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 (폐허의 땅에 덴마크 부흥 모델을 제시하다)

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 (폐허의 땅에 덴마크 부흥 모델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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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류달영, 폐허의 땅에 부흥의 길을 제시한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
저자 김홍근은 성천(星泉) 류달영이 창설한 성천문화재단에서 20년간 실무 책임자로 일하면서 류달영을 가까이 모셨다. 김홍근은 류달영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의 이력과 저서 등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류달영의 전기이자 평전인 《류달영의 생애와 사상》을 펴냈다.

류달영은 일제 감정기와 6·25 전쟁이란 한국 현대사의 절망적 고난을 고스란히 겪었다. 그가 일생 동안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나라 사랑’을 최우선에 둔 것은 의분에 찬 국민으로서 너무나 절박한 선택이었다. 일제의 ‘가난’과 ‘무식’이란 식민지 정책 속에서 교육 기회를 빼앗기고 굶주림에 허덕이던 90%가 농민인 나라에서 농촌 계몽 운동을 이어 갔고, 전쟁에 패하고 황무지로 쫓겨난 덴마크가 복지국가로 부흥한 ‘덴마크 부흥사’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20여 년 동안 ‘덴마크 부흥사’를 연구한 그는 6·25 전쟁의 피난지에서 《새 역사를 위하여》를 펴내 ‘덴마크 부흥사’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절망 속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었고, 국가 재건의 불씨를 당겼으며, 이후 류달영이 ‘나라 사랑’에 헌신한 수많은 놀라운 업적의 신호탄이 되었다. 우리는 《류달영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험난한 고통의 역사 속에서 시대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 자랑스런 한국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

김홍근

1957년부산에서태어났다.한국외국어대학교스페인어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중남미문학을전공했다.스페인마드리드대학에서〈옥타비오파스의시사상〉으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성천문화재단에서실무책임자로20년간고전아카데미를운영했다.지금은동국대학교겸임교수와한국간화선연구소책임연구원으로의식교육연구에힘쓰고있다.
저서로는〈선화〉〈참선일기〉〈보르헤스문학전기〉〈인생교과서부처〉(공저)등을펴냈고,번역서로는〈보르헤스의미국문학강의〉〈보르헤스의불교강의〉〈활과리라〉등이있다.

목차

1.나의삶,사람노릇잘하기-유년기에서죽남보통학교시절
사랑의실천가|역사의거센소용돌이
동냥젖먹고자란아이|책임감강한아버지
어머니의눈물|아버지와아들의정
죽을고비를넘다|거짓말을모르는농심
산을지키는마을사람들|9살소년의‘독립만세!’
아들의신식교육|공부열정과진로변경

2.인생관,인간은만남으로자란다-양정고등보통학교시절
김교신선생을만나다|자긍심과독립정신
이순신을알게되다|스승은인생을가르친다
명질문에명대답|독서생활의시작
독립의지와냉수마찰|거지울음소리와양심의소리
나의친한친구,검둥이개|대장부의호기와정신적성숙
‘농촌운동’서원을세우다

3.독립운동과농촌운동-수원고등농림학교시절
자족적인삶을버리다|선후배가독립운동동지가되다
불사조같은독립정신|김교신,사토,소노다
여성애국자최용신을만나다|맏딸이태어나다
총독부로가지않겠습니다

4.여성교육에젊은열정을쏟다-호수돈고등여학교교사시절
여성교육을선택하다|젊은정열을불태우다
수요회에서동지를기르다|무감독시험과자부심
개성의독립정신과자부심|일본의탄압과빛나는교가
33인,백두산에오르다|헬렌켈러의열차연설
도산,춘원,백범|최용신의전기를쓰다
눈물밥이가장맛있다|기도의사람
류달영은교육자다|역사의식,민족의식을깨우다
아버지의나라잃은설움

5.독립을향한저항의불꽃-감옥생활에서해방전후까지
짙은어둠의식민지|감옥에서마음을수련하다
요행을바라지마라|하심(下心)을배우다
공자,열심히배운사람|감옥에서쓴편지
일본인검사의뜻밖의처분|전쟁말기,여주에은신하다
무식과가난|김삿갓의글씨
흥남일본질소연료주식회사|장사김교신계장
거목이쓰러지다|재운좋은종묘회사전무
해방과조선이야기|인재양성과보이스카우트운동
개성시대의막이내리다

6.이땅에덴마크부흥을실현하자-서울대농대교수시절
서울대농대교수가되다|폐허로만든6·25전쟁
잿더미가된서울|새역사를위하여
국민의부유,건강,교육,복지사회|그룬트비의국민교육
크리스텐콜|달가스와황무지협회
미국의교육지원|학문의바다미네소타대학교
한국의밤|코넬대학교와한국의들잔디
영국과독일의인상|덴마크를찾아가다

7.나라의부름을받고-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시절과이후
박의장과조건부수락|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본부장취임
동양의덴마크건설|국민운동의네기둥
공과사|김두한의사과|혁명정부에부치는직언
군사정부와국민운동해산|박정희에대한평가
새마을운동|평화농장과농민운동
전국농업기술자협회|농업진흥관건립
농민대학|한국유기농업협회|한국농산물유통연구회
초인적인사회봉사활동|나라꽃무궁화

8.마지막필생의사업-성천문화재단을세우고
성천문화재단의창립|생활문화아카데미의동서인문고전강좌
보람찬노년|아내이창수여사|만능인
유머는인생의맛을내는향신료|극진한건강관리
참잘되었구만|누구와도흉금트고

후기
성천류달영의사상-김홍근

부록
밟아온날들을돌아보며
류달영연보
류달영저서
류달영작사노래

출판사 서평

역사의거친소용돌이속에서사람노릇하기
1911년5월6일경기도이천에서태어나2004년10월27일94세의나이로소천하기까지성천(星泉)류달영의삶은자신의생명을최대한꽃피우는모습,그것이었다.“선생님이가시고나면어떤한마디말로기억하면좋겠습니까?”하고질문하자“나의삶은그저사람노릇잘해보려했던것뿐이지.”평소‘하늘은서로돕는자를돕는다(相助者天助).’를강조한그는좌우명인‘호학친교위공(好學親交爲公:배우자사귀자이바지하자)’을평생실천한사람이다.종교가무엇인지묻자“굳이내종교를말하자면,나라사랑이곧내종교라고할수있겠지.”태어나보니일본의식민지백성이었고,일제강점기36년을고스란히살아온그.‘나라사랑’을자신의종교로삼은이유는그가태어난시기에기인한다.태어나자마자어쩔수없이역사의거센소용돌이에휩쓸려살게되면서모든가치를자신보다먼저나라를위하는데두지않을수없었다.류달영은이사실을운명적으로받아들였다.그래서철두철미하게‘나라먼저나는나중(公先私後)’의삶을살았다.

운명적만남,김교신선생
1919년3월1일,마을산에올라횃불을든어른들틈에서‘독립만세!’를외쳤던9살소년,한학자집안에서태어났지만신식교육을받기위해1922년죽남공립보통학교(현설성초등학교)에들어갔고,서울의5대사립학교중하나인양정고등보통학교에입학한다.일제는식민지정책의하나로일관되게교육기관을최소화시켰지만류달영의배움에대한열정을막지못했다.1928년양정고등보통학교에입학한류달영은1학년담임으로김교신선생과운명적인만남을한다.김교신은월간지〈성서조선〉의편집인이기도했고,사상적깊이를지닌종교인이자교육자였다.그의동경고등사범학교동기동창인함석헌이《뜻으로본조선역사》를냈다면,김교신은‘뜻으로본조선지리관’을담은《조선지리소고》를냈다.이책은근대지리학관점에서조선지리를평가한최초의책이다.류달영은자신의인생관과세계관이모두김교신선생과의만남의산물이라며참스승을만난것을행운으로여겼다.
김교신은일제교과서를무시하고조선역사와조선지리를가르치며독립정신을심어주었다.당시교육은일본의우수성만가르치고한민족의역사는까맣게지우던때다.류달영은이순신을처음알게된날을잊지못했다.이시기에그의가슴속에서민족의식이깨어났고,독서를본격화했으며,냉수마찰로독립의지를불태웠다.
19세기후반러시아의진취적인젊은지식인들이농촌으로침투해활동한러시아농촌계몽운동인‘브나로드’의영향으로,우리나라에서도1931년조선일보사와동아일보사의후원으로청년학생들이‘브나로드운동’을벌였다.이운동의구호는‘배워야산다!’‘아는것이힘이다!’였다.당시우리나라의고등보통학교학생들은모두합쳐야2천명을넘지않았다.이들중상급생일부가이운동에참여했고그중류달영도있었다.당시전국농민들의90퍼센트이상이문맹이었다.지식인과학생들은주로농민들에게한글과기초산수,보건위생상식등을가르치는계몽활동에주력했다.류달영은사람들에게글자를읽고쓸수있어야무식을벗어나고사람답게떳떳이살수있다고역설했다.또한남자못지않게여자도배워야한다고설득했다.

운명적만남,《덴마크의이야기》
1933년류달영은양정고등보통학교졸업을앞두고조국과농촌의암담한현실을체험한피끓는청년으로서자족적인삶에일생을바칠수없었다.국민의90퍼센트이상이농민이니그들을계몽시키지않고는나라의앞날을기약할수없다고생각한그는농학을전공해농민운동을해야겠다는소망을품고수원고등농림학교(현서울대농업생명과학대학)에진학했다.사립고등보통학교를졸업한조선인학생들이민족의식이강한것을알고있는일제는그들의입학을꺼렸다.그야말로하늘의별따기였다.
수원고등농림학교의조선인학생들은30여명정도로기숙사방에‘자유독립’이란구호를써붙이는등‘개척사’라는비밀결사를조직해활동하다발각되어퇴학당하거나경찰에구속되기도했다.하지만선후배는동지가되어비밀결사활동을이어갔고,암암리에농촌활동을멈추지않았다.수원고등농림학교시절,류달영은운명적인한권의책을만나게된다.김교신선생은일본무교회주의창시자로세계적인사상가우치무라간조(內村鑑三)의문하생이었다.류달영은김교신선생으로부터우치무라간조의저서《덴마크의이야기》를받게되어덴마크부흥사를공부하기시작했고,6·25전쟁때피난지에서《새역사를위하여》를집필했다.

여성교육을선택하다
1936년당시일본의군국주의는절정을향해치닫고있었다.류달영은보다현명하게나라를위한길을찾아야했다.류달영은《덴마크의이야기》를읽고청년교육과협동운동이광복을위한최선의방법임을깨달았다.그는인재양성에헌신하기로결심하고암흑천지인여성교육을선택한다.그는어머니의정신이국가와사회를좌우하는밑거름이라고생각했다.개성의호수돈고등여학교(현호수돈여고)가첫부임지다.호수돈고등여학교는미션스쿨이어서일본인들의간섭에서비교적자유로웠다.
류달영은정규수업외에도필요하다고생각되는과목을수당없이가르치며여성교육에열과성을다했다.특히매주수요일수업이끝난뒤박물표본실에서성경공부를시작했다.성경공부와더불어조국의역사와지리를가르치면서앞으로무슨일을해야할지에관해토론했다.또한제자들의오빠나친척을소개받아수요일밤이면남학생들을집으로불러교육을시작했다.이공부모임을수요회라고정했고,수요회회원중에서후일에목사,대학교수,농촌사업가등이나왔다.

‘성서조선사건’으로투옥되다.
1942년봄,김교신이발간해온〈성서조선〉의권두문이문제가되어필화를겪게된다.〈성서조선〉은1927년7월에창간한무교회주의신앙잡지로함석헌의‘뜻으로본조선역사’를연재하는등민족혼을불러일으키는글을실어왔다.일제는권두문에서김교신의조선해방에의의지를읽고,당장300여명의〈성서조선〉동인들을검거하기시작했다.류달영도검거되어11개월동안유치장감방과구치소감방에수감되었다.그런데김교신,함석헌등과동경고등사범학교동창이면서무교회주의의스승인우치무라간조를사모하는일본인검사가‘성서조선사건’을맡게되면서관련자전원이불기소처분되었다.
1945년8월15일광복이되자류달영은해방된조국을위해할일을고민한다.‘백만사(百萬事)는모두인간이한다.’는실천원리를떠올리고인재양성을위한방법을찾는다.교육은시간이많이걸리니단시간내에사람을만들어내는방법을찾다가신념있는청소년이육성되는것을경계해일본인들이해산시킨보이스카우트를조직한다.훈련을마친소년들은조를짜서혼란한질서를바로잡는봉사를했다.또한행정과치안이공백상태여서개성유지들이모여시민대회를개최하고개성시자치위원을선출해행정과치안을맡겼다.류달영은10여명의자치위원의일원으로선출되어활동했다.

《새역사를위하여》를집필하다
1946년류달영은모교인서울대농과대학(전수원고등농림학교)의교수가되었다.류달영은농대에서화훼원예학을가르쳤다.그는화훼를산업화해수출작물로개발해야한다고생각하고이를장려했다.1950년여름한국전쟁이터져부산으로피난갔고,1·4후퇴때는대구로피난갔다.전쟁통에남루한차림의대구시민들과피난민들이한데뒤섞여물결처럼흘러가는광경을지켜보면서어떻게되찾은해방인데다시나라가두쪽으로나눠싸우고,이번에는미국,소련,중국이먹이를놓고서로싸우고있는상황에서‘한국인들에게희망을줄수있는일은없을까?’‘어떻게하면한국인들이정신적으로성숙해지고또자립할수있을까?’하고고민하게된다.조국의살길은덴마크처럼국민정신이깨어나는수밖에없고,이시점에그의사명은국민정신을일깨우는책을쓰는것이라고결론을내렸다.
47일만에집필을끝낸《새역사를위하여》(부제:덴마크의교육과협동운동)를읽고다석유영모는감격했으며,‘한국농민운동의바이블’로불리면서아래로는농민으로부터위로는대통령에이르기까지전국민의애독서가되었다.또한공무원과군인들의필독서이기도했다.당시지성인치고이책을읽지않은사람이드물정도였다.10여년후국무총리급인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본부장을맡아동분서주하며봉사하게된것도출발점은이책이다.
객관적인평가를내리면이책으로류달영의인생이바뀌었다해도이의를제기할사람은없을것이다.그만큼개인적으로,국가적으로매우중요한저서였고,저자의의도대로국민정신이깨어나는기폭제가되었다.암울한피난시절을생애최고의창조적시간으로바꾼그의지혜와안목에놀라지않을수없다.

《새역사를위하여》,동양의복지국가를꿈꾸다
류달영은우리처럼약소민족이면서무서운시련을겪고도망하지않고자주독립과부흥의길을걸은본보기로덴마크를꼽는다.
“보기드문역경속에서먼장래를내다보고교육으로건실한국가터전을만들었고,약한힘을한데모아협동하는슬기를길러목적한복지국가를건설한농민의나라덴마크는우리에게살길을지시하는신의계시처럼느껴진다.”
“하늘도감동케하는애국자들의성실,소박하고도우둔한것처럼보이는젊은이들의꾸준한분투,조국의먼미래를내다보는건전한슬기등약자로서위대한능력을발휘할수있는번영의원리를그들은남김없이찾아내어도탄에빠진조국뿐아니라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등스칸디나비아반도의여러나라를오늘의복지국가로바꾸어나갔다.”
그렇다.류달영의꿈은대한민국을동양의덴마크,동양의복지국가로만드는것이었다.그염원을실현하기위해매진한것이곧류달영의일생이다.
또한류달영은‘덴마크부흥’에서역사의재평가에관심을갖는다.1801년과1807년에영국함대는덴마크를침공해수도코펜하겐을폐허로만들었다.이해전은영국해전사의빛나는업적으로기록되어있고,덴마크에는치욕의역사로남아있다.1837년덴마크의위대한애국자그룬트비는청년들에게코펜하겐해전에서활약한해군장교윗모스에대해강연하곤했다.강연장은그룬트비가작사한‘용사윗모스의노래’를청중들이합창하며뜨거운애국심의도가니로변했다.이때부터코펜하겐해전은참패한치욕적인전쟁이아니라덴마크청년들이나라를위해목숨을아끼지않고싸웠던애국의전쟁으로바뀌었다.이를계기로덴마크에서는‘애국노래’운동이벌어져수많은국민가요가유행하게되었다.덴마크의국민가요는국민을단결시켜나라발전의원동력이되었다.
류달영은이렇게말한다.“한나라의발전은그나라국민들의건전한애국심의총화에정비례한다고할수밖에없다.나라를사랑하는국민이없는나라는지탱할수도,존재할수도없다.우리는일본인이덮어씌운식민사관을빨리벗어던져야한다.역사를보는각도를우리는크게돌려야한다.나는온국민이역사를재발견할것을거듭강조한다.”

류달영은덴마크의온국민이패전의어둠속에서비탄에잠겨있을때,비록전쟁에서패했지만정신은전혀패하지않은사람들이있었고,그대표적인사람이그룬트비와크리스텐콜그리고달가스라고했다.그룬트비는덴마크청년들을교육시킬국민교육을창안했고국민교육방법론으로‘국민고등학교’를세우는것이었다.크리스텐콜은그룬트비의이상을받아들여국민고등학교교육을실천하고발전시킨선구자였다.덴마크의교육목표는뜨거운인격교육이었다.교육목표의명확함,교사양성의철저함,형식을초월한실천적인교재,실질적인능력배양등‘실사구시’하고‘무실역행’하는덴마크의모습에서류달영은큰감동을받았다.달가스는또어떤사람인가?달가스는조국의미래를그려보았다.모두가실의에빠져허둥대고있는상황에서과연살아날길은없는것일까?그는모두가개간이불가능하다고생각한황무지를기름진땅으로바꾸는것만이패망한덴마크가살아날유일한길이라는결론에도달했고,‘황무지협회’를만들어기적처럼숲을이뤄냈다.나무한점없는참혹한황무지유틀란트반도는서서히푸른숲과그림같은목장과아름다운농가가펼쳐지는낙원으로변해갔다.황무지협회창설30년만에황무지의90퍼센트가개간되었다.달가스는덴마크사람들에게지상최고의복지국가라는선물을주었다.그리고류달영은달가스를통해어려운환경속에서오히려새역사를창조하는기회가주어진다는것