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경제학 히치하이커를 위한 한국사 여행안내서)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경제학 히치하이커를 위한 한국사 여행안내서)

$15.82
Description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는 이 책은 최신의 한국경제사 연구 성과를 반영한 한국사 안내서로, 역사의 저변에서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경제사의 흐름을 주목한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고조선과 같은 국가가 등장하고 삼국시대를 지나 조선시대, 그리고 개항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각 시대의 경제구조와 경제적 변화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저자

김재호

저자김재호는1963년영주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때부모님과함께상경하여학창시절을보냈다.서울대학교경제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경제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도쿄대학교동양문화연구소외국인연구원,하버드대학교방문학자,『경제사학』편집위원장을역임했다.현재전남대학교경제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주요저서(공저)로는『조선후기재정과시장』,『한국의장기통계』,『고종황제역사청문회』,『수량경제사로다시본조선후기』,『맛질의농민들』,『조선토지조사사업의연구』가있다.논문은「조선후기군사재정의수량적기초」,「조선왕조장기지속의경제적기원」,「조선후기중앙재정과동전」,「조선후기중앙재정의운영」,「自賣奴婢와인간에대한재산권,1750~1905」,「한국전통사회의기근과그대응:1392~1910」,「皇室財政と‘租稅國家’の成立」,「물장수와서울의수도:‘측정’문제와제도변화」외다수가있다.

목차

프롤로그:출발준비

서론
1.경제학과한국사?
2.한국사를보는눈
3.한국사의흐름:시대구분

1부.고대:선사시대부터통일신라시대까지
4.선사시대:농업의시작
5.고대국가의성립과경제적변화
6.우리나라고대는노예제사회였을까?
7.고대의대외무역과거래비용

2부.중세Ⅰ:고려시대부터조선전기까지
8.우리나라중세는서양중세와무엇이달랐을까?
9.고려시대:경제통합
10.중세농업의발전방향
11.중세의토지는누구의소유였을까?
12.조선왕조의건국:단절과연속
13.조선시대의인구:장기변동
14.조선전기의국가재정:전세,공납,군역,상납의네트워크
15.양반:조선왕조의특권신분
16.조선시대노비의수요와공급

3부.중세Ⅱ:조선후기부터개항전까지
17.소농경영의성장과지주제의발달
18.대동법과공납제도의개혁:변화속의지속성
19.조선시대는상품화폐시대
20.조선후기시장경제의발전과한계
21.조선왕조는세계최대의곡물저장국가
22.조선왕조는어떻게500년이나지속될수있었을까?
23.조선후기와‘대분기’의세계사
24.19세기의위기

4부.근현대:개항부터1970년대까지
25.개항:근대의시작과새로운국제질서
26.자유무역의시작과산업구조의변화
27.새로운영리기회의출현과회사설립
28.재정능력함정과갑오개혁
29.대한제국은근대국가였을까?
30.황실재정의팽창
31.일본은어떻게대한제국의재정을장악했을까?
32.토지조사사업은과연토지를수탈했을까?
33.식민지농업정책과지주제의발달
34.식민지공업화와경제성장
35.대한민국정부수립과체제선택
36.수출지향공업화와급속한경제성장

에필로그:귀환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선사시대부터현대까지경제학과함께떠나는한국사여행

이책은최신의한국경제사연구성과를반영한한국사안내서로,역사의저변에서기초를이루고있는경제사의흐름을주목한다.땀을흘려야만먹을것을얻을수있는지상의삶에서공짜로는얻을수없는것들,곧재화의생산과소비,그리고유통과분배와관련된모든인간활동의총체가경제이기때문이다.전쟁의승패나왕조의교체보다,하루하루의삶을이어가게하였던식량생산의거북이걸음과같은기술변화가과거인간의삶을이해하는데더중요하다.따라서이책은한반도에사람이살기시작한구석기시대부터고조선과같은국가가등장하고삼국시대를지나조선시대,그리고개항이후현재에이르기까지,역사의큰흐름을이해하기위해각시대의경제구조와경제적변화를충실히담아내고있다.

최신의한국경제사연구성과를반영한‘한권으로읽는한국사’

왜농업이시작되었을까?작고단순한사회가어떻게대규모의복잡한고대국가로변모하게되었을까?왜사람은다른사람을재산으로소유하게되었을까?노비제도는왜번성했으며어떠한이유로쇠퇴했을까?농업기술이발달하게된동인은무엇일까?지주제가발달하게된이유는무엇일까?조선왕조가500년넘게장수한이유는무엇일까?19세기에경제가쇠퇴한원인은무엇일까?어떤나라는번영하고어떤나라는정체하거나심지어쇠퇴하는이유는무엇일까?

또한다음과같은뜨거운질문에답하기위해서도한국경제사지식은필수다.왜우리나라는근대국가를만드는데실패하고다른나라의식민지가되어야했을까?그렇게근대화에실패했던나라가어떻게수많은후진국을제치고급속한경제성장을이룰수있었을까?별로다를것이없었던남북한의경제수준이이렇게까지벌어지게된원인은무엇일까?

오랜시간한국경제사연구에전념했던저자는이러한질문들에대해피하지않고직면한다.간혹전근대시대에대한우리의낭만적생각을파괴하는악역을자처하기도한다.그리고역사적사실과사실사이,사건과사건사이를잇는경제학이란강력한논리를따라걷다보면,어느새한국사에대한새로운상식을만날수있다.

한국사는경제학을위한좋은실험실

어떤나라는번영하고어떤나라는정체하거나심지어쇠퇴하는이유는무엇일까?경제학의운명이달려있다고할이질문에대해우리나라역사는더할나위없이좋은연구자료다.자연과학과같이통제된실험을할수없는경제학에서우리나라역사는좋은실험실이기때문이다.똑같은선상에서출발한남북한의대조적인결과는경제체제라는제도가경제적성과에얼마나큰영향을주는지를너무나잘보여준다.

한국사는단지우리나라국민만알아야하는역사가아니라경제학의발전과후진국의빈곤문제해결을위해서도꼭필요한역사가되었다.이제시야를넓혀우리나라의역사를다른나라의역사와비교하고,나아가세계의관점에서바라볼수있는객관적자세가필요하다.우리모두이책을안내삼아한국사시간여행을떠나자.

책속으로추가
노예제는한국사의대표적인난제다.서양그리스·로마시대의노예(lave)에해당하는신분은‘노비’(奴婢)이다.조선시대에노비가전체인구의3~4할을차지했다는사실을접하면무척당혹스럽다.17세기초의호적에서산음현은41.7퍼센트,단성현은무려64.4퍼센트의인구가노비였다.기원전5세기아테네에서노예가전체인구의대략3~4할이었고남북전쟁전미국남부에서도3분의1정도였다.만약노비가모두노예라면,적어도조선전기는전형적인노예제사회였다.
미국의대표적인한국사연구자인제임스팔레(JamesPalais,1934~2006)는『유교적경세론과조선의제도들』(1996)에서대략10세기고려시대이후한국은전체인구의30퍼센트이상,수도인구의3분의2정도가노예였던전형적인노예제사회였다고주장했다.서양사의기준에서보면고대에서발전을멈춰버렸다는뜻일까?중세에속하는고려시대와조선시대가노예제사회였다면그보다앞선고대는도대체어떠한사회였을까?서양고대와마찬가지로노예제사회였을까?
_6.우리나라고대는노예제사회였을까?,53~54쪽

서양중세와한국중세에서공통점을찾으려한다면대토지소유외에도같은점이많다.두사회모두생산성이낮은농업사회였다.따라서경제성장이인구증가에추월당하기쉬운‘맬서스함정’에빠져있는사회였다.저축을거의할수없었던농민들은생존의위기에직면하면유력자에게의탁할수밖에없었다.서양중세농민들은거의전부영주에게예속되어있었던농노였다.한국중세에도노비와같이주인에게예속된사람들이상당한비중으로존재했다.또한낮은농업기술수준에서는가족만으로는경영을유지하기어려웠기때문에친족이나이웃과의유대관계에강하게의존해야만했다.
언제부터인가한국사책에서‘봉건’이라는단어를찾기어려워졌다.역사에필연적인발전법칙이있다는역사관이퇴조했고,봉건제가없기때문에한국사가정체되었다고주장하는역사관도극복되었기때문일것이다.각사회는자신에게주어진문제를자원과지식의한계내에서해결해야하며,주어진문제를잘해결한사회는오래존속하고경제적으로도번성할것이며,제대로해결하지못한사회는쇠퇴하여도태될것이다.서양중세나한국중세는각자다른방식으로해결했지만오래존속했다는점에서는문제풀이에성공했다.특히고려왕조는474년(918~1392),조선왕조는518년(1392~1910)동안지속되었는데,이는세계에서유래를찾기어렵다.
_8.우리나라중세는서양중세와무엇이달랐을까?,70~71쪽

조선시대의경제적변화를한눈에파악하기위한가장좋은방법은인구추세를그려보는것이다.인위적인산아제한이곤란했던전근대사회에서인구는경제적변화를야기하고생활수준을결정하는근본요인이자결과였다.
일반적으로사회가안정되고경제상황이호전되어자원,특히식량이풍부해지면출생률이높아지고사망률이낮아져서인구증가율이높아진다.반대로자원에비하여인구가많아져인구압력이높아지면출생률이낮아지고,특히사망률이높아져서인구증가율이낮아지고심하면인구가감소한다.전근대는다산다사(多産多死)의시대로출생률이높았지만사망률도높았기때문에인구증가율은매우낮은수준이었다.앞에서보았듯이산업화이전1000~1500년세계전체의연평균인구증가율은0.1퍼센트에불과했다.참고로산업화이후인1950~1973년에는20배가까이높아진1.93퍼센트였다.인구규모뿐만아니라인구의변화속도나방향,그리고원인을알수있다면전근대농업사회의경제적변화를깊이이해할수있을것이다.
_13.조선시대의인구:장기변동,102~103쪽

조선후기에모내기법의보급으로광작에의한대경영-경영형농부-이발달하여마치산업혁명전야영국에서자본주의적대경영이발달하였던것과동질적인변화가진행되었다는‘자본주의맹아론’은논리적으로나실증적으로나근거를찾기어렵다.집약적인소농경영의성장이병작제의발달과일체를이루면서진행되었던것이조선후기농업발전의기본방향이었다.이러한소농경영의성장에의해서노비를이용한농장경영이쇠퇴하는발전적측면은강조해야마땅하지만소농경영이지주제와짝을이루어발전함으로써대부분의농민이수확의절반에달하는지대를부담해야만하였다는한계를지나쳐서는안될것이다.임진왜란으로인해대토지소유가일시타격을받았지만18세기초이미열집에자기땅가진집이한두집에불과하다고할정도였다(『경종실록』원년).다산정약용은19세기초전라도에서소작인이전체인구의70퍼센트라고했다.한참뒤지만1918년전국경지면적의50퍼센트가소작지였다.더욱이씨앗과조세는본래지주가부담하는것이었는데조선후기에는소작인의부담이되었다.
_17.소농경영의성장과지주제의발달,137쪽

조선시대에들어와서태종후반기부터국가가저장한곡물의규모가증가하기시작했다.조선전기에는세종대부터세조전반기까지가비축곡물의규모가가장컸다.세종5년(1423)에는매년민간에대부하고환수할수있는의창(義倉)의곡물이100만석이넘었으며,세종27년(1445)에는270만여석이분배되었다.세조후반기부터16세기에는환곡이감소해임진왜란으로바닥에이르렀지만17세기후반인숙종대부터다시늘어나기시작했다.18세기초에는500만석,18세기후반에는최고수준인1,000만석에이르렀다.19세기에들어와환곡은감소했다.19세기중반까지도800만석수준을유지했지만관리가부실하여장부에만기록된환곡이증가했다.1862년에절반정도가허구인실정이었다.이무렵이되면환곡의정상적인운영은중단되어조세와다를바가없게되었다.
환곡1,000만석은쌀로환산하면600만석정도가된다.중앙과지방을합한1년국가세입이400만석정도였다고추정되므로,조선왕조는국가재정보다더큰규모의곡물을저장하고있었던셈이다.같은시기1790년대중국의경우상평창(常平倉),의창(義倉),사창(社倉)에저장한곡물이쌀로환산하여2,300만석이었다.곡물의총량은중국이더컸지만중국의인구가3억인것에비하여당시우리나라는1,600만에불과했기때문에1인당으로계산하면중국의다섯배였다.국가가저장한곡물규모로는당대세계최고수준이었음이틀림없다.
_21.조선왕조는세계최대의곡물저장국가,163쪽

조선후기경제의발전방향을둘러싸고자본주의의싹이성장했다는주장과소농경영이발달했다는주장이맞서왔지만,지속적으로경제가성장했다는이미지는공유했다.이러한성장의이미지는19세기가위기였다는최근의실증연구에의해고수하기가어렵게됐다.19세기조선왕조는지금까지안정을지지했던조건들이더이상유지되기어려운상황으로빠져들었다.근본적인변화가필요했다.농업생산성의증가와상공업부문의발달,그리고공업화없이는19세기위기로드러난‘맬서스함정’으로부터탈출할수있는방법은없었다.
시간이갈수록대분기의세계에서국제적지위가아래로떨어지는상황에서정치체제를비롯한사회전반을안정이아니라성장을지향하는체제로바꾸어야만했다.이것은조선왕조뿐만아니라주변의중국과일본은물론이고19세기와20세기의어느후발국도피할수없는과제였다.정치,경제,사회,문화의모든영역의‘대전환’(greattransformation)이필요했다.이미위기속에있었던조선왕조는공업화에성공한제국주의열강이동아시아에진출함에따라새로운어려움에처하게됐다.영국은아편전쟁(1840~1842)으로중국을개방시켰으며,뒤이어미국은1853년흑선을앞세운무력시위로일본의막부를굴복시켰다.이제‘은자의나라’(TheHermitNation)의개방은시간문제였다.
_24.19세기의위기,187쪽

대원군의실각으로다소개방적인자세로변화된조선정부는일본과1876년2월최초의근대적조약인‘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즉강화도조약을체결하였다.부산을개항하고20개월안에두항구를추가로개방하도록했으며“피차인민은각자임의로무역할수있다”고규정하였다.조선왕조최초로민간자유무역이허용되었다.
개항을근대의시작이라고말하는것은무엇보다현대한국인이살아가는삶의양식거의전부가이때부터생겨난것이기때문이다.지금우리가입고있는옷을비롯한일상용품,이를생산하는기술과
조직(기업)은물론,건물,도로,운송수단,산업구조,교육제도,경제체제,정치체제,그리고법률,언론·출판,예술·문화에이르기까지대부분개항이후에생겨났다.유구한역사의축적이현대한국사회의밑바탕을이루고,서구는물론중국이나일본과도다른우리나라만의독특한모습으로만들고있음은틀림이없지만,개항이후의변화를조선후기의자연스러운발전으로이해할수는없다.개항을기점으로자급자족적이며폐쇄적인농업사회로부터시장경제가고도로발달한산업사회로변화하는100년의대전환이시작되었다.
_25.개항:근대의시작과새로운국제질서,193~194쪽

토지조사사업을통해총독부가민간의토지를폭력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