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니까잘모르잖아요,배워야죠
최승범은대학시절,페미니즘학회에나가던후배의말을계기로페미니즘을공부하기시작했다.“남자가왜페미니즘을공부해?”후배는당연하다는듯답했다.“남자니까잘모르잖아요,배워야죠.”그후로최승범은본격적인페미니즘공부를시작한다.
그러나공기처럼들이마신여성혐오로부터자유로워지는일은쉽지않다.그에게도여성의공포와분노에공감하지못하던때가있었다.나같은선량한사람을잠재적가해자로취급하다니,구조적문제에눈감고여성의호소에귀닫은채‘나의무고함’을주장하느라바빴던적이있었다는얘기다.밤늦게우연히만난여성지인에게‘이밤에아이는누가봐주고있는지’를물었다가아차,하는경우도있다.
그는페미니즘을공부하며자신이얻었던무형의이득들,특히평온한가정에서의일상이‘여성’인어머니에대한착취로가능했음을알게된다.그러한시대와구조속에서묵묵히살아낸어머니의삶을복기하며가해자이자공모자로복무해온자신과아버지를돌아보게된다.
남자니까잘모를수있다.이정도면남성이역차별을당하는게아닌지,남자라고해서좋은것도딱히없는것같은데,오히려군대에2년을묶이고남자라고툭하면몸쓰고힘든일은도맡아서다했는데,처자식을부양해야하는의무도착실히짊어질것이며나는잠재적범죄자도아닌데대체뭐가문제라는건지….2015년부터다시금불타오른한국사회의페미니즘열풍을바라보며온갖물음표가머릿속을떠다니고있지는않은가?
그러니알아보자.모르겠으니까배워보자.여성들이대체왜저렇게까지분노하고매일을시끄럽게떠드는지를말이다.남성과여성의대립구도에서페미니즘을바라보고있다면그건완전한오해다.최승범은다음과같이말한다.“함께페미니스트가되자.잃을것은맨박스요,얻을것은온세계다.”
800명의남학생과함께
삶을위한페미니즘수업!
최승범은‘남페미’로서자신의역할을명확히한다.그것은일상의최전선에서같은남성들을향해발언하는것이다.그는남학생들을향해조심스럽고은근하게,그러나끊임없이성평등을이야기한다.동료남교사들을유심히지켜보는것또한병행하면서.
“어떤사람은학교에서의내모습을‘프로불편러’로상상한다.강한신념으로똘똘뭉쳐페미니즘전파의지를불태우며학교곳곳에서투쟁할것같다고예상한다.전혀그렇지않다.나는아주조심스럽게,매우은근하게,슬며시얘기한다.연애시절아내의손을잡고싶어마음을졸였을때만큼이나남학생들에게페미니즘얘기를꺼낼타이밍을잡는게조심스럽다.국어교사인내가‘여러분,오늘은성별임금격차에대해알아볼까요?’라는식으로뜬금없이던지는경우는결코없다.”
_본문에서
그가페미니즘을얘기하는방식은철저히국어교과서의텍스트를통해서다.〈메밀꽃필무렵〉의허생원이친구조선달의귀에못이박히도록이야기하는성서방네처녀와의하룻밤에대해최승범은학생들에게묻는다.성서방네처녀는과연그성관계에동의했을까?
《문학》교과서에서는이육사의〈절정〉과김소월의〈진달래꽃〉을각각‘남성적어조’와‘여성적어조’로설명한다.단정적인표현을쓰고명령형말투를쓰는것은‘남성적어조’,부드럽고차분하며소극적이고수동적인태도가담긴것은‘여성적어조’라는설명이다.페미니스트선생님이있기때문인지학생들은그러한설명을무작정받아들이지않는다.“이거구려요.”학생들이말한다.최승범과학생들은함께묻는다.이용어는적절한걸까?
물론저자의마음처럼모든학생이함께고민하지는않는다.‘선생님이지나치게예민하다’며거부감을보이는경우도있다.욕으로초토화되거나“여자편을너무많이들어서가끔기분나쁨”이라는불평이적힌교원평가가날아오기도한다.최승범은그런학생들을이해한다.자신이보고들은어머니의삶과달리학생들이주로보고겪은여성은늘감시자,통제자,처벌자의역할이었기때문이다.거기에기성세대가만들어놓은여성혐오천지의사회문화속에서여성혐오를여성혐오로인지하는것조차쉽지않다.그러니학생들은성차별이존재한다는데쉽게동의하지못한다.
하지만분명변화는감지되고있다.국어수업시간,교과서에서‘처녀’를[+인간][-남성][-결혼]이라는의미자질로설명하는것에“이거성차별아니에요?”라고먼저물어오는학생이생긴다.‘결혼하면집안일을많이돕겠다’는친구의말에‘돕는게아니라같이하는거’라고말하는학생이생긴다.교사가새로운시각과다른목소리를소개하는것만으로도학생들은스스로가깨치고길을터나갈수있다.
기왕올세상이라면두팔벌려환영하자
남자가바뀌는만큼새날은빨리온다
“세상이달라지고있다.페미니즘은더많은사람에게보편인권을보장해온역사의물줄기에올라타있다.눈가리고아웅하는식으로막거나외면할수있는종류의것이아니다.‘김치녀’가되지않으려고스스로를단속했던여성들이이제그것을거부하고있는데,남성들은‘한남충’이되지않기위해여전히여성을단속하려든다.”
_본문에서
그의이야기는간단하다.남성들이변해야새날은더빨리온다는것,여성들의목소리를억압할시간에페미니즘을공부하고자신을돌아보자는것,이거대한물결이이상한게아니라이변화에적응하지못하는남성들이도태될거라는사실이다.결국최승범의이야기는시대의흐름을읽지못해도태되지말자는계산적권유임과동시에성평등한사회에서여성들과함께온세계를얻자는순수한요청이다.
변하는학생들을보며그는희망을느낀다.선생님과학생으로만나이제는동지가된친구들도적지않다.그리고다시한번,남성이자페미니스트선생님으로서800명의남학생과동료교사들을향해발언하는것이자신의역할임을확인한다.나에게유리한쪽보다우리에게유익한쪽에서기,그명료한지향이지금우리모두에게필요한페미니즘교육은아닐까.우리에게유익한쪽이비단여성들만이발디딘세상은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