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

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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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간 존엄에 관한 대서사, 박경리의 『토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1969년에 연재를 시작해 1994년 8월까지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는 원고지 4만여 장에 달하는 분량에 걸맞게 600여 명이라는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 또한 1897년부터 1945년까지 반세기를 아우르고 있어, 동학혁명과 지주의 몰락, 외세의 침략, 신분 질서의 붕괴, 개화와 수구,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겪은 한국 사회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5부로 완성된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가 겪어온 과정 속에서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처한 저마다의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시작으로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또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한 대작임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박경리 작가의 작품 전반에는 인간의 존엄과 소외, 낭만적 사랑과 생명 사상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간이 지닌 존엄과 품격, 생명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두루 품고 있는 작품이 바로 『토지』다. 『토지』는 다양한 인물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일임을, 그리고 곧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본능임을 일깨워준다.
구시대의 낡은 관습과 제도가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하지만, 민초들은 이러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인간임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이치고,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멸시와 혐오의 감정을 뿜어내며 저마다 한(恨)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경제학자는 『토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토지』를 읽으며 그 행간에서 과연 무엇을 찾아내었을까?
저자

김윤자

충청북도진천에서태어나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나와법무부출입국관리국에서공무원생활을하며성균관대학교야간대학법학과를졸업했다.대학졸업후한국일보편집국에서기자로근무했으나1980년전두환군부의언론탄압사태때강제해직되었다.그후서울대학교대학원경제학과에서석사학위및박사학위를받았다.1987년부터한신대학교국제경제학과교수로재직하며한국일보,한겨레,부산일보,여성신문등의언론매체에서칼럼니스트로활동했다.영국북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방문교수로생활했으며,한신대학교사무처장,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의장,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을역임했다.또한참여정부에서국가에너지위원회위원,사학분쟁조정위원회위원등을역임했다.현재교육복지와정치·경제·사회정책분야를연구하는혁신더하기연구소이사장을맡아정책연구및그구현을위해힘쓰고있다.주요저서로『자본주의,빛과그림자』(2009),『경제학자,교육혁신을말하다』(2011,공저),『더불어행복한민주공화국』(2012,공저)등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한국사회에는과연노블레스오블리주가없는가

1부빈자의품격,부자의품격
1박경리의『토지』:민족,계급,유토피아
2가난하면서도도(道)를즐기고부유하면서도예(禮)를좋아하는
3부자에게복지를!:최서희를위하여
4‘386’그이후:‘아재’들의품격을위하여
5‘은퇴빈곤’과노년의품격
6삶의품격,죽음의품격:돌봄노동

2부시장의에너지와시민의품격
1쇼핑퀸,장터에가다
2닥치고경쟁력,해고의자유를허하라!
3놀이의품격,노동의품격:잘놀아야일잘한다
4‘고용없는성장’,백수에게축복을!
5‘낙하산’이어때서?
6입시,욕망의품격

3부갈등의품격
1경제위기?위기와기회사이
2루스벨트대통령과노동자
3스워드라인(swordline)의토론
4유로존,더불어행복하려면
5방탄소년단:역사는흐른다
6한반도리스크?한반도프리미엄!

4부『토지』남녀:잃어버린품격의시간을찾아서
1신분과애정사이:『토지』와〈섹스앤더시티〉
2사랑의정석:월선과용이,몽치와모화
3『토지』의성(性):정직하고담담한
4존재의근원,모성애:석이네와야무네
5『토지』의미학:잃어버린우리빛깔,잊어버린우리말

출판사 서평

경제학자,『토지』에서이시대인간의존엄과품격을찾다
『잃어버린품격을찾아서』라는제목에서짐작할수있듯이,저자김윤자교수는오늘날우리사회가잃고있는것은무엇인지,또잃어버린것을찾아인간의존엄을되살리기위해탐구하고노력해야할것은무엇인지다양한시각으로조명하고있다.
1부‘빈자의품격,부자의품격’에서는『토지』의나라잃은백성들이,그러나자기존엄만큼은치열하게지켜내려했던이야기를시작으로부자여서품격이있음이아님을,먹고살기팍팍해도다름아닌자기존엄을위해지킬품격이있음을적고있다.대한민국은이제『토지』의보릿고개시대가아니다.무려국민소득3만달러대의선진국진입을전망하고있는길목에서그러한전망이가능하기위해빈자와부자모두를위한복지는그들의품격을위해서도,나라의경제성장을위해서도‘시혜’가아닌고효율의‘사회적투자’임을강조한다.
2부‘시장의에너지와시민의품격’에서는근대적진보의동력이었던시장의넘치는에너지를『토지』에서묘사한장터풍경에대비해서술한다.독점시장의폐해와가진이들의천박한‘갑질’이도무지창피스러운오늘의대한민국이지만식민지지배를통한왜곡된근대화로우리가아직시장의동력을충분히활용하지못하고있다는저자의평소생각을바탕으로시장의에너지를더불어살아가는시민사회의품격으로조화시켜모멘텀을확보해야한다고강조한다.이를전제로해고를둘러싼갈등,비정규직불안정노동자,낙하산논란등몇가지주제를다루고있다.
3부‘갈등의품격’에서는너나없이불완전한인간들의세상에서당연히존재할수밖에없는위기와갈등을풀어가는기본스탠스로서갈등의품격을이야기한다.미국,영국,유럽이각각의위기와갈등에임했던에피소드들을차례로훑어보고,지구상마지막남은분단의땅한반도의리스크를,그러나어떻게하느냐에따라오히려프리미엄이될수도있다는희망적인메시지를전한다.
마지막4부‘『토지』남녀:잃어버린품격의시간을찾아서’에서는『토지』의몇몇두드러진인물들과『토지』전반에흐르고있는미학을통해존재의근원이라할수있는남녀간,부모자식간의성(性)과사랑과연민을풀어낸다.이를토대로식민지지배와동존상잔의전쟁,개발독재의치달음속에서단절되어온우리의태생적품격을탐구한다.

시민의품격,시민사회의품격을탐구하라
“한국에서는삼대만거슬러올라가면친일경력혹은좌익경력이나온다.”라는,그래서“한국에는‘노블레스오블리주’가있을수없다.”라는말이있다.‘노블레스오블리주가꼭좋은것인가?’하는,그말이함축하는특권의식을둘러싼논쟁을잠시차치하자면,책임감있는건전한보수세력의부진,자신감있는포용적진보세력의부진등우리의아픈근대사를상기시키는말임에틀림없다.
그아픈근대사는아마도허수아비왕을세워놓고사리사욕채우기에바빴던조선말세도정치속에서이미잉태되고있었는지도모른다.『조선왕조실록』과『승정원일기』같은세계에유례가드문기록문화의유산,사관과암행을비롯해왕권과신권(臣權)및백성간의견제와균형,애민과민본의통치이념등나름대로안정적인농경문화와중앙집권적통치시스템을구축했던조선이지만근대의변화에제대로대응하지못함으로써식민지로전락했다.
열강들이제국주의의혼돈속에근대화를향해숨가쁘게달려가던시기에시민계급의발흥도,계몽군주도갖지못했고,그나마일어섰던동학농민군은외세침탈의빌미가되고말았다.우리의고단한근대는그렇게시작되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가스스로자부심을가질수있는것은“왕조는사라졌지만백성은남아”(『조선왕조실록』,박시백)국내에서,또만주에서끈질기게애국계몽운동을펼치고신교육운동,식산흥업운동,무장투쟁등을벌이면서독립운동을이어갔다는대목이다.
시민혁명과산업혁명을선도해근대화의원형(prototype)으로상징되는영국의경우,1215년「마그나카르타(MagnaCarta)」에서시작한‘지배자군주’와귀족및일반시민간의균형과견제라는통치의원리는오랜세월에걸쳐매우점진적으로진행되었고,여성의참정권은1928년이되어서야비로소법제화되었다.우리나라의경우는1919년상해임시정부가“대한민국은민주공화제로함”을규정했고,이어1948년제헌헌법과함께민주공화국이선포되지만,선언과현실사이의간극은오늘날까지도일정하게지속되고있다.
『토지』에서하동의청백리이동진은망국의한을품고나라의독립을위해두만강을건너만주로떠날때친구최치수의질문에스스로정리된답을주지못한다.양반의권위의식이골수에차있으면서기질적으로시니컬하고허무주의자였던치수가“자네가마지막강을넘으려하는것은누굴위해서?백성인가,군왕인가?”라고물었을때이동진은“백성이라하기도어렵고군왕이라하기도어렵다.”면서,“굳이말하라한다면이산천을위해서,그렇게말할까?”정도로대답을하고떠난다.
훗날그는이러한자신의한계를독립운동의동지로서맞닥뜨리게된예전의하인구천이반상(班常)에갇힌그의도덕의식을조롱할때처절하게깨닫고서통곡한다.“독립이라는구실아래모든것이용납되는현실에서조선시대암행어사의출두가너무도아름답게느껴진다.”라는그의자조도군주제든공화제든나름의근대를준비하지못한채바뀌고만세월앞에서야했던양반계급의서글픈넋두리다.그러나그서글픔이비단이동진그만의서글픔이었을까?식민지배와민족분단의시련을거치면서오늘날의우리역시“목욕물버리다가아기까지함께버리는”사람들처럼내역사를탈탈털어버려전승받은자산도없고전통마저단절된채천둥벌거숭이처럼천박한시장속에서염치없는각자도생의난전을벌여온셈은아닌지생각해볼문제다.
1980년대초반의운동가요에는유난히‘산하’니‘강토’니‘고국’이니‘산천’이니하는노랫말들이많았다.한편으로더나은세상에대한구체적인그림이그려지지않아서였다고할수도있을테고,다른한편으로는저마다의그림이다를지라도산천과약소국의민족이라는매개로그차이를넘어서고자했던것이라고도볼수있을것이다.
이렇듯민족이란존재의근원,자존감의출발점일것이다.다만,근대민족주의가자본가의주도로해외팽창을도모하는과정에서침략과수탈을일삼게되면서편협한집단이기주의처럼매도되고민족주의대국제주의,혹은민족(우선)주의대계급(우선)주의운운하는대치의도식이생겨나버렸다.
시장원리를중심으로하는주류경제학과교환이전의자산상태를포괄해빈부격차의원리까지를분석하고자하는여타비주류경제학중에서어느하나만으로한국경제를분석하는데에한계를느낄수밖에없다.한국의이비효율적인관료주의와비효율적인시장사이,역설적이게도이지점에한국경제학도들이독창성(originality)을발휘할가능성이있지않을까?때로는에너지넘치는공정한시장을,때로는민주적인규제를함께고민하면서더불어살아가는시민사회의품격과시스템으로서의국가역량을다같이도모하는그과정이야말로도전해볼만한가치가있는탐구의지점이다.

[책속으로이어서]
야무네의심정도석이네에못지않다.아들은야무지게살라고야무,딸은넉넉하게살라고푸건이.우리말의감칠맛을잘담고있는이런예쁜이름들을지어주었건만아들과딸이이름과는달리험하기짝이없는인생역정을밟기때문이다.남편을일찍잃은가난한과부야무네,딸푸건이는시집갔다가병이들어친정으로쫓겨왔다가젊디젊은나이에죽는다.불행은끊이지않아이번에는돈벌러일본갔던큰아들야무가노동운동에연루되어옥살이를하더니병든몸으로고향에돌아온다.아들야무가돌아왔을때야무네는“자식이란멋일꼬?애간장을녹이는기이자식이다.전생에무슨인연으로부모자식으로맺어진길까?그것들이병들어야고향으로돌아오는길까?”말한다.
부모자식간의인연이란무엇일까?“애간장이녹는거,가슴에피멍이드는그기이자식”이라고야무네는생각한다.그야무가마을의똑같이불행한여자인호와결혼하고포시락포시락살아나면서야무네도근심을덜게되지만.
존재의근원이라고할부모자식의인연,그인연은아버지라고다를까?동서고금부성애에대한글중가장아프고절절한것을나는그레이엄그린의『권력과영광(ThePowerandtheGlory)』에서읽었다.대학시절우연히읽고그린에게빠져들어그후그의작품을일부러찾아읽게해준소설이다.
_4부『토지』남녀:잃어버린품격의시간을찾아서,212~213쪽

박경리작가가『토지』에서묘사하는최참판댁당주치수의사랑마당,비그친담장에능소화가피어있고파초잎새에빗방울이맺혀있는풍경,화문석이깔려있는대청마루에발을늘여놓고대청후문을열어두어그곳에서시원한바람이불어오는최서희의후원,그리고흰모시치마저고리에비취반지를끼고앉아부채질을하는최서희의모습은한폭의풍경화가아니던가.흰모시와녹색비취반지의빛깔을대조시키는박경리작가의미감이놀라울따름이다!
그뿐인가.『토지』곳곳에서우리네한복의빛깔,갈뫼빛저고리니은조사깨끼적삼,유록색천을댄당혜(가죽신발),회색바지에하늘색대님을친남정네의차림새에이르기까지,지금은잃어버린이런우리의빛깔은참으로색채학적이다.다양한색채의효과를구현하는컬러리스트라는직업도있다는데,잃어버린우리복식의독특한빛깔들과그빛깔들을묘사하는잊어버린우리말들에대한향수를절로불러일으킨다.
_4부『토지』남녀:잃어버린품격의시간을찾아서,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