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 (충주 공이리에서 보낸 삼 년 사람과 풍경으로 꾹꾹 눌러쓴 이야기)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 (충주 공이리에서 보낸 삼 년 사람과 풍경으로 꾹꾹 눌러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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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람들은 산과 들에 놓인 집을 꿈꾼다. 나도 그랬다.
쫓기듯 시작하고 밀려나듯 마치는 도시의 일상에 지치다보면 한 번쯤 시골에서의 평온한 일상을 꿈꾸게 된다. ‘시골에 가면 좀 다르지 않을까?’ 패션지 기자였던 작가는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작전(?)대로 충주 공이리에서 브로콜리를 농사짓는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는 데 성공한다. “낙경씨는 와서 글 써요. 가끔 약줄 잡는 것만 해주면 돼요”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채로.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삶은 실전이라고. 신혼의 보금자리로 손수 지어 올리던 첫 집이 하룻밤 사이에 검은 잿더미가 될 줄이야.

충주 공이리에서 보낸 삼 년의 시간을 사람과 풍경으로 꾹꾹 눌러쓴 기낙경 작가의 이야기에는 자신이 경험한 시골생활의 민낯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분명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이웃이 있지만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늘도 있다.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은 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 산과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의 자리까지 더듬어볼 수 있기를. 기낙경 작가의 이 서정적이고 섬세한 고백이 도시의 삶에 지쳐 너덜대는 마음을 부여잡는 당신을 향하고 있다.
저자

기낙경

저자기낙경은추계예대문예창작과졸업후칠년간패션지기자로일했다.남들보다한달을앞서산다는기분으로매달촬영을하고원고를썼으나뼛속까지‘프라다를입는악마’는되지못했다.대신시골로쏘다니거나단골집에서맥주마시는일을편애하며살다가첫책《서른,우리가앉았던의자들》을펴냈다.
서른다섯,작전(?)대로농부를만나는데성공,충주산촌으로귀농해결혼생활을시작했다.폐교에서경운기를타고입장했던결혼식이후로팍팍한농사일에쫓기며꼬박삼년을시골에서살았다.그사이가족은셋이되었고,다시서울로돌아온뒤로는‘빡세게’적응하고있는중이다.여러매체에글을쓰면서중심을잡고있으나가끔시골도도시도아닌‘어딘가의집’에대해골몰하며쓸쓸해하곤한다.

목차

프롤로그|도시여자는어쩌다

1부시골,농사의색채
첫집,불타다
동생의보따리
경운기타고결혼하기
세상끝의집
봄날의나가수
봄산색
오디는와르르산딸기는퐁퐁
아이스티와우쿨렐레
비오는날이휴일
고추얼룩에대하여
브로콜리는너무해
엄마마중
섬집아이
시골육아
Letitgrow
쇠리쇠리한겨울꽃

2부손님의역사
강자네집무주공산
옆집정자언니
경운기에싣고달리는참과끼니,천경아줌마
충주호육형제,〈인간극장〉종구씨
곰삭은노동의일상,견이삼촌네
꽃나무의시절그리고부부
마을회관블루스
친구야,작약보러가자!
불놀이
양상상과함께하는작은음악회
아름다운건
손님의역사

3부오소소,두려움이쏟아지는밤입니다
뒹구는글자
균열의밤
소문의집
오래된자들의마을에서소통하기
남겨둔기적
좀벌레의공격이시작되었다
돌다리건너가는작업실
쌀국수의모험
오소소,두려움이쏟아지는밤입니다
한숨한숟갈산은두숟갈

에필로그|집은무엇에기대는가

출판사 서평

‘시골바라기’패션지기자
브로콜리농사짓는남자와결혼하다!
헐레벌떡지하철계단을뛰어내려가쏟아지는인파에휩쓸리는출근길로시작하는나날,패션지에서칠년을기자로생활한기낙경작가에게도시에서의삶은‘속도의열차’에올라탄것과다름없었다.

아침이속도와의전쟁이라면저녁은어깨를늘어뜨리며멈춰있는시간.“이차!”를외치며들어서던압구정의단골집,가로등아래쭈그린채울음을쏟아내던인사동,정처없이비틀거리며택시를잡던홍대앞,눈발흩날리던강남역의버스정류장….도시에서의삶은낮에는속도전,밤에는심리전으로몸도마음도남아나지않는것만같다.

그런삶에영적응할수없었던그녀는주말이면시골로쏘다니고단골집에서맥주마시는일을위안으로삼으며도시의속도를잊곤했다.패션지기자라는명함을내밀고다녔지만흔한브랜드의이름조차헷갈리기일쑤였던작가는작전(?)대로농부를만나산골을오가는연애를하다가결혼을약속한다.결혼식은마을의어느학교운동장에서,주요리는소머리국밥,신랑신부입장은경운기로!하객들은기꺼이산골마을까지찾아와이들의결혼을축하하고그렇게꿈만같은인생의새로운막이오른다.

하지만누가그랬던가,삶은실전이라고.이시골생활은1라운드부터,아니링위에오르기전부터녹록지않다.부부가함께하기위해손수벽돌을쌓아올리며짓던첫집은불에타하룻밤사이재가되어버린다.

“근데이거진짜맛있네요.뭘로만드신거예요?왠지몸에좋은것같은데.”
“그거,립톤아이스티인데요.”
그러나이부부,빈집을찾아다시손수고쳐가며보금자리를꾸렸다.그렇게정착한충주공이리의시골집에는드나드는손님이많다.그들은하나같이“막상살아봐도좋아?”하고묻지만,집주인이금세만들어내민립톤아이스티를약초주스로착각하며마신다.가히풍경의힘이라부를만한이상황,시골은정말뭔가다른걸까?

차소리나말소리가아닌새소리가쉴새없이들려오는풍경이라고해서사람사는게별다르진않을터다.뜨내기로드나들던시골과정주하는사람으로바라본시골은전혀달랐다는작가의고백을보면말이다.더군다나농부와결혼했으니풍경은곧일터,삶의현장이었다.그림을보듯팔짱을낀채가만히감상하던풍경은밭일을하다허리를펴며한번씩올려다보는것으로변해있었다.

그래도서로의품을오가며노동을나누고마음을나누는많은사람들이있다.결혼식의주요리인소머리국의조리사로나선우석삼촌,누구보다부지런히농사를지으면서도김치며마늘종을한가득챙겨주는천경아줌마,삼채밭을일구고배추장사를하는충주호육형제젊은농사꾼종구씨,‘억대농부’라는수식어뒤에서일년내내쉴틈없이일하는견이삼촌네등마을사람들은공이리의풍경을저마다의삶에울타리처럼두른채살아가고있다.

그마을에오랜만에들어온‘새댁’과십오년만에등장한갓난아이는시골이라는너른품에주저없이뛰어든다.어른들은아이를제손주처럼예뻐하고,‘새댁’이하는짓이서툴고낯설어도허허하고웃으며넘어가주는식이다.

‘시골아낙’을자처한작가는고라니가먹어치운브로콜리모를다시옮겨심으며새소리가시끄럽다고괜한성질을부리고,고추를말리기위해닦는작업을하다느리다는남편의타박에마음이상하기도하고,박스값도안나오는브로콜리시세때문에차한가득브로콜리를싣고먼경매장까지달려가기도한다.도시에서한밤중의압구정,인사동,홍대,강남역을떠돌며축늘어뜨리던어깨와마음은이제농사의고된노동과폐쇄적인관계의피로로물들어간다.

집은풍경에기대지않는다
기낙경작가는“사람들은산과들에놓인집을꿈꾼다”고,“나도그랬다”고말한다.그리고그것이순진한동경이었음을“낡은시골집을꾸미고전원의한가운데서시작한살림은그대로초록빛의반짝임을닮을줄알았다”는고백으로인정한다.

우리가시골생활을떠올릴때가장먼저그리는건도시의삭막함과대비되는전원의풍경이기쉽다.그리고그런풍경과함께라면이각박한도시에서의나와는다른‘진짜’나의삶을살수있을것만같은착각에빠지기도수월하다.

“돌이켜보면내가원하는집은모양새에지나지않았다.지나치게장식적이었다.더정확히말하면삶에대한자세가배어있지않았다.그것은누추함과초라함을견딜수있는마음의근육같은것이다.부족해도좋다는,곤궁마저내것으로삼을줄아는강인함이다.나는생활의결핍에쉬이무너지는연약함을숨기고자자연을병풍으로세웠으며소소한물건들을주섬주섬꺼내들었다.언제든짐을꾸리는여행자나꼭두새벽이라도쓰기위해달려오는어느시인의집에있는,내인생의할일로삼은단하나의몸짓이빠져있었다.”_본문에서

수지타산,텃세,폐쇄적공간의한계성,일터가곧생활인데서오는관계의연속성을언급하는3부의이야기는외면하고싶을만큼현실적이다.기낙경작가는도시에서의익명성과일회성이불가능한공동체로서의시골을,풍경이아닌삶의터전으로서의시골을다시한번바라보게한다.

노동과관계에지쳐힘든시간이었다해도쥐똥나무울타리가사방을두르고있고,마당이곳저곳을자두나무와보리수,뽕나무와앵두나무가가득채우고있는집,뒤편에널찍한매화밭까지있는집을쉽게잊을수있을까?작가는무거운발걸음을다시도시로돌리며공이리에서보낸삼년의시간을“그리운산책”이라명명한다.그산뜻한명명을뒤로하고,이제집의위치가아닌마음의위치를되새기며다시한번자신의집을찾아나서기로한다.

작가는다시,그러나떠나기전과는다른마음으로이도시를거닐고있다.

[책속으로추가]
집안팎에우쿨렐레의맑은음이흘러다닌다.벼룩튀는소리와닮아우쿨렐레라는이름이붙었다는데벼룩이저청아한소리로튀어다닌다니상상이안된다.다만공기중에서콩콩솟아오르는생동감으로묶이는듯하다.신랑과손님은‘공이리자율방범대’의새로운승합차와관련된이야기를나누고있다.낮잠을자는지칠면조소리는잦아든지오래고이글거리던해도구름에가려주춤하다.보리수열매는여전히반짝거리고못난이명자열매는까슬까슬허옇게열이올랐다.기다리던〈SomewhereOverTheRainbow〉가흐를즈음,어느새잔을비운페도라후배가말을걸어왔다.
“근데이거진짜맛있네요.뭘로만드신거예요?왠지몸에좋은것같은데.”
그런질문을받으니갑자기난처해졌다.정성스레만든약초주스라도떠올리는건가?거짓말보태는성격이아닌나는솔직히대답했다.
“그거,립톤아이스티인데요.”
_아이스티와우쿨렐레,58쪽

어쩌다십오년만에마을을누비는아이가된준하는유모차에앉아막따온산딸기를먹는다.시면뱉어버리고달면입속으로빨려들어간다.유모차에탄채아빠의트럭에올라서브로콜리상자와함께초저녁바람을맞는다.예뻐해주는박씨아저씨네집에가서는곶감한조각얻어먹고좋아서발을동동구르더니,복분자농장에가서는이틀이나자줏빛응가를할만큼복분자를주워먹는다.어느덧자라첫돌이되어돌떡을돌리니동네어르신들이쌈짓돈을축내며내주는덕담으로배가부르고,때맞춰몇발자국씩아장거리기시작한다.함부로비교할순없지만시골에서아이를키우는일은무엇보다동네어른들품을오가며따뜻한사람냄새를익히는것같아내심반갑다.
_시골육아,101~103쪽

정겹다.시골살이하면떠오르는분명한풍경이다.하지만이정겨움의순간을오독하면안된다.이정겨움의곡선을이루려면,아니유지하려면경계의모서리를알아야한다.감추는말과드러내는말사이를알아야한다.식사와술자리가겸해지니말의패를고심하는게쉬운일은아니다.하지만시골의일상에서이경계를타는곡예만큼중요한것은없다.
_강자네집무주공산,123쪽

늦가을김장철옥수수밭옆에서만나면“김치있어?없으면낼우리집와.맛있게담가줄게”하고,숙모한테받았다며손사래를쳤는데도다음날아줌마네집앞에서만나면“준하엄마!이루와,이루와,어여!김치한통가져가!”한다.경운기없이도동에번쩍서에번쩍하는어느봄날,이슬바심으로마늘밭을휘젓다가우리집앞에서외칠때도있다.“있어?없어?마늘종한다발놓고가네.”옷챙겨입고나가보면아줌마는어느새뒷모습으로사라지고한다발은무슨한무더기마늘종이평상에가득했다.
_경운기에싣고달리는참과끼니,천경아줌마,137쪽

천그루사과나무중삼분의일이좀공격에뽑혀나갔다.남편은죽은나무를뽑아내고그자리에새사과나무를심었다.힘차게흙을파고새둔턱을만들었다.그땐잘몰랐다.“동수씨!간식먹고일해!”아이와함께밭에둘러앉아삶은달걀먹고두유를훌쩍이는남편의이마에밴땀방울을무심히닦아주었을뿐이다.다시몇백그루의나무를심어야하는농부의심정을감히짐작조차못했다.나는그저하나,둘,셋!세살아기와함께아까시나무의이파리나훑었다.“배추흰나비다!”졸졸나비의꽁무니나쫓았다.
_좀벌레의공격이시작되었다,254쪽

창문새로밀려온달빛이어깨부터비추기시작한다.푸르스름한공기탓인지꽤나추워보인다.벌레의울음소리를저사람은눈치채지못했을것이다.가계의무게에짓눌린저어깨는기타를치며흔들리던리듬을잊은지오래다.식구중가장먼저잠들고가장먼저일어난다.사념의자리엔노곤함과답안나오는농사일이대신하고있다.
_오소소,두려움이쏟아지는밤입니다,270쪽

가만히눈감고그려본다.공이동의작은집,그집의빛깔,옹기종기모여든사람들,길게누운잠,창너머로피고지는명자꽃,은은히풍겨오는자두향내,빨랫줄을훑고지나는산바람….하루의시간과계절이고여있다.만남이장식한풍경들이지나가고지난날은꿈같은호시절로떠오른다.4월이면집안으로찾아들던개미떼의행렬마저아름답다.조금씩피어오르던균열조차화석같다.지나간것들의뒷모습이란그런것인가.어쩌면모두거짓말같다.이제와나는이거짓말의무덤앞에,부풀었던꿈의잔해위에서있다.
_에필로그,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