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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1945년10월일본에서났다가이듬해고향인경북청송으로돌아왔다.부산고등학교를졸업하고부산수산대학(현재의釜慶大)에들어가2학년을마친뒤공군에입대,제대후1971년부산의[국제신보]수습기자로입사해언론생활을시작했다.문화부,사회부기자로일하면서경찰,공해,석유분야를다루었는데1974년중금속오염에대한추적보도로제7회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제정)을받았다.1980년광주사태현장취재를했다.그해6월신문사를그만둔뒤월간잡지[마당]편집장을거쳐1983년조선일보에입사,[月刊朝鮮]편집장으로일했다.2001년월간조선이조선일보사에서분사(分社)하면서(주)월간조선대표이사를역임했다.지금은[조갑제닷컴]대표로있다.2017년부터시작한[조갑제TV]는한국의대표적인유튜브방송이되었다.저서로는《김대중의정체(正體)》《사형수오휘웅이야기》《有故》《국가안전기획부》《軍部》《朴正熙(전13권)》등이있다.
재출간머리글…7초판머리글…1301불씨…2002점화…8103시민가세…14904대폭발…18705계엄령에도전하다…24006수사와고문…30207박정희의마지막나날들…33008살의(殺意)의탄생…35309김재규,‘야수의마음으로’박정희를쏘다!…36810유고(有故)…39111“짜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41712전두환의등장…428
한국현대사30년을결정한함성과총성!부마사태와10·26사건40주년이되는2019년10월,‘부마사태에관한독보적기록’이라평가받는조갑제(趙甲濟)기자의‘有故’가《한국을뒤흔든11일간:부마사태에서10·26까지》(452페이지,2만원,조갑제닷컴)로재출간됐다.정부가부마사태가시작된1979년10월16일을국가기념일로지정한해여서더욱뜻깊다.저자는부마사태40주년을기념한기록영화인터뷰요청에자극받아30년전출간했던《有故》(한길사)를부마사태부터10·26사건까지11일간의기록으로재구성해책으로내게됐다고밝혔다.부마사태는저자가국제신문사회부기자로서부산에서현장취재한것이다.언론의자유가제한되던유신체제에서발생한부마사태는‘기사로쓸수없는’사건이었다.취재지시는없었지만조갑제기자는현장을지켰다.당시그는‘이역사적사건을기록하라고하나님이나를기자로만들었다’고여기고,‘신문에낼수는없더라도역사의기록으로서정리해두고후배들에게넘겨주어야한다’고생각했다고한다.10·26사건은조선일보월간조선기자로일하면서취재한것이다.부산시위로시작,마산으로번져김재규가‘유신의심장’을쏘기까지,새로운권력이탄생하는11일간의긴박한순간을글로되살리기위해조갑제기자는7년간500명의관계자를만났다.저자는“이책의중심이되는부마사태기록은1979년10월부터이듬해5월사이에집중적으로취재한것이다.부마사태가박정희정권의종언(終焉)을고하는데결정적인영향을끼쳤다는흥분이취재를몰아붙였다”며“김종필,김영삼,김대중의3김씨가민주화이후의대선(大選)을준비하고있을때로서비상계엄령하이지만모처럼언론과정치의자유가피어오르고있었다.12·12군사변란으로실권을잡은전두환그룹이기회를노리고있는가운데,나는불안하고들뜬분위기속의즐거운취재를했다”고회고했다.부마사태는조갑제기자의인생항로에도영향을끼쳤다.조기자는부마사태를시작으로10·26사건,12·12군사변란,1980년5·17계엄확대,5·18광주사태로이어지는질풍노도의시간대에휩쓸려들었다.병가(病暇)를내고광주사태를취재하러갔다가회사에서잘렸고,反정부기자로찍혀있었던그는전두환정권에의하여확인사살(퇴사한것도모르고해직기자명단에올림)당했다.조기자는박정희정권때는정부의포항석유발견에이견을제시한논문을썼다가해직되기도했었다.저자는“그런내가박정희,전두환,그리고노태우역사의변호인역할을하고있다는점,이게한국현대사의위대한변전(變轉)이아닐까?”라고묻는다.저자는한국을뒤흔들고,이후한국현대사30년을결정한11일간에대해이렇게분석한다.“부마사태의이유를여럿들수있지만요사이조국사태와도연관되는요인으로서국민들의분노가가장컸다고생각한다.박정희대통령의위대성은사후(死後)에확인된일이고당시를살고있었던학생,기자,정치인,지식인들속에선경제적불평등에대한분노보다는정치적압박에대한저항이강했다.여기에경제불황과부가가치세에대한상인들의반감이,부산대학생들의시위로한덩어리가되어폭발한것이다.박정희정권은경찰로막을수있었던부산시위를과대평가하여‘비상계엄령’이란초강수로대응하고,김재규또한이를민란(民亂)으로해석,국민들이박정희를떠났다고오판하였다.과잉대응과오판이정권의핵심부를분열시켰고그적나라한장면이바로10·26사건의현장궁정동안가(安家)의식탁이었다.역사적맥락에서보면박정희의퇴장은적기(適期)였다는생각이든다.”새로운권력이탄생하는순간을지켜보고기자로서의사명감으로기록을남겼던저자는재출간머리글에서‘조국(曺國)게이트’에분노한국민들이거리로쏟아져나오는2019년10월현세태에의미심장한한마디를남긴다.“분노가폭발하면정권이무너진다는한국현대사의교훈은아직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