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17가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주는 기도응답의 비결)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17가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주는 기도응답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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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17가지』에서 저자는 다양한 기도 응답의 내용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것이 어떤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도의 정의(기도란 무엇인가?), 기도의 내용(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기도의 우선순위(무엇을 먼저 기도하고 어떤 순서로 기도할 것인가?), 기도의 방법(어떤 방법으로 기도할 것인가?)같은 것들은 다루지 않고 단지, 응답받는 비결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저자

안희환

저자 안희환은 국민일보에서 발표한,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된 23명 중에 최연소자인 저자는 예수 비전교회 담임목사로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인도하는 목회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팔을 잃고 하나님 말씀에 더 깊은 눈을 뜬 다음부터,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사는 이들에게 위로와 참된 용기를 심어주는 일에 참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목회자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예수비전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싱크탱크 대표(2011-현재)
크리스천 연합뉴스 발행인(2012-현재)
시 전문잡지 시인마을 발행인(2014-현재)
국제인터넷선교회 대표(2011-현재)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2010-현재)
밝은인터넷 공동대표(2008-현재)
기아대책기구 관악지역 이사(2007-현재)
선민네트워크 공동대표(2010-현재)
캐냐선교회 이사회 서기(2014-현재)
바른문화 운동본부 대표(2013-현재)
한국이슬람대책위원회 대표(2016)
크리스찬 타임즈 칼럼 연재(2008-현재)
에스더 기도운동본부 지도위원(2013-현재)
중독예방 시민연대 공동대표(2012-현재)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공동회장(2016-)
교회개혁운동 공동대표(2011-현재)

부흥회, 연합집회 등 1000회 이상 인도.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01. 응답을 믿고 기도하라
02. 끈질기게 기도하라
03.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
04. 전력을 다해 기도하라
05. 죄를 해결하고 기도하라
06. 예수님 안에 거하라
1장

2장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07. 보혈을 의지하여 기도하라
08. 성령 충만을 구하라
09. 감사하면서 기도하라
10. 감동이 오면 순종하라
11.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하라
12. 입을 크게 열고 기도하라

3장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13. 금식하며 기도하라
14. 서원하며 기도하라
15. 합심하여 기도하라
16.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라
17.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나오는 글

출판사 서평

들어가는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웃을지 모르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내게 있던 큰 고민거리는 ‘나도 장가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이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같은 처지에 있는 총각에게 시집오려는 아가씨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곱게 키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을 줄 부모가 있을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안양천 둑을 따라 형성된 판자촌에서 살았습니다. 세상살이에 실패하고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뒤엉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더럽고 허름한 동네였습니다. 건축허가 없이 대충 짓고 대충 살던 판잣집들은 주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주소는 “경기도 광명시 소하읍 소하 5리 500번지”였는데 근처의 모든 집이 같은 주소를 사용했습니다. 똑같은 주소에 대략 2~300여 명이 모여 살았던 덕분에 우편배달원이 일일이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과 집을 확인하고 편지를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판자촌에서는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불편한 문제는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이 집집마다 있지 않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도 앞뒤가 트인 화장실 두 개를 여러 집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는 아침 무렵에는 아무리 급해도 꾹 참고 먼저 들어간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한밤중에, 혹은 달이나 별이 뜨지 않아 특히 어둔 밤에 화장실에 가야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판자촌 화장실이라는 것이 그저 구덩이를 깊이 파고 얇은 판자로 대충대충 칸을 막아서 만든 것입니다. 겨울철에는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와 용변을 볼 때 한낮에도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밤이 깊거나 잠자리에든 뒤에는 웬만하면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참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낡은 옷을 잔뜩 껴입고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집에 누가 시집오려할까요?

그런데 가난하고 허름한 판자촌에서 산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내게 있었습니다. 저는 불구자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불구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몸이 약해서 자주 병치레를 할정도로 몸이 허약하기는 했지만 온전한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불구의 몸이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경제 능력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허드레 일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여름 땡볕에도 남의 밭에 나가 풀을 뽑아주고 푼돈을 버셨습니다. 그렇게 번 돈은 우리 식구가 굶어죽지 않게 먹고사는 데만도 벅찼습니다. 우리 사 남매는 학교에 준비물을 사갈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업에 참석하지도 못 한 채 교실 밖에서 벌을 서곤 했습니다. 저는 장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밭에 나가 무를 뽑기도 했고 시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시금치를 팔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돈벌이는 신문배달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지국에 찾아가 신문배달 일을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초등학생인 저를 채용해주었습니다. 처음에 신문 돌릴 때는 자전거가 없어서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아침에 돌려야 할 신문 뭉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은 신문 돌리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손은 시렵고, 몸은 더디게 나아가고, 돌려야 할 신문은 많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중고 자전거를 하나 구했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날듯이 기뻤습니다. 이제무거운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지 않아도 됩니다. 걷고 뛰는 속도보다 자전거가 빠르고 힘도 덜 듭니다. 신문을 더 많이 돌릴 수있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신문 지국으로 갔습니다.
1983년 3월 14일, 제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10일도 지나기 전인 이날도 자전거를 타고 동아일보 지국으로 향했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제 앞을 달리던커다란 덤프트럭이 멈춰 섰습니다. 도로 오른 쪽에는 도랑물이있어서 그쪽으로 지나가면 흙탕물에 옷이 젖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트럭 왼쪽으로 가자니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데, 언제차가 달려올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트럭이 출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국에 늦게 도착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군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각하거나,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사고를 치면 형들이 기합을 주거나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곤 했습니다. ‘형들에게 두들겨 맞을까’하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습니다. 트럭이 출발하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왼쪽의 중앙선을 넘어 트럭을 지나쳐 가는데 그때 반대편 차선에서 덤프트럭이 달려왔습니다. 난생처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트럭에 치여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를 치고서 멈춘 덤프트럭이 제 쪽으로 후진을 했습니다. 덤프트럭의 커다란 뒷바퀴가 먼저 제 자전거를 밟아서 박살을 낸 다음에는 제 왼팔을 깔고 지나갔습니다. 제 팔은 그 자리에서 으스러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머리나 몸이 바퀴에 깔렸다면 즉사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덤프트럭이 왜 후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사고를 당했지만 저는 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살과 뼈가 다 으스러진 채 옷과 힘줄 때문에 축 늘어진 왼쪽 팔을 붙잡고 일어섰습니다. 왼쪽 팔에서는 피가 대책 없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직 운전석에 앉아 있던 아저씨를 향해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기사 아저씨는 저를 병원으로 데려 갔고 저는 병원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만일 병원에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저는 과다출혈로 죽었을 것입니다. 의식을 회복하고 보니 왼쪽 팔이 어깨 아래 부분부터 잘려서 없어졌습니다. 덤프트럭의 뒷바퀴에 팔 전체가 모조리 으스러져 서 살려낼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졸지에 저는 불구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술 직후에는 진통제를 계속 주입한 탓에 통증을 견딜 수 있었지만 진통제를 줄여가면서는 통증이 점점 더 커져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었던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고 다시 장가가는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떤 부모도 결코 자기 딸을 시집보내고 싶지 않을 동네 판자촌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막막한데 몸까지 불구가 되었으니 도대체 누가 귀한 딸을 저와 같은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할까요? 중고등학생이 결혼을 걱정한다는 것이 특이하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 저의 처지는 몹시 불우했고 제 인생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해결책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저 같은 사람이 장가를 간다고 하는 불가능할 것같은 일조차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딱 맞는 좋은 아내를 허락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제 기도는 점점 더 강열해졌습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제게도 짝을 주시옵소서! 제게도 배필을 허락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당장 교제를 할 수는 없어도 나중에 하나님이 아내를 주시면 되니까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기도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애인은 둘째 치고 여자 친구 한 명 없이 이십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평생 혼자 살아라. 그게 내 뜻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니 제가 먼저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더 더 더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른 살이 되었고, 지금의 아내와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가장 좋은 점은 성격이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어둡게만 살아왔던 저였기에, 까르르 웃으며 늘 밝게 사는 아내의 모습 그 자체에 저는 정말 매혹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아가씨가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여겨지던 때였고 저 역시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은 틈만 나면 붙어 다녔습니다. 만나는 장소는 주로도서관이었습니다. 함께 공부를 하다가 손을 잡고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이다시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라면이나 밥을 사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영화를 보러간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산책만 죽어라 다녔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생각하니 저에게는 큰 짐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시집오면 고생할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른 손에 물건을 들면 문을 열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야 할 경우 물건을 내려놓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나서 짐을 다시 들어야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문이 도로 닫히곤 합니다. 결국 누군가가 와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아기를 낳아도 저는 아기를 안아줄 수가 없습니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안을 때는 한 손으로 등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쳐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손이 하나뿐이니 아기의 등을 받치면 목을 받쳐줄 손이 없어 아기가 다칠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렇다고 아기 목을 잡아 들어 올릴 수도없으니 아기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저의 불구는 저 혼자 불편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한 뒤에는 아내가 아주 많은 힘겨운 짐들을 감당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그대로 있을 수만도 없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만약 아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거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