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근대의 문턱에서 조우한 유럽)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근대의 문턱에서 조우한 유럽)

$16.06
Description
한국 사람들이 ‘유럽’을 떠올렸을 때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과학기술의 나라 독일, 신사의 나라 영국,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테러와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하기는 하나 유럽 국가들은 우리의 이웃나라도 아니고, 그중 미국처럼 우리의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나라도 없다. 우리가 이들과 교류한 것도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유럽은 여전히 높은 인권의식과 복지 수준을 자랑하며 타민족, 타종교에 가장 개방적인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이 책은 그 기원을 찾기 위해 150년 전, 조선과 유럽이 처음으로 교류한 19세기 말로 돌아간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서학을 배척하던 시대를 지나 신문, 실록, 문학 작품을 통해 그들의 국민성, 풍습, 지리를 알고자 했고, 그들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

김미지

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박태원소설의담론구성방식과수사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연구재단의지원으로중국북경에체류하면서북경대학교에서한중비교문학을연구하고한국어문학을강의했다.4년간의북경체류이후귀국하여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HK사업단에서연구교수로재직했으며중앙대,인천대,서울대등에서한국문학을강의했다.현재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객원연구원으로있으면서동아시아문학과서양문학의상호관계에대한연구를진행하고있다.
지은책으로『누가하이카라여성을데리고사누』(2005),『언어의놀이,서사의실험』(2014),『박태원문학연구의재인식』(공저,2010),『도시로읽는조선』(공저,2019)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새로운세계,유럽을발견한첫장면으로

1장유럽과의첫만남과첫인상
동과서,그최초의만남들
이양선,눈앞에나타난불길한존재
서양문명의첫물결이었던천주학과서학
문헌으로배운구라파와구라파인들
어렴풋이상상해본그들:영길리와불랑서

2장제국주의와식민지의시대,《한성순보》가포착한유럽
중국의개항과대세의이동
세계속으로들어간조선그리고《한성순보》의탄생
뉴스의원천이된상해의영국조계신문들
제국주의와서세동점의한허리를관통하여
외신의홍수속에사로잡힌청불전쟁과프랑스

3장오랑캐에서문명국으로,우리가발견한유럽
세계사에대한관심과구한말의유럽인식
새로운문명의향방과유럽이라는모델
각국국민성에대한인식과그부침의역사

4장사상과문화의보물창고:근대문화의지향점이된유럽
시베리아철도로닿을수있는그곳,「세계일주가」가노래한유럽
유럽문학을통해배우는국민문학과세계문학
문호로불린유럽작가들,인류의문화유산이된작품들
문호백년제:20세기에19세기유럽문학을불러내는방법
작가들의영감의원천이된유럽문학과작가들

나오며|유럽이라는우리안의타자,그들을통해본우리

출판사 서평

근대의우리에게유럽은무엇이었나?
‘오랑캐’제국주의국가들은어떻게‘문명의나라’로탈바꿈했나?

2014년영국의BBC에서는24개국의2만4천5백여명을대상으로주요13개국에대한국가이미지조사를실시했다.그결과가장호감도가높은국가는독일,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순이었다.특히한국인의84퍼센트가독일을가장긍정적인나라라고표현했을정도로한국인들의독일에대한호감,신뢰,선망은매우크게나타났다.

독일뿐아니라유럽의많은나라들은근대문화의발상지로세계어느곳보다문화유산을풍부하게보존하고있으면서,한편으로는미국과더불어서구의선진국가로그려진다.그중에서도독일과프랑스,영국은근대부터지금까지유럽을대표하는나라들로꼽힌다.제국주의시대부터현대까지,이나라들은때로는전세계에식민지들을만들어힘을축적했고,전쟁을일으켜수많은인명을학살하거나이를막아내기위한전쟁에참가했다.그런영욕의역사를거쳤지만이들에대한인식은대체로다음과같이모아진다.독일은근면한과학의나라,프랑스는혁명과유행의불꽃,영국은산업혁명과의회혁명을일으킨근대문명의선구자로.

이러한일반적인인식은최근에갑자기형성된것이아니다.일제강점기에조선여성최초로세계를일주한화가나혜석은“독일에서는모든것에서과학의냄새가난다”는감상을남겼고,독일제물감을선물받은박완서는“문명의냄새,문화의예감”이라고황홀함을표현했다.

유럽을마주한첫장면
우리가유럽이란지역을최초로인지한시기는벨테브레(박연)와하멜이제주도에표류해온17세기일것이다.이런우발적인사건을지나18세기중반부터존재가의심스러운서양배들이한반도연안에출몰하며의도하지않은만남이시작됐다.이때문에조선에서유럽은우호적인관점에서바라볼수없는대상이었다.여전히중국이세계의중심으로굳건하던때였고‘요상하게생긴’유럽인들은한낱오랑캐에불과했다.위협조차될수없다고여기며철저히배척하고무시했다.

그러나청나라를통한서양문물의유입은막을수없었다.역법이나지도를비롯한과학기술은정확하기이를데없었고,천주학은금지하고박해해도기층민중사이에서빠르게퍼져나갔다.추사김정희는서구열강에대해“겁낼것없다”고의연함을표했지만수백년간굳건하던중국중심의세계관은흔들리고있었다.곧청나라는영국군에수도가점령당하고,불평등한강화조약을맺는굴욕까지겪고만다.대세는이동하고있었다.

만국을향한최초의창,《한성순보》
중국을통한정보의수집과유통은더이상속도와정확성에서뒤처질수밖에없었다.조선또한뒤늦은개항(1876)후미국(1882)을시작으로서양국가들과통상조약을맺게되면서새로운나라들과의교섭과소통이불가피해졌다.1883년일본에다녀온수신사박영효의제안으로,정부가우리나라최초의근대신문인《한성순보》을창간했다.《한성순보》는창간취지에맞게외신을번역해보도하는데주력했고,자체적인관점을견지하기보다는청이나영국신문의시각을답습하는경우가많았다.그예로당시영국과는식민지경쟁을하고인도차이나에서는중국과전쟁을치르던프랑스는《한성순보》의외신보도를통해“교활하고잔인한”민족이나유럽의천덕꾸러기”로묘사됐다.

《한성순보》는비록오늘날의신문처럼독자적인취재시스템을갖추지는못했으나단순보도를넘어논평과같은서술도일부보여주었다.논설지면을통해프랑스에예속된캄보디아를안타까워했고,“어쩌다중국이이지경이됐는가”같은표현을통해한탄을드러내기도했다.편향되거나사실여부가불확실한기사에는“스스로살필지어다”같은문구를통해유의하여읽을것을알렸으며,마지막면에는정정요청이나추가보도요청을수렴할정도로독자의해석과판단을존중했다.조정이발간한관보이자최초의신문으로서한계가뚜렷했지만,왕조정치를넘어선개화의새로운가능성을시험하는진보적인움직임을보여주었다.

문명국국민의성품을배우자
개항이전의조선은서구열강에대한정보를주로한문으로번역된지리지를통해서습득했다.관련정보가전무하던당시에는위치나면적같은기본적인내용이먼저충족돼야했다.이후에는각국의역사와문화를통해그들을이해하고자했다.20세기에들어서자역사적지식이어느정도축적된조선에서도세계를무대로‘당당히도전하고모험하는’청년들을양성하려고했다.영국으로부터독립을이뤄낸미국이나통일로새로발돋움한이탈리아의건아들은‘우리청년들’이배우고거듭나야할롤모델이었다.

한편으로는‘선진문명국’들의핵심은국민성에있다는인식이발달하여,기존의인식에기초해영,미,프,독의국민성을규정하고우리만의특질을개발하자는논리가대두됐다.이러한분석은사회문화적으로개별성이나다양성을기본으로삼는오늘날과는어울리지않을뿐더러일차원적이고성급한일반화였다.하지만국민개개인의능력에국가의운명이달렸다는환원주의적인접근으로서당시동아시아에팽배한사상이었다.조선에서는이광수가「민족개조론」을들고나왔고,동시대중국을대표하는사상가인량치차오의『신민설』이나루쉰의『아Q정전』또한중국인민의국민성개혁에골몰한결과이다.

대문호와백년제
1920년대를지나면서조선에서는정보습득을넘어,직접교류할수없었던서양인들의세계나삶과더적극적으로소통하고자했다.그일환으로문화예술중에서도문학을수용했다.이것은서구문명에대한새로운접근이생겨나면서가능해졌는데,유럽문명의저력은자본주의,제국주의의기반인물질문명만으로설명할수없다는인식이생겨난것이다.이는일제강점기였음에도새로운사상과문화의시대를여는전기가되었다.

이런움직임은조선문학에도세계에내놓을‘대저술’을만들어내자는취지에따른것이었다.예를들면영국을진정한문명국으로만든‘특별한것’은인도대륙이나식민지영토가아니고셰익스피어라는대문호라는것이었다.이시기의문예운동은국내에서해외문학을전공한일본유학생들이활동하기시작하면서불이붙었다.유학파지식인들은신문기고를통해서양문학의필요성을역설하면서도,단지독특한취향추구로서의문화수용을비판하기도하는등적극적으로외국문학을소개하고보급하려했다.

문인들은매체를통해서양문학을소개하고비평하면서조직적으로기념행사를열었다.톨스토이와괴테의100주기에는각각두문호의삶과작품을되돌아보았다.작품해설을중심으로기념좌담이나방송이열렸고러시아영사의기념사를번역,소개하기도했다.《조선일보》,《동아일보》등일간신문의시대가열린신문시장에서는특집면을할애해위의모든내용을풍부하게담았다.이외에도현대판‘오늘의역사’와같이대문호나외국위인들의탄생일,기일을기념하였다.브라질건국,구텐베르크의활판술발명과같은역사를포함해날마다이런사건이있다는것은일간신문으로서는안성맞춤의기삿거리였다.

개화된나라로서세계를누비는꿈
일제가집요하게조선말과글을없애려던식민지시기에도문예운동은활발히이루어졌다.식민지정책의방향이‘민족말살’로치닫던해방이전을제외하고는,적어도‘조선어로무엇을쓸것인가’하는질문이시대의과제가아니었던적이없었다.

조선은유럽인이야만인이라는관점에서벗어나면서부터늦게나마세계를향한수용의자세를보여주었다.그과정에서직접교류할수없었던국가들에대한왜곡과답습,비난과예찬이극적으로나타났다.일관된목표는‘세계의구성원’으로서우리의위치를확실히구축하고자하는것이었지만,잘알려진대로이때의조선은무엇하나의지대로할수없는상태로전락하고,결과적으로는1910년일제에국권을빼앗긴다.또다시성리학적질서와중국중심의사대주의가비난의도마위에오른다.하지만통념과달리당대인들은계속해서국내외의상황을파악하고어떤방향으로문명을개척해나가야할지를고민했다.

특히근대문학의흐름은해방이후현대문학의자양분이되었다.시간을돌릴수는없지만이책은맹목적인비난에가려졌던당대지식인들의지적도전과고민을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