩 팔려나가, 이윽고 온 가족은 텅 빈 방 두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니,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그대로 나타난다.
구두약 공장 지배인을 하던 친척은 어린 디킨스에게 공장에서 일할 걸 제안하고 부모는 받아들이니, 디킨스는 열세 살 생일이 이틀 지난 후에 구두약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다. 공장은 강기슭이고 쥐는 우글거렸다. 거칠고 무식한 아이들이 함께 일하는데, 디킨스를 “꼬마 신사”라고 부르며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디킨스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때 만나던 친구들과 비교했다.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가볍게 버림받다니…….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나고 머리는 팍팍 돌고 의욕은 넘치고 감성은 섬세한데,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고민은커녕 동정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디킨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공장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일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할 정도니, 그 심정은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주류 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던 좌절감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버지는 채권자 고발로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가족도 함께 들어가니, 감옥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단조롭고 평온 무사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며 기뻐했다. 하지만 어린 디킨스는 혼자 공장에 다니며 무서운 노부인 집에서 하숙했다. 생활비를 하루 단위로 쪼개서 싸구려 빵과 치즈로 살았다. “돈이 조금 있을 때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랑 버터 바른 빵을 먹고, 돈이 없을 때는 청과시장에서 파인애플 따위를 구경했다.” 일요일에 10㎞를 걸어서 부모 및 형제자매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일부 청산한 덕분에 ‘지급불능 채무자 조례’를 적용받아 풀려나니, 조그만 셋집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아가면서도 가계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어린 디킨스가 구두약 공장에 계속 다니길 원했으나, 아버지는 장남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마음 아팠는지, 구두약 공장 지배인 친척과 심하게 다투고 아들을 공장에서 빼내,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2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